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항 님이 쓴 앞으로 출간될 테리 이글턴의 <신을 옹호하다> 추천사입니다. 
읽고 의문이 드는데 잠도 안오고 기록해봐야 겠군요.ㅎㅎ~  괄호안에 제 의문을 넣겠습니다.

  각별한 의미


(신을 옹호하다 추천사)

기독교 성서에는 두 가지 신이 등장한다. 구약성서에 등장하는 신, 즉 모세의 신은 권위적이고 질투가 많은 존재다. 신은 제 명령을 잘 따르면 기뻐하고 상을 주지만 어기면 크게 화를 내며 벌을 준다. 자신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이나 사회에 대해선 아예 어떤 사회인가 어떤 사람인가와 무관하게 차갑고 잔혹하다. 모세의 신은 자신들이 신과 계약을 맺은 유일한 백성이라는 선민의식에 젖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배타적인 민족 신이다.(기독교 성경에 등장하는 두 가지 신, 구약과 신약의 신을 나누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신을 '배타적인 민족 신'이라고 규정하게 되면 7일 동안 모든 것을 창조한 신의 전능함과 모순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신은 기본적으로 완전한 존재인 거죠.) 예수는 신은 우리에게 명령하고 누르는 분이 아니라 우리를 이해하며 우리와 대화하려 하는 분이라고 말한다. 모세의 신이 행여 화를 낼까 두려워 엎드려 눈치를 살펴야 하는 권위적인 아버지라면 예수의 신은 마주보며 대화하고 위로받고 의지할 수 있는 엄마다. 예수를 통해 신은 비로소 인류 보편의 신이 된다.(예수의 존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 또한 신의 의지를 실현하기 위한 신 그자체 혹은 신의 대리인 혹은 신에 종속된 존재가 아닐까요. 신은 그 자체로 완전하지 않을까 합니다만.)
그러나 기독교가 종교체제를 갖추고 사회적 영향력을 강화하기 시작하면서, 말하자면 예수의 정신을 잃어가면서 기독교의 신은 서서히 모세의 신으로 회귀한다. 특히 4세기에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 기독교의 신은 대개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와 부자의 신으로 군림해왔다. ‘이스라엘 민족’이 차지하던 자리를 ‘기독교 체제’가 대신했을 뿐. 오랜 세월 동안,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수많은 불의와 참혹이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다. 부시의 신, 이명박의 신의 이름으로.
대체 신은 어떤 존재인가? 동학을 비롯한 한국의 민간 사상과 종교에서 신관은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신은 우리가 사는 세계의 외부에서 절대적인 힘으로 우리를 관장하는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내 안에 ‘본디의 나’로 존재한다. 신을 섬긴다는 건 지금 나를 뒤덮어버린 이런저런 부질없는 집착과 욕망들을 씻어 내고 본디의 나로, 신의 모습대로 돌아가는 것이다. 가장 인간적인 모습은 곧 신의 모습이다. 신은 내 안에 존재하듯 다른 모든 ‘내 안’에도 존재한다.(이 문장 좋네요.^^;) 신을 섬긴다는 건 곧 이웃을 내 몸처럼 섬기는 것이다. 예수가 말한 그대로.(내안에도 타인에게도 신이 존재한다면.. 이웃을 내 몸처럼 섬기는 것이 용이할 것입니다. 그런데 내 안에도 타인에게도 신이 존재하지 않더라도 이웃을 존중하며 살 수 있는 조건도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것과는 별개로 진짜 제 안에도 신이 존재할까요? 사실 가끔 내 자신의 존엄함이랄까?에 달뜬 경험이 여럿입니다. 일상에서 여러 사회관계에서 소외감을 느낄 때, 그러한 감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내안에도 타인에게도 신이 있다는 말은 누구나 '위대함'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말 내가 그리고 다른 사람이 위대할까요? 위대해질 가능성이 있을까요? 그리고 위대하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규정되는 것일까요? 신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인간은 신을 닮았기에 위대하다는 것이 기독교의 말이겠지요.) 
그런 신관은 기독교라는 종교가 들어오면서 모조리 미신으로 치부되고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종교가 진정 종교적인 것들을 말살하는 기막힌 상황은 서양세계와 그 정신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이후 매우 일반적인 상황이 되었다. 양식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런 종교를 인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양식있는 사람이라면 그런 상황에 대해 정당한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진정 종교적인 것들을 말살하는 종교에 대한 반감은 당연하지만, 그런 반감이 진정 종교적인 것에 대한 무작정한 부정으로 비약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선 안 된다.(여기서 김규항님은 '진정 종교적인 것'을 강조합니다. 도킨스와 히친스 비판에서 이 말이 의미하는 바가 중요한 듯합니다.) 
그러나 많이 배우고 젠 체하는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런 어리석음에 빠지거나, 심지어 그런 어리석음을 부추겨 세속적 명성을 얻고 책을 팔기까지 한다. 이 책이 “디치킨스”로 한데 묶어 비판하고 있는 리처드 도킨스와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그 가장 ‘저명한’ 사람들이다. 사실 그들은 종교가 뭔지 제대로 모른다는 점에서 그들이 비판해마지 않는 사람들, 즉 진정 종교적인 것들을 말살하는 사람들과 같다. 테리 이클턴은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통찰과 유머가 넘치는 필치로 그들의 무지와 오만을 차근차근 폭로한다.(이 문단은 다소 반감을 갖게 합니다. 이글턴이 어떠한 논리로 도킨스와 히친스를 비판하는지는 아직 모르지만요. 일단 도킨스는 사람들이 기독교의 신을 믿는 것에 대해 지나칠 정도의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같습니다. 그러나 도킨스의 주장-진화론이 창조론 혹은 신의 존재 보다 진리에 부합한다는-은 이성적 근거를 갖추어 내린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그리고 도킨스는 신이 존재한다고 사람들이 여기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더 행복하고 더 윤리적으로 살 수 있다고 누누히 강조합니다.)    
이글턴은 이 책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애초 의도하지 않은 매우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지구상에서 좌우분별이 없는 대표적인 나라가 미국과 한국이다. 두 나라에선 극우 성격이 짙은 보수주의가 우파, 자유주의 우파가 좌파라 불린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한국의 지배계층과 교육을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좌우분별이 없으니 좌파의 존립이 어렵고 좌파의 힘이 적으니 좌파가 맡아야 할 고통받는 사람들의 현실은 더욱 공공연하게 무시된다. 이 책은 좌가 뭐고 우가 뭔지, 왜 오래 전에 폐기된 것으로 알려진 좌파적 상상력이 여전히 유효한지에 대해 또렷하고 깊이 있는 식견을 제공한다.
이글턴은 잘 알려진 사회주의자인데 사회주의와 기독교 신앙이 어떻게 함께할 수 있는가, 의문을 갖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역시 기독교 신앙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한다. 자본주의 체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일과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예수의 핵심 메시지는 상당 부분 겹쳐진다. 기독교 신앙은 ‘사회주의 이상’의 것이지 ‘사회주의에조차 못 미치는’ 어떤 게 아니다. 여러 면에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을 보는 눈을 환히 밝혀주는 책이다.(김규항님에게서 기독교 신앙과 사회주의는 서로 모순되지 않고 필요한 것으로 결합됩니다. 그런데 김규항님이 얘기하시는 기독교 신앙은 종교가 인간존재와 만물을 낳는다는 의미에서의 '초월적 종교관'을 상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지만 신이 없어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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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7-20 1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규항씨는 또다른 의미에서 종교에 대하여 잘 모르는 사람이 아닐까요? 김규항씨의 결론은 종교를 도덕이나 윤리로 끌어 내리는 것이니까요. 님이 지적하셨듯이 김규항씨는 초월적인 종교관을 상정하지 않아도 되는 착하게 사는 것을 말하는데 그것은 기독교는 아니니까요. 가끔 과학과 종교를 같은 범주로 오해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답답합니다. 종교가 맹목적인 광신도 문제이지만, 이성적으로 모든 것이 설명 가능하면 그것은 과학이지 종교가 아닙니다. 이런 두서 없는 말이 되었네요.

