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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나긴 이별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73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이경식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평점 :
오랜만에 읽는 추리소설이다. 어렸을 때는 읽은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기억이 잘 안 나고 그래서 거의 처음 접하는 장르인 것처럼 읽은 추리소설. 추리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은 여러 번 봤어도 소설은 정말 오랜만인지라 초반에는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내가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지 자신할 수 없었다. 필립 말로우라는 인물의 생(?) 후까시를 언제까지 내가 받아줄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의 캐릭터를 내가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느끼게 될 때 까지, 또한 이 소설의 뒷받침이 되는 1950년대 미국 문화에 익숙해지까지는 좀 읽기 불편한 소설이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과정이나 인간을 만나는 과정이나 비슷한 건지 결국 점차로 그 인물에게 적응하게 되는 것이다. 필립 말로우의 생 후까시에서 점점 매력적인 부분을 받아들이게 되고 인물의 개연성을 인정하게 되는 것이다. 사립 탐정인 그가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인물이라는 것을 그럭저럭 받아들이고 마는 것이다. 그때부터 마치 사람과 친해지는 것처럼 소설의 캐릭터를 따라가면 된다. 이 인물이 대체 사건을 어떻게 풀어갈지. 사건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가 신용하던 한 지인이 살인자로 몰리게 되고, 자살한다. 필립 말로우는 그가 살인을 하지 않았으리라 믿기 때문에, 단순히 이 믿음에 근거해 그 사건을 뒤쫓으려 하고 그에게 의뢰가 들어온 한 알코올 중독 소설가를 돌봐달라는 사건이 중첩되며 이야기가 풀려나간다. 지금 이렇게 써보니 매우 간단한 이야기인데 인물들이 등장하며 사건은 결코 간단하게 묘사되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필립 말로우라는 인물의 다른 사건들도 한 번 보고 들춰보고 싶단 생각이 든다. 스타일을 팔아먹는다는 선생님의 말이 맞는 것 같다. 결국 그의 스타일을 다시금 음미해보고 싶은 것이다. 그가 사건을 풀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사건 도중에 시도때도 없이 튀어나오는 인생에 대한 그의 태도가 엿보고 싶은 것이다. 아직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리고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아 실행에 옮길 수 있을 지도 자신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