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철학연구단체인 [정암학당]에서 대중강연을 진행하네요. 관심있으신 분은 참여해보세요.^^:  

정암학당바로가기       

 

~역자와의 만남~

주 제: 플라톤의 《뤼시스》
강 사: 강철웅(정암학당 연구원)
일 시: 2009년 10월 17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장 소: 동숭동 199-2 소호빌딩 1층 세미나실
《뤼시스(Lysis)》편은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에 속하는
작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 대화편은 서양
지성사에서 흔히 ‘우정’이나 ‘사랑’이라고 옮기는
필리아(philia)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작품입니다.
후대의 아리스토텔레스 등이 펼치는 우정론도 모두
《뤼시스》를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의
의의가 있겠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개인주의적 풍토
속에서 ‘우정’과 같은 가치를 홀대하는 경향이
있지만, 타인과의 긍정적인 관계를 고민할 때
‘필리아’는 진지하게 고찰해야 할 주제일
듯싶습니다. 이번 강좌에서는 강철웅 선생님께서
여러분을 《뤼시스》의 세계로 초대하십니다. 많은
분들께서 참석하시어 (학문적) 우정의 향연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연구실장 올림.  

 

찾아 오시는 길 

*서울 연구실

110-810 서울 종로구 동숭동 199-8 소호빌딩 305호
(혜화역2번출구 - 마로니에공원 - 방송대 옆길 - 쇳대박물관 - 극단정미소 -
정암학당 서울 연구실)
*Tel) 02-3668-4541

jungammap.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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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6 15: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제가 자주 가는 독서모임의 10월 모임을 소개합니다.

돈의 소유여부가 '자유함'의 기본적 척도인 사회에서 그러한 자유가 정말 자유인지,
지식이라는 것이 '환금성'(돈으로 바뀌는)의 정도로만 평가받는 현실에서
사회와 나의 삶에 대해 좀 더 넓게 성찰할 수 있는 것 또한 지식일 수 있다는... 등등
상식과는 좀 다른 시각을 접하실 수 있을 거에요.

이 독서모임은 <나비야 청산가자>라는 공간 내에 있는 독서모임이에요. <나비야, 청산가자>는 자연, 환경, 사회, 사람... 어떤 조화로운 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을 나누는 공간이랍니다. 
 DAUM에 카페가 있는데...  http://cafe.daum.net/nbychungsan 관심있으신 분은 가입하시길 권해드립니다.(가입할 때 장일순 선생의 호를 물을 것인데 '무위당'입니다.) 
저도 갈 예정입니다. 혹시 혼자 가시기 어려우시면 함께 가시지요. (010-3124-9123) 


아래는 <나비야, 청산가자>에 올라와있는 10월 책읽기 모임 소개를 옮겨온 것입니다.






예수전/김규항/돌베개

 

완연, 가을이네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뜨끔합니다. 벌레먹은 낙엽처럼 세월만 갉아 먹고 사는 건 아닌지......

가을볕에 느즈막한 자기 성찰까지 하게 되네요. 옷깃을 더욱 여미게 만듭니다.

낮은자의 편에서 함께 했던 예수, 믿음이란 곧 그 사람에게 마음을 연다는 것이라는데,

이 세대에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지, 종교를 떠나서 가장 인간적인 모습을 한 예수를 만나보는 시간을 가져 봅니다. 

'예수전'에 관심있는 분은 누구라도 오셔서 함께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보세요. 

 

 

 

10월 책읽기 모임 공지입니다.

 

 

함께 읽을  책 :  예수전(김규항)

일            시 :  2009년 10월 30일(금) 저녁 7:00

장            소 :  이대부근 문화공간 cafe체화당(02-364-9356 ) * 차값(2~3,000원)을 준비해 오세요.

연     락    처 :  청산별곡(011-9007-3427)

기 타   사 항 :   책읽기모임 후, 땀` 대안화폐를 사용할 수 있는 벼룩장터가 진행됩니다.

                       각자, 나눌 물건이나 도움을 주거나, 도움 받을 일들을 챙겨 보시기 바랍니다. 

                       재미있게 우리가 꿈꾸는 세 상을 향하여 한걸음씩......

