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진영에서라면 이런 프로그램을 방영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서방 언론은 유대인을 가해자로 묘사할 수 없다. 설령 그것이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더라도 말이다. 유대인들에 의해 목숨을 잃은 이란 사람들의 절규와 분노를 그대로 방영할 수도 없다. 그것이 반-유대주의의 '핑계'가 될 수 있고, 그런 사태가 예견되는 데도 그런 장면들을 방영한다면 그 역시 반-유대주의로 몰리게 된다. 예를 들면 BBC는 생방송 뉴스에서 가자 지구 현장 특파원이 이스라엘군의 백린탄 사용을 언급하는 순간 방송을 끊어버렸다. 유대인, 이스라엘, 시온주의 등에 대한 언급은 그냥 피하는 것이 상책이다. 그것은 서방 사회에서 하나의 굳건한 터부가 되었다. 


유대인들은 어떤 특정한 행동이 토라에 맞는지 안맞는지를 결정할 허다한 논리들을 개발해내었고 그런 판례들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있다. 조선 시대에 간혹 문제가 되었던, 왕이 상복을 몇 년 입어야 하는가 등의 문제는 그저 애교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런 쓸데없이 정교한 이론화와 문제화가 유대인이 존재하는 곳에는 항상 따라 다닌다. 대표적으로,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는 것이 반-유대주의에 속하는가?


현대의 사상가들은 대상화, 소외, 정체성 등에 관한 어머어마하게 복잡한 이론들을 개발해내었다. 아마 하이데거같은 사람이라면 학문의 유대화라 불렀음직한 현상이다. 이런 복잡한 이론들을 전적으로 쓸모없는 것이라고 매도할 수는 없다. 분명 그렇다. 그것은 어머어마하게 복잡한 현대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체성과 관련된 복잡한 이론들이 비싼 비용을 들여 개발되고 있는 동안, 한쪽에서는 너무도 명백한 소외의 현상들이 외면되고 있다.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긴급 음식 구조를 제공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이스라엘의 젊은 여성은 이렇게 대답한다. "아니요. 그들은 그런 가치가 없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들은 사람으로 헤아릴 필요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즉, sub-human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반박하는데 무슨 정교한 철학이 필요한가? 조심하라. 서구에서는 그러한 반박이 가능한지를 조사하기 위한 정교한 철학이 필요하다. 그것이 유대인과 관련되는 한에서 말이다. 이쯤에서 서구 철학에 조종을 쳐주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서구 문명에 있어 이 유대인 문제는 참으로 답이 없다. 온갖 것들이 긴 역사를 두고 온갖 것들과 엮여 있어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알 수 없다. 게다가 그것은 커다란 파급력을 갖는다. 예컨대, 이번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의 경우가 그렇다. 그것은 유가를 올리고 주가를 떨어뜨린다. 제국주의 시절 영국의 이권 문제, 미국의 패권 문제 등이 하부 구조를 형성하고 있어서 인류는 지질학적 연대를 살듯 이 시대를 살 수 밖에 없다. 


이 유대인 문제는 서구 문명에 있어 커다란 위기를 구성한다. 나는 몇 년 전 로저 워터스의 공연을 보러 미국 뉴욕에 간 적이 있었다. 택시를 탔더니 운전사가, 우리가 관광객인 것을 알아보고는, "여기는 자유의 나라요. 누구도 나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아요. 일하고 싶으면 차를 몰고 나오고 일하고 싶지 않으면 일을 하지 않고 그래요..." 좋게 맞장구를 해주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렇게 과도하게 이념적인 데에는 필시 뭔가가 있기 마련이다. (자유라? 일하고 싶으면 차를 몰고 나온다고? 집세를 내야하고 생활비를 벌어야 하니까 차를 몰고 나오는 것은 아니고?) 로저 워터스의 공연장 앞에서는 열 명쯤 되어 보이는 유대인들이 로저 워터스가 반-유대주의자라며 피켓을 들고 데모를 하고 있었다. 자유라 했나? 자 이제 서구 문명에 있어 자유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구에서 유대 이미지에 부정적 영향을 끼친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학교에서 퇴학당할 수도, 입사를 거부당할 수도, 회사에서 해고될 수도, 출판 계약이 취소될 수도, 교직 임용이 영원히 좌절될 수도, 영화 출연 계약이 취소될 수도, 공연장 계약이 취소될 수도, 입주 계역이 취소될 수도 있고, 하버드 대학같은 기관은 정부 지원금을 토해내야 할 수도 있다. 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거나 벌어졌던 일들이다. 그리고 유대주의 기관에서는 반유대주의자로 낙인 찍힌 사람들을 끝까지 추적하여 인생을 망가뜨려버리겠다고 지속적으로 공언하고 있다. 자 다시 서구 사회에서의 자유와 관용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서구 문명은 스스로 극복할 수 없는 터부를 만들어버리고 말았다. 나치의 홀로코스트라 했나? 그렇다면 가자는 또 무엇인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에 눈감으면서 자신들을 어떻게 문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해서 서구 문명은 끝났다. 도덕적 역량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회복불능이다. 이런 문명이 어떻게 지구의 지도 문명이 될 수 있는가? 트럼프같은 사람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다. 트럼프를 배출할 만한 문명에서 트럼프를 배출한 것 뿐이다. 그런 문명이 다음 세대를 책임지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다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서구 문명의 단일 패권은 저물고 있다고 진단하고 있다. 그 다음에 무엇이 올지 알 수는 없지만 지금의 미국 패권보다 나쁠 것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 다음의 다중심 세계에 있어 한국도 분명 기여분이 클 것이기 때문에 한국도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요컨대 한국이 제국주의라는 시궁창 경력 없이 지도국 중 하나가 된다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다음의 다중심 세계가 지금보다 확실히 나은 세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 아내가 BBC로 페르시아 문명에 대한 다큐먼터리를 보길래 BBC 따위는 보지 말라고 야단을 했다. 나는 이스라엘산 무화과에 대해서만 소심한 불매 운동을 했었는데 이번 사태로 품목이 좀 늘었다. 첫째, 스타벅스, 둘째, 미국산 히어로물(예컨대 이제 더 이상 스파이더맨은 안보는 걸로...)... 우리의 기대는 이렇다. 지구상의 패권이 바뀌고, 더 이상 전쟁이 정책 수단 중 하나가 아니게 될 때, 앞으로 5년 후, 10년 후, 그때 꼭 이란에 가보자는 것이다. 철학도로서 가슴 아픈 것은 내가 읽는 책에 나오는 지명들이 죄다 미국의 폭격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이스파한. 바라건대 참으로! 인류가 승리하기를...  


(누군가 하이데거에게 물었다. 현대의 문제에 대한 해결은 어디서 올까? 많은 사람들이 그 해결이 동양에서 온다고 말한다. 당신도 그에 동의하는가? 하이데거가 말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가 처음 시작된 곳에서 해결도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이 나는 하이데거에 동의하지 않는다. 서구 문명은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산출했다. 그리고 문명 자체가 이미 매너리즘의 문명이 되었다. 해결이 어디서 오든 서구에서는 아닐 것이다. 우리도 그것을 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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