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행복한 책읽기 - 김현의 일기 1986~1989
김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김현의 ‘행복한 책읽기’는 ‘일 주일에 두 권은 읽어야 한다.’라는 나의 다짐과 강박을 다시 생각하게 한 좋은 책이다. 그는 단어와 구절과 ‘구두점’①의 조합을 통해 내밀한 사유의 편린②들을 이리 저리 엮어 펼쳐놓는다. 그의 일기는 시와 소설에 대한 촌평을 많이 담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읽은 시와 소설에서 나타난 저자의 ‘도저한 허무주의’에 깊이 감응한다.(그의 일기는 1989년 12월 12일에 끝나고, 그는 이듬해 6월에 영면한다. 일기의 전반에서 임박한 죽음을 감지한 저자의 성찰이 스며 나온다.) 그래서 그의 독서일기는 눈으로 쉽게 훑고 지나갈 수 있는 것들이 아니다. 한자 한자 음미하고 곱씹고, 혀를 움직여 발음해 봐야 의미가 살아나는 글들이 여럿이다.(일기는 자기에게 하는 입말의 형태를 띠니까.)
그것은 ‘일기답게’ 이런저런 설명 없이 핵심에 직접 들어가는 서술방식을 취한다. 그래서 그의 독서일기는 읽는 이에게 친절하지 않다. 그의 글은 독자로 하여금 능동적인 노력으로 ‘문장들 사이의 침묵’(30쪽)③에 들어갈 것을 은근히 그리고 매력적으로 권하고 있다.
①책에서 발견되는 그의 평론가다운 어법하나: 쉼표를 이용해서 수식어를 나열한다. 그런 방식으로 한 단어의 여러 속성을 중첩시키고 결합시킨다. 그는 단어의 미묘한 차이를 돋을새김 하여 새로운 방식으로 조직한다. 평론가(문학인;작가)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하는 역할을 한다!
②그는 이쁜 여자의 젖가슴에 반응하는 자신을 드러내기도 하고, ‘급작스런 설사병에 괄약근을 잔뜩 오므리고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한다.
③6.16일의 일기를 옮기면, “자기가 쓴 글들을 읽을 때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거리가 매우 멀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문장들 사이의 침묵이 점점 무서워진다.”
몇 가지 생각들...
“1988. 8. 2. ... 박정희가 권력을 잡은 이후부터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었다: 우리는 잘살아야 하고, 잘살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전제가 붙는다. 물질적으로 잘산다는 것을, 그는, 그냥 잘산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물질적으로 조금 부유해졌다고, 과연 잘사는 것일까? 그는 물질을 올리고,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는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였다!”(167쪽)
1. 김현의 어법을 흉내내면...
“free trade agreement 시대에 단 하나의 담론이 모든 것의 우위에 있다. 우리는 자유로워야 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의 제한사항이 붙는다. 그 자유는 거래의 자유라는 것을 그들은, 자유가 완성된다고 표현한 것이다. 그러나 거래를 자유롭게 한다고, 과연 자유로운 것일까? 그들은 자유의 한 가지 형태인 거래의 자유를 올리고, 다른 자유들을 낮춘다. 정신적인 가치는 물질적 가치에 종속된다. 언제까지?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 그들은 상징적인 히로뽕 판매자다!”
2. 20년 정도 지난 김현의 일기는 인문학자의 시대인식과 비판의 핵심이다. 그때는 IMF이전의 시대이고, 80년대 중후반의 3저호황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지금보다는 물질적으로 풍족한 시대였다. 그래서 그 당시 미래를 ‘다 피폐해져서, 물질적 쾌락만 남을 때까지?’라고 생각한 것이다. 그는 미래에도 물질적인 풍요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그런데 그는 IMF와 신자유주의, FTA 등... 한국사회가 물질적인 풍요조차 이루기 어렵다는 현실까지 예상하진 못한 것 같다. 일부 계층(계급일까?)은 물질적 가치만 남을 때까지 쾌락을 추구할 수 있고, 그에 비해 좀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물질적 쾌락만이라도 성취하려고 시도하다가 결국 못 이룬다. 물질의 풍요에 취해서 정신, 신앙, 문화를 낮추는 게 아니라, 물질적 욕구불만에 허덕일 뿐이다.(1) 물질적 쾌락이라도 다오...라고 외치는 시스템의 담지자들...
(1)강준만의「인간사색」의 어딘가에서 나오는 언급: 걸어 다니는 사람이 사륜마차 타고 다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것보다. 이륜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 사륜마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을 더 부러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