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보이네 - 김창완 첫 산문집 30주년 개정증보판
김창완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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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처럼 한국의 가수가 노벨문학상을 받는다면 나는 김창완이 그 주인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장이 과거형으로 끝나는 이유는 이 생각이 오래된 것이기 때문이다. 

김창완이라고 부르지만 알고 보니 그는 우리 엄마와 한 살 차이가 나는 어머니 시대의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나의 이십대를 함께 한 가수였다. 첫 사랑이 끝날 무렵 사무쳤던 '회상'이나 '너의 의미', 스무 살 노래방에서 부르곤 하던 '나 어떡해', 태구 오빠가 알려줘 백 번도 넘게 듣고 그가 세상을 떠난 뒤 힘들 때면 눈물 흘리며 들었던 '무지개'까지 그의 노래는 나의 이십 대에서 삼십 대까지 질풍노도의 주제가들이었다. 

책을 더는 사지 말자고 결심했던 무렵 그의 책을 알라딘 메인페이지에서 보고 주저하다가 그래도 김창완이니까 하고 샀으나 다 읽지는 못했다. 그러던 차 친구로부터 김창완밴드 콘서트가 열린다는 정보를 듣고 콘서트에 가기 전 다시 책을 빼들었다. 마침 그는 콘서트 중 책에 있는 '내 노래'라는 시를 읊어주기도 했다. 

오랜만에 공연에 다녀온 셈이다. 가끔 클래식 공연을 가긴 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부르는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콘서트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2-30대가 된 듯 방방 뛰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실제 목소리로 들었던 내가 좋아하던 그 많은 노래들, 70이 넘은 그가 부르는, 20대에 썼다는 '청춘'은 또 얼마나 마음을 후벼파던지.


좋았던 구절들을 적다 보니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 이런 노래들을 부를 수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시절을 살아갈 뿐이나 흘러가버린 시간에는 경의를, 서랍 하나 장만해 통증은 넣어두고 어느 날 꺼내보면 추억이 되어 향기가 서리고 별이 되어 빛나고 있으니...

그의 음악을 들었던 날은 삶이 문득 다시 선물처럼 생생해졌었다. 삶을 다시 자신에게 선물하라는 그의 주문처럼.


2026 3 18일 수요일


삶이 들려주는 대답은 그 의미가 단 한 번으로 완결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로 지금까지 해온 일들에 사로잡히기보다 흘려보낼 때, 그때 인생이 알려주는 것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 P9

뭔가를 꼭 하고 있어야 주인공이 되는 게 아닙니다. 인생은 누군가에게 들려주는 게 아니니까요. 모두 나에게 돌아올 뿐입니다. - P10

그저 흘러가 버린 모든 시간을 향해 경의를 표하기로 해요.
- P10

삶을 다시 자신에게 선물하세요. - P11

우리는 그저 그 시절을 살아갈 뿐이라고요. - P23

억지로 지우려 드는 대신 통증을 껴안을 수 있는 내성을 기르는 것도 방법이에요. - P24

통증이 마음을 너무 어지럽히면 서랍이라도 하나 장만해서 넣어두시면 좋겠어요. - P24

이별, 괴로움, 심지어 상실이 삶을 완전하게 만들어준다는 걸 깨달았어요. 완벽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는, 그런 마침표 같은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 괴로움도 아픔도 없애려 하지 말고 다 담아두세요. 이것도 내 건데, 그리고 나중에 보면요, 거기서 심지어 향기도 나요. - P25

그래서 사람들은 언젠가 이 순간으로 돌아오고 싶어 할 거라고 기대하는 순간을 사진으로 남겨두려 한다. - P93

너도 이름을 얻기 전부터 이 세상에 있었던 것처럼 이름을 얻기 전의 나무와 이름을 얻기 전의 하늘, 이름을 얻기 전의 어둠과 밝음을 보아야 한다. 달팽이가 부르는 노래는 제목이 없다. 되도록 그런 노래를 불러라. - P97

사실 아이들이 하는 말의 대부분이 거짓말이다. 다만 그것이 악의에 차 있지 않을 뿐이다. - P197

아이들은 어른들의 본질적인 거짓말을 흉내 내고 어른들은 아이들의 거역할 수 없는 진실성을 흉내 낸다. - P198

누렁이는 할멈을, 할멈은 나를, 나는 누렁이의 목숨을 지켜주었다. 혼자서 붙어 있는 목숨은 없었다. 겨울은 곧잘 그런 계절이었다.
- P247

할멈이 허공에 흩어져 버렸다. 누렁이 짖는 소리가 메아리 없이 사라질 때 세상에 경계가 없는 걸 알았다. 이 세상과 저 세상은 한 세상이다. (중략) 갑자기 온 세상이 빈 개밥그릇 같았다. - P248

별빛은 먼저 떠난 모든 이의 오늘의 안부. 이 땅의 모든 생명은 저 땅의 별이다. 올라가 별이 되고 떨어져 내려와 다시 별이 된다. 할멈이 간 곳을 이내 찾았다. 할멈이 간 곳은 내 여섯 살의 봄날이다. 오늘도 별이 빛난다. - P249

무언가가 인생의 발목을 잡을 때는 삶을 돌아보라는 의미인지도 모를 일이구나 싶었습니다. - P253

이제와 돌아보니 지나온 길도 숲이고 앞으로도 온통 숲입니다. - P253

노래에도 주름살이 파인 것 같습니다. 노래 한 자락이 고마워 노래를 부르고 또 부릅니다. 하면 할수록 조금은 더 알게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은 것이 예술인지도, 인생인지도….
- P253

관객의 가슴에 날아가 앉는 줄만 알았던 노래들이 저에게로 돌아오는 나비였다니…. - P257

생명이 깃든 장소로 지어진 집이야말로 아름다운 집이다. - P264

아직도 내게 삶은 제목 없는 노래다. 언제 제목을 지을지…. 언제 간판을 달지…. - P280

사라지는 어떤 것도 설명하는 법이 없다.
지고의 표현인 사라짐은 언제나 홀연할 뿐이다.
- P293

춤은 중력의 불꽃이다. 건축물은 얼어붙은 불꽃이다. - P298

누에가 명주로 집을 짓고, 까치가 나뭇가지로 집을 짓는다면, 사람들은 추억으로 집을 짓는다. - P320

추억은 향기일 뿐이라서, 꽃이 피기 전에는 맡을 수 없다. - P320

감사는 만물에 보내는 나의 갈채입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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