 

 모임   약도 :






차를 갖고 오시거나 걸어오실때는
 
어쨌든 세브란스 병원이나 이대후문쪽으로 우선 오세요.그리고, 이대후문에서 금화터널 쪽을 향해서 약 200~300미터 전방으로
걸어오시면 이대부고를 지나서 대신교회로 가는 오르막길이 보입니다. 그 오르막길을 따라 올라와서 대신교회를 끼고 골목길을
따라 올라오시면 주택가에 체화당이 보입니다.
 
버스를 이용하실 경우는
 
신촌에서는 신촌역 3번출구를 나와 맥도날드 앞에서 7024 초록색 버스를 타고 이대부고 앞에서 내리시면 대신교회로 오르는
오르막길 앞에 내립니다. 시내에서는 종로의 교보빌딩 앞에서 606을 미국대사관이나 KT 앞에서 708을 타시고 이대부고 앞에서
내리시면 금란슈퍼앞에서 내립니다. 눈앞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대신교회를 오르는 길이 보입니다.
그 길을 따라 쭉 올라오시면 체화당이 보입니다.
 
버스편:  파랑버스: 272  606 708
            초록버스:7024  7737

 


 

 통유리로 분리된 안쪽 공간, 최대 8명이 이용할 수 있는 체화당에서 가장 좋은(?) 테이블이라고 하는데,

아마도 우리가 사용할 공간이지 싶어요.


모임장소인 체화당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chewha.cyworld.com 방문해 보세요.


<책 소개>

B급 좌파 김규항, 예수의 삶을 다시 읽는다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예수,
자본주의와는 공존할 수 없는 예수의 가르침!!


예수를 교리로 덧칠되지 않은 구체적인 인간으로 되살려내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예수는 교리의 주인공, 교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만들어 낸 예수가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이야기하며, 예수의 말과 행동을 다시 짚어보며 예수를 새롭게 해석해낸다.

저자는 고통받는 모든 사람과 함께 아파하고, 그들을 고통에 빠뜨린 지배계급과 사회체제에 불같이 분노하는 사람으로 예수를 이야기한다. 로마와 그에 결탁한 세력이 멋대로 독점한 성전의 권위를 대놓고 무시하고, 가진 자들이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는 율법 또한 부정했던 예수의 삶을 근거로 하여 '지배세력에 대한 비판자'로서의 예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쉽다’는 예수의 말을 인용하여 자본주의에 종속되어 살아가면서 예수의 정신을 본받겠다고 하는 것은 그러므로 모순이라고 말한다. 예수가 자본주의와 공존할 수 없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가진 자들만을 위한 ‘악의 구조’이기 때문이며, 그러한 구조 안에서 예수가 말한 ‘나눔’의 사상은 구현이 불가능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예수에 대한 이같은 해석은 오늘날의 한국사회에까지 이어진다. '바리사이인'들을 하느님 나라 운동을 가장 교묘하게 반대했던 세력이라고 평가하며, 이들을 오늘날의 'NGO, 시민운동, 개혁운동'에 빗대고, 막대한 자본과 기득권을 누리고 있는 한국교회, 기독교의 모습이 예수의 사상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이야기 한다. ‘역사의 예수’ 담론은 예수가 더 이상 교회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것은 소수의 성서 전문가들의 비밀 영역이었고, 점차 교회의 영향권 안으로 포섭되었다.
