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에 관한 짧은 보고문을 만듦.

N과 집을 보러감. BBC 드라마 이스트엔더스와 똑같이 생긴 동네였음. N은 흥분해서 1 분만에 계약하기로 결정함. 나는 너무 빠른 결정이라며 계속 우려를 표함.

N: 내 직관이 행복해해.
나: 난 내 직관을 믿지 않아. 여자들이라면 경우가 다를 수 있겠지만...
N: 너 섹시스트야?
나: 헐~

R과 만나 아프리오리 논증의 증명력과  아포스테리오리 논증의 증명력 등에 대해 토론함. 잠정적인 결론은 아프리오리/아포스테리오리의 기준 자체가 모호하다는 것. 예를 들면, 에티카 제1부 공리 6. 참인 관념은 자신의 대상과 일치한다, 는 아프리오리한가? 

(나는 무엇보다도 스피노자의 방법론에 관심이 많다. 엊그제 학교 도서관 서가를 처음으로 돌아보았다. 그동안 일부러 접근하지 않았었다. 사고 싶었던, 그러나 도저히 살 수 없는 가격이라 속만 태우던, 요하킴의 "지성개선론 연구"가 거기 놓여 있었다. 아름답게 퇴락한 그 책을 집어 들고 냄새만 잠깐 음미하다 책장에 도로 끼워 넣었다. 주제를 넓히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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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많이 했다.
오늘 한 것 중 가장 의미있는 것은 데카르트의 이원론을 옹호한 것. 텍스트 지원이 가능한지 검토할 것.

(N네 집주인이 일요일까지 방을 빼라 했다 한다. 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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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공부.

영어 공부. 별 것 없음. 유튭에서 이러저러한 대담 동영상 틀어놓고 뒤따라 읽기함. 유튭에 자막 기능이 있지만 이걸 켜놓고 있으면 뒤따라 읽기에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는 게 신기함.

에티카. 설사 스피노자가 틀렸을 때라도 그가 문제를 다루는 방식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일 가치가 있다. 철학 일반에 해당하는 말.

강의 예습. 점점 게을러 지고 있다. 

R에게 메일. R은 불어 원어민이라 먀슐레의 책을 읽을 수 있고 그것을 자신의 논거로 삼는다. 나는 그에 동의하지 않지만 내가 핀트를 벗어났을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나는 마슐레를 읽을 수 없으므로.

오바마-롬니의 두번째 토론을 봄. 첫번째 토론은 절반 정도 보았고 이번 것은 끝까지 다 보았다. 이번 토론은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라이브로 방송한 대통령 선거 토론회를 방불케 할 정도로 드라마틱했다. 오바마가 처음부터 거칠고 단호하게 밀어부쳤다. 시민들이 질문하고 후보들이 대답을 하는데, 질문자들이 그 답변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표정 변화를 읽을 수 없다는 점이 재미있더라.

에머데일이라는 영국 드라마가 있는데 40주년 기념이라며 오늘 라이브 방송을 했다. 피쉬 앤 칲스 사러 가느라 첫 10분 밖에는 보지 못했다. 영국에는 50년 넘게 방송하고 있는 드라마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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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음. 기차 삯이 너무 비싸서 이틀 정도 런던에 나가지 않으면 책 한권 값이 나올 정도다. 책값을 벌고 있다.-.-
영어 공부 함.
에티카. 꼼꼼하게 읽고 있음. 스피노자에 대해 내가 할 말이 많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됨.

(에릭 슈미트가 대학에 초청 받아가서 대학생들과 대화하는 동영상을 봤다(College Tour- Eric Schmidt Google로 유튭 검색). 네덜란드인 듯. 손님을 데려다 놓고 저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긴장된 분위기가 연출됨. 예를 들면, 구글은 자기네 서비스가 공짜라고 광고하고 있지만 사실은 뒤에서 개인 정보 장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하는, 에릭 슈미트를 우스꽝스럽게 캐리컬쳐한 애니매이션을 틀어줌. 엊그제 본 한국 대학생들과의 대화와 많이 비교가 되었다. 물론, 행사의 기획이 다르고 한국과 네덜란드의 문화가 다르므로 동일 평면에서 비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국과 네덜란드가 자신들의 사회에서 대학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한국에서 에릭 슈미트가 고등학생들과 대화를 하였더라도 한국 대학생들과의 대화와 그리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나라마다 대학에 대한, 대학의 사명에 대한 정의가 다를 것이며 다른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긍정할 수 없다. 각 나라의 대학이 주로 젊은 세대의 학생들로 구성되어 있는 한은 말이다. 한국의 대학도 대학에 대한 보편적 정의를 충족하고 있었음을 우리는 쉽게 인정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대학의 현 상태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사고의 흐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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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집에 있음. 청소. 스피노자 읽음. 대체로 촛점이 없는 게으른 하루.

E와 에릭 슈미트와의 대화를 같이 봄. 자연스럽게 진행자에 대한 비판을 하게 됨. 좋은 대담 프로그램을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됨. 

(에릭 슈미트와 학생들의 대화를 다시 보면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학생들은 지금, 성공한 기업의 씨이오와 학생이라는 프레임 하에서 대화를 하고 있구나. 학생들이 이런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사실은 결코 유쾌한 것일 수 없다. 그들은 젊다. 열정을 보여주어야 하고 패기를 보여주어야 한다. 학생들이 에릭 슈미트에게 도전적인 질문들을 던질수록 이 대화는 에릭 슈미트에게 의미 있는 것이 될 것이다. 역으로 이 대화가 에릭 슈미트에게 의미 있는 것일수록 학생들에게도 그러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공한 씨이오-학생이라는 프레임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제품들을 출시하면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IT 기업의 경영자와 그에 대한 비판적 사용자라는 프레임에서 대화를 해나갔어야 했을 것이다. 상대를 곤혹스럽게 할 질문들을 자기검열로 배제하는 것은 예의바른 태도가 아니라 오히려 무례한 태도다. 상대의 귀중한 시간을 그저 그런 얘기들로 허비하게 하는 것이니까. 에릭 슈미트에게 뭔가를 배우고 얻으려 할 것이 아니라 뭔가를 가르쳐 주려고 해야 한다. 얼토당토 않은 얘기라고? 이런 것이 열정이고 패기다. 자신을 에릭 슈미트와 똑같은 눈높이로 세우는 것, 그것이 열정이고 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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