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한국에서 사고 얻고 해서 가져온 다기류. 찻잔에 담긴 것은 전남 제석사 스님이 주신 발효차. 아주 순하고 맛있다.)

 

이곳 뉴스들에도 한국의 박근혜 스캔들이 계속 나온다. 오늘 아침엔 박근혜가 사과하면서 자신은 컬트의 일원이 아니라고 부인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대통령의 입에서, 컬트니 컬트 세레머니니 하는 말들이 나오는 것 자체가 무척 기묘한 상황이라는 것을 서울 특파원이 계속 강조하더라. 티브이 자료 화면 속의 최순실에게서 한 나라의 국정을 좌지우지할 만한 카리스마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외부의 시선에서 보았을 때는 그것이 이번 사태를 더욱 기묘하게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번 사태를 한국 현대사의 한 에피소드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아주 젊은 나라로 온갖 역사적 경험들이 압축되어 혼재해 있다. 그러다 보니 무려 2016년에 박근혜 사태와 같은 시대착오적인 일들도 튀어나온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 현대사의 에피소드 이상의 의미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2016년의 한국 일반이 그런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이런 사태가 어떻게 일어날 수 있었는가를 반성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물론 사리분별도 못하는 사람이 대통령을 한다고 나선 박근혜의 책임이다. 그리고 정부, 집권당, 언론 등등의 책임인 것도 맞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 책임은 국민들에게 있다고 말해야 한다. 예를 들어 누가 이 사태를 들어 권력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못한 언론을 비판할 수 있을까? 박근혜에 밉보이면 직장을 잃거나 감옥에 가거나 회사가 망하거나 공천에서 떨어지거나 패가망신하거나 하는데 누가 감히 박근혜에 대적할 수 있었을까? 그럼 그런 박근혜의 권능의 근원은 어디였을까? 물론 국민들이다. 박근혜에 대한 콘크리트 지지의 단단함 정도가 이 스캔들의 어이없음의 수준과 일치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초부터 박근혜가 어떤 인물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겪고서야 뒤통수를 맞았다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문제라면 정말로 문제일 것이다. 다행히도 이런 사람들의 목소리는 이제 낮아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한나라당은 참 오래 버텼다. 한나라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려 할 때, 아니 영남 지역당으로 쪼그라들려 할 때마다 나타나 한나라당을 구원해 준 인물이 박근혜였다. 이제 특정 지역과 세대에 역행적으로 자기동일감을 제공해주는 인물은 사라졌다. 박근혜가 이런 식으로 퇴장하지 않았어도 어짜피 오늘날의 한국에 박근혜식의 인물은 오래 맞춰갈 수 없었다고 본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사태는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 민주주의에 크나큰 기회라는 것도 사실일 것이다. 지름길이 될지, 혹은 또 한번 우회길을 타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권, 언론 등등이 아니라 집합적으로 봐서 바로 우리에 달린 문제라는 것은 분명하다. 사실 그것은 언제나 분명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4년여만에 아버지 생신에 맞추어 한국에 다녀왔다. 아마 그 4년 동안 한국도 변했겠지만 나도 많이 변했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것들을 발견한 것 같았다. 아내의 고향 마을에 있는 제석사를 찾았다. 스님이 방문객들에게 차를 끓여주며 한담을 나누는 절이었다. 스님의 이야기가 인상 깊은 것이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지만 그 분위기만은 참 좋았다. 서울에 올라와서 인사동 골목의 한 찻집을 찾았다. 좁은 곳이었다. 우리의 말소리는 낮춰지고 조곤해졌다. 그 분위기가 너무도 좋아서 꼭 영국까지 가져가고 싶었다. 그래서 인사동에서 다기 몇 가지를 샀다. 인사동 거리에는 여학생들이 한복을 입고 돌아다니며 셀카를 찍고 있었다. 너무나 예뻤다. 그래서 아내도 한복을 샀다. 한복의 색상과, 거기에 수놓아진 패턴은, 화려하지만 단아함을 놓지 않고 있었다. 거기에서 어떤 고유한 문화를 발견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나는 그런 문화를 새로 발견한 것 같았다. 말하자면 이렇다. 예전에는 한국의 문화를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 하며, 다소는 방어적으로 치켜세우곤 했었다. 대학가에서 풍물 등이 유행한 것에도, 서구 문화에 대항하여 우리 고유의 것도 있다는, 말하자면 운동적인, 혹은 의지적인 요소들이 많이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지방에서는, 예컨대 전라도 지방에서는 사람들이 나면서 국악 등에 익숙해지고 그렇게 그것을 즐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지켜내지 못하면 그것들은 결국 소멸하고 말 것이라는 인식이 상당히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피상적인 느낌에 이런 우려는 이제 별 근거가 없는 것으로 귀결된 것 같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방어적 의식없이 이런 문화들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성북구에서는 한옥 짓는 강의를 한다고 포스터를 붙여 놨다. 한옥, 국악, 한복, 차... 이런 것들은 아마도 웰빙의 문화로, 다시 말하면 정신적 고양을 추구하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양상의 전개가 가능한 문화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행운일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여러 사람들에게 해보았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상당히 고양된 사회인 것 같다. 한국은 정말 다양하고 깊이 있는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지금 정치가 무척 낙후되어 있지만, 정치와 문화와의 간격이 이처럼 한정없이 멀어진 채 있을 수는 없을 것이다. 곧 정치적 수준도 상당히 고양될 수 있지 않을까? 예닐곱 명의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모두가 동의한 것은 한국의 문화적 수준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이었고, 단 한 명도 동의하지 않은 것은 정치적 수준도 곧 높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나의 낙관론이었다. 내 동생의 말에 의하면 한국은 이미 시기를 놓쳤다는 것... 글쎄 좀 더 지켜보아야 겠다.

