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친구 A가 휴가를 받아 놀러왔다. 영국에서 7년 살다가 직장 접고 한국에 가서 1년여 살았고, 이제 8월달이면 다시 영국에 올 계획이란다. 영주할 생각으로. 다른 친구들도 불러서 우리 집에서 중국 요리를 시켜 먹었다.

한국 이야기, 아이 키우는 이야기를 많이 했다.

친구 A의  아이는 초등학생. 2살 때 영국에 왔지만 집에서는 한국어만 썼기 때문에, 어눌하긴 하지만 한국어를 곧잘 한다. 이번에 한국에서 1년 정도 산 셈인데, 한국어 발음이 무척 좋아졌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에게 한국이라는 나라를 경험시켜 주고 싶었다고 했다. 세월호 때문에 아이가 한국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세월호 사태에 대해서 아이가 이렇게 말했단다. "영국에서 크루즈 탈 때는 구명복 입는 법, 어디서 구명정 타는지 다 훈련 받았는데, 세월호는 그런 훈련을 안해서 사고가 난 것이다." 

친구 B의 아이는 이제 4, 5살. 영국에 온지 1, 2년 정도 되었는데, 아이가 자꾸 영어로 말하려고 한단다. 즉슨, 영국화가 진행 중이라는 것. B는 아이가 영국 시민권을 따고도 한국에서 군대를 갈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고 있단다. B는 장교 출신이다. 내가 그 점을 지적하니 B는 꼭 그런 이유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대부분의 한인에게 영국은 남의 나라다. 영국에서 좋은 교육을 받은 한인들도 성인이 되고 나면 한인 친구들만 친구로 남는단다. 영국에서 좋은 대학을 마친 한인들도 한국 회사의 현지 법인에 취직하는 경우가 많다. 영국에서 여기 사람들에 섞여들어 주류에 진입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영국은 '이런' 사회적 이동성에 관한 한 굉장히 개방적인 나라이다. 프랑스에서 10년을 산 한 친구는 영국 테레비젼을 보고 놀란다. 앵커가 흑인이었으니까. 프랑스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라면서. 영국 뉴스에서는 이슬람식 머리 수건을 쓴 여성 리포터도 볼 수 있다. 

한인들도 영국 사회와 긴밀한 접촉을 지속적으로 하다보면 장기적으로 영국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될 날이 올지 모른다. 그러나 아직은 아닌 것 같고, 사실 앞으로도 잘 모르겠다. 

거칠게 말하면 '남'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열외의 시민일지도 모른다. 때로는 열외의 상황이 편할 때도 있다. 그러나 항구적인 조건으로 열외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B가 자기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싶어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다. 어떤 상황이 되든, 영국 사람으로서든, 한국 사람으로서든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을 아이가 구비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영국 사회가 진입하기 만만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세월호 사태가 폭로한 가장 가공할 만한 사실은 한국 사회가 신뢰도 제로의 사회라는 것일 것이다. 도처가 다 그렇다. 심지어는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한 한국 전통 건축물 복원에 있어 최고라는 장인도 자기 직업에 대한 자긍심은 세월호 선장과 비슷한 수준인 것 같다. 다 돈 밖에 모른다. 그러므로 아무도 믿을 수 없고, 아무도 믿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총체적으로 신뢰가 붕괴된 사회가 또 있을까 싶다... 

그래서, 인터넷 댓글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민을 말한다. 그러나 이민은 결단코 답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이민을 할 정도면 한국에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사람들이거나 쌓을 수 있는 사람들일 것이다. 한국 사회에 적극적인 기여를 하며 살 수 있는 사람일 것이다. 영국으로 이민을 온다면 영국 사회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정체성을 갖는데 무한히 힘들 것이다. 즉, 영국이 남의 나라로 느껴질 것이다. 한 사회에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상당량의 행복감은 그런 정체성의 분열을 통해 날아가 버린다.

