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에 대한 국가의 배려라는 것이 돈을 들이지 않고 고작 이런 포스터들로 벽을 뒤덮거나 아무도 관심 없는 금연 권고 게시문을 붙이는 정도이다.

내버려 둬요. 나는 신경 쓰지 않아요. 크리스티네는 아주 괜찮은 애요. 사람들이 뭐라고 지껄이든 나는 그 애가 좋아. 그 애가 가난하든 부자든, 그건 다른 사람들이 상관할 일이 아니잖소? 여기 있는 누구에게든 난 동전 한 닢 빌리지 않았소. 그리고 사람들이 우리를 품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나는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더라도, 그들이 뭘 어떻게 하겠소?

어디엔가 다른 세상이, 진짜 세상이 있는데 왜 매일 여기서 숨을 쉬어야 하지?’

우리는 너무 착하고, 의심할 줄도 몰랐어. 그래서 이용만 당했지. 하지만 나보다 더 불행한 사람들도 있다는 식의 이야기에는 앞으로 절대 안 속을 거야. 내가 아직 사지가 멀쩡하고 목발 없이도 돌아다닐 수 있으니 행복한 것 아니냐는 따위의 이야기에 설득당하지도 않을 거야. 숨 쉴 수 있고 먹을거리 있으면 충분하지 않냐는 이야기, 그 정도면 만사가 제대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에 설득당하지도 않을 거야.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아. 신도, 국가도, 삶의 의미라는 것도 믿지 않아. 내 권리를 보장받지 못한다면, 생존권을 보장받지 못한다면, 나는 아무것도 믿지 않을 거야. 그런 권리를 찾지 못하는 한, 세상이 내 인생을 빼앗아 갔고 나를 속였다고 생각할 거야. 언젠가 진정한 삶을 살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내다 버리거나 토해낸 찌꺼기를 먹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느낄 때까지 나는 계속 그렇게 할 거야. 이해할 수 있겠어?"

"이해할 수 있어요!"

나는 누구한테도 불평하지 않았어. 전쟁이 계속되는 동안 쉬지 않고 불평했던 사람은 언니였어. 그리고 스위스는…… 내가 누리지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직접 내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에 내게도 할 이야기가 있는 거야. 나는 우리가 무엇을 빼앗겼는지를 이제야 알았어. 내가 그것을 보지 못했다면, 전쟁이 내게서 무엇을 빼앗아 갔는지, 우리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조차 모르고…….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는 거죠? 그런데 그 말은 진실이 아니에요. 남의 테이블에 앉아서 음식을 먹고 지저분한 접시를 남기면 부끄럽듯이, 숨길 수 없는 것이라면 부끄러운 것이죠. 어쩔 수 없이 부끄러운 겁니다

물론, 그 형식적인 순찰이란 것이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만 닥친다는 것이 문제지만……. 그리고 이런 짓이 가끔 불쌍한 사람들의 삶을 파멸시키곤 해. 저들이 한밤중에 침대에서 끌어내는 것은 우리처럼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뿐이야. 저들은 사냥개처럼 주인은 절대로 물지 않고, 주인과 비슷한 사람들도 쫓지 않아. 희생이 예정된 먹잇감만 쫓아가지

김나지움에 다닐 때 선생님 생각이 나는군. ‘죽어야 할 때뿐 아니라, 스스로 원할 때 죽을 수 있는 것이 인간이 유일하게 동물보다 우월한 점이다’라고 수업 시간에 말씀하셨어. 인간이 평생 누릴 수 있는 유일한 자유는 아마도 스스로 삶을 마감할 수 있는 자유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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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없이 많른 저주 중에 그나마 탈모의 저주에 걸렸다면 축복받은 인간에 속하는 거 아닌가. 말하자면 자신은 저주받은 사람 중에 가장 축복받은사람이었다. 소소한 저주를 받음으로써 어쩌면 커다란 저주를 피하게 된 건지도 몰랐다. 우식은 이렇게 탈모나 걱정하면서 근근이 살아가고 싶었다. 남은 생에 더 바라는 것도,기대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이대로 ‘간신히‘와 ‘겨우‘라는단어에 비비적대며 ‘근근함‘을 벗 삼아 죽을 때까지 질척대며 살고 싶었다.

"그러지 마."
"뭘요?"
"그게 뭐든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하지는 마."

수많은 루머와 악플에 시달리는 동안에도 마태공은 천국 사과 투어를 멈추지 않았다. 그는 왜 아무도 반기지 않는 사과, 실제로는 무해하지만 어떤 면에선 유해하기도 한사과를 반복하는 걸까. 대중을 향해 분명한 사유도 밝히지않고 반복해서 사과하는 행위가 과연 무엇을 바꿀 수 있는지, 혹은 무엇을 바꾸지 않을 수 있는지 우식은 알 수 없었다. 마태공 본인도 모르는 게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마태공자신이라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한 걸까. 하지만 무엇을 바꿀 수 있단 말인가. 진심으로, 마태공은 저런 궁색한 보여주기식 사과를 통해 모든 죄가 사해지고 순결한 영혼으로 거듭날 수 있다고 순진하게 믿는 걸까? 그런데 모든 사과는 기본적으로 보여주는 사과가 아닌가? 보여주지않는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나? 드러내고 보여주지 않는반성이?

