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


지난 금요일 아내와 런던 한국 대사관에 갔다. 나는 새 여권을 찾으러, 아내는 투표를 하러. (아쉽지만 여권 문제로 나는 이번에 투표를 할 수 없다.)  


대사관 앞에는 주로 20대로 보이는 10여 명의 젊은 남녀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순간 긴장했다. 2030 세대가 윤 지지가 많다고 해서. 옛날에, 투표하러 갈 때마다 길게 늘어선 노인들의 줄에 좌절감을 맛보던 기억도 났다. --- 그러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런 인상들은 대부분 현실과 거리가 있었다. 예를 들면,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선거 때 대사관 투표소는 젊은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래서 나는 영국 재외국민 투표는 문재인이 압도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는 이와 달랐다. 내 기억에 5.5:4.5로 박근혜가 더 많은 표를 가져갔다. 


한동안 한국 뉴스를 보지 않았었다. 직접적인 계기는 코로나 2차(혹은 3차) 파동이 시작될 즈음 JTBC 뉴스가 보도한 "잃어버린 10개월" 이라는 뉴스였다. --- 한국의 언론은 정말 심각하다. 이런 걸로 쓸데없는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도 않았고 스트레스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작년 가을께, 부동산 양도세 고지서가 한국에서 날아왔다. 자연스레 한국 뉴스를 토막 토막 접하게 되었고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고, 대장동 문제로 곤란을 겪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나는 우선, 이낙연이 아니라 이재명이 후보가 되었다는 것에 놀랐다. 많은 추문이 따라다니는 사람인데 본선에서 어떻게 하려고 그러지? 전에 한국에 갔을 때 어떤 분이 이재명에 대해, 그러니까 요즘 말로 내게 "영업"을 하려 한 적이 있었다. 나는 딱 한 마디로 그 분의 말문을 닫게 했다. "한국도 이제 지지고 볶고, 역경을 이겨내고 올라온, 그런 스토리를 가진 사람보다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안정적인 경력을 쌓은, 그리하여 좀 더 온건하고 둥글둥글한 사람이 대통령이 될 때가 되지 않았을까요?" (정치는 한국의 발목을 잡는 공적 일호다. 그래서 나는 한국의 정치가 좀 더 부드러워졌으면 한다. 정치가 지나치게 정략적이지 않았다면 앞서 말한 JTBC의 뉴스같은 것도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차라리 안철수 같은 중도적 인물에 관심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물론, 정치계 외부에서 사람을 구하는 것은 가장 큰 확률로 실패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러나 이번에 대장동 문제에 대해 알아보고 이재명에 대해서도 좀 더 알아보고나니 내 생각이 완전히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결론만 얘기하면 이재명은 지금 시기 한국이 필요로 하는 바로 그러한 대통령이라는 확신이 든 것이다.


지금 여론 조사 결과가 이재명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지만 나는 단 한번도 이재명의 당선을 의심해보지 않았다. 야당 후보의 역량이 너무도 떨어지기 때문이다. 현대의 한국에 그런 후보는 가당치도 않다. 작년 가을께 어느 유튭에서 들은 말이 생각난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대통령다워 보여야 한다고 하더라. 지난 삼일절에 이재명이 명동 유세하는 토막을 보았는데 거기서 이재명은 대통령처럼 보였다. 그때부터 이재명은 계속 대통령처럼 보인다. 다행히 어젠가 안철수가 사퇴를 했기 때문에 이재명은 과반 득표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이 지금 어마어마한 위기를 맞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지만 한국의 시민들이 나서서 이 위기기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잘 막아낼 것이다. 그것이 곧 한국의 실력이다. 다만, 내가 그에 동참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더 솔직히 말하면 미안하기까지 하다. 암튼 그래서 횡설수설이기는 하지만 글을 한 편 올리기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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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여름부터 해왔던 작업. 정글을 밀어내고 땅을 고르고 등등. 한 두어 달 전 쯤에 드디어 잔디를 깔았다. 잔디를 하루 안에 다 깔았어야 했는데 양도 너무 많고 날도 너무 더워서 이틀에 걸쳐 깔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잔디 상태가 그리 좋지는 않았는데 그 이후에 비가 좀 와 줘서 그나마 상태가 나아졌다. 펜스 앞 공간에는 스튜디오를 짓고 데크를 놓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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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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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저녁 논문을 한 편 찾아 읽기 시작했다. 내가 관심있어 하는 주제에 딱 맞는 제목의 논문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이름이 인도 계통이었다. 읽지 말까? 시간 낭비일까? 여기 일종의 레이시즘이 있다. 현상학 등의 철학 논문 저자 이름이 서구 계통이 아니면 나는 그 논문을 접어두게 된다. 나 역시 비서구권 사람이면서도! 그래도 논문 제목이 내 관심사에 딱 들어맞아서 읽기로 마음을 먹었다. 몇 줄 읽어가다 고대 힌두 사상가에 대한 언급과 마주쳤다. 그러면 그렇지 하고 논문을 접어두려다, 잘 시간도 얼마 안남고 해서 잘 때까지만 읽기로 했다.


