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서 종이우산을 쓰고 가다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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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 보곤 합니다. 세상에 한이 많아서인지, 더이상 세상에 아무 한이 남아 있지 않아서인지 의아했지요. 그럴 때 마다 후자의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들처럼말입니다.

‘나는’하고 속으로 말한다. 나는 돈은 있지만, 돈이 있어도 갖고싶은게 없어져 버렸어. 갖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보고 싶은 사람도, 이곳엔 이제 하나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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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해 이 책에 수록된 사람들의 증언은 완전히 자발적이며 적극적인 것이다. 문장 표현상의 기교도 없을뿐만 아니라 유도도 없고 도발도 없다. 나의 문장력은(만일 그런 게 조금이라도 있다면 말이지만) ‘증언자들의 말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와 동시에 얼마나 읽기 쉽게 쓰는가‘라는 단 한 가지에 집중되었다.

직업적인 작가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나는 ‘종합적이고 개념적인‘ 정보에 대해서는 딱히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구체적인-교환 불가능한-존재양태에 대해서만 흥미를느낀다. 그 때문에 나는 증언자를 앞에 두고 한정된 두시간 동안 집중하여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라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깊고 구체적으로 이해하려 노력했고, 그것을 독자에게 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문장을 만들려고했다. 증언자의 사정으로 활자화할 수 없는 경우가 많긴했지만.

두려움도 있고 마음의 상처도 물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게 어디 있는지 보여달라고 한다면 보여줄 방법이없습니다. 목숨을 잃은 분, 순직하신 분의 유족들에게 저로서는 어떤 설명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이 인터뷰를 받아들이는 걸 반대하시더군요.
이제 겨우 잊어버리려 하는데 다시 기억을 더듬으면 좋지 않다고 말이죠. 그러나 이 기회를 하나의 경계선으로삼아보자고 생각했어요.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어쨌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것 같습니다. 인간은 반드시 한 번은 죽어요. 죽으면 모든 게 끝이지요. 죽어버리면 나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자신에게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옴진리교 사람들은 과연 책임이란 것을 생각이나 하고 있을까요? 그들이 과연 피해자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저지른 죄악을 깨닫기 바랍니다.
정말로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에게 사회적인 책임을 반드시 물어야 합니다. 그런 후 갱생의 길을 걷게 하든지해야 합니다. 결코 죽어버리라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은 스스로 바로 세워야 합니다. 저는그렇게 생각합니다. 이것이 기본입니다.

