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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산책 ㅣ 말들의 흐름 4
한정원 지음 / 시간의흐름 / 2020년 6월
평점 :
예전에 병진이가 좋다며 소개했던 것 같다. 도서관에서 빌렸으나 몇 페이지 읽지 못하고 가져다줬다. 너무 감상적인데, 생각했었다.
학교에 작가와 같은 이름을 가진 언니가 있었다. 그 언니가 이 책의 저자라고 했다. 문득 사서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아보니 그 언니는 아닌 것 같다. 똘망똘망한 눈을 가진 예쁘고 귀여운 언니였는데, 그 언니가 이런 책을 썼다니 하며 한동안 두근거렸는데, 작가 얼굴이 그 사람이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흘렀더라도, 그 언니는 아니라 조금은 아쉬웠다. 그 사람이 소록도에 가거나 이런 글을 썼다면 더 좋을 것 같았던 이유는 뭘까.
둔내에서 여기로 오는 기차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에서 읽었다. 형광펜으로 줄을 치다 보니 점점 많은 문장에 줄을 치게 됐다.
아름다움에 대해
행복에 대해
노래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했다. 인터넷이 주는 대로, SNS가 주는 대로 생각하는 데 익숙해지던 와중 오랜만에 생각이란 것을 했다. 행동을 바꾸는 생각, 행동을 바꾸는 문장
바다에는 모래보다 소금보다, 비밀의 밀도가 높을 것이다.
-p.78
이런 문장들로 이루어진 책을 쓴 사람이라면 행복하겠다는 생각
마음 하나로 빚어낸
때로 스스로가 너무 사치스러운 인간은 아닌가, 다들 돈벌이를 하느라 하고 싶지 않아도 그걸 하느라 바쁜데 그것을 거의 포기하고 있는 나라는 인간의 잉여스러움에 부끄럽던 차, 이 책을 보니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다들 열심히 가고 있는 거기 당도하고자 하지 않음이 나쁘거나 방종한 것은 아니라고 다른 데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고 도달하지 않고 그저 여기저기 둘러보거나 하며 살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삶에 정답은 없으니
문장을 꼭 끌어안고 잠들고 싶은,
나는 질문으로 세상을 살지 않고 있나?
여기 있는 책을 다 읽고 싶은 마음、 오랜만에 느껴보는
그때 읽지 않아 다시 리스트를 만드는 일이 결국 쓸데없이 시간만 쓰고 제대로 하지 않는 것 같지만
그래도 리스트를 만들어 하나하나 읽어보고 싶은
2026년 1월 21일
수요일
내가 보는 것이 결국 나의 내면을 만든다. 내 몸, 내 걸음걸이, 내 눈빛을 빚는다. - P25
가슴속에 노래를 간직하고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차이였을 것이다. - P32
행복은 그녀나 나에게 있지 않고 그녀와 나 사이에, 얽힌 우리의 손 위에 가만히 내려와 있었다. - P32
그렇게 생각할 때, 나와 생각 사이에 또 행복 같은 것이 있었다. - P33
가지지 못한 것이 많고 훼손되기만 했다고 여겨지는 생에서도, 노래를 부르기로 선택하면 그 가슴에는 노래가 산다. 노래는 긍정적인 사람에게 깃드는 것이라기 보다는, 필요하여 자꾸 불러들이는 사람에게 스며드는 것이다. - P34
나의 최선과 당신의 최선이 마주하면, 나의 최선과 나의 최선이 마주하면, 우리는 더는 ‘행복‘에 기댈 필요가 없다. - P35
기쁘고 슬플 것이나 다만 노래하자고. - P35
숫자 11의 생김새를 골똘히 보면, 나무 두 그루 모양이다. 잎을 다 떨구고 빈 가지만으로 서 있는 만추의 나무. 그 잎들은 바람을 타고 멀리 가기도 하겠지만, 대개는 나무 바로 밑 둥치로 떨어져 모인다. - P39
나와 아저씨들은 끝까지 서로의 신상에 관해서는 몰랐지만, 아랑곳 않고 곁을 내주었다. 집 앞 담벼락과 트럭 밑처럼, 거기 둥근 밥그릇처럼, 질박한 공간을 당당히 차지하도록 허락했다. 우리는 구석에서 사는 사람들이었다. 구석의 목소리는 곧 꺼질 불씨처럼 위태로워서, 구석끼리 자꾸 말을 시켜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우월함을 드러내는 연민이 아니라,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 바치는 아부가 아니라, 나에게도 있고 타인에게도 있는 외로움의 가능성을 보살피려는 마음이 있어 우리는 작은 원을 그렸다. - P55
