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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자서전 - 바람만이 아는 대답
밥 딜런 지음, 양은모 옮김 / 문학세계사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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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있는 책.

밥 딜란의 자서전인데 초반 가수 시절에 겪었던 일화들과 사람들과의 인연. 자신의 음악에 대한 다소 전문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음악가(넓게는 예술가)의 창작법에 대한 내밀한 기록을 볼 수 있으니 작곡/작사희망자에게 참고가 될 듯하다.
참여예술가로 평화운동가의 대표적 예술가로 기억된 딜란은 그 스스로 그러한 이미지가 많이 부담스러웠다고 한다. 그냥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고 그것을 들어줄 사람이 있으면 좋다는 바람이 자신의 음악하는 힘이고 어떤 정치적인 바람을 앞세우진 않는 다는 점을 강조한다.

번역 때문인제 딜란의 원문이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다소 뜻이 통하지 않는 문장, 문단이 있었다. 여력이 된다면 원서를 읽어보고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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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오랜만에 로그인 했네요. 10년 가까이 전에 많은 활동을 한 이곳에서 여러 분들을 뵈었는데 이제는 연락이 안닿네요. 혹 이 패이퍼를 보시는 제 알라딘친구분은 한말씀 남겨주시면 고맙겠어요.
모두 잘 지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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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한엄마 2016-03-19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작년부터 열심히 활동하는 알라디너입니다.^^반갑습니다.

푸하 2016-03-19 18: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새로 알게된 분이시군요. 반갑습니다. 저도 꿀꿀이님 서재로 놀러가겠습니다.^^

2016-03-19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3-20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춤추는인생. 2016-03-19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오랜만에 알라딘에 들어왔는데 안녕하세요 푸하님?
반가워요 ^^

푸하 2016-03-20 00:12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진짜 반가워요. 항상 춤추는인생님의 새벽느낌의 글들이 기억납니다. 앞으로 책읽고 공부할 생각인데 알라딘 서재를 다시 이용해도 좋겠네요. 교류이어나가요.^^

치니 2016-03-20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 푸하님. :) 반가워요.

푸하 2016-03-2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갑습니다. 치니님 언제나 보고 싶었어요. 그동안 어찌 지내셨는자 궁금하네요. 앞으로 다시 자주 들르겠습니다.^^

chika 2016-03-20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찾하는 1인입니다. 왠지 저는 옛친구를 만나는 느낌이라 반가운 맘에 글 남깁니다. ^^

푸하 2016-03-20 23:57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치카님 반가워요, 웃는 루피얼굴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네요. 얼마전부터 원피스를 잘 보고 있답니다. 또 인사나눠요,^^

L.SHIN 2016-03-21 16: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녕, 푸하님.^^

푸하 2016-03-21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엘신님 오랜만이에요. 정말 반갑습니다. 홍대에서 곧 다시 조우해야죠? ㅎ

2017-06-13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6-13 1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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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는 ‘일 주일에 두 권은 읽어야 한다.’라는 나의 다짐과 강박을 다시 생각하게 한 좋은 책이다. 그는 단어와 구절과 ‘구두점’①의 조합을 통해 내밀한 사유의 편린②들을 이리 저리 엮어 펼쳐놓는다. 그의 일기는 시와 소설에 대한 촌평을 많이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시와 소설에서 나타난 저자의 ‘도저한 허무주의’에 깊이 감응한다.(그의 일기는 1989년 12월 12일에 끝나고, 그는 이듬해 6월에 영면한다. 일기의 전반에서 임박한 죽음을 감지한 저자의 성찰이 스며 나온다.) 그래서 그의 독서일기는 눈으로 쉽게 훑고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한자 한자 음미하고 곱씹고, 혀를 움직여 발음해 봐야 의미가 살아나는 글들이 여럿이다.(일기는 자기에게 하는 입말의 형태를 띠니까.)
 그것은 ‘일기답게’ 이런저런 설명 없이 핵심에 직접 들어가는 서술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그의 독서일기는 읽는 이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노력으로 ‘문장들 사이의 침묵’(30쪽)③에 들어갈 것을 은근히 그리고 매력적으로 권하고 있다.


 ①책에서 발견되는 그의 평론가다운 어법하나: 쉼표를 이용해서 수식어를 나열한다. 그런 방식으로 한 단어의 여러 속성을 중첩시키고 결합시킨다. 그는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돋을새김 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한다. 평론가(문학인;작가)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하는 역할을 한다!
 
