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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여자들
설재인 지음 / 카멜북스 / 2019년 7월
평점 :
2021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 대상 수상작을 보고 다음으로 본 책. 훨씬 재밌다. 엄마가 동성애자인 이야기. 떠나버린 엄마 여자친구를 찾아 엄마 유골을 들고 동남아로 간 이야기. 담담하게, 그린다. 모든 인생을 긍정한다.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 하며.
두 번째 이야기는 동남아 태국에서 꼬치구이 팔던 여자의 일생을 들려주는 도마뱀과 나의 대화, 도마뱀은 그녀가 한국으로 시집와 아이를 낳으라는 종용 속에 겪은 고생을 이야기해주고 나는 그녀를 괴롭힌 시어머니의 손녀일 수 있다며, 이야기가 끝난다.
세 번째 이야기에서 울었다. 한국에서 여자로 살며, 교사가 되자, 신붓감 일순위가 되어 매일 직장 술자리를 돌다 지하철에서 잠이 들고, 20살 무렵 지하철 노선도를 그리던 남자친구를 떠올리는 이야기. 어떤 고달픔, 아주 이해되는 고달픔,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이 사회 속으로 흘러가 부조리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곳에 적응하고자 술을 마시고 마음과 상관 없는 조건에 부합한 연애를 하다 어느날, 술에 취해 지하철에서 잠 들다 깨어난….
내 과거 같아 울었다. 같지는 않지만 내가 짊어진 무게를 짊어진 사람의 이야기라…
여전히 짐은 그대로인데 조금 편해져, 어찌 해야 할 지 모르겠는 상황에 어쩌면 그냥 그 길을 계속 갔더라면 생각하다가도 그러면 힘들었을 거야 하며… 제목은 회송.
설익은 소설도 있는데, 내게는 ‘지구를 기울이면’이나 ‘내가 만든 여자들’, ‘삼백칠십오 년의 라벤더, 그리고 남아프리카 원산지의 크크크’가 그랬다. ‘바지락 봉지’도 어딘가 울리지만 백퍼센트는 아닌 느낌. 삼교리까지 자전거 타고 가 복숭아밭에서 한 편씩 읽었다. 850년 정도 된 은행나무 옆 정자에서도 읽었다. 앞으로 낮에는 날 좋으니 책 들고 나가 벤치 하나마다 한 챕터씩 읽고 올 생각이다. 그래도 쭉 읽게 되는 힘 같은 게 있다.
어떤 불행이나 만남 같은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하면 여성으로서 남성중심 사회의 부조리에 대응하기 위해 고안해내는 엽기적인, 그러나 속시원한 방식들을 그려내며 현실에서는 안 되는 것들을 소설에서는 가능하게 하는 그런 힘 같은 게 있다. 그런 힘 같은 게 기존에 내가 읽던 소설가들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진주 책방에서 일하는, 말에 따르자면 현역처럼 읽는다는 병진이가 추천해준 소설인데, 역시 병진이 싶다.
이야기를 상정하고 끝까지 이끌어간다는 것에 대해 오랜만에 생각해보았다. 그동안 소설적이라는 틀에 갇혀 어떤 것을 놓친 게 아닐까. 그게 뭐냐면… 절실함 같은 것. 그런가 하면 또 어디 쓰는지도 모르겠는 에너지를 쏟다 보면 화가 나는 게 사실. 그동안의 실패의 좌절감 같은 게 후끈 밀려드는 것도 사실. 그 감정이 나를 추동시키지 않는데, 이 사람은 그런 좌절감따위 개나 줘버려라며 때로 수다스럽게 그러나 절박하게 한없이 이야기하는 것이다. 응어리를 다 풀어내고 말겠다는 그런 의욕이랄까, 실제로 작가의 말에서도 자신의 글쓰기는 토로이고 치유이고 반성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런 에너지가 글을 읽게 한다.
특히 '회송'을 읽으며 엉엉 울고 나서 삼교리 막국수에 자전거 타고 가서 읽고, 집에 와서 읽고, 오늘 노브랜드로 달걀이랑 초고추장 사러 3km 정도 걸어갔다가 중간에 신리천에서도 읽고, 또 집에서 읽었다. 그전까지는 이렇게 열심히 읽지는 않았는데. 그랬다.
혹시 책방 열면 이 사람 소설 들여놓아야지.
20210219
그렇게 병을 딸 수록 속에 있는 이야기들이 나왔는데, 당연히 기쁘고 재미있는 이야기보단, 슬프고 화나는 이야기들이, 물결치며 테이블 주위를 흘렀다. - P182
집에 같이 가자. 언니가 데려다줄게. 집에 가자. 산책하는 것처럼 천천히, 같이 가자. - P195
자기 자신의 안에서 첫 번째 아이, 두 번째 아이, 세 번째 아이……를 수없이 분할해 재조립하여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모습을. 수완의 안에서 내내 울고 있던 또 다른 수완을 끄집어내 그 아이의 세계를 만들게 하는 일을. 그 아이가 자신이 주인공인 세계를 걸으며 난생처음으로 발자국을 남기고 스스로의 자취를 관찰하게 하는 일을. - P242
수완이 조립해 다시 만든 수완들이 이야기하고 행동하고 서로 싸우고 화해하며 응어리를 풀었다. 수완은 그렇게 자신의 내부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얼렀다. 글을 쓸 때마다 하나 두 개의 수완이 명치 근처를 꽉 막고 있던 울음덩이를 토해 내곤 손을 흔들며 돌아갔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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