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럿셀의 판단 이론에 대한 비트겐쉬타인의 비판이라는 주제에 관해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있다. 그리고 오늘 "논리 철학 논고"를 읽었다. 어젯밤부터 빠르게 눈으로만 읽었기 때문에 깊이있는 얘기를 할 수는 없다. (깊이는 나에게 바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느낀 것들을 이야기해 보도록 하자.
1). 럿셀에 대한 비트겐쉬타인의 영향력은 상상 외로 어마어마하다. 이 이야기는 재미있다.
럿셀이 한창 철학적으로 물이 올라 야심적으로 쓰고 있던 원고를 자랑삼아 실수로 비트겐쉬타인에게 보여 준다. 비트겐쉬타인은 무지막지한 비판을 한다. 결국 럿셀은 원고를 포기하고 심지어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여자 친구에게 고백한다. 비트겐쉬타인은 북유럽 외지에 가서 혼자 이 문제(아주 좁게 보면 판단 이론)를 연구하겠다고 한다. 럿셀은 비트겐쉬타인에게 그럼 너가 구상하고 있는 이론이나 알려주고 가라고 한다. 비트겐쉬타인은 메모 수준의 내용을 불러 주고 떠난다. 럿셀은 이 메모를 열심히 연구한다.
그 후 몇 년이 흐르는 동안 럿셀과 비트겐쉬타인은 전혀 연락이 안된다. 그리고 럿셀은 책을 한권 낸다. 내가 영국에서 철학책을 체계적으로 읽어 보자 마음을 먹고 처음 샀던 "The philosophy of logical atomism"이 바로 그 책이다. 이 책을 한 마디로 말하면, 럿셀이 비트겐쉬타인이 제시해 준 방향대로 작업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물론 과장이긴 한데 과장을 정당화할 수 있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살짝 웃긴 얘기들이다. 예를 하나만 들어보자. 비트겐쉬타인의 노트를 보면 명제를 화살에 비유한 이야기가 나온다. 럿셀의 책에도 그 이야기가 나온다. 그 대목에서 럿셀이, 마치 스승의 화두를 안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미숙한 젊은 라마승같은 모습을 보였다고 하면 내가 느낀 바를 제대로 전달한 셈일 것이다.
2). 논리 철학 논고가 당대에 끼쳤을 충격파.
내가 읽었을 때 "논리 철학 논고"의 여러 주장들 중 가장 직접적이고 강력한 힘을 가진 이론은 두 가지다. 하나는, 명제란 요소 명제의 진리함수라는 주장, 다른 하나는 논리에 관한 명제들은 토톨로기라는 주장. 물론 지금은 낡아 보인다. 그리고 이 이론들이 비트겐쉬타인 고유의 것인지 확신은 없다. 럿셀과 비트겐쉬타인의 텍스트 일부를 읽어본 결과 그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내가 당시 사람으로서 이 이론들을 처음 대했더라면 엄청난 충격을 먹었을 것 같다. 그만큼 이 이론들이 가진 함의는 강력하다. 그리고 그 표현은 단 한줄의 문장들로 끝난다. 내용에서나 스타일에서나 경이적이다(비유하자면 막 발견된 DNA의 분자 모델이 그렇다).
3). 판단 이론과의 관련성.
나의 출발점은 럿셀의 판단 이론이었다. 그래서 너무 지나치게 판단 이론의 관점에서 상황을 보고 있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의 내 관점에서는 판단 이론 문제는 "논리 철학 논고" 전체의 입구인 것 같다(그러므로 출구다. "논리 철학 논고"가 그렇게 구성되어 있으므로). 나는 이러한 관점에서 "논고" 전체(!)를 자연스럽게 재구성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이것이 현재 내 야망이다.
어쨌든 갈 때 까지는 가보자. 철학에 있어서든 내 삶에 있어서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