신학자도 성직자도 아닌 김규항 선생의 『예수전』은 예수가 더 이상 교회와 소수 성서 연구자들의 독점물이 아님을 보여 주었다. 그는 소위 성직자와 성서 전문가만의 비밀 영역이던 ‘역사의 예수’를 훔쳐 내 자기 자신과 대중에게 돌려준다. 그의 빼어난 통찰력과 필력으로.
그는 ‘지금 여기’에서의 우리의 삶을 성찰하고 예수를 이 성찰의 자리로 초대한다. 이 자리에서 예수는 우리를 배우고 우리는 예수를 배운다. 그의 『예수전』은 이렇게 예수와 우리 사이의 대화를, ‘지금 여기’라는 삶의 현장에서의 대화를 중계한다.
―김진호(제3세계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 왜 지금 예수인가 ― 김규항, 예수의 삶을 다시 읽다
제도권 글쓰기를 시작한 이후 10여 년을 한결같이 우리 안팎의 권력을 향해 날 선 비판을 해 온 ‘B급 좌파’ 김규항. 그가 오랜 시간 준비해 온 『예수전』을 펴냈다.(이 책은 칼럼집이 아니라 저자가 본격적인 단행본으로 집필한 최초의 책이기도 하다.) 그의 엄격한(?) 시사 칼럼들만 보아온 독자들이라면 조금은 낯설 수 있는 소재다. 요즘 같은 시국에 한가로이 ‘예수’ 타령이라니. 정치사회적 혁명의 전망이 그 어느 때보다 아득해진 지금, 그도 별수 없이 내면의 수양이나 하기로 변심한 것일까.
그러나 이 책은 기독교인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 진정한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모두를 위한 것이다. 이 새로운 혁명은 사회구조적 변화뿐 아니라 나 자신의 마음을 바꾸는 것을 포함한다. 김규항은 예수에게서 그 단초를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2,000년 전 팔레스타인 인민들의 편에 서서 새로운 세계를 꿈꾸게 했던 그 청년 말이다.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는 ‘새로운 세상의 꿈’과 함께 찾아왔다. 개항기에 서학은 ‘새로운 세상’을를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평등’과 ‘자유’의 이념을 무섭게 전염시켰다. 1970~80년대에는 이러한 흐름이 남미 해방신학의 영향을 받은 서남동, 안병무 등의 민중신학론을 통해 지배적인 신학으로 유통된 바 있다.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에 기독교가 막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이후 친미, 반공, 배타적 민족주의, 가부장주의 등을 기반으로 성장하여 보수화했고 신도 수 1천만 명이 넘는 거대 권력으로 변신했다. 실제로 그들은 사회 여론을 형성하고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 막대한 자본과 기득권으로 언론의 감시와 비판마저 무력화하는 교회는 우리 시대의 새로운 ‘성역’인 셈이다.
이 책은 권력 집단으로 전락해 버린 한국 교회에서 ‘예수’를 구해내려는 시도이며, 나와 세계를 바꾸기 위한 새로운 동력을 찾아내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예수의 시대를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진단과 통찰을 발견할 수 있다.