실력 있고 생각 있는 사람들이 한국을 많이 떠난다면 한국 사회를 분열시켜 가며 자신들의 잇속을 챙겨 온 사람들은 쌍수를 들고 기뻐할 것이다. 적어도 나는 그런 꼴을 보고 싶지 않다.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세월호 사태를 통해 우리가 알게 된 것은 우리가 할 일이 참 많다는 것 아닐까?

내가 요즘 사는 책의 90%가 채리티 샵(기부 물품을 판매하는 자선 사업 가게)에서 산 것이다. 일반 서점에서는 못 보던, 한국 관계 책들도 서너 권씩 나온다. 그러면 꼬박 꼬박 산다. 어제 산 책은 전통 사찰에 대한 책이었다. 영국 사람이 쓴 책인데 인쇄는 한국에서 했다. 숭산 스님과의 인터뷰도 실려 있다. 그러나, 오탈자도 많고 책 구성이 엉망이다. 다른 사람에게 받은 서문이 인트로덕션과 상당히 겹치는 등, 실력이 문제건 성의가 문제건 문제가 많았다. 나는 좀 창피했다... 이런 것만 봐도 느껴지는 게 분명히 있다. 한국은 아직 할 일이 많은 나라라는 것. 

정치에서건 문화에서건 한국은 손 댈 곳이 너무도 많은 나라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이 많고,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이 많고, 아직 제대로 확립되지 않는 것이 너무 많다. 젊고 창의적인 사람들에게는 무한한 기회가 있는 나라다. 물론, 무능하고 윤리의식이 결여된 기성세대가 곳곳에 눌러앉아 장애물이 되고 있다는 걸 잘 안다. 그러므로 젊은 신진 세대들은 우선 그 장애물을 우회하는 법을 익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같은, 이미 늙어 버린 사람은 마땅히 귀명창이 되어야 하겠지.

(우회하는 법. 이번 지방선거 기사에서 서울의 박원순, 충남의 안희정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다. 한 사람은 지명도 떨어지는 시민 운동가 출신이었고, 다른 한 사람은 친노 중의 친노로 감옥까지 갔다 온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사람들이 서울 시장이 될 수 있었고, 충남 지사가 될 수 있었을까? 난 잘 모른다. 그러나 어쨌든 지자체장이 되었고 이번에 재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한나라당 성향 사람들도 이들을 지지한다는 것. 예를 들면, 박원순은 전통적인 한나라당 강세 지역인 강남 구들에서 서울 평균보다 높은 지지율을 받고 있다는 것. 어떻게? 강남 지역에 적당한 경제적 이득을 제공함으로써. 안희정도 충남에 많은 투자를 끌어오고 소통을 강화함으로써. 그렇게 야금 야금... 우리가 노무현의 실패에서 배워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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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동안 터키를 돌아다녔다. 간단하게 기억에 남는 것들을 적어놓자.

1. 거의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갔다. 그냥 먹고 놀다 올 참으로. 터키에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일이 참 많았는데 이 말이 어찌나 어렵던지 아직도 내 입에 붙지 않다. 나의 낡은 머리란...

2. 터키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다. 아니 순수하다고 해야 할까?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거의 천사다. 한국 사람이라고 몰려들어 같이 사진을 찍는 여학생들:) 영어가 겨우 겨우 통하는 어느 택시 아저씨는, 내가 터키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라고 하니까, "블러드 브라더스"란다!

3. 터키 사람들의 순수함을 이야기하려면 한도 끝도 없다. 거리에서 홍합밥을 사먹는데, 자꾸 먹다보니까 10개를 먹었다. 하나에 1리라니까 10리라. 지갑을 꺼내니 5리라 짜리랑 20리라 짜리 지폐가 있었다. 20리라를 내려니 홍합밥 파는 아저씨가 5리라 짜리를 낚아챈다. 내가 노노노를 외쳤지만 괜찮단다~

4. 어느 사원에 가서 천정이랑 벽이랑 멍청한 표정으로 돌아보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내 어깨를 두드렸다. 수염이 허연 어르신이 나를 끌고 벽 쪽으로 가신다. 그리고 사십 센티 길이의 돌로 된 피스톤을 가리키신다. 지진이 나면 이 원기둥이 파르르 떨며 소리를 낸다는 것을 손발을 써가며 열심히 설명해 주셨다. 

