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헤밍웨이는 파리에서 습작 기간을 가졌다. 카페에 앉아 뾰족하게 깍은 연필로 노트를 채우다가, 잘 되는 날이나 그렇지 못한 날이나, 시간이 되면 "이제 그만"하며 노트를 덮고 일을 끝낼 줄 알았다. 내일 아침 같은 시간에 찾아 올 뮤즈를 믿었던 것이다.

뮤즈가 찾아오면 다시 뮤즈가 찾아오리라는 것을 안다. 뮤즈를 믿으면 뮤즈가 찾아온다.

자기가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것을 잃어버릴까 두려워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탕진한다. 마치 우물의 물을 죄다 퍼내는 것처럼. 이튿날 아침 그 사람은 좌절할 것이다. 어찌 그렇지 않을 수 있을까? 밤새 좌절을 만들어 놓았는데 말이다.

내일 아침에 다시 뮤즈가 찾아 올 것이다. 오늘의 작업이 끝났다면 이제 그대가 할 일은 몸과 마음을 오늘 아침과 같은 상태로 되돌려 놓는 것이다. 바보같이 자신을 믿지는 말자. 다만 뮤즈를 믿고 그를 즐겁게 해 줄 생각으로 행복해 하며 마음을 다해 그를 기다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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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말이더라. 여행을 떠나기 전에 항상 완벽한 계획을 세워 놓지만 한번도 여행이 계획대로 된 적은 없었노라는. 어찌 그렇지 않을수 있을까?

전체를 모르고서는 일부도 알 수 없다. 일부분을 모르고서는 전체를 알 수 없다. 고전적인 딜레마다.

어떤 사람은 계속 출발지로 되돌아가서 여정을 음미한다. 어떤 사람은 일단 끝까지 가 본 후 출발지로 돌아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 언제나 새로운 풍경이 나타난다.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나의 여행은 일종의 지적 여행이다. 나는 안도와 자만, 좌절과 초조의 시간을 반복적으로 겪고 있다. 그것이 여정의 일부라는 것을 안다. 그것이 무한에 가깝게 반복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영리해야 한다. 영리함이란 적당한 무지를 스스로에게 용인할 수 있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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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포일스라는 서점에 갔었는데 입구 쪽 전시대에 진열되어 있는 책이 전부 하루끼였다. 몇 칠 전에는 스티브 잡스 책과 반분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2. 처칠네 집에 다녀 왔다. 처칠네 가는 도로변의 아름다운 단풍들이 무척 아름다왔다. 처칠네 정원을 작은 식물원처럼 꾸며 놓은 것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서 딴 사과같은 것을 팔기도 한다. 처칠은 영국의 영웅이다. 그러나 그의 집은 영국보다는 그 동네의 지역성과 더 밀착되어 있었다. 그런 점이 좋았다.

3. 요즘 영국 하늘엔 언제나 낮은 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4시면 어두워 진다. 책을 읽고 공부하기에 더 할 나위없이 좋은 계절이다.

4. 나는 요즘 백열과 같이 작렬하며 공부를 하고 있다. 이렇게 말해놓고 나니 좀 찔린다. 이곳 저곳 잘도 돌아다니고 딴 짓도 하고 있으니까. 그러나 딴짓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내 머리 속은 럿셀과 비트겐쉬타인의 것이다. 이 말은 거짓이 아니다.

5. 비트겐쉬타인의 노트북을 다 읽었다. 후반부를 읽으면서 경악을 했다. 쇼펜하우어에게서 받은 영향이 너무도 명백해지고 있었으니까. 차라리 웃기로 했다. 이 노트북을 처음 읽은 비트겐쉬타인 학자들은 얼마나 기절초풍했을 것인가를 상상해 보면 그냥 웃기다.

