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베는 한국 사회의 당대적인 현상 중 하나다. 이 현실을 부정할 수 없다. 그래서 나도 가끔 일베에 들어가 게시글을을 죽 훑어 보고는 한다. 다음은 그에 대한 나의 얄팍한 감상이다.

물론, 일베는 쓰레기통이다. 이용자들 스스로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자학 코드를 통해 자신들이 어떤 진실을 표현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문득 문득 놀라게 되는 것은 일베 이용자들 중에는 전문적인 지식과 예리한 논리를 갖춘 사람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바로 내 옆의 어느 멀쩡한 누군가가 일베 이용자라고 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이른바 루저만이 일베를 이용하는 것은 아니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전체적인 분위기는 역시 순진함인 것 같다. 혹은 수동성이라고 해야 할 기조.

내게 강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일베의 댓글 대화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일베ㄱ: 김무성 너무 꼰대 아니냐! 나 차라리 박원순이나 문재인 뽑을란다.
일베ㄴ: 그래도 박원순이나 문재인 뽑아서 나라가 망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냐?
일베ㄱ: 그건 그렇지... 씨바

이 심각한 순진함... 그러나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는 것은 그들이 어떤 진실을 갖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즉, 종북 세력이 남한을 장악하고 있다는 세계를 내면화하고 있다.)

일베를 특징짓는 수동성이라는 기조는, 말하자면 자신의 자유에 대해 스스로가 취하는 태도의 한 양상이다. 이 경우는 자유가 함의하는 책임에 대한 회피로서의 자유에 대한 회피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간단하게 말해서 수동성은 자유의 회피이고 책임의 회피라는 것이다. 수동성은, 그러므로 자신의 자유 혹은 책임의 대상화, 즉 그것의 양도이다. 수동성은 자신의 자유를 권위자에게 양도함으로써 자유의 책임에 따른 부담을 덜고자 하는 행위 양태이다. 이 권위자는, 그 무한한 극으로서는 물론 신일 것이다. 좀 더 가깝게는 박정희, 전두환, 푸친 등이 그 권위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친밀하게는, 그리고 흔하게는 아버지가 그 권위자가 된다.

전에 일베에 관한 어떤 연구 논문에서 일베의 가장 큰 연관어가 아버지라는 단어로 분석되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즉, 일베는 아버지의 세계를 내면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일베 사이트에서 느낀 바도 그렇다. 즉, 일베는 구세대의 세계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지역적으로는 물론 경상도)

그러므로 일베의 대부분의 특성은 구세대의 세계를 분석함으로써, 그리고 그것이 '구'세대의 세계이니만큼 그것과 현실과의 괴리를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예를 들면 여성 혐오. 구세대의 세계에서 여성은 아무리 모자란 남성에 대해서도 그 하위에 위치해야 한다. 여기서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하고 그것이 여성 혐오로 표출된다. 

(이른바 능력있는 일베 이용 남성의 경우는 여성은 본질적으로 창녀라는 논리로 스스로를 정당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들은 자신들의 배우자에 대해서도 억압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들은 사랑의 의미를 모른다.)

또, 일베 특유의 자학 코드는 자신들의 세계와 정서가 현실의 세계에서는 통용될 수 없는 구시대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 잘 알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 스스로 기꺼이 일베가 쓰레기통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즉, 일베는, 이른바 루저에게는 자신과 현실과의 괴리를 토로함으로써 스스로가 루저임을 자인하는 곳이고, 이른바 능력자에게는 불편한 현대성의 가면을 벗고 자신의 맨얼굴을 드러내는 곳이다.

이 일베 현상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실 이 글을 쓰게 된 동기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다. 도널드 트럼프는 미국 남부 백인 남성의 불안을 세력화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영국의 유킵이라는 극우 정당은 영국 워킹 클래스 백인 남성의 불안을 종자로 하고 있다. 솔직히 나는 이 사람들의 불안감, 소외감은 이해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시대의 방향이 아니다. 그러므로 그런 세계는 스스로 와해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백인 남성이 중국인이 투자한 회사의 노동자로 일할 때 그런 세계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영국이나 캐나다 등의 대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의 진실이다. (말하자면, 이들 나라의 백인 워킹 클래스 남성의 눈에 진보란, 인류의 보편성이란 도시인들의 이데올로기이자 비즈니스로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하이데거의 기본적인 기조도 시골성에 기반하여 도시성을 비판하는 것이다. 거기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것을 부정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일베에 있어서도 동일한 논리를 적용할 수 있다. 일베 현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일베 사용자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그에 따른 현실과의 괴리를 무의미한 것으로 만들 정도로 압도적인 현실을 들이밀면 된다. 사실 이런 압도적인 현실은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밀려오고 있다. 그리고 이 압도적인 현실의 도래를 재촉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내 생각에는 페미니즘인 것 같다. 일베를 극복한다는 것은 일베가 의존하고 있는 구세대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것인데, 이 세계관의 위계적인 구조를 그 근본에서부터 깨부수는 것이 바로 페미니즘일 것이기 때문이다. 낙관적인 것은 한국에서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이미 남성 이상이며, 각종 고시 제도 등을 통해 관료 조직으로 들어가는 여성의 수도 상당하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오래 직장 생활하다 한국으로 돌아가 대기업 중역으로 계신 어떤 분은, 한국의 여성 직원들은 하나같이 똑똑하고 야무진데 비해 남성 직원들은 다들 어리버리하다며 한국은 곧 여성의 나라가 될 것이라고 하신다. 물론, 정반대의 말도 있다. 어떤 기사를 보니, 어떤 대기업 임원 말에 의하면 신입 사원 면접을 볼 때 보면 여성들이 남성보다 말도 잘 하고 주관도 뚜렷하여 훨씬 우수한 것이 맞는데, 막상 뽑고 나면 여성들은 자기 생각이 하나도 없고 매사에 소극적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이 대기업 임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즉, 남성이 여성보다 관료적이고 수직적인 위계 조직에 더 잘 적응한다는 뜻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극복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이 구세대의 세계에서 비롯된 위계적이고 권위적인 구조 아닌가? 그러므로 우리 사회의 진보는 페미니즘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래서 한국에서 진보를 꿈꾸는 사람, 특히 남성은 무엇보다 먼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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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5-12-12 0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보통 weekly 님 글을 읽으며 많이 배우고 생각하는데요, 지난 번 어떤 글 중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성이 동양인이 아니길 바랬다는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아직도 이해가 안가는데, 평소 페미니즘이나 진보에 대해 누구보다도 열린 생각을 갖고 계시고 객관적인 사고를 하려고 언제나 많은 노력을 하는 것 같아보이시는데, 어째서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인이 동양인이 아니길 바라셨던 건가요?

weekly 2015-12-12 06:49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예... 무엇보다도 제가 남자, 특히 한국 남자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남자로서의 편견 때문이겠지요. 그래서 그 글에서도 극복되지 않는 오지랖이라고 말씀 드린 것이구요. 또 저번에 메갈리아 관련 글에서 제가 그간 써왔던 글 중에서 남성 중심적인 글들이 많았다고 반성했었는데 구체적으로는 포겟터블님이 말씀하신 바로 그 글, 특히 바로 그 대목을 지칭한 것이었습니다. 그 밖에도 허다한 잘못이 있겠지만요...

지적해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누군가 그런 모순을 지적해 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2015-12-13 03: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3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3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14 04:35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