그리고 우식은 알게 되었다. 마태공이 그것들을 일부러 지우지 않았으며 딸을 가정 폭력의 피해자 위치에 놓은루머는 애초에 마태공이 의도적으로 퍼뜨린 거짓 정보라는걸. 악행을 한 가해자에게 불행의 서사를 입혀 연민을 자아내는 것, 그것이 딸을 보호하기 위해 마태공이 선택한, 부모로서 행한 그만의 정의였다.

동시에 이토록 사건 사고가 만연한 세상에 살면서, 언제 예기치 못한 재난이 덮쳐 일상이 파괴되거나 진짜 전쟁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왜 지금을 사는 대신 미래를 대비해 지금을 단지 준비의 시간으로 보내야 하는지 기준은 납득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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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다가온 최후. 스콧은 조용히 펜을 들었다. 그러고는 영국에 있는 탐험대 회계책임자에게 역사에 길이 남을 비장한 편지를 썼다.

우리는 신사처럼 죽을 것이며, 불굴의 정신과 인내력이 남아 있음을 보여주겠다....... 우리가 살아서 간다면 모든 영국인들의 가슴을 뒤흔들 탐험대의 용기와 인내를 말해줄 수 있을 텐데∙∙∙∙∙∙. 이 짧은 글과 우리의 시체가 그 이야기를대신 해줄 것이다.

그리고 3월 29일, 스콧은 마지막 일기를 적었다.

안타깝지만, 더 쓸 수 없을 것 같다.

1909년 1월 31일 밤에 비상 식량과 조랑말 고기로 부실한 식사를 하고 난 다음, 섀클턴은 자기 몫의 비스킷 4개 가운데 1개를와일드에게 주며 강제로 먹였다고 한다.
"이 순간의 이런 행동이 얼마나 자상하고 호의적인 것인지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와일드는 다음 문장에 줄까지 쳐가며 적었다.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수천 파운드의 돈으로도 결코 살 수 없는 비스킷이었다."
인듀어런스호가 남극을 향해 출발할 때 와일드는 탐험대 부대장을 맡았다.
와일드는 당시 섀클턴이 보여준 행동을 잊지 못했고, 그의 충성심은 횡단 탐험의소중한 자산이었음이 나중에 입증되었다. 처절한 시련을 겪은 인듀어런스호의 대원들에게 유일한 축복이 있었다면 그건 바로 섀클턴의 부하였다는 점이다. 탐험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이 생존 드라마에서 섀클턴은 자신의 대원들과 늘 함께했다.

섀클턴은 규율을 특별히 강조하지 않았지만 모든 일은 그의 동의를 받아 이루어졌다. 대원들은 그의 말이 ‘명령‘이어서라기보다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 복종했다. 그는 늘 공정했으며, 의복을 비롯한 모든 물품을 선발대나고급 대원들보다 일반 대원들에게 먼저 분배했다. "일반 대원의 물품이 먼저 떨어지는 경우는 없었다"라고 워슬리는 일기에 적었다.

"가죽 백이 18개밖에 없어 우리는 제비뽑기를 했다. 난생처음으로 내가 당첨되었다." 대부분의 고급 대원들은 질이 떨어지는 재규어 울 백을 뽑았다. 하지만 거기에선 조작의 냄새가 강하게 풍겼고, 일부대원들은 즉시 그 사실을 알아차렸다.
货号노련한 뱃사람인 베이크웰은 다음과 같이 적었다. "제비뽑기가 약간 조작되었다. 섀클턴 대장과 와일드 부대장, 워슬리 선장, 그리고 다른 고급 대원들 모두가울 백을 뽑았기 때문이다. 품질이 좋고 따뜻한 가죽 백은 모두 일반 대원들의 몫이었다."

"해안에 서 있던 사람들 모두가 가슴 아파했다." 워슬리는 이렇게 적었다.
"모두들 용감하고 낙천적인 모습으로 떠났다."