서울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면 흔하게 발견하게 되는 것이 중장년들의 천편일률적인 등산복 패션과 중고 여학생들의 가부끼 화장이었다. 후자는 그렇다치고 전자들을 바라보면서 드는 생각은 저 세대는 아직 자신의 늙음을 관리할 자신감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다. 50대 후반의 대기업 임원 한 분과 저녁을 같이 했었다. 그 분의 화두는 은퇴 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었다. 그 분은 재산도 이미 상당하다. 그러나 은퇴 이후를 겁내고 있었다. 그 분의 결론은 어떻든 돈을 버는 일을 계속해야 자신에 대한 자존감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사회적 현상으로서 은퇴 이후를 고민하는 첫 세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동생은 사십대 초반의 남자다. 은퇴 이후에 자영업을 한다든지 하는 계획은 전혀 없다. 지출을 줄이면서 여가를 충분히 활용할 생각을 하고 있다. 단 두 명과 대화하고서 은퇴에 대한 세대 차이를 논하는 것은 정말로 망발일 것이다. 어쨌든 나는 거기서 한국 사회의 빠른 변화 양상을 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에 있는 동안 부모님 댁에서 먹고 잤다. 부모님이 사시는 아파트에서 지하철 역까지 걸어가면, 특히 저녁에 집을 나서면 즐비한 다양한 종류의 술집에서 온갖 종류의 음식 냄새와 사람들의 구수한 목소리가 전해져 온다. 나는 유흥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 유혹은 나같은 사람에게도 정말 컸다. 나는 짧은 한국 체류 기간 동안 중앙동 곱창 동네를 두 번이나 갔다. 나는 이제야 영국이 심심한 동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다. 서울의 거리에는 온갖 종류의 술집, 음식점, 커피 가게들이 즐비하다. 소비자로서는 천국이라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물론 그 이면은 어마어마한 경쟁일 것이다. 어떤 작은 커피점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셨다. 정말 맛이었다. 두 번을 찾아갔다. 내가 여태까지 먹어본 에스프레소 중에서 최고라고 진심으로 말해주었다. 커피점 주인은 젊은 청년이었다. 여자 친구와 함께 가게를 냈다고 했다. 그 거리에는 이 커피점 말고도 작은 커피점들이 많았다. 다섯 중 서넛은 몇 년 안에 망하겠지 싶었다. 나는 다만 내가 다음에 한국에 올 때 이 커피점은 망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랄 뿐이었다. 물론 그 집 에스프레소가 맛이어서만은 아니다...

