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soul‘이라는 단어는 당신 안에서, 내 안에서, 자연 안에서, 혹은 꿈의 이미지 안에서 이 세상의 물질을 가장하여 흐르고 있는 자율적인 에너지를 일컫는 단어임을 기억하라. 그 에너지는 우리에 의해 경험됨으로써, 우리를 통해 영혼이 된다. 그래서 한 예로, 타인이 우리 내면에 사랑을 일으키고 구현할 수 있지만 이는 우리의 주관적인 상태로 경험된다. 종교적 경험의 진실성은 우리의 밖에서 시작되지만, 타자를 찾는 우리 내면의 무엇인가를 건드린다. 내부와 외부가 서로 관여하고 결합할 때, 우리는 이것을 의미로 경험한다. 따라서 영혼은 우리 밖에 존재하지만 우리 본성의 중심적인 무엇인가는 유사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연결되기를 바란다. - P280
더 깊은 상징적 드라마에 참여하고 있다고 느끼지 않는 사람은 조만간 다양한 증상을 겪게 될 것이다. 융이 일찍이 주장한 바와 같이, 이 문제는 모든 사람의 인생 후반을 관리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그 사람은 무한한 무엇인가와 연결되어 있는가 그렇지 않은가? 이것은 그의 삶에 있어 결정적인 질문이다. (…) 만약 우리가 지상의 삶에서 이미 무한한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느낀다면, 욕망과 태도가 변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오직 우리가 구현하는 핵심적인 그 무엇 때문에 가치를 지닌다. 만약 우리가 그것을 구현하지 않는다면 인생을 낭비하고 마는 셈이다. - P281
인류 초기의 문화는 세상을 ‘영혼이 깃든‘ 것으로 경험했다. 말하자면 모든 것은 영혼 에너지의 구현체이거나 운반체였다. 나무도 영혼을 갖고 있었다(우리는 여전히 ‘나무를 두드리다knock onwood‘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는 나무 안의 아니마를 불러 행운을 빌기 위해서이다). 대지에도 영혼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영혼의 선의와 풍성한 결실을 일으키기 위해 동물이나 인간의 희생, 들판과 사원에서의 의식적 교접 등과 같은 교감의 주술을 필요로 했다. 사람들도 저마다 영혼을 지니고 구현했다. 또 힌두교 사람들이 상대방의 내면에 있는 영혼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서로 손바닥으로 인사를 나누었듯, 사람들은 종종 상대방의 내면에 있는 그 영혼을 알아보았다. 사람들은 심지어 홀림의 경우에서처럼 서로에게 영혼을 투사하기도 했다. 서기는 투사니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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