"가능하면 가만히 앉아 있었다." 워슬리는 이렇게 적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젖은 옷 때문에 옆구리와 어깨가 더 추웠다. 하지만 잠시 동안 아주 조용히앉아 있다 보면 인생은 그런 대로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명은 거의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워슬리는 그들의 상태를 계속 적었다.
"대장은 계속해서 사람들의 맥박을 짚어보았다. 누군가 심하게 떨고 있으면 즉시뜨거운 우유를 준비하여 모두에게 먹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면서도 자기 몫을 나누어준다는 사실만은 아무도 모르게 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맥카티는 모든 사람을 부끄럽게 했다. "지금껏 내가는 맥카티를 이렇게 평가했다. "키를 잡고 있거나 배의 얼음을 떼어내고 물을 퍼내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면, 그는 언제나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좋은 날입니다‘라고말했다"

"쇠를레 씨가 ‘당신들은 대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이때 세 사람 가운데한 명이 조용히 말했다. ‘섀클턴입니다‘라고. 그 순간, 쇠를레 씨는 잠시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짓다가 돌아서서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모험이 끝나자 지나간 일들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엘리펀트 섬에서의 일상은 절망적이기보다 그저 조금 불편한 정도에 불과한것인지도 몰랐다.

워슬리는 섀클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상황에 따라 아주 작은 일에도 신경을 썼고..... 쓸데없는 것까지 챙기는 것을 보면 때로는 모자란 사람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나중에야 우리는 그의 끊임없는 주의가 얼마나 중요했는지 이해할 수있었다."
섀클턴이 보였던 모든 계산된 말과 행동 뒤에는 대원들을 위해 최선의 선택을 하겠다는 단 하나의 생각이 있었다. 위기 상황에서 그가 발휘했던 탁월한 리더십의 핵심에는 평범한 사람이라도 상황이 닥치면 영웅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는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약점과 장점은 늘 공존하는 법. 리더로서 섀클턴은 상상도하지 못했던 힘과 인내를 대원들에게서 이끌어냈다. 그는 모든 대원들을 똑같이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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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이 건넨 말들 - 신과 인간, 사막과 문명으로 이어지는 중동 인문 기행
백정순 지음 / 초록비책공방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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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게 읽을 수 없었고, 쉽게 가 볼수 없는 중동지방의 여행기입니다. 최근 유행하는 여행기는 이미지 위주이고 약간의 허세와 낭만에 빠져 있는 글이 많아 읽는 내내 그들의 감정에 지치게 되는 일이 많았으나 지적이고 깊이 있으며 진정으로 그 곳에 대해 알고 싶어 떠나는 여행이라는 감상이 저에게도 전해져 읽는 내내 빠져 들게 되었습니다. 마치 부장님이 “너네 여기 가봤냐? 여기 이런 데 인줄 알았냐?”라며 소탈하게 전해 주는 글이라 친근했지요. (물론 그 부장님은 영포티를 떠벌리는 꼰대는 아니지요)
중동지방에서도 많이 알려진 관광지를 다루기는 했지만 작가님의 유머와 알기 쉽게 설명해주는 지식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작가님과 함께 하는 ’세계테마기행‘을 기대하게 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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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의 느낌을 잊을 수 없습니다. 물론 재미있고 쫄깃한데 왠지 모를 서늘함, 찝찝함이 있었지요. 이상하게도 그 기분이 좋아 계속 그녀의 글을 찾아 읽게 되었는데 그런 감상을 ‘이야미스’라고 하는군요.(일본말로 싫다는 뜻인 ‘이야다’와 미스테리의 합성어라 합니다.)역시 새로운 장르의 개척자였던 것입니다.
이번 소설은 나비를 모티브로 한 미스테리 소설로 도입부부터 충격적인 내용이 전개됩니다. 역시 ‘이야다. 이야다’라며 읽게 되는데 뒤로 갈수록 너무 반전에 메인 듯 하여 맥이 빠지는 기분입니다. 하지만 오래간만에 만나는 그녀의 장편소설은 무척 반가웠고 부디 자주 볼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미 2023년에 발표되어 최근에는 드라마로도 제작되었다 하는데 그 표본의 이미지들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고 싶네요.

악마가 광기를 심어준 게 아니다. 광기는 처음부터 내인에 있었다.
그런 인간을, 세상은 필시 악마라 부르리라.

"둘 다 결함이 아니야. 게다가 정상적인 시각이라고 했는데, 자기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눈에 보이는 색이,
똑같이 정상이라고 믿는 옆 사람 눈에 보이는 색과 정말로똑같은지는 아무도 몰라."

하지만 표리란 무엇일까? 가령 앞과 뒤라고 하면 남을 의식한 모습과 남에게 숨기고 있는 모습,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을 표리라고 표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뒤쪽이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기 눈으로만 직접 보지 못할 뿐, 남의 눈에는훤히 드러난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앞면만 신경 쓰는 것은 단순히거울 앞에 섰을 때 그쪽이 잘 보이기 때문 아닐까? 자기 눈에 비치는 모습을 남의 눈을 통해 상상하고, 그렇게 비치길원하는 모습으로 가꾼다. 만약 뒤통수에도 눈이 있다면 등쪽을 뒷면으로 인식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자기 눈에 보이는 것이 앞, 보이지 않는 것이 뒤.
아카바네 히카루는 자기 뒷모습이 매력적이라는 걸 알고 있을까? 그의 뒤통수에 눈이 달려 있다면 그는 훨씬 당당하게 행동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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