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생사과 창비시선 301
나희덕 지음 / 창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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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저렴한 세상에 이렇게 ( ) 꽃이 피었다니, 그런 기분이다. 나희덕 시집은 그렇다.

, 꽃병, 오아시스, 조개, 물방울, 벌레, 매화나무, 연못 등등 아름다운 , 그러니까 아름다워서 말하기 싫은 것들로 젖어있다. 근데 알고 보면 그게 장의 빤쭈 같은 . 그러니까 이렇게 저렴한 세상에 이렇게 이쁘고 조그마한 꽃이 피어있고, 알고 보면 각자 ‘여분의 삶’을 살고 간단다. 근데 그게 인생이 되면 피곤하다. 때때로 짜증나고 때때로 멋진 ‘그는 누구인가’ 싶어진다.

 

 

20100603


빗방울에 대하여

 

 

1

빗방울이 구름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빗방울이 풀줄기를 타고 땅에 스며들어

죽은 영혼을 어루만지는 소리를 듣고 난 뒤에야

 

2

인디언의 무덤은

동물이나 새의 형상으로 지어졌다

빗방울이 멀리서도 길을 찾아올 수 있도록

 

3

새 형상의 무덤은 흙에서 날고

사슴 형상의 무덤은 아직 풀을 뜯고 있다

이 비에 풀은 다시 돋아날 것이다

 

4

나무들은 빗방울에게 냄새로 이야기한다

숲은 향기로 소란스럽고

오래된 나무들은 벌써 빗방울의 기억을 털고 있다

 

5

쓰러진 나무는 비로소 쓰러진 나무다

오랜 직립의 삶에서 놓여난

나무의 맨발을 빗방울이 천천히 씻기고 있다

 

6

빗방울은 구름의 기억을 버리고 이 숲에 왔다

그러나 누운 뼈를 적시고

구름과 천둥의 시절로 돌아갈 것이다

 

7

구름이 강물의 죽음이라는 걸 인디언 마을에 와서 알았다

죽은 영혼을 어루만진 강물이

햇빛에 날아오르는 소리를 듣고  뒤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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