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이다. 비가 무지하게 내린다. 한국의 봄 날씨가 이랬던가?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내일 영국으로 출국한다. 영국에서 아내와 합류하게 된다. 아직 진학 문제는 매듭짓지 못했다. 결과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종로 경찰서에서 운전경력 증명서를 떼고 맞은 편 스타벅스에 커피를 마시러 갔다. 카드 잔액이 아직 남아 있어 비워 버릴 생각이었다. 평소와 같이 에스프레소 더블을 시켰다. 보너스 샷을 주더라. "스타일이 바뀌셨네요?" 하며 카페 직원이 웃는다. 머리 관리하기가 귀찮아 머리를 볶아 버린 차였다. "괜찮아 보여요?" 나도 웃으며 커피를 받아들고 창가쪽 탁자로 갔다. 선 채로 천천히 커피를 마셨다. 컵을 반납하고 카페를 나섰다. 당분간 이 곳에 다시 올 일은 없겠지. 빗발은 조금 가늘어진 것 같았다.


귀국해서 한동안 폭풍과 같은 시간들을 보냈다. 나는 집중을 해야 했다. 노트북을 들고 스타벅스에 가서 퍼스널 스테이트먼트를 썼다. 첫날 오전에 절반을 썼고, 다음날 오전에 나머지 절반을 써서 더블 스페이스로 3 페이지가 조금 넘는 퍼스널 스테이트먼트를 완성했다. 오전 일을 마치고 햇살이 쏟아지는 도로를 흐뭇한 마음으로 걷던 기억이 행복처럼 떠오른다. 이런 기적이 계속되기를... 나는 그때 이렇게 소망했었지.


"공부할 마음이 확고하다면 적절한 좋은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대학 때 나를 가르치셨던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나의 마음은 확고하고 나의 미래는 완전히 열려 있다. 나는 뾰족한 바늘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어느 쪽으로든 떨어지겠지. 어느 쪽일런지는 현재로부터 완전히 가려져 있다. 과연 어느 쪽일까? 어쨌든 내일 출국하는 것만큼은 확실히 결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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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박이일로 지방을 돌았다. 버스와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다. 인터넷 연결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서핑 대신 아이폰에서 모모노트로 메모를 작성하거나 영어 단어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 돌아와서 인터넷이 가능한 카페에 앉아 메모들을 모모노트 사이트 상에서 노트북으로 편집했다. 전문용어로(?) 모모노트는 심리스하고 트랜스페어런트한 환경을 제공해 준다. 여행 기간 동안 꽤 두터운 단어 책을 절반 가량 독파한 걸 보니 흐뭇해졌다. 여행 때 영어 단어 책을 읽는 것보다 머리에 부하를 덜 주면서 생산성있는 일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ps. 4/23 첫 단락 삭제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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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욱 지음의 "윤이상"을 읽었다. 드라마틱한 인물이다. 서양의 현대성과 동양의 전통성이 거기서 만난다. 한국의 각박한 정치 현실과 현대 음악의 추상성이 거기서 만난다. 박정희 군사 정권에 고문당하여 피폐해진 몸으로 차가운 형무소 바닥에 엎드려 고대의 장자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은 희극 오페라 "나비의 미망인"을 쓰고 있는 윤이상을 상상해 보라.

예전에 윤이상의 흔적을 찾아 통영에 갔었다. 상시적으로 국제 음악회가 열리는 음악당 길 맞은 편에는 철공소들이 줄지어 있었다. 기묘한 부조화지만 윤이상의 존재 이상으로 역설적으로 보이지는 않았다.