점점 뜨거워지고 따가워질 울음이다. 매미는 자신의 마지막을 알아서 더 애태우는 것일까, 몰라서 열중할 수 있는 것일까. - P59
사랑은 불처럼 일어서는 마음이었고, 이별은 불 때문에 끝내 사그라드는 마음이었다. 남자는 보이지 않는 불꽃을 보여주려고 조바심을 냈지만, 여자는 이미 검은 재와 흰 연기의 시간에 도착해 있었다. - P60
뜨거운 존재들이 견디고 있는 것은 ‘지금‘이라는 시간이다. - P61
혹시 나에게는 불 대신 빛이 있을지. 불을 지를 수는 없지만 당신을 환하게 비출 수는 있을지. 은은하게 나의 사랑을 연명해나갈 수도 있을지. - P61
바다에는 모래보다 소금보다, 비밀의 밀도가 높을 것이다. - P78
그래서 나는 바다 곁에서 살기를 바라고 있다. 걸어서 바다에 닿을 수 있는 크지 않은 집에서, 가능한 아는 사람들 없이 혼자 혹은 둘이서, 변함없이 덧없이 사랑하면서. - P79
선명함을 잃을 때 모든 존재는 쓸쓸함을 얻는다. - P121
여기에 잘못 온 것 같은데, 그렇다고 어디에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 P123
시도 저녁도 어려운 것인데, 어느새 나는 그것에 기대서만 간신히 살아간다. 뚜렷하고 익숙하며 사라지지 않는 것은 이 세계 어디에도 없음을 알게 되어서이다. - P124
세상과의 결속에서 틈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나의 내면이 나의 존재와 끊어지지 않으려 분투하고 있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누구인지 영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계속 시도해보겠다는 의지 같은 것. - P125
창문에는 이름과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같은 것도 붙고, 눈이나 돌멩이로 위장한 진심도 스쳐간다. 그것은 숨겨져 있다가, 어두워진 창이 바깥 풍경을 지우고 내 얼굴을 비추면 그 위로 슬그머니 상을 겹친다. 그러니 나에게도 파로흐자드에게도 창문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것이 상상이고 이해이며 꼭 한 번은 거울이 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 앞에서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는. - P132
산책의 마지막 기쁨은 돌아가는 길을 얼마나 순순히, 서두르지 않고 걷느냐에 달려 있다. - P155
말이 맥락에서 일탈할 때, 말 속의 희비극이 돌연 짙어지는 것을 느낀다. - P156
걷다가 죽어가는 벌게 곁에 있어주고, 창을 내다보는 개에게 인사하고, 고양이의 코딱지를 파주며 탕진하는 시간이 나는 부끄럽지 않다. 그 시간의 나는 진짜 ‘나‘와 가장 일치한다. 또한 자연이나 스치는 타인과도 순간이나마 일치한다. 그 일치에 나의 희망이 있다. 부조리하고 적대적인 세계에서 그러한 겹침마저 없다면, 매 순간 훼손되는 존재를 어떻게 바라보고 견딜까 -방안에 있을 때 세계는 내 이해를 넘어선다. 그러나 걸을 때 세계는 언덕 서너 개와 구름 한 점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 된다. (윌러스 스티븐즈, <사물의 표면에 대하여>) - P157
한 사람을 오래 응시할 수 있으려면 마음이 단출하고도 단단해야 할 거예요. - P167
누구를 기다릴 때면 그 잠잠한 시선을 떠올리며 자세를 가다듬습니다. 펄럭이지 말자, 다짐하면서요. - P167
삶에서 그만한 사랑이 찾아오는 때는 단 한 번이라는 것, 어쩌면 그것도요. - P168
"같이 걸어요." 모든 시작이 이런 말이면 어떨까요. 같이 걷자는 말. - P169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이야기했지요. 나무가 보이면 나무를, 벽이 보이면 벽을, 사람이 보이면 사람을. - P170
그건 하나의 마음을 평생 가져가는 - P170
오래 바라보니, 그건 그대로 기도가 되었어요. 제 기도는 늘 질문이고요.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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