②그는 이쁜 여자의 젖가슴에 반응하는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급작스런 설사병에 괄약근을 잔뜩 오므리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③6.16일의 일기를 옮기면, “자기가 쓴 글들을 읽을 때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문장들 사이의 침묵이 점점 무서워진다.”
 
 몇 가지 생각들...

“1988. 8. 2. ...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우리는 잘살아야 하고, 잘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167쪽)

1. 김현의 어법을 흉내내면...
“free trade agreement 시대에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 우리는 자유로워야 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의 제한사항이 붙는다. 그 자유는 거래의 자유라는 것을 그들은, 자유가 완성된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거래를 자유롭게 한다고, 과연 자유로운 것일까? 그들은 자유의 한 가지 형태인 거래의 자유를 올리고, 다른 자유들을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들은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다!”

2. 20년 정도 지난 김현의 일기는 인문학자의 시대인식과 비판의 핵심이다. 그때는 IMF이전의 시대이고, 80년대 중후반의 3저호황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지금보다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였다. 그래서 그 당시 미래를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미래에도 물질적인 풍요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IMF와 신자유주의, FTA 등... 한국사회가 물질적인 풍요조차 이루기 어렵다는 현실까지 예상하진 못한 것 같다. 일부 계층(계급일까?)은 물질적 가치만 남을 때까지 쾌락을 추구할 수 있고, 그에 비해 좀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물질적 쾌락만이라도 성취하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못 이룬다. 물질의 풍요에 취해서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추는 게 아니라, 물질적 욕구불만에 허덕일 뿐이다.(1)  물질적 쾌락이라도 다오...라고 외치는 시스템의 담지자들...

 
(1)강준만의「인간사색」의 어딘가에서 나오는 언급: 걸어 다니는 사람이 사륜마차 타고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보다. 이륜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사륜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더 부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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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5-06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쉼표를 이용해 수식어를 나열하는 방식은 김훈의 글쓰기에서도 자주 보이는데
이 방법이 어떨 땐 단절을 가져오기도 해요. 꼭 필요할 때가 아니면 자주 쓰는 건
별로라고 전 생각하지요. 문장과 문장의 거리에 대한 생각은 저도 종종 하는데
행간의 의미이기 이전에 문장의 결속력, 의미의 결속력, 사유의 결속력이라고
생각해요. 거리를 너무 두면 독자가 어려워지고 너무 가까이 두면 구질구질해지는
뭐랄까,, 쉽지 않은 조절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문장과 문장 사이의 침묵,
생각하다 갑니다.. 봄날, 좋은책 많이 읽고 계시네요. ^^

푸하 2007-05-07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장관을 댓글로 남기시니 그 무게에 제 글이 휘청대는군요. 성찰의 글 고마워요. 댓글로 묻히기엔 아까운 관점이니 따로 페이퍼를 쓰시거나 댓글을 페이퍼로도 게시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사유의 결속력이라는 말씀 정말 적절한 표현이에요. 생각을 표현한 문장은 '마침표'로 마침을 하지만 생각의 흐름은 중간에 마침표가 드물고, 가느다란 선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생각과 글은 형식상 어긋남이 존재하고, 이러한 글과 생각 사이의 불일치의 긴장을 어떻게 해소할까?가 글쓰기의 어려움의 하나인 것 같아요. 생각의 이어짐을 어딘가에서 끊어야 하다니..... 그러고 보면 말로 표현하는 것은 생각에 대한 공격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모든 글 쓰는 자는, 아니 언어로 소통하는 모든 사람은 생각과 글의 일치를 추구한다는 잠정적인 정식화를 할 수 있겠어요. 천의무봉의 말하기와 글쓰기.
그리고 말씀을 들으니 글쓰기는 독자와 자아의 거리의 유지에 관한 중용의 실천인 것 같아요. 마크하는 수비수의 거리를 재는 날카로운 슈터의 감각처럼.
근데 글쓰기는 참 어렵군요.(지금 댓글을 쓰는데도 ‘나’의 생각을 문자로 박아서 전하는 게 이리도 어렵다니....ㅠㅠ ^^:) 여러 생각이 이어지지만 내일의 돈벌이를 위해서 잠시 마침표를 찍어야겠어요.
참, 요새 저는 만나는 책마다 좋은(일반적으로 좋고 나와도 코드가 맞는)책이에요. 글을 읽으며 좋은 경험을 많이 하고 있어요. 좋은 경험은 표현의 욕구도 낳는데, 적당한 언어가 생각나지 않아 살짝 욕구불만이에요.

