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오늘 한국의 직업이 몇 개인지 아십니까?” 근래 교육관련 강연을 하면 꼭 청중들에게 하는 질문이다. 아쉽게도 제대로 답하는 사람이 없다. 부모들도 교사들도 심지어 교육운동하는 이들도. 아이들의 교육문제에 그토록 열중하는 아이들의 미래에 그토록 노심초사하는 우리가 직업이 몇 개인지조차 모르다니 참 이상한 일이다. 어쨌거나, 답은 1만개다. 최근 통계청 자료다. 그렇다면 오늘 한국 부모들이 제 아이에게 바라는 직업은 몇 개일까? <고래가그랬어>에서 조사해본 바로는 많이 잡아 20개다.
직업이 1만개라는 건 내 아이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부모들이 아이에게 바라는 직업은 고작 20개이니 9980개의 직업을 갖고 살아갈 아이들, 즉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은 제 직업에 온전한 자존감을 갖고 살아가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우리 부모는 내가 00가 되길 바랐지만...’ 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들이 무슨 죄라도 지었는가?
쿠바의 청소부는 의사보다 월급이 많고 노르웨이의 버스기사는 대학교수보다 월급이 많다. 그 나라 사람들은 우리처럼 월급 따위로 직업의 귀천을 가르진 않지만, 청소부나 버스기사라는 직업에 대한 인식이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여긴 쿠바나 노르웨이가 아니라 한국이라고? 그렇다. 그러나 지금처럼 모든 부모들이 내 아이가 청소부나 버스기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한 한국의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 서민 부모들은 울분에 찬 얼굴로 교육 기회의 불균형과 격차를 말한다. 우리는 이른바 일류대 신입생이 해가 다르게 부자의 자식들로 채워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가만 생각해보자. 아이의 적성이나 재능과 무관하게 20개의 직업들을 독식해가는 그 부자 부모들은 진정 우월한 걸까? 일찌감치 제 부모의 생각을 받아들여 제 적성이나 재능과 무관하게 그런 직업들에 안착하는 그 아이들은 과연 행복할까?
사람은 두 가지 경로에서 행복을 느낀다. 하나는 관계다. 나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때 그 관계 속에서 사람은 행복을 느낀다. 또 하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것이다. 남 보기에 아무리 근사해 보이는 직업이라 해도 스스로 즐겁지 않다면 그 인생은 불행하기만 하다. 요즘처럼 20개의 직업이 적성도 재능도 아닌 성적순으로 채워지는 상황에선 20개의 직업은 오히려 행복도가 낮을 수밖에 없다.
성적순으로 정해지는 직업들만 강조되다 보니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걸 마치 아이의 인생을 포기하는 것처럼 두려워하며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안 한다’는 식으로 억지를 부리곤 한다. 그러나 우리는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라는 사실에 낙심할 이유가 없다. 공부는 여러 적성 가운데 하나이며 공부를 꼭 잘해야 하는 직업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극히 일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한다는 건 잘할 수 있는 다른 게 있다는 말일 뿐이다.
한국에는 1만개의 직업이 있다. 그건 앞서 말했듯 내 아이가 1만개의 직업 가운데 하나를 갖고 살아간다는 이야기이며, 내 아이가 그 1만 개 직업 가운데 적어도 하나의 적성과 재능을 갖고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할 일은 되든 안 되든 20개 직업만 생각하며 아이를 닦달하는 게 아니라, 9980개의 직업까지 두루 살피며 아이가 제 적성과 재능에 가장 맞는 직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물론, 2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보다는 9980개 가운데 한 개일 확률이 훨씬 높다.(한겨레)
http://www.gyuhang.net/ 에서
"지금처럼 모든 부모들이 내 아이가 청소부나 버스기사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한 한국의 현실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반박할 말이 별로 없다.
김규항이 제시하는 쿠바와 노르웨이의 사례를 보면, 특정 직업에 대한 개인들의 선호가 사회의 문화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른세상(!)이 되기 위해서 필요한 한 가지는 '내'가 노력해서 사회의 주류가치관과는 다른 것을 갖는 것이다.
그런데 '도입부'에서 김규항은 강연에서 한국의 직업이 몇 개인지에 대한 질문을 하고 그것을 모른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직업이 몇 개인지를 모르는 것이 굳이 문제가 될까. 물론 현실교육에 비판적인 사람조차 20개의 직업만을 더 높게 본다는 지적일 수는 있겠다.만 본문에서는 그러한 진의가 잘 드러나지는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