● 예수, 잔치를 열어 혁명을 하는 사람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문제의식은 ‘과연 예수는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이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가 아는 예수는 교리의 주인공, 교리가 만들어낸 허상일 뿐이라고 단언한다. 지배계급이 자신들의 이 해관계에 따라 정치적으로 만들어 낸 예수가 기독교 교리의 뼈대가 되었고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예수는 갈릴래아 나자렛 사람이라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갈릴래아 사람들은 가난했다. 지배계급과 로마의 압제 속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예수가 갈릴래아 사람이라는 것은 그가 고통받는 인민들과 함께하는 메시아로 예고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대개의 사람들은 예수가 정말 어떤 생각을 했고 어떻게 활동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왜 죽임을 당했는지 따위는 모조리 생략한 채, 그를 단지 교리의 주인공으로만 기억한다. 정말 예수는 단지 교리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그 고단한 삶을 살았단 말인가? 이성으로든 신앙으로든, 예수를 ‘갈릴래아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교리 속에서 온 사람’으로 보느냐 하는 것은 예수의 정체성을 선택하는 결정적인 지표가 된다.”

이 책은 예수를 교리로 덧칠되지 않은 구체적인 인간으로 되살려 낸다. 예수는 고통받는 모든 사람을 아파하고 그들을 고통에 빠뜨린 지배계급과 사회체제에 불같이 분노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권위와 허위와 위선을 깨부수려 했다. 로마와 그에 결탁한 세력이 멋대로 독점한 성전의 권위를 대놓고 무시했다. 성전은 이미 그 신성한 의미를 잃은 지배세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말했다. 하느님은 인민의 삶 속에서 인민과 직접 만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분이라고.
예수는 심지어 로마 세금 징수업자 밑에서 일하며 온 인민의 미움을 샀던 세리를 제자로 삼기까지 했다. 예수는 세리를 로마의 앞잡이가 아니라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일을 하는 인민으로 보았다. 예수는 그런 행동을 통해 지배세력의 위선을 비판한 것이었다. 예수는 가진 자들이 하느님의 명령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는 율법 또한 부정했다. 가난에 신음하는 인민들에게 율법이란 도저히 지킬 수 없는 강제 조항들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는 거리낌 없이 세리들, 죄인들과 어울려 시끌벅적하고 유쾌한 식사를 했다. 그의 식사는 파격이었다. 하지만 예수의 그런 천박한 식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인민들은 비로소 ‘인권’을 되찾았다. 예수는 경건한 사람들의 양식이었던 단식 또한 거부했다. 예수의 별명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관들과 죄인들의 친구”였다. 그는 하느님 나라의 주인공은 바로 사회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 고통에 신음하는 이웃들이라고 믿었고, 그들과 함께 잔치를 여는 것이 하느님 나라의 운동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 예수가 꿈꾼 나라 ― 자본주의를 넘어서야 가능한 ‘이웃 사랑’
예수는 세상이 바뀔 거라는 믿음을 버리지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지배계급이 예수를 적대시하고 끝내 죽일 수밖에 없었던 본질적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세상이 바뀌는 것을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예수가 바리사이인들을 비난했던 이유는 하느님 나라 운동을 가장 교묘하게 반대했던 세력이 바로 그들이었기 때문이다. 바리사이인들은 지금으로 말하면 ‘양심과 양식을 갖춘 시민사회 세력’이다. 학식과 경제력에 사회의식까지 갖춘 사람들인 것이다. 그런데 왜 예수는 그들을 꺼려했을까? 그것은 그들이 입으로는 변혁과 진보를 외치지만 속으로는 누구보다 변혁과 진보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언제나 현실이 변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며 스스로 그런 변화를 위한 노력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그 노력은 대개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가 아니라 현실의 외피를 덜 추악하게 만드는 일에 머문다. 그들은 오히려 현실의 근본적인 변화를 좇는 모든 노력들을 ‘비현실적’이라고 냉소한다. 그들은 ‘NGO’, ‘시민운동’, ‘개혁 운동’, 그리고 ‘실현 가능한 진보’, ‘최소한의 상식의 회복’ 따위 간판과 표어를 걸고 활동한다. 인민들은 탐욕스럽고 불의한 지배세력을 혐오하지만 양식과 윤리로 무장한 그들을 신뢰하고 존경한다. 그래서 그들,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사회적으로 강력한 영향력과 설득력을 가지며, ‘진정한 변화를 막기 위한 변화’라는 그들 본연의 임무를 지속하게 된다.”

저자에 따르면 오늘의 바리사이인들은 자본주의의 모순과 병폐를 가장 잘 알면서도 그 체제가 무너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다. 오늘날의 자본주의는 탐욕과 이기심으로 점철된 보수 기득권 세력이 아니라 오히려 자본주의의 비인간성을 끊임없이 지적함으로써 대중들로부터 양식 [예스2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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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10-12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저히 저녁 7시는 불쌍한 직장인 ㅠ.ㅠ
아 나도 가고 싶어라.

푸하 2009-10-12 13:52   좋아요 0 | URL
으... 천천히 오세요.^^:
 

 고 장자연 씨 관련 혐의자들이 모두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관련 한국일보기사YTN뉴스 )
뭐 국민의 신뢰를 별로 못받는 경찰과 검찰에서 내린 법해석이라 솔직히 '무혐의'에는 어떤  내막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1. 혐의를 받던 '유력신문사'의 대표등 유력인사들이 자신의 인맥과 권력으로 자신의 무죄함을 알리려고 노력했을 것 같긴합니다. 물론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무죄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회의 유력인사를 정말 많이 알고 있는 '유력신문사'의 대표와 비교할 때 일반 시민이 자신이 결백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확실히 차이가 있겠지요. ..... 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이런데서 드러날 것입니다.
물론 경찰과 검찰이 사회정의 확립이라는 원칙을 가지고 열심히 수사했다고 믿어야 하겠지만 가슴속에 의혹이 이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래 한겨레 사설에서 제기된 의혹정도는 풀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관련된 사설을 읽으려고 뉴스검색 싸이트인 '카인즈 kinds'에서 검색해보니 아직 논평을 발견하지 못했어요. 7월달 경찰에서 검찰로 사건이 넘어가는 시점에서 나온 한겨레 사설이 있어 옮깁니다. 