프레이야 2007-05-07 1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전 언제나 이렇게 깊고 진중한, 그러면서도 겸손한 사유를 풀어내는 님이
참 좋습니다. 저의 간단한 댓글에서도 깊은 이해와 공감을 풀어내시다니요.^^
독자와 자아의 거리 유지, 그것에 대한 중용의 실천이란 말이 오늘 제게 또하나의
숙제를 안겨주네요. 중용! 지나치지 않음. 그러면서도 변화무쌍의 잠재력을 갖고
있는.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 그런 걸 생각하게 됩니다. 고맙습니다.
제대로 글쓰기는 말하기만큼이나 쉽지 않아요. 모두 소통을 목적으로 둔다는
점에서요. 힘찬 한 주 시작하시기 바래요.
댓글엔 추천을 못 달아드려 아쉽네요.ㅎㅎ

푸하 2007-05-08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말씀 들으니 몸둘 바를 모르겠어요.. 새로 나온 이 두 책을 봐야겠어요.^^; 배혜경 님도 좋은 한 주되시길 바래요.

 
평화는 나의 여행
임영신 지음 / 소나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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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많은 것들에 대해 많은 오해를 하며 세상을 살고 있다. 오해를 하고 아무런 말도 안하고 표시도 안하면 그다지 문제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의 관계맺음이 기본이 되는 이 세상에서 외따로 존재하는 것이 있을까? 인간은 어느 방식으로든 서로를 해석하고 이해한다. 인간의 존재조건이기도 한 관계맺음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을까? 「평화는 나의 여행」을 읽는 동안 내가 세상에 대해 오해하고 있던 몇 가지가 깨져갔다.

임영신 님의 여행은 오해를 넘어서 수많은 상처를 서늘하게 간직한 장소를 밟아나가며 진실을 찾아나서는 여행이다. 이라크 바그다드, 레바논, 필리핀의 민다나오.... 임영신 님은 기아와 죽음, 전쟁, 테러로 기록되고 알려지는 곳에 스며들어 사람들의 모습과 일상을 그리고 사랑을 살려낸다. 먼 타국에서 온 여행자가 한 밤중에 보이지 않자 다급한 마음으로 밤거리를 헤매었을 수아드 아주머니, 이라크를 떠나지 못해 주저하고 안타까워하는 저자에게 열두 살 먹은 이라크 소년 로네는 서투른 영어로 우리는 괜찮다며 걱정을 해준다. 그들에게 타국의 여행자는 더 이상 낯선 이방인이 아니다. 지은이는 이라크사람들의 숨결과 표정과 체온을 나눈 경험을 전한다. 멀리서 책을 읽어가는 나에게도 수아드와 아하메드, 사바는 더 이상 뉴스의 1단짜리 기사에서 단지 사망자, 부상자로서만 자신의 존재를 알리는 ‘이라크사람들’이 아니다.

‘평화’라는 낱말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생각해봐도 그 의미가 잘 안 떠오른다.  나에게 평화는 항상 구체적인 의미를 갖는다. 핏빛 참상을 내뿜는 뉴스를 듣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곤 한다. 얕은 고민이지만 내가 감당하기 어려운 사실들 앞에 무력감을 느끼는 것이다. 죽음과 죽음이 얽혀 들어가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이 모호해지는 시점에서 더욱 짙어지는 폭력과 학살에 대해 내가 무엇을 말할 수 있으며 어떤 판단을 해야 할까? 전쟁의 서늘한 기운이 차오르는 이라크의 저녁 강가에서 젊은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다시 전쟁이 온다 해도, 폭탄이 쏟아진다 해도 이 강가에 와서 물을 끓이고 차를 마실 거예요.” 시급을 다투는 앰뷸런스의 앵앵거림 속에서도 일상을 지속하는 사람들이 있다. 역사는 이슈가 아니라 삶이 지속되는 것이다. 나와 다르지 않은 삶이 있다는 것 평범한 진실을 새삼 깨닫는다.