어젯밤에 영국으로 돌아왔다. 택시를 타고 주차장을 나가는데, 앞에 차 한 대가 정차해 있었다. 차주인이 뒤늦게 주차비를 끊느라 차를 그렇게 방치해 놓은 것이었다. 내가 탄 택시 주인이 크락숀을 한 번 울렸다. 차주인이 나타나서는 이렇게 공간이 많은데 안지나가고 뭐하느냐고 화를 냈다. 아내와 나는 웃었다. 영국에서 흔하게 보게 되는 장면은 아닌 것이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다고 한다면 그 말도 맞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이번 주 내내 해를 볼 날은 없다. 나는 처음으로 영국의 날씨에 갑갑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공연 시작전 세팅. 공연 중에는 감히 사진을 찍지 못하겠더라...)

 

몇 칠 전 한 친구가 K-Music Festival 2016이 열린다고 문자로 알려주었다. 나는 바로 웹 검색을 하였고 공연 리스트에 잠비나이도 있다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예약을 해버렸다. -입장료가 쌌다. (아내도 잠비나이 공연을 너무 보고 싶어했고, 처음에 내게 문자를 준 친구는 제삼자에 불편함을 느끼는 성격이라 결국 함께 하지 못했...) 런던 해크니라는 동네의 오슬로라는 바 안에 있는 아담한 공연장. 사람들로 꽉꽉 들어 찼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정말 열광적인 분위기 속에서 잠비나이는 헤비메탈 밴드와 경쟁하듯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었다. 끝 곡이 끝나자마자 터져나온 우뢰와 같은 함성이 내 느낌에는 이 공연의 하일라이트였다. 실망스러운 부분이 없지는 않았지만 실험적이고 프로젝트적인 밴드가 7년 이상 생존하며 꾸준히 공연을 하고 앨범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리라. 최근에 나왔다는 Hermitage라는 앨범을 샀다. 내적, 자기 파열의 음악과, 밴드의 리더인 이일우의 땅꼬마같은 얼굴이 겹친다. 이들은 왜 이런 음악을 하는 것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쟝-뤽 고다르의 66년도 영화. 고다르는 당대에 대한 영화를 만든 것이겠지만, 아마 그렇기 때문에 이 영화는 이제 다큐멘타리로 보이는 것 같다. 주제는 마르크스주의와 코카 콜라 사이의 모호한 경계선.


이 영화는 한국 사람에게도 다분히 회고적이다. 66년이라는 연도에서 사람들은 일단 유럽의 전후 세대, 또는 후기자본주의 시대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 뭐가 있을까? 바로 마르크스주의의 퇴조. 유일한 진보 담론의 경직화 이후 끓어넘치는 진보"적" 담론들... 한국에서도 비슷한 역사가 있었다. 현실 사회주의의 패망 후 마르크스-레닌주의 등의 금욕적 사상들은 더 이상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았다. 그람시, 알튀세, 푸코 등등의 사상적 유행의 흐름이 이어져서 사람들은 난데없이, 아무 맥락도 없이 이들 사상가들의 저작을 읽어야만 했다. 대학 교내에 자동차를 타고 들어오는 학생들이 늘었다. 나는 학생 운동 그룹의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국제사회주의자 운동 계열의 여학생 두 명이 기억이 난다. 한 명은 지하 휴게실에 가다가 맞닥뜨렸다. 공들여 화장을 해서 알아보는데 한참이 걸렸다. 다른 한 명은 교도소에서 면회를 가서 봤다. 아마 후기구조주의나 포스트모더니즘을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적 논리로 보는 것은 일면적일 것이다. 이 사상들의 주적은 무엇보다도 근대성의 담론들, 그러니까 부르주아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 사상들은 어느 공간에 놓일 수 있을까? 그것이 항상 딜레마다. 마르크스주의와 코카 콜라 사이의 모호한 공간. 영화는, 예언적으로, 전자를 대표하는 이상주의자 젊은이가 스스로를 파멸시키는 것으로 끝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https://vimeo.com/ondemand/loveinthepost