[사설]시늉만 한 경찰의 ‘장자연 사건’ 수사[한겨레] 2009-07-11 27면  총06면  오피니언·인물  사설  1125자
 
탤런트 장자연씨 자살 사건을 수사해온 경찰이 어제 수사를 마무리하고 사건을 검찰로 넘겼다. 장씨가 술시중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몇몇 사람의 혐의가 밝혀졌지만, 힘센 사람들은 대부분 불기소나 내사종결 처분 등으로 형사처벌 대상에서 빠졌다. 엄정한 수사 끝에 이런 결론이 내려진 것이 아니니, 의혹은 더 깊어졌다. 주어진 수사시간을 다 채우지도 않고 서둘러 사건을 덮으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피할 길 없다. 경찰의 수사는 시늉만 하다 만 듯하다. 경찰은 지난 4월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일본에 도피중이던 장씨의 소속사 대표 김아무개씨가 검거되면 추가 수사를 통해 의혹을 낱낱이 밝혀내겠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지난 3일 김씨가 국내로 송환된 뒤에도 경찰은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았다. 김씨가 귀국한 뒤 본격 조사하겠다며 내사중지했던 <조선일보> 고위 임원 아들의 경우, 김씨의 추가 진술이 없었다는 이유로 아예 추가조사도 하지 않고 내사종결 처리했다.

 조선일보 전직 임원 역시 장씨 등과 술자리를 함께했는데도 석연찮은 이유로 불기소 처분했다. 경찰은 조선일보 고위 임원이나 다른 유력 언론인·금융인·기업인 등에 대해서도 김씨로부터 혐의사실을 입증할 만한 진술이 안 나와 어쩔 도리 없다는 태도다. 이는 혐의를 입증하려는 태도가 아니다. 중간수사결과 발표 때보다 오히려 형사처벌 대상이 줄어든 것도 그 결과일 터이다. 이러니 변죽만 울리면서 대놓고 봐주려 한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장자연 사건은 ‘힘 있는 사람들’이 여성 연예인을 접대의 수단으로 삼은 사건이다. 접대를 강요하는 연예계의 억압적 구조, 추악한 뒷거래를 서슴지 않는 우리 사회의 비정상적 권력관계, 힘 있는 자들의 도덕적 타락상이 장씨의 죽음과 함께 드러났다. 쉬쉬하며 소문으로 떠돌던 일이 사실로 확인됐으니 그 충격은 더했다.
(-->어쩌면 이는 법을 넘어서서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연예계뿐만아니라 지금의 한국사회의 전체모습이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기도 한 것 같거든요.)

 이런 일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장씨가 왜 자살까지 하게 됐는지를 숨김없이 밝혀내야 한다. 술 말고 성접대까지 있었다는 장씨의 말은 사실인지, 접대를 받은 유력인사들은 어떤 대가를 줬는지 따위도 규명해야 한다. 검찰이 경찰처럼 대충 얼버무리려 한다면 의혹은 더 커지고 확산될 것이다. 검찰은 원점에서 제대로 다시 수사하길 바란다. 그것이 이땅의 여성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 증거가 부족하여 무혐의 처리가 났다고 합니다.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혐의'는 "장자연씨가 강요에 의해 '혐의자A'(B C D 등...)를 접대했다."일텐데요. 유서에는 명백히 써있지만 그게 증거로서는 부족하다는 판단 같습니다.   어쩌면 누명을 쓰고 죄인이 되는 사람이 있으면 안 된다는 취지에서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려는 경찰/검찰의 사명의식의 발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조는 제가 했습니다. 그리고 화살표에 있는 글은 저의 코멘트입니다.)

사설을 보고 궁금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검찰이 '혐의자'수사를 할 때, '소속사 대표'와 그 유력인사인 혐의자들의 금전적 거래가 있었는지를 조사를 하였는지, 조사를 하였다면 어떤 방식으로 하였는지가 궁금합니다. 저는 접대를 받았다고 의심되는 기간에 혐의자들의 모든 금융계좌의 입출력사항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광우병 관련 보도에 대해 수사를 하면서 PD수첩의 담당피디의 이메일을 치밀하게 조사하고 매우 사적인 감정이 표현된 것을 언론에 흘린 검찰의 전력으로 봐서는 철저히 조사를 했겠지만, 웬지 그런 조사는 안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러한 조사를 하지도 않고 '무혐의'처분 했다면 저로서는 그게 검찰의 직무유기가 아닌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위에 사설 말미에서 '이런 일이 더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려면 장씨가 왜 자살까지 하게 됐는지를 숨김없이 밝혀내야 한다.'라고 하였는데 참 맞는 말 같습니다. 근데 검찰이 수사를 해서 '무혐의'라고 밝히긴 했는데 왜 이리 석연치 않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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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빵 2009-08-20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_- 참 요란하고 처벌은 솜방망이는커녕 암 것도 없고. 검찰이 그렇죠 뭐.