그러다 잘 시간을 넘겨가며 계속, 끝까지 읽었다. 침실에 가서 취침 시간을 넘긴 것을 아내에게 사과하고 자리에 누웠다. "근데 말이야 정말 잘 쓴 논문이더라고. 아마 노대가인 것 같아. 대가의 글은 딱보면 알지. 가장 근원적인 개념을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아이처럼, 정말 아이처럼 투명하고 담백하게 파고 들어가니까. 그런데, 캘커타 대학에서 나온 논문인 것 같던데. 잠깐, 미안, 저자 이름 좀 다시 확인하고 올께." 나는 침실과 서재를 들락날락 했다. 저자는 모한티. 검색해보니 1930년대 생으로 나온다. 그럼 지금 나이로 90세쯤 되었네. 저 논문은 몇 살에 쓴 걸까? 나는 연신 아내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 스마트폰으로 검색을 하고 다시 서재로 가고 하는 짓을 반복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그 논문은 1960년대에 나온 논문이었다. 그러니 모한티가 30대에 쓴 논문... 몰랐을 때는 몰랐지만 알고나니 모한티라는 이름은 후설 관련 논문집에 빠지는 일이 없었다. 내가 판단하기로 모한티는 가장 권위있는 후설 연구자이되, 다른 여타의 명망있는 연구자들과 다른 범주의 연구자이다. 정말 놀랍게도, 마치 아테네 여신이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채 태어난 것처럼, 혹은 노자가 백발인 채 태어난 것처럼, 모한티는 이미 30대에 완성이 되어 있었다. 나는 이 사실이 아직도 잘 믿기지 않는다. 그러나 뭐가 되었든 확실한 것은 나는 모한티도 너무 늦게 발견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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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2-03 1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한티! 알려줘서 감사합니다!! 반드시 구해서 읽어보겠어요!!

weekly 2023-02-03 18:08   좋아요 0 | URL
:) 저는 여전히 모한티가 후설 연구의 최고 권위자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느끼기에, 특히 대륙 철학계에 속하는 철학자 주위에는 묘한 안개가 피어있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후설이 주제라면, 그의 개념들을 분석하는 대신, 그의 논리를 그대로 따서 옮겨 붙이는 경우가 허다한 것 같습니다. 이른바 대가라고 불리는 연구자들도 그런 식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점에서, 모한티는 기본적으로 정직합니다. 후설이라는 이름의 안개 속으로 숨으려 하지 않습니다. 다만, 가끔은, 이렇게 명석한 분이 자기 류의 체계를 건립하려는 노력은 하시지 않네?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이렇게 끝나고 말면 안되잖아? 하는 생각. 이 분의 책들을 다 읽어본 것은 아니라 조심스럽긴 합니다만...

weekly 2023-02-05 23:07   좋아요 0 | URL
아, 그런데 후설을 전문적으로 연구할 생각이 아니시라면 구태여 모한티를 읽으실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접근성도 좋고 내용도 좋은 책으로, 혹 칸트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모한티의 순수이성비판 강의록을 읽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지향성 개념을 축으로 연구하는 영국 철학자 한 분이 있다. 요즘 그 분의 책을 주로 읽고 있다. 굉장히 통찰력 있는 학자라는 느낌은 그리 들지 않지만, 어쨌든 성실하고 정직한 분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이렇게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연구자를 발견한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후설 철학에 대해서라면 모한티라는 분이 있다. 나는 그 분의 논문이나 책에 대해서라면 그저 신뢰한다. 정말 이럴까? 하면서 다른 자료를 찾아볼 필요가 없다.  


저 영국 철학자의 글들은, 모한티의 글들처럼 전폭적인 신뢰 속에서 읽는 것이 아니라, 그 글의 입장에 대해 나의 관점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 읽는다. 그러니까 저 분과 나의 관점은 비슷하면서도 확연하게 달라야 한다. 그런 작업을 계속 하다가, 얼마전 문득 돌아보니 이제 나만의 고유한 이론적 입장이라는 것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당신은 이러 저러하게 생각하지만 나는 그에 대해 이러 저러하게 생각한다는 식으로 부정적으로만, 그러므로 단편적으로만 기술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단일한 서사 구조  형태의 이론적 입장이 형성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나의 이론적 관점의 대부분은 사르트르에게서 빌려온 것이라는 점이었다. 나는 가끔 내가 세상에서 사르트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의 하나가 아닐까 망상하기도 한다. 여튼 나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사르트르를 초월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초월이란 언제나 한 가지 방향만을 갖는다는 것이 문제다. 한 철학자에서 다른 철학자로, 혹은 한 분야에서 다른 분야로 옮겨가는 것은, 초월의 형태를 일부 그 안에 포함할 수는 있지만, 내가 생각하는 관점에서는 진정한 초월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예컨대 사르트르에서 하이데거로 옮겨간다고 초월이 되지는 않는다. 초월은 그 문제 영역에 대해 끝장을 보는 것을 전제한다. 그리하여 초월은 헤게식으로 말하면 지양의 형태를 취해야만 한다. 지금 내가 나의 이론적 입장에 대해 느끼는 바가 그렇다. 사르트르의 존재론의 연장이 아니면서, 즉 그것과 다른 관점을 취하면서, 사르트르의 존재론을 포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나는 느낀다. --- 3월1일날 이에 관련해서 메모를 써두었는데, 아직 그 환상이 깨지지 않아, 그것이 혹 환상이 아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서 적어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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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3-02-03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르트르에 관해서 찾아 읽을 때 개인적으론 우리나라에서 사르트르 권위자는 아마도 신오현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사르트르 논문을 죄다 찾아 읽은 건 아니지만 관련 책들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었는데...위클리 님두 사르트르 연구자셨군요!!

weekly 2023-02-03 17:56   좋아요 0 | URL
아마 유일한 권위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신오현의 <자유와 비극>은 아쉬운 점은 많아도 사르트르의 철학에 대해 유일하게 정공법으로 접근한 연구서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이 포스트를 다시 읽으며, 음... 그때 내가 도대체 무슨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것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인생은 슬픈 것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