·1995년 3월 20일 아침에, 도쿄의 지하에서 정말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그것이 바로 내가 품은 의문이었다. 아주 간단한 의문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때 지하철 안에 있던 사람들은 거기서 무엇을 보고, 어떤 행동을 하고, 무엇을 느끼고, 생각했는가?‘라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당신은 누군가(무언가)에게 자아의 일정한 부분을 제공하고 그 대가로서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는가? 우리는 어떤 제도=시스템에 인격의 일부를 맡기고있지는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 제도는 언젠가 당신을향해 어떤 ‘광기‘를 요구하지 않을까? 당신의 ‘자율적 파워 프로세스‘는 올바른 내적 합의점에 도달해 있는가?
당신이 지금 갖고 있는 이야기는 정말로 당신의 이야기일까? 당신이 꾸고 있는 꿈은 정말로 당신 자신의 꿈일까? 그것은 언제 어떤 악몽으로 변해버릴지 모르는 누군가의 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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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가보겠습니다 - 내부 고발 검사, 10년의 기록과 다짐
임은정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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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은 상하기 쉬운 음식과 같습니다. 계속 끓여주고 갈아주지 않으면 부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때 그 검사들이 여전히 건재한 검찰을, 검사들의 잘못이 드러나도 조직의 결정을 따랐을뿐이라는 이유로 면책특권을 스스로 부여하는 권력기관인 검찰을 믿지 마세요.
먼 훗날 검찰이 국민에게 신뢰받는 그날이 오더라도, 검찰을맹목적으로 믿지 마세요. 견제와 균형이 흐트러지고 감시와 비판이 멈출 때, 검찰은 다시 상하기 시작할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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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궤, 8일간의 축제
KBS 의궤, 8일간의 축제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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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쾌할 수 있지만 여기서 ‘그친다.‘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의 매듭을 끊어버린 정조. 비록 33년간의 원대한 계획은 아버지의 복수라는 사사로운 감정에서 시작했지만, 그 끝에서 선택한 것은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더는 억울한 죽음이 없으며 일반 백성이 행복해지는 세상. 수많은 개혁 정책과 화성 건설을 통해 정조는 사심 안에 공심이 있는 사중지공을 만날 수 있었고, 겉으로는 국가와 백성을 위한다고 하지만 속으로는 사심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반대 세력들의 공중지사(公中之私)는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정조가 남긴 건배사는 "불취무귀", 즉 취하지 않은 자는 돌아갈 수 없다는 말이었다. 술을 즐기지 않던 정조가 8일간의 축제 기간에 신하와 백성들에게 던진 건배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가 취하자고 했던 건 술이아니라 행복이 아니었을까? 모든 백성이 행복에 흠뻑 취하기를 바랐던, 그러나 그렇지 못한 지금의 상황을 미안해하던 국왕의 건배사. 다시 정조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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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 자폐는 어떻게 질병에서 축복이 되었나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 강병철 옮김 / 꿈꿀자유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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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레스트는 도널드에게 안전한 장소였다. 속속들이 알기도 했지만, 지역사회가 그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열대여섯 살때쯤 그는 마을 밖으로 이어진 고속도로를 따라 멀리까지 걷곤 했다. 여전히 하늘을 쳐다보며 허공에 뭔가를 끄적거렸다. 사람들은차를 몰고 지나가다 속도를 늦추고 인사를 건넨 뒤, 묻곤 했다. 태워줄까, 도널드? 돌아오는 길에 집에 데려다 줄까? 그저 걷고 싶다고해도 상관없었다. 도널드는 그들이 보호해야 할 존재였다. 누구나 그가 보호를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없어서는 안 될 마을의 일부였으며 모두의 사랑을 받았다.

헌팅턴에서 입소자의 세계는 똑같이 생긴 두세 개의 병실로 구성되었다. 그것이 그들의 우주였다. 잠자는 방, 식사하는 방, 운이 좋으면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다닐 수 있고, 저쪽 끝에 도달하면철창을 통해 잠깐 밖을 내다볼 수 있는 방. 아치는 이 공간을 다른수십 명과 공유했다. 출입문은 언제나 밖에서 잠겨 있었다. 세 개의방이 그들의 우주였다. 언제까지나.

실제로 "자폐증"이란 단어에 관련된 모든 갈등에도 불구하고 격렬한 논쟁을 밀고 나간 힘은 점차 사회를 변화시켰다. 자폐증을 가장 바람직한 방향으로 다루고자 노력했던 모든 사회는 그 복잡하고종잡을 수 없는 현상을 사회와 조화시키려는 과정을 통해 ‘어딘가다른 개인의 존엄성을 역사상 어느 때보다 크게 인정하는 쪽으로나아갔다. 이제 가장 심하게 대립했던 적들과 가장 관심없는 방관자들조차 자폐증에 대한 해석을 공유하게 되었다. 자폐증을 겪는다는 것, 자폐인이라는 것은 인류라는 옷감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주름일 뿐이며,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주름지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는 인식이다.

게르하르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소년을 괴롭히는 승객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얘가 왜 그러냐구? 얘는 자폐인이요. 이제 당신들이왜 그러는지 말해봐요. 아니면 입 닥치고 조용히 가든지."
긴장 어린 정적이 흘렀다. 금방이라도 주먹다짐이 벌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두 남성은 버스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니콜라스 편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더 이상 니콜라스를 건드리지 않았다. 게르하르트는 어안이 벙벙했다. 동시에 말할 수 없는 행복감이 솟아올랐다. 그는 그 버스가 즉흥적으로 자신이 평생 그려왔던 공동체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서로 정식으로 인사를 주고받은 것도 아니었지만,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노선을 달리는 버스를 타고 다녔던 십여 명의 승객 사이에 일종의 친근감이생겨났던 것이다. 미시시피주 포레스트처럼 이웃들은 어딘지 다른그 소년이 사실은 "우리 중 하나", 공동체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 일은 뉴저지주의 한 버스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어디서든 똑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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