윤이상의 음악은 어렵다. 어디서 숨을 죽여야 하고 어디서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멜로디도 화성도 리듬도 없고 길고 불안하게 이어지는 음향만 있는 것 같다. 내가 그 문법을 알지 못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그것이 한국의 전통적인 무엇에 관한 것인지, 아니면 현대 음악의 무엇에 관한 것인지도 나는 모른다. 그러나 무지를 부끄러워 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언제나 좋은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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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아이폰에 앱을 하나 사서 설치했다. 모모노트라는 메모용 앱이다. 내가 찾던 기능들을 착실히 구현해 놓은 것 같았다. 나는 장치들 사이의 동기화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출판되고 고정되어 영속적으로 참조할 수 있는 뷰를 제공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 앱은, 일종의 비공개 블로그 사이트를 그러한 뷰로 제공한다. 좋은 아이디어다. 텍스트 입력을 하려면 편집 버튼을 별도로 눌러야 되는데 이것도 현명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일종의 롹킹 시스템이니까. 참 사려깊은 디자인들을 보고 흐뭇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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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 외서부에서 존재와 무를 샀다. Being and Nothingness. 사르트르는 책 제목에 관한한 나와 상극이다. 존재와 무, 구토, 변증법적 이성 비판, 자유에의 길... 지하철에서 펴들고 읽기에는 책 제목이 너무 야하다. 

Introduction을 다 읽었다. 마치 시사 주간지를 읽는 것처럼 속도감있게 읽힌다. 그렇게 읽었다고 착각하고 있다가 잠시 책을 내려 놓고 보면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음을 깨닫게 된다. 지하철 안이다. 읽은 페이지의 두께에 흐뭇해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대학 1학년 안팎 때 한국어판 "존재와 무" 서론을 읽었던 것 같다. 그 뒤로 몇번 다시 시도를 했을 것이지만 서론 이상을 읽은 기억은 없다. 서론의 처음 몇 페이지는 그럭 저럭 읽었을 것이고, 그 뒤 페이지들은 그저 눈으로 활자를 따라 읽는 정도였을 것이다. 

사실 서론의 그 몇 페이지가 사르트르에 대한 나의 이해의 거의 전부다. 그리고 그 몇 페이지는 내게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다. 지금 이 블로그에도 그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본질이란 현상을 파고 들어가야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것은 드러난 것들의 총체다. 프루스트가 천재라고 할 때, 그 천재는 작가로서의 탁월한 능력 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프루스트가 생산한 것들의 총체를 뜻한다. 이는 굉장히 엄정한 윤리학을 내포한다. 그것은 변명의 가능성을 폐기한다. "그는 뛰어난 재능을 갖고 있었지만..." 이런 말은 불가능하다. "그를 돕고 싶었지만..." 이런 말도 불가능하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지만..." 이런 말 하지 말라! 당신의 존재란 what you are가 아니라 all you've done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이 이론 근방에서 헤매고 있다. 아마 내가 무지하게 게으른 사람임을 뜻하는 것이리라. 영문판 "존재와 무"를 읽으며 나 자신의 그런 게으름, 혹은 변화에 있어 철저한 무능력 따위를 느꼈다. 부지런해야 겠다. 이 책 무지하게 두텁다. 역시 부지런해야 한다는 자각을 준다. 이 책, 숱하게 오해되고 있다고 겉표지에 나와 있다. 가짜가 되기는 정말 쉽다는 뜻으로 받아들인다. 읽지도 않은 책 표지들을 죽 나열하는 것처럼 자기비하적인 일이 또 있을까? 이런 자기비하를 일삼는 사람들은 매우 흔하다. 책의 표지를 사진으로 찍는 것은 그 책을 통독하는 것보다 훨씬 쉽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존경하지 않는다. 스피노자 말대로 추구할 가치가 있는 것은 힘들고, 힘든 만큼이나 드문 것이리라. 부지런 하자. 그런 면에서 사르트르는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아마 사르트르가 글을 쓰던 카페에 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보다 거기 앉아서 1000 페이지 분량의 책을 써대던 사르트르가, 어떤 관점에서는 더 훌륭한 사람이리라. 이 논리의 정당화를 요구하는가? 나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내가 당신에게 당신 논리의 정당화를 요구해도 되겠는가? 당신은 나의 시선을 피하는 것 같다. 당신은 열심히 책 표지를 사진으로 찍어 올리며 "앞으로 읽을" 책이라고 말하라. 그리고 나를 피하라. 누구든, 그러므로 나도 어떤 식으로든 당신을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당신을 당신이 찍어 놀린 책 표지 사진으로가 아니라 what you've read로 판단하게 될 터이니까. 부지런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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