 

올해는 연극을 많이 봤던 것 같다. 마 레이니즈 블랙 보톰부터 흑백 문제를 다룬 연극을 연달아 3편 보았었고, 최근엔 아일랜드의 이스터 봉기를 다룬 연극을 보았다. 그러면서 쟝르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간단하게 말하면 연극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장치로서의 가능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연극에는 희극보다는 비극이 천성적으로 잘 어울린다는 것. 그러면서 뮤지컬에 대한 나의 고정 관념도 풀렸다. 나는 뮤지컬을 최악의 쟝르라고 생각했었다. 뮤지컬은 전달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단순화되고 과장되고 감상적이 되고, 그러므로 피상적이 되어버린다. 한국에서 온 친구들과 뮤지컬 "위키드"를 보면서 나는 이러한 심증을 최종적으로 확인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때 나는 분명 뮤지컬에 연극적 쟝르의 특성을 강요하고 있었을 것이다. 지금이라면 "위키드"를 좀 더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영화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테레비젼으로 최신판 "혹성탈출"을 해주기에 봤는데, 물론 엉망이었다. 원작 영화의 백미는 물론 해변가에서 자유의 여신상 잔해를 발견하는 장면이다. 그런데 그 장면은 사실 반전이라기보다는 귀결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주인공 인류 남성이 얼마나 폭력적인가를 집요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신판 영화에서는 주인공에 대한 성격 묘사가 싹 사라졌다. 그러므로 영화는 여느 재난 영화에 세팅만 바꾼 듯한 영화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최신판은 원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일까? 아니면 단지 원판의 브랜드 위에서 대중성을 극대화하려 한 것일까? 평심하게 말해서 후자일 것이다. 원판은 물론 고전이지만, 원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최신판이 고전으로의 가치를 인정받기는 힘들 것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현대 문명의 타락이라는, 예컨대 하이데거 같은 사람이 줄기차게 주장하는 테제에 동의하게 될 수 있다. 이 유혹은 정말 크다. 그러나 여기에 빠져들고 만다면, 그것은 마치 뮤지컬에 연극적 쟝르의 성격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다른 데로 가야 한다. 다시 말하면 그러한 한탄은 게으른 자의 자기 변명일 수 있다. 내게 이 점을 깨우쳐 준 사람은 유투의 보노다.


Don't believe in the sixties
The golden age of pop
You glorify the past
When the future dries up

Heard a singer on the radio
Late last night
Says he's gonna kick the darkness
Till it bleeds daylight
I, I believe in love
Love, love, love, love, love, love


(U2, GOD PART II 중에서)


그래서 나는 영화들을, 수동적으로 전해지는 데로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찾아서 보기로 했다. "Love In The Post"는 그렇게 보게 된 영화다. 철학과 사랑에 대한 영화. 영화적으로 잘 만들었거나, 철학과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그렇다고 깊이가 있는 영화는 아니다. 그럼 뭐냐고 물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글쎄... 이런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 소규모 개인 투자자들의 지원을 받아서 현대에 벌어지고 있는 현상들을 영화적으로 포착하려는 시도들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 말하자면 사고의 점들이 분포되는 양상들 속에 스스로를 위치시킨다는 것?  아마 그럴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