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그녀에게 사랑이란 해이며 달이며 비이며 눈이었다. 그것들은 지상의 생명을 키우는 원천이지만 생명을 키우는 것이 소명이거나 소임은 아니어서 때로 엄청난 파괴를 불러오기도 한다. 무심히 내리쪼이는 햇빛과 달빛과 비와 눈을 성장의 원동력으로 쓰거나 죽음의 원동력으로 쓰는 것은 햇빛과 달빛의 의지가 아니라 그것을 흡수하는 생명의 의지인 것이다. 해와 달과 비와 눈을 맞으며 커가는 생명처럼 다른 존재들을 흡수하며 성장하는 것. 그리하여 언젠가는 성장을 멈추고 소멸하는 것. 여자에게 사랑이란 그런 것이었다. 여자에게 타인이란 세상 만물을 고루 비추는 저 태양과도 같았다. 그 빛이 우연히 한 생명과 맞닥뜨릴 때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빛이 생명을 키우는 동안 사랑은 찬란하게 빛난다. 그러나 때가 되면 약이었던 빛이 독이 되어 생명을 시들게 할 수도 있는 법,
여자는 우연이 빚어낸 한 빛나는 순간을 영원한 것으로 지속시키려는사람들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없었고, 사람들 또한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 P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