5. 택시를 잡으려는데 잘 못잡고 있었다. 서 있는 택시들은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아닌지 고개를 설레 설레. 그러다가 어느 택시 기사분이 나서서 복잡한 교통을 정리하면서 지나가는 택시를 잡아다 주었다. 내가 고맙다고 "땡큐"를 외치자 0.2초 정도 씽긋 미소를 짓고는 암 것 아닌 듯한 표정으로 돌아가더라. 

6. 어느 아저씨. 오렌지를 까먹고 있다가 다가오셔서 영어로 띄엄띄엄 말씀하신다. 아들이 뉴욕에 사는데 한국 여자를 만났단다. 아들은 무슬림, 한국 여자는 카톨릭. 크리스마스때 어찌 저찌 했다고 하는데 알아 듣기 힘들었다. 어쨌든 먹던 오렌지 반쪽을 주신다. 넙죽 받아 먹었다. -6일 동안이었지만 이런 식의 이야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다.

7. 이스탄불에서 페리를 타고 인근의 프린스 아일랜드에 갔다. 거기서 자전거 일주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 배. 옆 자리에 터키 사람들이 앉았다. 서로 가볍게 인사. 베이글같은 빵을 사더니 반을 잘라 나를 준다. 갈매기 먹이로 날리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갈매기가 몇 없었다. 그래서 대신 내가 먹었다. 그랬더니 베이글같은 빵을 또 주었다. 그래서 내가 또 먹었다. 그랬더니 터키 국기를 주더라. 고맙다고 잘 간직하겠다고 했다. 그렇게 말문이 열려서 이스탄불에 도착해서 같이 터키식 차(차이)를 사먹었다. 주소 주면서 자기 집이 브루사에 있는데 내일 꼭 놀러 오라고. 

8. 다음날 페리타고, 미니버스 타고, 기차 타고, 트램 타고, 택시 타고 해서 그 친구 집에 갔다. 이미 저녁. 그 친구 이름은 세파인데 자고 가란다. 세파, 세파 아내, 세파네 엄마, 장모, 2살 짜리 아들과 같이 밥먹고, 세파 차로 브루사를 총알 여행하고, 어느 산꼭대기 올라가서 터키 차를 마시고 놀았다. 대화는 구글 트랜스레이터로. 산꼭대기에서 차 마실 때는 언어가 없으니 나름 어색한 침묵. -영국 돌아와서도 이 친구랑은 연락을 하고 있다. 런던 오고 싶어하는데 너무 비싸단다. 비싸다.

9. 터키에 와서 가장 먼저 간 곳은 모던 아트 갤러리. 터키의 현대를 알고 싶었기 때문. 마침 과거와 미래전이 열리고 있었다. 지정학상 터키는, 러시아와 마찬가지로 유럽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있던 나라. 예를 들어 1900년대 초에 터키 정부는 화가들을 프랑스에 유학 보냈고 그들은 인상주의 화풍을 가지고 터키로 돌아왔다. 터키 화가들의 인상주의 그림들을 보는 것은 묘한 느낌이었다. 

10. 터키의 과학사 박물관. 터키는 어마어마한 문화 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의 문화 유산을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느낌을 갖게 되었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 나로서는 Abu Zayd의 "Sustenance for Body and Soul"라는 의미심장한 서명을 알게 된 것이 큰 수확이라고 말하고 싶다.

