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운 사람

앙리 미쇼

 

 

 

 

 침대 밖으로 손을 뻗치다가, 쁠륌므는 벽이 만져지지 않아 깜짝 놀랐다. "이런, 개미들이 벽을 먹어치웠나 본데……"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 다시 잠들었다.
 얼마 후에 그의 아내가 그를 붙잡고 흔들었다. "이거 봐요, 게으름뱅이! 당신이 잠에 빠져 있는 동안에 누가 우리 집을 훔쳐갔단 말예요." 사실 하늘이 그대로 드러나 주위에 펼쳐져 있었다. "쳇, 이젠 끝장이군." 그는 생각했다.
 잠시 후에, 소리가 들려왔다. 그것은 전 속력으로 그들을 향해 달려오는 기차였다. "황급히 달려오는 것을 보니, 분명히 우리가 움직이기도 전에 도착할 거야" 하고 그는 다시 잠들었다.
 그 다음에 그는 추위 때문에 잠을 깼다. 그의 몸은 온통 피에 젖어 있었다.
 아내의 살덩이 몇 조각이 그의 옆에 널려 있었다. "귀찮은 일들이란 언제나 피투성이가 되어 생겨난다 말야. 기차가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아주 행복해 있을 텐데, 그렇지만 기차가 이미 지나갔으니……" 그는 다시 잠들었다.
 "여보쇼."판사가 말했다. "당신 부인의 몸이 여덟 동강이가 될 정도로 부상을 당했는데 그 옆에 있던 당신은 사건을 막으려고 애쓰지도 않고 또한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으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하겠소. 알 수 없는 노릇이군. 사건의 전모는 바로 이 점에 있어."
 "이런 형편에서는 난 판사를 도울 수가 없어." 쁠룀므는 이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잠들었다. 
 "사형집행은 내일이오. 피고는 더 할말이 없소?"
 "미안하지만, 난 이 사건의 전말을 모르겠습니다." 그리곤 그는 다시 잠들었다.


 

 

앙리 미쇼 Henri Michaux (1899- )는 때로는 자기의 무의식 속을 파고들어가 존재의 실태와 존재 이유를 찾기도 하고 악의에 찬 세계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고뇌와 무력을 독특한 풍자와 유며로 나타냄으로써 현대 프랑스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높은 평가와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원래 프랑스어계의 벨기에 출신으로 1955년에야 프랑스 국적을 얻었다. 어려서부터 극히 고독한 성격으로 부모 형제나 어떠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자기는 남이라고 느꼈다고 한다. 브뤼셀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신비 작가의 작품이나 성인들의 전기를 즐겨 읽었고 잠시 의과 대학에 다닌 적도 있었으나 중도에 포기했다. 21세 때 새로운 다른 세계를 동경하여 일개 수부가 되어 약 2년 동안 바다를 떠다니며 방랑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24년부터 파리에 정착하여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특히 로트레아몽의 작품을 읽고 큰 감동과 충격을 받아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1927년 자아의 분열을 다룬 시집 <지난 날의 나>를 발표하고 계속하여 자신에 대한 거의 과학적, 의학적 관찰 보고서인 <나의 속성>, 그리고 현대 사회에서 박해받는 인물을 풍자적으로 그린 <플륌이라는 자>, 그리고 꿈과 환각, 충동을 조사, 보고한 <밤은 움직인다> 등의 시집을 내어 주목을 끌었다.

아울러 1927년에서 1939년에 이르는 동안 그는 또 다시 다른 세계를 찾아 에쿠아도르를 비롯한 남미, 터키, 인도, 중국, 일본 등을 여행하고 두 권의 여행기 <에쿠아도르>와 <아시아의 한 야만인>을 펴냈는데 저자는 이 가운데 각국의 도시, 인물, 풍습, 동식물에 대한 학자적인 정밀한 관찰과 시인으로서의 깊은 성찰을 하여 많은 독자에게 감명을 주었다.

1940년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남 프랑스의 코트다쥐르로 피난했는데 여기서 앙드레 지드를 만났고 지드는 미쇼의 내면적 시가 가지는 현대적 뜻과 가치를 높이 평가하여 "앙리 미쇼를 발견하자!"라는 강연을 하여 그의 이름을 높였다. 같은 시기에 그가 전시 중에 쓴 특이한 항전시가 발표되어 일약 그는 유럽에서 유명해졌다. 뿐만 아니라 그는 30년대부터 아무에게서도 배우지 않은 자기류의 그림을 그려 발표해왔는데 이 특이한 그림이 화단에서도 높이 인정되어 그의 이름은 더욱 널리 퍼졌다.

그는 시인으로 계속하여 <시련, 푸닥거리>, <유령> 등의 환상적인 시집과 <다른 곳에>라는 가공적이며 상상적인 3부작 기행 문집들을 펴냈다.

1955년 경부터 인간의 심층 내부를 철저히 탐색하기 위해 그는 마약인 메스칼린을 복용하여 그 환각과 취기를 이용하여 의식 내부를 탐험하려고 했다. 즉 자신의 마음 속 깊이 잠입하여 약의 힘을 빌어 인간의 모든 감각, 꿈, 인상, 이미지, 무의식을 알고 느끼고 경험하려고 했다. 그는 그가 직접 느끼고 본 것을 그의 시로 또는 그림으로 옮겼다. 어느 작가도 그만큼 인간의 희미하고 붙잡기 힘든 내부 세계를 이렇게 철저하게 탐험, 실험하려고 애쓴 작가는 없었다. 약 15년에 걸친 실험에서 얻은 작품으로 '비참한 기적', '소란스러운 무한', '구렁에서 얻은 지식', '정신의 큰 시련' 등이 있다.

미쇼는 만년에도 인간의 내부 세계와 환상 세계에 대한 많은 작품을('잠든 모양, 깬 모양', '사라지는 것과 대면하여' 등) 내놓았으나 점점 글자로 표현하기보다는 형상적인 그림으로 나타내는 경우가 더욱 많아졌다. 그의 그림이란 회화라기보다는 현미경 아래 보는 박테리아의 표본이나 X선 사진과 같이 기이하고 독특한 것이다. 그러나 화가로서 그는 거의 매년 프랑스를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전람회를 열고 있고 그 때마다 주목과 논란을 일으켰다.

1965년에는 파리의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그의 총작품 전시회가 개최되어 그의 예술에 대한 경의를 표하였다. 그러나 같은 해 국가 문학 대상의 수상자로 추대되었으나 그는 이를 사절하였다. 그는 시인으로서 겸손하고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엄밀한 뜻에서 문학권 외에 있으면서도 1940년대 이후의 젊은 시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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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헤는밤 2008-12-27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아나따노 오나마에와 ?

kangda 2008-12-27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뭐라는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