지금의 사회는 돈이 있으면 거의 대부분의 것을 살 수 있는 사회다. 돈이 지위와 안정된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지금의 사회에서 평화여행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지은이가 프랑스의 어느 공정무역 가게주인 분에게 들은 이야기가 실마리가 된다. “.......하루에 손님이 열다섯 명쯤 오는데, 물건을 사가지요. 손님이 많지 않고 머무는 시간이 기니까 제품에 대해서, 어디서 만들어지는지 누가 만드는지 이런 걸 설명해 드릴 수 있어 좋아요. 저도 손님도 인간적인 거래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손님들이 단순한 쇼핑이 아니라 의미 있는 일에 참여하는 기쁨을 가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구요.” 어쩌면 공정무역이 지향하는 것과 평화여행이 지향하는 것이 비슷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올바른 관계성을 세우려는 노력인 것 같다. 물건 하나에 그것을 만든 사람의 삶의 모습들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알면 그건 더 이상 단 돈 얼마내고 책임이 끝나는 ‘상품’일 수는 없다. 내가 먹는 음식이 대부분은 외국산이고 입는 옷의 원료도 사는 집의 재료도 외국산이 많다고 한다. 나는 생각을 못해왔지만 이렇게 세계의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온 것이다. 이렇게 관계를 맺으면서도 그러한 관계를 모르는 것이 어쩌면 내가 보기 싫고 외면하는 그런 현실이 바뀌기 어려운 원인이 아닐까?

 

 

 

 

 

***  '책 읽기 모임' http://cafe.daum.net/nbychungsan 의 1월달 책인데. 저자가 오셨습니다. 저자(임영신 님) 앞에서 저의 '낭랑한'(사실 좀 쇠소리, 갈라지는 소리가 있었지만...^^;) 목소리로 읽은 발제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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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2-07 09: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카페에 가보았습니다. 종종 들를 것 같아요.
발제문, 역시 진솔하니 깊은 맛이 있습니다.

비로그인 2007-02-03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 님 글도 참 평화로와요.

푸하 2007-02-03 23: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진솔하게 약점을 드러낸 것 같아 올려놓기 망설였습니다.^^; 제 발제문 보다는 그 카페의 존재를 아시게 되고 종종 들리신다니 저도 좋습니다. 멀리 계셔서 실제 모임에서 만나기 어렵겠지만 족적남겨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유 님, 제가 위 책을 읽을 때 한참 고민을 하고 있던 때거든요. 우연히 집어든 책인데 어려운 가운데 잠시 여유와 평화를 느끼게 해주었던 책입니다. 저의 독후감이 평화롭진 않은 것 같은데, 평화를 발견하셨다니 아마도 평화로운 관점을 가지신 것 같습니다.
 
해바라기
시몬 비젠탈 지음, 박중서 옮김 / 뜨인돌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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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기 죽어가는 한 사람이 있다. 본인 스스로는 살인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고 하지만, 결국 살인적인 이데올로기의 포로가 되어 살인자로 거듭난 사람이, 그리고 그는 당장 내일이라도 자기와 똑 같은 다른 살인자의 손에 죽어 없어질지도 모르는 내게 고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비록 말을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고백에는 분명 진정한 참회의 흔적이 있었다. 유대인인 내게 이야기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회개하고 있다는 증거는 충분하다.] - 89쪽

 

용서는 단일한 선택의 결과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

가해와 피해의 과정이 촘촘한 그물처럼 연관을 맺고 있는 상황에서 참회-용서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진정한 참회는 무엇일까? 나치의 학살에서 살아남은 시몬 비젠탈은 그의 흔치 않은 경험을 <해바라기>에서 전한다.  시몬 비젠탈은 이런 선택의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어떻게 해야 할까? 책을 읽어가는 동안에 어머니, 아버지, 형이나 누나에게 그리고 동네 어린 꼬마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기도 했다. 누군가 아주 몹쓸 짓을 했는데, 어떻게 하면 용서를 해줄 수 있나요?라고 대답은 한결같았다. 진정한 참회가 있어야 고통 때문에 응어리진 마음이 풀린다고. 가해자의 참회와 피해자의 용서는 사실 한 마디로 단정하기가 불가능한 과정인 듯하다.

