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는 것은 자신을 세계로 열어놓는 것이다. 발로, 다리로, 몸으로 걸으면서 인간은 자신의 실존에 대한 행복한 감정을 되찾는다. 발로 걸어가는 인간은 모든 감각기관의 모공을 활짝 열어주는 능동적 형식의 명상으로 빠져든다. 그 명상에서 돌아올 때면 가끔 사람이 달라져서 당장의 삶을 지배하는 다급한 일에 매달리기보다는 시간을 그윽하게 즐기는 경향을 보인다. 걷는다는 것은 잠시 동안 혹은 오랫동안 자신의 몸으로 사는 것이다. 숲이나 길, 혹은 오솔길에 몸을 맡기고 걷는다고 해서 무질서한세상이 지워주는 늘어만 가는 의무들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 덕분에 숨을 가다듬고 전신의 감각들을 예리하게 갈고 호기심을 새로이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걷는다는 것은 대개 자신을 한곳에 집중하기 위하여 에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 P9

세계를 이해하고 남들과 나눔으로써 그 세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고유한 자질은 수백만 년 전 인간이라는 동물이 직립하게 되면서부터 생겨난 것이다. 과연 인간은 직립하여 두 발로만 걷게되면서부터 손과 얼굴이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이렇게하여 수천 가지 운동이 가능해짐으로써 의사소통의 능력과 주변환경을 조종할 수 있는 여지가 무한히 확장되었고 그와 더불어 두뇌가 발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 P9

인간이라는 종(種)은 두 개의 발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르루아 구랑은 말했다. 그런데도 우리 시대의 대다수 사람들은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인류가 아득한 옛날부터 자동차를 타고 와서 땅 위에 내려서는 중이라고 믿고 있다.
신석기시대 이래 지금까지 인간은 늘 똑같은 몸, 똑같은육체적 역량, 변화무쌍한 주변환경과 여건에 대처하는똑같은 저항력을 갖고 있다. 오만한 오늘의 사회는 그 오만 때문에 호된 벌을 받고 있지만 우리 인간들이 가진 능력은 네안데르탈인들의 그것에 비하여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수천 년 동안,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인간들은 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옮겨가기 위하여 발로걸었고 지금도 걷는다. 인간들은 전신으로 세상과 싸우면서,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재화를 하루하루 생산하는 데 최선을 다했다. 아마도 인간이 개인의 육체적 기동성과 저항력을 오늘날의 사회에서만큼 적게 사용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걷기, 달리기, 헤엄치기 등 육체의 가장 기본적인 능력에서 생겨나는 인간 고유의 에너지가일상생활 속에서 노동, 장소 이동 등과의 관계 속에서 요구되는 일은 극히 드물어졌다.  - P10

도시의 혼잡과 그 혼잡으로 인하여 생기는 일상의 무수한 비극에도 불구하고 이제 자동차가 일상생활의 여왕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우리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육체는 거의 남아도는 군더더기 장식이 되고 말았다. 인간의 조건은 움직이지 않는 앉은뱅이 조건으로 변하여 그 나머지 일들에는 온갖 인공 보철기구들의 도움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오늘날 육체란 손보아야 할 비정상적 대상 혹은 다듬어야 할 초벌구이쯤으로 여겨지는가 하면 심지어 육체를 제거해버리고자 꿈꾸는사람까지 있다한들 놀라울 것이 없다. 각 개인들은 여러 가지 활동에 있어서 육체적 에너지보다 신경 에너지를 더 많이 소모한다. 육체는 현대의 발뿌리에 걸리는 불필요한 장애물이다. 육체는 주위환경에 작용하는 그것 본래의 고유한 활동들의 몫이 제한된 만큼 점점 더 부담스러운 대상으로 변한다. 이처럼 육체의 중요성이 점차로 줄어들면서 인간은 세계관에 상처를 입고 현실에 작용하는 범위가 제한되며 자아의 존재감이 감소하고 사물에 대한 인식이 약화된다.  - P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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