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어쨌거나 쓰는 것이다. 잘 쓰는 것은 그다음이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마음을 글쓰기를 위한 재료로 사용할 필요가 있다. 모든 마음을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로 사용하는 것보다 윤리적이고 정당하다. 작가는 비윤리적인 것을 써내는 것이 차라리 윤리적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 않음으로서의 정의는 없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땅에 묻어두고 손해를 예방하는 것은 이미 어떤 것도 창조하지 않았으므로 가치가 없다. 어떤 창작의 에너지도 발생하지 않는다. 나쁜 에너지도 좋은 에너지도, 욕하고 논쟁할 수 있는 담론으로서의 가치조차도 발생시키지 못하는 안전하고 편안한 작가들아. 쓰지 않고서 쓰는 자로 살 수는 없다. 김수영을 읽고 내가 한 다짐이다. - P119

삶을 싸움에 빗대는 비유는 낡았지만 그래서 흔하고 뻔하지만 유효할 때가 있다. 매 순간 경험하는 감각과 느낌이 그렇기 때문이다. 도처에 적이 있고 사방에서 무엇인가 공격해온다. 긴장으로 몸과 마음은 굳어 있고 이 싸움을 멈추고 싶지만 방법도 능력도 없다. 이길 수 없지만 또 질 수도 없기에 링에서 내려올 수 없는 상태. 문학을 하는 것도(사랑하는 것도) 그렇지 않을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무엇에 대해 사유하고 감각하는 모든 문학적인 상태들. 홀로 섀도복싱을 하고, 아무도 보지 않는 단식 공연을 하며, 때론 그림자들과 극을 하면서 죽는 그 순간까지 무대의 빛을 볼 수 없더라도이 삶을 유지하는 것. 필요하다면 버티고 싸우며 스스로를 이겨내는 것. 무의미를 견디고 사소함을 견디고, 질문을 이겨내고 무관심을 이겨내는 것.
때로는 수치와 치욕으로부터, 때로는 쓸모와 의미의 강압으로부터 의연해지는 것. 최소한 그런 척이라도 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것 아닐까? 문학에게 묻고 싶은 날이 있다. - P124

자신의 감각과 사유. 창작을 향한 규정할 수 없는 모호한 욕망. 그리고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로 만들어내지 않은 ‘어떤 창작하고 싶음‘ 속에 깃든 고유함. 다른 것들끼리의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 마침내 그것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고 명명할 때 그것은 고유해진다.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고유하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 P130

‘사랑‘이다. 그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너무 단순하고 순수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 누구나 쉽게 갖다 쓰는 뻔하고 빤한 표현 같지 않은가. 어딘지 애 같고 노인같은, 그저 낭만 타령이나 하는 감상주의자처럼 느껴지지 않나. 문학은 종이다. 텅 빈 허공이다. 아무도 없는 놀이터다. 소설이다. 소설이 아니다. 우주다. 바다다. 바보다. 아무것도 아니다. 쓰러져가는 집이다.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이다. 가능한 것들의 불가능한...... 등등. 별 말을 다 해봤는데 아니다. 어딘지 조금씩 빗나가고 엇나간다. 정확하지 않고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하지도 못한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말한다. 그것은 사랑이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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