11. 숙소가 탁심 광장에 있었는데 메이 데이때 경찰들이 광장을 봉쇄해 버렸다. 저녁때 숙소로 돌어가는 길을 경찰들이 막아서 안들여보내주었다. 관광객이니 보내달라 했지만 요지부동. 어떤 터키 아가씨가 관광객이니 보내주라고 언성을 높이는 것 같았고, 경찰 대장은 아무도 통과시킬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 같았다. 뒤에서 사람들의 야유 소리. 결국 경찰 대장은 나에게 여권을 요구했다. 여권을 보여주고 나서 경찰들의 벽을 통과할 수 있었다. 사람들의 엄청난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12. 터키는 엄청나게 복잡한 나라다. 탁심 광장 시위도 한가지 잣대로 꿰어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방인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사람들이 박수 칠 때 같이 박수를 치고, 메이 데이 다음날 지하철 역 앞에서, 아마 사회주의 당원들이 팔던, 내가 읽지도 못하는 터키어 신문을 1리라에 사는 것 뿐이었다. 찻집에서 계산을 하는데, 테레비에서 경찰들이 시위하는 시민들을 강제 연행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걸 지켜 보다가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사람들을 돌아보며 저것 좀 보라고 손짓을 했는데, 찻집에 앉아 있던 사람들도 얼굴을 잔뜩 찌푸린 채 테레비를 보고 있었다. 그 정도.

14. 내가 터키에 가서 비로서 알게 된 것은 터키가 이슬람 국가라는 것이었다. 정교 분리라고는 하지만 이슬람 복식을 한 여성들이 엄청 많았다. 이스탄불 교외로 가니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런 복식이었다. 터키에 있는 동안 이슬람 사원들을 많이 방문했고, 기도도 많이 드렸다. 터키 사람들은 우리네와 거의 똑같은 방식으로 절을 한다. 높은 돔 천정 아래에서 숙연히 앉아 있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아마 상당 부분은 나의 늙음을 반영하는 것이었으리라.

15. 터키에서 터키 커피와 포트, 그리고 터키 차 컵, 컵받침, 차숫가락을 사왔다. 터키식 커피는 커피 가루를 포트에 넣고 끓여서 만든다. 이탈리아식 에스프레소처럼 깔끔하고 쫀든쫀득한 맛이 나는 것이 아니라 약간은 탕약같은 맛이 난다. 나는 터키식 커피에 스스로를 길들이려 하고 있다. 터키식 차는 차이라고 부른다. 홍차잎을 중탕으로 끓여낸다. 터키의 모든 사람들이 하루에도 수 없이 이 차이를 마신다. 술은 잘 안마신다. (나는 터키의 국부라는 아타튀르크가 즐겨 마셨다는 라끄라는 술을 숙소에서 혼자 마셔보았다. 무척 비싼 40도 짜리 독한 술이다. 그런데 맛있다.) 터키에서 사온 작고 투명한 컵에 차이를 만들어 마시면서 나는 "난 투르크화되었어"라고 중얼거리고는 한다.

16. 터키를 떠나면서 세파에게 1, 2년 후 다시 보자고 했다. 그러나 한 5년 정도 후에나 다시 갈 수 있겠거니 생각하고 있다. 한국에 돌아가기 전에 꼭 다시 한번 터키에 가보고 싶다. 이스탄불에는 거지도 많고, 교통도 최악으로 혼잡하고 곳곳에 삐끼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터키를 떠나면서, 내가 다시 올 때까지 터키가 그 순수함을 잃지 않았으면 하고 바랬다. 그러다 문득, 예전, 아주 예전에 어느 서양 사람이 한국에 똑같은 말을 하던 것을 테레비에서 본 기억이 났다. 그 사람은 한국인의 정, 순수함을 사랑하였던 것이겠지. 내가 지금 터키 사람들의 정에 반해서, 그것이 영원히 변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처럼. 5년 후에 터키는 많이 세련되고 좀 더 깍쟁이같은 나라가 되어 있을지 모르겠다. 작은 상점들은 죄 없어지고 큰 쇼핑몰이 들어설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슬람이라는 종교가 좀 더 힘을 발휘하여 사회의 진화를 늦출 지도 모르겠다. 난 단지 이방인일 뿐이고, 이방인의 바램이라는 것은 단 한 줌의 무게도 가지지 않는다. 터키 사람들은 스스로의 운명을 선택할 것이고 나는 그들의 선택을 긍정하면서 터키 사람들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17. 터키에 있으면서 나는 유럽이 지구상의 한 지역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마 터키에 발을 들여놓아 본 사람이라면 내가 말하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알 것이다. 말로 하려면 한없이 길어질 것이기 때문에, 간단하게 이렇게만 말하자. 터키를 방문해 보세요! - 이 한 마디를 하고 싶어 포스팅~

