엑토르 폴레오 ‘위원들’
 

20081030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을 다녀와서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틴 아메리카 거장전에 다녀왔다. 그리고 나는 글을 써야 한다.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우선 라틴 아메리카 혁명의 역사와 미술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1910년 멕시코 혁명, 인디오와 백인 사이의 갈등, 검게 채색된 사람들, 억압받은 이들을 그린 어두운 톤의 그림들, 이와 대조적으로 뚱뚱하고 거대하게 그려진 백인들에 대해. 혹은 유럽 미술과 라틴 아메리카 미술의 차이점에 대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체로 유럽 화가들의 그림보다는 선이 굵고 투박하며 흙빛이 감도는 그림톤에 대해서. 아니면 여러 블로그들을 돌아다니며 몇몇 인상들을 짜깁기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에세키엘 네그레테 리라의 〈점심식사>, 혹은 페르난도 보테로의 <시인>이란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던 사람들이 어떤 사진을 찍었는지 확인해보며. 2층 의자에 앉아 바라보니 어떤 이는 사진을 찍으라고 세워둔 복제판 그림의 가장자리에 섰고 어떤 이는 그림 가운데 섰다던가 하는. 그러다 미술관을 찾는 이들의 일상에 대해 어느 정도 상상을 전개해 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가하면 각도를 조절해 셀카를 찍던 여자들의 표정. 영상 통화로 그림을 보여주던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야금 소리가 낮게 울려퍼지던 저녁의 덕수궁이 영화에서나 보던 미래 사회의 궁으로 변하던 순간에 대해서. 타임머신을 타고 온 시간 여행자가 되어서 지구 반대편에 사는 이가 그린 그림을 바라보고 지금으로부터 100년 전에 대해 떠올리는 어느 이상한 하루에 대해서.

혁명의 믿음을, 또는 민중을, 혹은 자신만의 네모진 상을, 불이 난 산을 몇날 며칠이고 그렸을 사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무엇이 저 화가를 저 자리에 붙들어맸으며 무엇이 저 그림을 라틴 아메리카 정반대편에 있는 조그마한 나라의 옛 궁 안에 있는 미술관 벽에 매달려 있게 하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예술은 무엇인가. 나는 요새 도통 예술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상상력이 없다면 삶은 결핍되고 마는가. 물질로만 이루어진 세계에서 예술은 물질 아닌 것과 물질 사이의 어떤 길항 관계를 표현하는 것인가. 물질 아닌 것을 물질로 만드는 재주. 그럼으로써 예술은 이 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이러다 예술의 의무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괴로워진다. 교언영색인가 아니면 조금씩이나마, 기어가더라도 인간의 윤리를 지켜야 한다며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인가.

예술은 즐거움을 위해 존재하는가 아니면 어떤 표현과 기록을 위해 존재하는가 등등 많은 문제들로 늘 머릿속은 괴롭고 그래도 삶은 이어져나갈 뿐이다.

지난 해 겨울, 라틴아메리카 역사에 대한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간략하게나마 멕시코 혁명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 이제와 떠올려보면 겨우 판초 비아라는 이름밖에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하지만 이사벨 아옌데의 『영혼의 집』이나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 그때 찾아봤던 영화 <올드 그링고> 같은 것들을 떠올리면 아주 조금이나마 멕시코 혁명이란 사건이 일어났다는 실감이 난다. 그림들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가는 누군가가 그 혁명 중에 꿈꾸고 숨쉬고 아파했다는 것이 믿겨지는 것이다. 정리된 문서 속에서는 이미 시효가 지나버려 아무런 가치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던 역사가 실은 여전히 숨을 몰아쉬며 꿈틀거리고 있으며 그 역사가 꾸는 꿈이 실존하는 누군가에게 전이될 수도 있다는 것을 믿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먼후일 나는 혁명을 마주하고 덕수궁 벽에 걸려있던 그림 한 점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예술은 주체와 대상 사이의 거리를 가깝게 해준다. 점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서로 지켜야 할 윤리를 가진다는 뜻일까?


디에고 리베라의 <테완페텍의 목욕하는 사람>,1923

페르난도 보테로 ‘브래지어 차는 여자’


막스 히메네스 우에테 ‘창가의 여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