푸하 2010-07-20 13:55   좋아요 0 | URL
제 느낌을 다듬지 않고 올렸는데, 잘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확한 위치는 모르지만 김규항님은 종교의 초월적 성격과 윤리적 성격이 어떻게 융합하는지 몇 몇 곳에서 밝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는 신학의 오랜 주제이기도 한 것 같기도한데 저는 잘 모르겠네요.^^:
김규항님은 한국사회의 기독교가 외양은 초월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지만 그 윤리적 측면에 있어서는 매우 반기독교적인 행태를 보이는 것을 비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김규항님의 글들은은 현재의 기이할 정도로 돈을 섬기는 한국기독교 시스템과 그것을 수용한 종교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김님 2010-07-20 14: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그냥 세글자 .``무신론`` ..그냥 무신론적 사회관.....김규항씨의 영성을 종교적팩트로 다루기보다...오히려 기독교화지않은 종교화하지않은 예수보기 그자체 아닐까요...님의견의 시시비비보다 이곳엔 어울리지않는다는...뜻입니다

푸하 2010-07-20 15:27   좋아요 0 | URL
김규항님의 주된 논지와 좀 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 좀 망설이기도 하였습니다. 제도화되기 이전의 예수를 살려내는 김규항님의 작업에 적극 동의하고 많이 배웁니다. 그럼에도 몇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이 있어 가벼운 소감을 적었네요.

phd6729 2010-09-1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회주의가 신에 기대야 한다면, 별로 현실에서 이루고 싶지 않네요. 배부른 돼지 되는거 같아서.
김규항형 참 좋은 사람인데, 저 부분은(신학) 죽을 때까지 동의 못할듯. ^^

푸하 2010-09-15 13:18   좋아요 0 | URL
참 어려운 주제 같아요.
아마도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주제인 것 같아요.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어떤 확실한 견해라도 이성에 의한 의심과 회의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것 같아요. 여튼 고민해야 할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