(혹시 댓글이 있어도 대댓글을 달지는 않겠습니다. 침묵 중(?)인지라...) 

추) 어제 한국 친구들이 놀러왔다. 터키 차를 내어 놓고 터키 여행 이야기를 많이 했다. 나는 물론 터키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했다. 그런데 친구들 말에 따르면 터키는 조심해야 할 나라란다. 몇 년 전에 한국 대학생들이 여럿 실종되기도 했다고 하고. 나는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터키가 한국인에게 특히 친절한 나라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 중 일부가 범죄로 이어진다면,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타겟 아닌가! 내가 포스팅을 너무 무책임하게 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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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방송 비비씨의 아침 프로그램에서 세월호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었다. 배가 완전히 뒤집혔는데 사망자가 2명이라는소리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저녁에 네이버에 들어가 보니 이삼백 명이 실종 상태라고...

비비씨와 시엔엔에서 계속 첫 소식으로 한국의 세월호 참사 소식을 알려줬다. 염려가 가득한 낮은 목소리로 소식을 전하는 기자들과 앵커들의 태도가 무척 고맙게 느껴졌다. 희생자 대부분이 어린 학생들이라는 것, 그리고 선장이 승객들에게는 객실에서 대기하라고 해놓고 자기들만 탈출했다는 사실은 이곳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충격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이곳 뉴스들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태에 접근한다. 예를 들어 해난 사고의 전문가가 나와서 배가 침몰할 경우 선장이 최후까지 승객들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세월호 사고 당시 상황이 어떠했는지 아직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선장이 먼저 배를 떠난 것에 대한 비난을 유보한다는 식으로 말을 하곤 한다.

그러나 이곳 사람들은 세월호 사고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다. 예를 들어 한 친구는, "신고도 학부모가 먼저 했다면서?"라며 어이없어 하기도 한다. 

몇 칠 전엔 한국의 대통령이 세월호 선장등을 가리켜 살인자와 같다고 비판했다는 소식이 한동안 머리 기사였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놀랐었다. 행정부의 수장이 그런 사법적 판단을 언급해서는 안되기 때문이었다. 이곳 언론들도 한국의 대통령을 비꼬는데 전혀 주저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발언을 전하고 나서 바로 대통령이 비난의 화살을 선장에게 돌리고 있다고 코멘트하였다. 아마 이곳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지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였을 것이다. -승객들의 안전을 지켜야 할 선장도, 사태 수습의 최고 책임자도, 그 누구도 자기의 책임을 떠안으려 하지 않았다.

많은 뉴스를 통해 세월호 참사는 언제고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오래된 똥배고, 증축을 한 상태고, 화물 결박 장치가 비싸다고 제대로 구비되어 있지 않았고, 당시 운항을 하고 있던 기관사와 조타수가 초보급이고, 선장이 노령에 적은 돈을 받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선장을 욕하고 있고, 또 그것이 응당한 일이긴 하지만 다른 한 켠으로 보면 선장을 이해할 만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운항때마다 심하게 흔들리고 화물 결박 장치도 제대로 구비되지 않은 똥배에 상당히 적은 연봉을 받는 상태에서 무한 책임을 지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저런 상태에서는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느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무런 물질적 조건이 구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선의지만을, 의무만을 강요하는 사회처럼 나쁜 사회는 없을 것이다. 한 쪽에 일방적인 희생을 요구하면서 다른 한 쪽은 일방적 권리와 부를 누리는 상태에서라면 더더욱이 그럴 것이다. 세월호와 같은 똥배를 운항하도록 한 선사나 감독 기관등은 선장에게만 승객들의 생명에 대한 무한 책임을 지우고 자신들은 그 책임에서 쏙 빠져나와 돈을 긁어 모으고 있었을 것이다. 