6. 나는 럿셀의 판단 이론을 추적하다가 이 노트북까지 오게 되었다. 내가 이 노트북을 읽기 전까지 비트겐쉬타인에 대해 갖고 있던 관념은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나는 노트북을 읽으면서 "어이, 비트, 그만, 그만하라구!" 이런 소리를 속으로 지껄여 댔었다. 나는 그런 소리를 할 자격이 없다. 오해한 건 나니까. 암튼 비트는 친절하여 이런 조언을 해주더라.

"Don't worry about what you have already written. Just keep on beginning to think afresh as if nothing at all had happened y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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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1-22 0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1-11-22 22:40   좋아요 0 | URL
비트겐쉬타인의 노트북은 "NOTEBOOKS 1914 ~ 1916"이란 이름으로 나와 있는데 알라딘 등에서 외서로 구입가능할 것 같습니다.

논고 후반부 5.621의 "The world and life are one." 그리고 5.63의 "I am my world.(The microcosm)." 같은 말들은 쇼펜하우어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었죠. 그런데 노트북에 보면,
"The thinking subject is surely mere illusion. But the willing subject exists." 같은 쇼펜하우어의 영향으로밖에 해석될 수 없는 말들이 나옵니다.

또 찾아보면 "The life of knowledge is the life that is happy in spite of the misery of the world." 같은 말 등등...

최근에 구입한 앤스콤의 논고 입문서를 보면(앤스콤은 비트겐쉬타인의 학생이었죠) 비트겐쉬타인 철학의 근원을 조사하려면 반드시 쇼펜하우어를 연구해야 할 것이라고 하네요.

(보셨다시피 저는 관련 책들을 읽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주제지요?^^ 저는 비트겐쉬타인이 럿셀의 영향을 벗어나 자기 자신의 철학적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있는데, 그 철학적 정체성의 한 부분이 쇼펜하우어적인 사상인 것 같고, 그렇게 분기하게 된 한 계기가 럿셀의 판단 이론인 것 같더라구요. 지금 그걸 공부하고 있답니다.^^

2011-11-23 1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weekly 2011-11-23 18:55   좋아요 0 | URL
지금 알라딘에서 이영철 옮김 선집 보고 왔는데 노트북은 없는 것 같습니다. 노트북은, 말하자면 논고를 위한 사색 노트라 단편적이고 과도기적입니다. 선집에 넣을 만한 작품은 아닐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올리는 철학 관련 포스팅들을 즐겨 읽어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그런 사실이 제게는 무척 즐거운 일이 될 것입니다. 제 스스로는 제가 선무당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죠.^^
 


위에 걸어놓은 동영상은 커플링이란 영국 드라마의 에피소드의 한 부분이다. 영국판 프렌즈라고 보면 된다. +19판 프렌즈.^^

주로 대사로 웃긴다. 한국의 3류 에로 영화를 깔끔하게 포장해 내놓았다고 보면 될 듯 하다. 깔끔하지만 코드는 같다. 어쨌든 웃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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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11-05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역시 무대가 카페가 아니라 펍 이군요 ^^
올려주신 부분만 봐서는, 글쎄요, 꼭 19금이라고 할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

weekly 2011-11-08 18:18   좋아요 0 | URL
^^ 기분 전환하는 데는 최고지요. 배우들도 다 멋지고~ 특히 마지막 부분 보면서 계속 킥킥거리게 되더라구요.^^
 

내가 현재 몰두하고 있는 문제는 럿셀의 판단 이론에 관한 것이다. 럿셀과 비트겐쉬타인이 취하고 있는 방법의 차이가 재미있다.

럿셀은 제한 사항을 계속 부가하여 제기된 반론을 피하려 한다. 반면 비트겐쉬타인은 그러한 제한 사항을 필요로 하는 근본 조건들을 문제 삼는다. 즉, 그것을 새로운 것으로 대체하려 한다.

여기까지가 오늘 내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럼 비트겐쉬타인은 어떤 근본 조건을 만들어 내었는가 하는 이야기는... 먼 훗날에나 할 수 있는 이야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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