 가해자가 참회를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단지 잘못했다.라는 얘기를 하면 끝나는 것일까? 무엇을 어떻게 잘못하고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해 돌이켜보는 게 진정한 참회가 될 것이다. 반대로 참회를 듣고 용서를 할 수 있는 피해자의 경우는 어떨까? 바둑의 복기하다.라는 용어가 있다. 한 수 두 수.. 바둑이 종료되기까지 누가 어떻게 상대방을 이기고 어느 국면에서 승부를 가르는 선택이 이루어진 것인지를 알기 위한 것이다. 참회와 용서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마치 바둑의 승부가 끝나고 복기하는 것처럼 한 땀 한 땀 가해-피해상황을 반성해보는 과정이 절실하다. 착한 아이이고 카톨릭 신자였던 카를이 히틀러 소년단에 가입하고, 다시 ss에 지원하였던 일들 그리고 그러한 카를이 가담하게 되는 조직적인 학살들.

 

 비젠탈이 보기에 카를은 진정한 참회의 흔적이 보인다. 내가 생각할 때 진정한 참회를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흔적만 보인다고, 카를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과, 진정한 참회의 시작을 하는 카를을 용서해준다는 생각은 섣부른 판단일 것이다. 왜냐하면, 참회의 과정은 어떤 하나의 행위로 완결되는 과정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유의 몸이 된 비젠탈은 호기심 때문이 아닌, 일종의 의무감 때문에 카를의 어머니를 찾아가며, 내 생애에서 가장 불쾌한 경험 가운데 하나인 기억을 깨끗이 씻어 버리고 싶어서였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내 생각엔 불쾌한이라는  형용사의 원래 의미와는 다르게 이해해야 할 것 같다. 해결해야 했는데, 해결하지 못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한다. 영어원서의 단어를 확인해야 할 듯)

 카를의 어머니를 찾아가는 비젠탈은 무엇을 확인하려고 그러는 것일까? 아마도 죽어가는 ss대원 카를의 흔적이 마음속에 걸린 것이리라. 비젠탈은 자신의 대답을 바로 구하는 카를의 요구엔 거부했지만, 카를의 참회의 흔적이 담긴 얘기를 듣는 것을 거부하진 않았다. 자유의 몸이 된 비젠탈은 전쟁범죄조사위원회에서 일하며 다짐한다. 나는 위원회 일을 함으로써 인간성에 대한 나의 믿음은 물론이고, 또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질 이외의 것들에 대한 나의 믿음을 되찾으려 한 것이었다. 133쪽

 

내가 이해한 이야기의 주제는 용서가 가능한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참회는 가능할까? 이다.  몇 몇 분에게 질문한 당신에게 큰 상처를 남기 그들을 용서하려면 그들이 어떻게 하면 당신은 용서해주겠습니까?의 질문은 지금 생각해보니 논의의 맥락이 어긋났다고 생각한다. 어떤 잘못이고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선 그 상황을 다시 겪어야 하고 그 세밀하고 섬세한 아픔을 다시 느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아픔도 다 느끼기 전에 어서 용서해, 잘못했다고 하잖아?와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또다시 상처를 받을 것이다. 문제는 여전히 가해자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일으킨 자가 문제를 풀어야 한다. 가해자가 문득 깨달은 과거의 사실(가해한 일)로 마음의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 문제일까? 인정한다. 그렇지만 피해자의 고통보다 클 것인가? 가해자가 마음의 고통도 안 느끼고 참회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해자의 고통은 피해자의 아픔을 이해하고 느끼는 데 필수적이기도 하다.

 참회와 용서의 일은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는 과정이다. 다시 병실의 비젠탈-카를이 놓인 상황으로 돌아가보자. 그 당시 비젠탈이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참회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용서하지 않는 것 역시 불가능하다. 진정한 참회의 흔적이 그리고 씨앗이 나오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카를의 숨이 오래지 않아 다 한다고 해서 그냥 용서를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카를에게도 비젠탈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카를은 자신의 얘기에서 참회의 흔적을 발견한 비젠탈에게 할 수 있고 자신의 상황에서 가능한 방식의 용서를 구한 것이고, 비젠탈 또한 카를의 불충분한 참회에서 씨앗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읽는 내내 나를 불편하게 하는 게 있었다. 앞에 바둑의 복기 비유를 들었다. 그 비유는 사실 적절하지 않는 것인데, 이유는 바둑의 참여자는 2명이다. 그렇지만 비젠탈과 카를 두 사람의 용서와 참회의 참여자를 2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비젠탈이 임시병원으로 노동을 하러 갈 때, 바라보던 군중들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강압적인 상황에서 옆집의 유태인이 나치에게 끌려가는 상황에서 두려워하고 떨었으며 어떤 이는 스스로 인종차별을 실행했던 인물일 것이다.  부도덕한 세상에 자신의 인생을 위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쉽게 말할 성질의 것은 아니지만, 나치의 학살 뿐 아니라 다른 세상의 억압들과 차별들 그것들에 대해 말하지 않는 사람들의 침묵의 공유를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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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11-21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묵직하게 전해집니다.
책읽기 모임은 순탄하게 진행될것같네요.
잘 쓰셨어요.
앞으로도 좋은 리뷰 기대할게요.