두 가지 긍정적인 모습을 본다. 하나는 한국의 국민들이 한국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세월호를 작은 대한민국으로 인식한다. 위기 상태가 닥치면 자력구제 말고는 답이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는다. 그것이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것을 인정한다. -나는 성장에 있어 자신에 대한 객관적 인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하나는 이번 세월호 참사 때 학생들이 보여준 아름다운 모습이다. 결과적으로는 참사로 이어져 버렸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학생들이 위기 상황에서 침착하게 방송의 지시를 잘 따랐고, 일부 학생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국에 안좋은 일이 벌어질 때마다, 한국의 상황에 낙담할 때마다 나에게 희망을 주는 이들은 언제나 어린 세대였다. 이번에도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나는 요즘 스피노자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스피노자에 대해 잠깐 회의를 느껴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배를 먼저 떠난 선장은 스피노자주의자일지언정 칸트주의자일 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희생적인 학생들(그리고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서 스피노자주의 안에서 이타주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했었다. 이런 고민은 에티카 5P23에 대한 숙고로 이어졌고, 지금은 잘 해결된 것 같다고 느끼고 있다. 한국에서 벌어진 사태, 특히 한국의 어린 세대들의 의연한 모습에 자극되어 하나의 사고가 촉발되었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여기 이렇게 포스팅을 한다. 이제 다시 침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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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4-04-24 0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의 의료계도 세월호의 모순을 닮아가고 있습니다. 한쪽은 일방적인 권리와 부를 다른 한쪽은 조건이 구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한책임을. - 한국 사회 전체가 (아니면 세계 전체가)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롭지 못한 단면이겠죠.
 

(내용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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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철도노조의 파업이 일단 끝났단다. 여야가 국회에 철도소위를 설치하는 중재안을 제시한 것을 철도노조가 받아들여 파업을 풀었다는 것이다. 

노조 입장에서는 명분을 지키고 품위 있게 퇴장할 수 있게 되어 참 다행일 것이다. 그리고, 두 당은 모처럼 정당으로서의 일을 했으니 칭찬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정부 입장에서는 정치권의 개입이 못마땅한 일일 수 있다. 정부는 노조가 파업 동력을 잃고 백기투항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노조는 국회내 철도 소위를 통해 민영화 반대 여론을 계속 환기시킬 여지도 남겨 놓았다. 

이제 공은 박근혜에게 돌아갔다. 파업 참여 노동자들을 정말로 다 해고할까? 앞으로 산적한 민영화 작업을 염두에 둔다면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가 원칙이란 이름으로 그런 냉혹한 모습을 보이면 장기적으로 민심이 크게 이반할 수 밖에 없다. 박근혜가 너무 바보같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번 파업을 두고 졌다 이겼다 논쟁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국정원과 대한민국 국군이 천박한 댓글들을 통해 자유로운 의견의 소통을 방해하는 이유가 시민들에게 정치 피로감을 느끼게 하려는 것인 것과 마찬가지로 민주적인 파업, 시위, 항의는 박근혜 지지자들에게 피로감을 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웬만큼 합리적인 판단 능력을 가진 사람이면 불법대선 당선자를 옹호할 수 없다. 옹호가 안되는 것을 옹호하려면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고 쉽게 피곤해진다. 이런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어 입을 닥치게 하면 되는 것이다. 

