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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 평전 - 시대를 거역한 격정과 파란의 생애
허경진 지음 / 돌베개 / 2002년 6월
평점 :
허균 허난설헌에 대한 글을 쓰기 위해 읽은 책이다. 글을 쓰려고 보니 내가 이 사람에 대한 정보가 많지 않구나 싶어 빌려 읽었다.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의 저자라는 것밖에 알지 못했다. 누이 허난설헌이 있었고 알고 보니 초당두부마을의 초당 허엽의 막내 아들이었다. 사천 교산 인근 외조부집인 애일당에서 태어나 자신의 호를 그 산의 이름을 따 교산이라 지었다. 교산의 교는 이무기 교(蛟)를 쓴다. 사천 인근에 교문암(蛟門巖)이 있는데 이무기가 밑에 엎드려 있다 떠나며 갈라진 바위라는 설이 있어 이름에 역시 이무기 교(蛟)가 들어간다.
지금 사천의 애일당터라 추정되는 곳은 사유지로 접근이 어렵고 교산으로 추정되는 곳에 허균 시비가 있으나 역시 인근 펜션에 가로막혀 찾아가기가 쉽지는 않다. 출입문을 들어서면 무덤 세 구가 있는데 이 무덤 세 구를 지나면 소나무와 대나무가 울창한 숲속에 허균 시비가 있다. 터가 좋군, 싶은 곳이다.
사천 바닷가 곳곳에는 홍길동 스토리로드, 애일당 가는 길 등 벽화가 있지만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라 산만한 분위기다.
선조시대에 태어나 광해군 11년 역적으로 죽은 허균은 충절을 외치는 뿌리 깊은 유교 이념에 사로잡힌 선비는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한 번 본 것은 기억하는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였고 글을 잘 지었으며 독서애호가였으나 답답한 조선시대에 걸맞는 사람은 아니었다. 유불선 모든 분야의 책을 읽고 후반부에 보면 기독교를 최초로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데도 역할을 했다고 한다. 한 군데 사로잡힌 아집의 소유자라기보다는 자유주의자에 가까웠고 유교이념보다는 하늘이 내려준 본성을 따르겠다고 해 당대의 선비들에게는 지탄을 많이 받았다. 한마디로 '경망하다'는 것이 그에 대한 평가였다.
양천 허씨 집안 막내 아들로 태어나 글을 잘 썼으나 경망한 성품과 아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인 성격으로 인해 벼슬길이 쉽지 않았으나 이를 부끄러워 하지도 않았다. 기생들을 데리고 친구들과 놀며 관리일을 소홀히 해 파직당하고 불교를 믿는다고 파직당하고 친척을 과거시험에 등용시켜 파직당했다. 놀기를 좋아했던 것은 사실이고 자연에서 유유자적하고자 하는 꿈을 꾼 것도 사실이며 다방면의 책을 읽고 마음 붙일 데가 없어 불교를 믿은 것도 사실이나 친척을 과거시험에 등용시킨 경우에는 다른 관리들도 모두 그렇게 하였으나 주변세력이 없던 허균에게 죄가 몰린 듯 하다. 자기 멋대로 굴던 사람이긴 하나 자기 권세를 위해 부당하게 굴었다는 인상은 아닌 셈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천재였던지라 당대의 불합리한 제도들에 대해 자기 의견을 개진한 글을 많이 썼고 이 글을 스스로 편집해 책으로 엮었으며(누이 허난설헌의 책, 형 허봉의 책도 직접 엮었다) 당대의 시나 조선의 시에 대한 비평서도 많이 남겼다. 글을 잘 써 필요할 때 등용되었으나 당대사회나 집권세력의 입맛에 맞추기보다는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는 경향이 강해 높은 벼슬에 오르지는 못하다 혁명을 위해 집권세력자인 이이첨과 교류해 혁명을 준비하던 중 발각돼 처형당한다.
서자의 설움을 폭로한 영웅서사 홍길동전의 저자는 양반이었고 그냥 두 발 뻗고 편안히 살 생각을 했더라면 그런 채로 살 수도 있었을 텐데 늘 자연에서 유유자적하고자 하는 꿈을 꾸었으나 이 불편한 현실을 개혁할 두뇌와 어느 정도의 힘이 있기에 결국 혁명을 준비하던 도중 발간된 것이다. 실제로 서자들과 자주 어울렸고 따르던 무리들도 고위층 양반보다는 평민, 승 등이 더 많았다고 한다.
기이한 인간이었으나 똑똑해서 그냥 두고만 볼 수 없던 조선의 불합리한 현실을 스스로 개혁하려다 좌절된 듯하다. 혁명 전 사람들을 시켜 한양을 빠져나가게 한 점 등은 그가 꿈꾸던 혁명 이후는 무엇이었을지 궁금하게 한다. 죽기 전 할 말이 있다고 하였으나 이이첨 등 다른 관리들의 청으로 즉각 처형당한다.
그가 쓴 책은 역적으로 잡혀들기 하루 전 외손자 집에 자신의 글을 엮은 문집 '성소부부고'를 보내 판본의 차이는 있으나 이 책은 남아있을 수 있게 되었다.
역시 홍길동전의 저자답게 재밌는 사람이다. 그가 정말 한글로 소설을 썼는지는 명확지 않으나 그가 쓴 글의 이력을 보면 그가 한문으로 썼건 한글로 썼건 이 이야기의 작가는 맞다고 보여진다. 그가 쓴 '호민론'이나 '유재론'을 보면 그가 꿈꾸던 정치가 있었으나 탐관오리들이 넘쳐나고 좋은 집안의 자식들이 주로 출세하던 조선시대 사회적 분위기는 허균이 보기에 맞지 않았으며 거기 자신을 맞출 수 없어 벼슬 생활이 쉽지 않았던 듯 하다.
결국 광해군은 인조반정으로 물러나고 당대의 권세가이던 이이첨 등은 모두 잊혀지고 이야기의 저자 허균만 400년이 지나도 남았다. 당대에는 괴물, 요괴, 괴수 등으로 평가되었으나 솔직한 자기자신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 말한 것이 격식, 체면을 중시하는 유교사회에는 어울리지 않아 살기 괴로웠던 듯 하다.
그가 꿈꾸던 혁명이 이루어졌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세상을 살고 있을까. 조선 이후 일제시대를 맞는 그 역사가 바뀌었을 테니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을 것 같다.
자기를 세상에 맞추지 않고 세상을 자기에 맞추고자 했던 허균, 재미있는 사람이다. 오랜만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이 생각났다.
현명한 사람은 자기를 세상에 잘 맞추는 사람인 반면에 어리석은 사람은 그야말로 어리석게도 세상을 자기에게 맞추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세상은 이런 어리석은 사람들의 우직함으로 인하여 조금씩 나은 것으로 변해간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직한 어리석음, 그것이 곧 지혜와 현명함의 바탕이고 내용입니다.
-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2022년 11월 19일
토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