가시장미 2006-11-22 0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단락이 아직도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의 꼬리를 물어. 나도 리뷰를 써야 할 것 같은데. 쉽지 않을 것 같네. ^-^; 이 글을 통해 많은 것들을 얻어가. 오늘 있었던 토론의 방향제시가 되어준 글이라 더욱 고맙고.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보여주길!

푸하 2006-11-22 09: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승연 님, 내 놓은 이글을 보니 참 다시 쓰고 싶어지네요. 일단 표현을 하면 자신의 약점을 정확히 본다는 점에 만족하려구요...^^; 나중에 조금 나은 리뷰를 쓰라는 조언이신거죠. 감사합니다...^^;
붉은가시장미 님, 반갑소, 어제 보고 처음임에도 이런 저런 분위기를 화기애애하게 돋우느라 수고많았어. 2시간 정도가 짧게 느껴질정도로 여러 논점이 나왔는데, 시간의 한계때문에 그 매듭은 삶속에서 대화속에서 지어야 할 것 같아. 어제 여러 얘기듣고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으니 나중에 또 모임에서 얘기해.

blowup 2006-11-22 14: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왜 이렇게 겸손을. 정말 좋은 리뷰 맞아요.
제목은 '용서에 대하여'라고 쓰셨는데, 가해자의 참회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드셨어요. 진짜 참회하고 있다면, 용서를 받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관자의 죄값을 물으셨죠. 하늘이 더 어두워지는 것만 같아요.--;;
장미 님과 푸하 님이 만나셨군요. 친구가 된 것 같아 옆에서 보기 좋아요.

푸하 2006-11-22 14: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나무님 넘 반가워요. 어제 장미님과 만나서 나무님 얘기를 잠시 했어요. 나무님과 off라인에서 만날 욕구를 가진 장미 님이 운을 띄우시고 저 또한 그러니 맞장구를 쳤지요.ㅎㅎ 장미님은 참 활기찬 성격이었어요. 처음 모임 참여하심에도 '기존회원'인 저보다 자연스러우셨거든요. 그래서 반말도 서로 하기로 했는데, 소심한 저는 약간 망설여지기도 하지만 참 좋아요. 장미 님과 함께 나무님 뵙고 싶으니 언제고 뵐 수 있으면 좋겠네요. ㅎㅎ

가시장미 2006-11-23 15: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푸하님. 나무님과 얼릉 약속을 잡아보세요. 으흐흐 근데ㅡ 너무 좋은 이야기만 해주셔서 부끄럽네요. 푸하님은 미소년이시잖아요~!!!!! ㅋㅋ (어색하니 존댓말이 나오네.) 그나저나. 오늘도 미국민중사 공부모임이 있어서. 걱정이네. 책 다 못 읽었는데. ㅠ_ㅠ 괜찮을까?

푸하 2006-11-2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덕분에 모임이 또 괜찮아진거 같아. 첫날부터 발제를 맡아 참 미안하고 고마워요.^^;

프레이야 2006-11-30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미와 나무와 푸하의 만남이 이루어지겠네요. 근사한 풍경일 것 같아요. 부러워요 ^-^ 진지한 푸하님, 침묵의 공범에 대해 생각하게 하네요. 참회와 용서에 동반되는 고통에 대해서도요. 어쩌면 용서하는 자의 고통이 더 크다 여겨집니다..

푸하 2006-11-30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물같은 댓글이군요.^^; 제가 좀 진지해서 '애써'농담을 하는 데도, 상대방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정도라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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