2. 박근혜의 지지율을 알고 싶어 갤럽에 들어가 봤다. (한국갤럽. 12월 셋째주.  http://www.gallup.co.kr/gallupdb/reportContent.asp?seqNo=510&pagePos=1&selectYear=&search=&searchKeyword=)

                      긍정              부정
전체               48%              41%
----------------------------------------            
20대               29%              60%
30대               30%              59%
40대               40%              48%
50대               61%              29%
60대+             79%              12%

내 생각에 20대, 30대의 박근혜 지지 마지노선은 20%초일 것 같다. 그렇다면 2030의 지지율은 이제 거의 바닥까지 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0대는 마지노선이 40% 정도가 아닐까? 아직 더 내려올 여력이 있을 것 같다. 박근혜에 대한 60대 이상의 지지율 추이는 대한민국의 그 누구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

이 조사가 열흘 전 것이기는 하지만, 철도 파업이 한창일 때 박근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이유 중 공기업 구조 조정을 잘 해서는 1%였고, 박근혜를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유 중 민영화 논란때문이라는 답변은 14%였다. 새누리당이 철도 노조의 품위 있는 퇴장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일 것이다.

40대, 50대의 지지율이 빠질 여력이 많다고 보는 것은 1년 전보다 살림살이가 빡빡해졌다고 답하는 유권자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리서치뷰 조사, 국민TV뉴스 12월19일 보도. http://m.news.kukmin.tv/articleView.html?idxno=2889)  
         
                                                좋아졌다        나빠졌다
1년 대비 살림살이 개선 여부         15.4%         52.2%

살림살이 빡빡해지고, 세금 오르고, 공공요금 오르고, 민영화 논란, 국부 유출 논란 일어나고, 정부기관의 불법대선 문제 속속 드러나고 하면... 박근혜가 한복 입고 아무리 환하게 웃은들...?

(이렇게 안심하고 내 일로 돌아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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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나 잘해 2014-01-08 2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빙신

weekly 2014-01-09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제가 이 블로그에서 늘 반복하는 말이기는 하지만, 님이 저에 대해 혹은 다른 무엇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는지는 전적으로 님의 자유에 달린 문제입니다. 님의 양심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그러나 남의 블로그에 위와 같은 댓글을 달 때는 최소한 님이 어떤 생각에서 그런 말을 하는지 하는 근거, 그리고 님이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참조 정도는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예의고 기본적인 규칙입니다. 저로서는 님이 이런 기본적인 룰을 몰랐다는 점에서 무지하며, 그로 인해 무례했다고 생각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물론, 님이 저 정도 규칙은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수도 있겠죠. 만약 그렇다면 님으로 하여금 무례를 저지르도록 한 것은 님의 무지가 아니라 님의 비겁일 테지요. 할 말이 있으면 분명하게 하고, 그걸 분명하게 말할 자신이 없으면 침묵하면 될 텐데요.

대단히 죄송하게도 저는 님을 일종의 징후로 봅니다. 지난 대선 때 박근혜는 자신의 정견을 국민들 앞에서 투명하게 밝힐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토론회를 가능한 피했습니다. 대한민국 정부는 자신의 정책들을 국민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여 합리적으로 설득시킬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국군과 국정원을 동원해서 국민 여론이 자유롭게 형성되는 것을 봉쇄하려 했습니다. 이런 비겁이 한국 사회를 병들게 하는 병균인 것이지요.

님은 그 한 징후로 보입니다. 님은 콧물처럼 보입니다. 몸이 아프면, 감기에 들면 코에서 흘러내리는 그 바이러스 덩어리의 액체말입니다. 저로서는 님과 같은 분들을 보면 한국 사회가 정말 많이 아픈가 보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말을 길게 하고는 있지만 님과 토론을 벌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한국 사회가 건강을 회복하면 콧물도 멈추고 눈의 충혈도 낮고 기침도 멈추고 고열도 내릴 테니까요.

정진하세요. 저도 결코 지치는 일 없이 정진하렵니다.

그럼...

22 2014-01-18 13: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또라이빙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