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랑가족
공선옥 지음 / 실천문학사 / 2005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녀는 정직하다. 정직함이 언제나 미덕은 아니지만 지금 그녀의 정직은 미덕이다. 이제 더 이상 정직이 미덕이 아님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꾸만 다르게 보기를 시도하고 그러다 보니 진짜 현실이란 게 뭔지는 잘 보이지 않게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눈은 사람마다 대부분 두 개, 이 지구상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고 우리나라에만도 사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있으니 눈은 그 두 배, 그 중 공선옥이 『유랑가족』에 그려놓은 풍경이 정녕 생소하기만 한 사람들도 있긴 하겠지만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니 아주 많은 눈이 저 풍경을 목격했으나 상투성이라는 틀 속에 저 풍경을 밀어넣어 버리고 다시 꺼내보려 하지 않는 찰나, 공선옥의 시도는 내게는 뭔가, 내 두 눈에게는 뭔가, 죄책감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을 마구 들쑤셨다. 왜 나는 보고도 보지 않은 척 하는가. 아, 그래 가난한 사람은 정말 많고 내가 그들을 다 어떻게 해줄 수는 없잖아, 그건 맞지만, 그래도 뭔가 노력해야 하는 거 아닌가,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게다가 나도 가난하고 조금 배워서 겨우 이 가난을 헤쳐나가려고는 하지만 쉽지는 않고, 그것이 시스템의 문제인지 나의 체질의 문제인지도 헷갈리고, 세상은 너무 거대하고 그렇지만, 대체 나는 왜 직무유기를 하는가. 아, 물론 이런 나의 의견에 대해 반발하는 사람도 많겠지만, 말하자면 내가 선택한 삶, 결심한 삶에 비쳐보면, 나는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게도 몹시 익숙한 저 풍경은, 거리 어디에나 널려있고, 조그마한 호프집에 들어가 잠시만 앉아있어도 옆 테이블 아저씨들의 불콰해진 얼굴과 목소리 속에 새겨진 그런 풍경이기 때문이다. 서울 변두리에서 어떻게든 삶이란 것을 살아내보려 애쓰는 상경한 노동자들의 고독을-또한 자신의 고독과도 매우 비슷한 그 고독을- 우리는 다들 알지만 모르는 척 하고 싶어하거나 상투적이라고 하거나. 우리를 죽이는 건 상투적인 가난과 상투적인 자연의 상투적인 아름다움, 상투적이나 뼈까지 시려오는 외로움. 아니, 마음 속에 똬리를 튼 상투성의 독. 실은 바로 그 상투성이 지금 당신이 살고 있고 진흙바탕이라고, 당신이 상투적이라고 느낄 때 그것은 당신과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것이라고. 2008년 한국은 실은 그렇게 다들 살려고 아등바등하는 아비규환 속이라고. 그 속에서 다들 외로움에 치를 떨며 누군가를 만나려고 소외되지 않으려고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존재마저 사라져가는 이 현실이 우리의 목을 조르고 있다고.

시선이 각도가 지금 한국문학을 사로잡고 있지만 저 묵직한 현실은 여전히 그대로 있구나. 늘 저기 그대로 있구나 라는 그래, 또 어쩌면 상투적일지도 모르는 깨달음에 나는 한 대를 얻어맞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