푸하 2009-08-20 12:10   좋아요 0 | URL
참 문제지요. 검찰이 최고수사기관일텐데 검찰이 의혹을 받으면 누가 검찰을 수사할 수 있을까요.

Mephistopheles 2009-08-20 10: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단적으로 생각하면 정말 무서운 결말에 봉착한 겁니다.
연예인 지망생이나 여성 연예인들에게 술접대, 성접대가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죠.
알만한 사람 다 아는 그릇된 관행에다 법까지 거들어 손을 들어줬으니, 앞으로 더 심하고 끔찍한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푸하 2009-08-20 12:19   좋아요 0 | URL
누구에게는 털어 먼지 안나냐 하면서 철저하게 수사하면서 어떤 때는 증거못발견한다고 '무혐의' 처분을 하는 것 같아요. 그릇되고 법을 심각하게 위반하는 것이라도 그것이 '관행'이고 힘있는 사람과 관계되었다면 '무혐의'가 된다는...
어쨌든 검찰의 수사가 적절했는지 따져보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아요.

2009-09-22 14: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28 01: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혹시 오늘 한국의 직업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근래 교육관련 강연을 하면 꼭 청중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아쉽게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다. 부모들도 교사들도 심지어 교육운동하는 이들도.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그토록 열중하는 아이들의 미래에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우리가 직업이 몇 개인지조차 모르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어쨌거나, 답은 1만개다. 최근 통계청 자료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부모들이 제 아이에게 바라는 직업은 몇 개일까? <고래가그랬어>에서 조사해본 바로는 많이 잡아 20개다.
직업이 1만개라는 건 내 아이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에게 바라는 직업은 고작 20개이니 9980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아이들, 즉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제 직업에 온전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우리 부모는 내가 00가 되길 바랐지만...’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죄라도 지었는가?
쿠바의 청소부는 의사보다 월급이 많고 노르웨이의 버스기사는 대학교수보다 월급이 많다.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월급 따위로 직업의 귀천을 가르진 않지만, 청소부나 버스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여긴 쿠바나 노르웨이가 아니라 한국이라고? 그렇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부모들이 내 아이가 청소부나 버스기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한 한국의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서민 부모들은 울분에 찬 얼굴로 교육 기회의 불균형과 격차를 말한다. 우리는 이른바 일류대 신입생이 해가 다르게 부자의 자식들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아이의 적성이나 재능과 무관하게 20개의 직업들을 독식해가는 그 부자 부모들은 진정 우월한 걸까? 일찌감치 제 부모의 생각을 받아들여 제 적성이나 재능과 무관하게 그런 직업들에 안착하는 그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사람은 두 가지 경로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나는 관계다. 나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관계 속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또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남 보기에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직업이라 해도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그 인생은 불행하기만 하다. 요즘처럼 20개의 직업이 적성도 재능도 아닌 성적순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선 20개의 직업은 오히려 행복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직업들만 강조되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마치 아이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 한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는 사실에 낙심할 이유가 없다. 공부는 여러 적성 가운데 하나이며 공부를 꼭 잘해야 하는 직업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극히 일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잘할 수 있는 다른 게 있다는 말일 뿐이다.
한국에는 1만개의 직업이 있다. 그건 앞서 말했듯 내 아이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며, 내 아이가 그 1만 개 직업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적성과 재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할 일은 되든 안 되든 20개 직업만 생각하며 아이를 닦달하는 게 아니라, 9980개의 직업까지 두루 살피며 아이가 제 적성과 재능에 가장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2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보다는 998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이 훨씬 높다.(한겨레)

http://www.gyuhang.net/ 에서 

 

"지금처럼 모든 부모들이 내 아이가 청소부나 버스기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한 한국의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반박할 말이 별로 없다. 
김규항이 제시하는 쿠바와 노르웨이의 사례를 보면, 특정 직업에 대한 개인들의 선호가 사회의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세상(!)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한 가지는 '내'가 노력해서 사회의 주류가치관과는 다른 것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도입부'에서 김규항은 강연에서 한국의 직업이 몇 개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직업이 몇 개인지를 모르는 것이 굳이 문제가 될까. 물론 현실교육에 비판적인 사람조차 20개의 직업만을 더 높게 본다는 지적일 수는 있겠다.만 본문에서는 그러한 진의가 잘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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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9-08-07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김규항이 말하는 요지에는 동의하지만 이 사람의 말투는 왠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운 게 바로 푸하님이 지적하신 부분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요.
한국의 직업이 몇 개인지 꼭 알아야만 내 아이가 원하는 직업을 가져도 좋다,라고 마음이 편해지는 거? 단순히 숫자 비교로 확률이 높은 쪽으로 가라? 약간은 억지스럽다는 느낌이 든다구요. 힝.

