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에서 쿠데타가 가능한가? 답은, 누구나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그것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쿠데타가 실제로 일어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를 무겁게 받아들여야만 한다.
사회 정치 경제 문화 등의 복합체로서의 한국 일반은 분명 쿠데타와 양립가능하지 않다. 그러나 쿠데타를 수용가능한 옵션으로 생각하는, 비례적이지 않은 특정 영역들이 존재한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 대표적으로 군부가 그렇고 민정당계 역사를 공유하는 정당들이 그렇다. (예컨대, 군 지휘관들 중 박정희, 전두환을 영웅화하고 있는 이들의 비율은 국민 평균을 훨씬 상회할 것이다.) 이들이 정치적 사법적으로 실존적 위기를 겪는 권력자와 결탁되었을 때 쿠데타는 쉬운 탈출구 역할을 해줄 수 있다.
내가 현재 거주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쿠데타가 가능할까? 절대 불가능할 것이라는 데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왜 영국에서는 쿠데타가 불가능하다고 하는 것일까? 한국과 영국을 가르는 차이점은 무엇일까? 나는 그것을, 이번 쿠데타 국면에서 윤석열이 쉬지 않고 입에 올리고있는 '자유민주주의' 라는 이데올로기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민주주의'와 같은 뜻인 것으로 생각하고, 윤석열이 말로는 민주주의라면서 행동으로는 독재자, 파쇼 짓을 하고 있네 라며 의아해한다. 그러나 한국에서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민주주의에 대한 초월적, 혹은 더 정확히 말해서 퇴행적 입장을 의미한다. 즉,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은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말과 같은 뜻이다. 한국은 공산 세력인 북한과 붙어있기 때문에 서방식 민주주의를 했다가는 공산 세력의 암약을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특히 헌법 1조에 대한 수정적, 혹은 더 정확히 말해 유보적 입장을 의미한다. 자유민주주의는 한국이라는 체제의 자기 수호를 제1가치로 여긴다. 간단히 말해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대한민국의 헌법과 양립가능하지 않다.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즉자적이지 못하다. 즉, 스스로에 대한 긍정적 정의를 갖지 못한다. 그것은 공산주의에 반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 얼마나 처량한 개념인가?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의 용법은 지극히 처량하다. '자유민주주의'를 언급하는 순간 '반국가세력'이 언급될 수 밖에 없고, 그러므로 '처단'이라는 말로 결말을 지을 수 밖에 없다. 자유민주주의자는 이 단순한 논리 회로 이상을 갖고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단순성을 마냥 비웃고 있을 수는 없다. 예컨대, 영국에는 없고 한국에는 있는 것이 바로 이 '자유민주주의' 라는 개념이라고 말하는 것은 너무 추상적일 수 있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단순한 개념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이고, 이데올로기는 실재하는 어떤 힘을 전제한다. 즉, 한국에는 북한이 붙어 있다. 북한은 부정할 수 없는 실재이다. 그리고 북한은 한국에 대해 실제적이고 임박한 위기를 초래하는 반국가세력일 수 있다. 그러므로 자유민주주의라는 개념은 간단하게 극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현대 한국의 객관적 구성 요소 중 하나이다. 즉, 그것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운명이다. 박정희, 전두환이라는 망령? 국민의 힘이라는 정당? 아, 그것은 한국의 운명이다.
그렇지만 이번 쿠데타의 전개 국면에서 우리는 분명한 희망을 본다. 이번 쿠데타는 4, 50년 전의 것과 양상이 분명 달랐다. 그 다름의 현상에 온갖 것들이 기여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을 묶는 타래 중의 하나는 분명 민주주의에 대한 각성의 신장일 것이다. (스피노자가 말하듯이 하나의 이데올로기는 결코 스스로 소멸하지 않는다. 이데올로기의 소멸은 언제나 다른 이데올로기와의 투쟁을 전제하며 그 투쟁에서 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 탄핵안 투푯날, 나는 여의도에 모여든 시민들이 부러웠다. 그날은 승리가 예정되어 있는 날이었다. 누구 말마따나 승리의 가장 큰 보상은 승리 그 자체일 것이다. 모든 대의라는 대의는 다 가지고, 그 추운 겨울날 자신을 희생해가며 광장에 모여든 시민들에게 그 날 민주주의의 승리는 생애 내에 결코 잊을 수 없는 경험일 것이다. 그날 여의도는 민주주의의 거대한 학교였다. 어쩌면 추우면 추울수록, 고생스러우면 고생스러울수록 그 승리는 더 달콤하게 여겨졌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