푸하 2009-08-07 09:45   좋아요 0 | URL
예. 글에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적어놓았어요.^^;
김규항님이 전하고자 하는 것은, 교육문제에 건강한 방식으로 관심이 있는 사람 조차 자신의 아이들의 장래 직업에 대해선 흔들린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일텐데... 그게 약간 다른 예를 사용해서 잘 안드러나는 것 같아요.

글의 주장이 참 명쾌하고 설득력이 있게 느껴져요. 이러한 방식이 맞구나! 모두가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잘 되겠죠?ㅎ~

2009-08-07 1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http://www.ytn.co.kr/_comm/pop_mov.php?s_mcd=0302&s_hcd=01&key=200907231422433277 

한나라 이 녀석들이 포털 다음에 연결된 동영상을 막아놨더군요.
'권리침해신고'가 들어왔답니다.

살아있는 동영상이 이거 밖에 없는 듯 합니다.
아주 그냥 입이 벌어져서 말도 안나옵니다.
향후 10년 뒤 교과서에 실릴 만한 사건이네요.    

 * 글샘님 ->아프락사스님 에서 담아왔습니다.

 ------

 한나라당의원들이 왜 이렇게 '미디어법'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통과시키는지 알 것도 같아요.
대기업과 유착해서 지들끼리 다해먹는 구조를 만들려고하는데...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는 것이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듯해요.

위 영상의 출처가 'YTN'인데 만약 이 방송사가 더 많이 대기업소유가 되고 그래서 한나라당 소유가 되면 아예이러한 '돌발영상'은 제작되지도 못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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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장미 2009-07-24 07: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제가 가르치는 초등학교 녀석들도 저렇게는 안 합니다. 미친듯한 몸싸움도 기막히지만, "박근혜 대표가 찬성이래요. 기자회견했데요." "무조건 찬성하면 되죠?" "네네~다 찬성하세요." 이런 대화가 국회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니, 아이들보기도 부끄럽습니다.
어쩌죠? 1년밖에 안 지났는데.. 너무 많은 것을 잃은 것 같습니다. 아휴-

푸하님, 오랜만에 뵈어요. 잘 지내시죠? :)

무해한모리군 2009-07-24 0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둑손에 개먹이를 주라고 하는 꼴이지요.

재벌 손에 사금고도 안겨 주었지요.

하기는 이놈으 선거라는게 도둑손에 먹이 받아먹는 개들한테 권리를 넘겨준 꼴이니 말입니다.

마늘빵 2009-07-24 0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장면은 일주일 동안 모든 공중파에서 재방송으로 틀어줘야 합니다. 별다른 코멘트 없이 그냥 영상만 계속 내보내도 보면 다 아니까요.

2009-07-24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푸하 2009-07-24 1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시장미 님, 유심히 듣지 못했는데... 정말 그런대화도 오고 갔군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대표'가 의미하는 바는 여러 사람(여기서는 각 국회의원이 되겠지요)의 의견을 올바로 반영하여 의견을 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좀 이상하게 돼버렸네요. 스스로 생각못하는 사람들이 국민의 대표가 돼버렸는데.. 문제 같아요.
아... 덕분에 잘 지내요. 조만간 봐야죠?^^;

휘모리님, 어려운 문제네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의 일상에서의 '각성'이 필요한 것이겠어요.

아프님, 말씀 내용처럼 '실제 일어난 일을 드러내는 일'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놈들이 그게 무서워서 미디어법도 통과시키고 영상도 막고 그러는 것일텐데... 어쨌든 블로그나 이런데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내는 것이 한 가지 방법일 것 같아요.

뷰리풀말미잘 2009-07-24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뭔가 찡 하네요.. ㅎㅎ

푸하 2009-07-24 13: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좀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