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오랜만에 만난 천명관작가님의 소설은 굉장하다는 말로 부족한 듯합니다. 초반에는 너무 진부한 소재가 아닌가 싶었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어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동이와 연이, 거북이, 깜상, 홍이, 미키, 양목사, 아미 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머리속 극장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였습니다. 게다가 동이와 미키가 미군부대 안을 가로 지를 때는 이경과 옥희도씨가 뒷 배경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그려질 정도였습니다.
읽는 동안 가슴이 울컥해서 잠시 책장을 덮고 창밖을 바라 볼 독자를 (제가 바로 그 독자 입니다 ㅠㅠ)상상해 주신 작가님께 무한한 감사를 드리고 또 다시 긴 기다림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들은 발을 내딛어도 밟을 땅이 없었고 손을 내밀어도 지푸라기조차 잡을수 없는 인생이었다. 그래서 아무데도 발을 디디지도 못하고 끝없이 추락하기만 하는 존재였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선 무언가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그것은 절망과 슬픔의 무저갱에서 스멀거리며 올라오는 은은한 분노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이 묻는 사회 -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와 멸칭 문화
정회옥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령주의는 문화적 연령주의와 제도적 연령주의로 구분되는데, 문화적 연령주의는 특정 연령과 관련한 고정관념, 편견, 가치 등에 의한 차별을 뜻하며, 제도적 연령주의는 특정 연령에게 불리한 법 제도, 시스템, 규정 등을 가리킨다. 한국사회는 문화적 연령주의와 제도적 연령주의가 사회 곳곳에서 쉽게 발견되는 사회다.

한 연구에 의하면, 노인들은 본인이 속해 있는 노인 집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동일시하고 때로는 자신과 분리하기도 했는데, 노인으로서 활동적 삶을 영위할수록다른 노인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과 구분 짓는 경향이컸다. 이러한 현상을 공포관리 이론terror management theory에 기반해 설명하는데, 바람직한 집단과의 동일성을 통해자기 세계관을 승인받고 자존감을 얻을 수 있으며 그렇지않은 집단은 그룹 내 구성원들의 세계관을 위협할 수 있으므로 배제한다. 즉, ‘나는 그들과 다르다‘는 것을 승인받기위해 노인들은 같은 노인들을 더 신랄하게 비판하곤 한다.

관리 안 된 나이 듦은 관리받고 치료받아야 할 것이 된다.
‘안티에이징 anti-aging 신드롬은 나이 드는 것을 부정적가치로 전제하며 저항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한국 사회는 생산성, 죽음, 자기 관리라는 잣대를 통해 나이를 평가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편견과 차별이 만들어진다. 노인은 생산성이 떨어지고, 죽음과도 가깝고, 외모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요구되는 수준의 자기 관리도 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어린이 역시 생산성이 떨어져서 경제적 기여를하지 못하고, 죽음과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자기 관리는 되지 않는 미성숙한 존재라고 본다. 중년의 경우 노인보다는덜하나 세 가지 관점에 있어 모두 쇠퇴하는 나이대이다. 청년의 경우 젊은 외모와 생생한 활기를 갖고 있어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연령대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노오력이 부족한 세대‘로 그려진다. 그래서 ‘욜로 세대‘라 뭉뚱그려 불리거나, 주 4일제 56시간 이하 근무 등을 요구하는 ‘나태함‘을 지닌 나이 집단이라는 편견에 갇혀 있다.
이렇게 우리 사회는 모든 나이대마다 편견과 차별의 틀이존재하는 연령주의 사회가 되었다. 나이에 집착하는 사회는피로하고 행복하지 않다.

미국 사회학자 로자베스 모스 칸터 Rosabeth Moss Kanter는 조직속에서 어떤 잡단이 극도로 소수에 머물기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을 세 가지 단계로 설명한다. 먼저 눈에 띄는 존재가 된다는 점이다. 소수자는 언제나 시선의 중심에 놓이고 그 존재 자체가 가시적인 표시로 읽힌다. 이어서 대조의단계가 뒤따른다. 다수와 소수 사이의 차이는 더욱 부각되고, 다수는 공통된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소수자를 가장자리에 몰아세우며 경계를 그린다. 마지막으로 찾아오는 것은동화의 과정이다. 소수 집단은 다수의 고정관념에 맞춰 자신을 조정하고 결국 다수가 부여한 이미지를 따라가며 살아가게 된다. 이렇게 소수자는 점점 더 다수의 시선과 질서 속으로 끌려들어 가며 스스로의 고유한 모습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다.

‘자기 연령주의 self-ageism‘ 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나이차별을 겪은 이들이 그 부정적 시선을 고스란히 자기 안에새겨 넣고, 그로 인해 현실에서 움츠러들며 침체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을 말한다. 한국 사회의 연령차별은 많은 사람을 자기 연령주의에 빠지게 하는데, 위축되고 불안한 삶은 건강하지 못한 몸과 마음으로 이어진다.
사람들은 자신도 한때 아이였다는 사실을, 그리고 반드시노인이 된다는 사실을 잊는다. 노키즈존이나 노시니어존은우리보다 먼저, 혹은 늦게 태어난 사람들을 배려해야 한다는 세대 간 근본적 약속을 깨는 것이자 지극히 연령차별적인 행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손을 찬양하다
헤수스 카라스코 지음, 임도울 옮김 / 민음사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세상에는 그의 대담한 결단이 적당한 자리와 우리의 자잘하고 소소한 일들이 적당한 자리가 있다고 생각하면서도내가 종종 활용이라는 개념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나머지 초점에서 너무 빗나갈 때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필요한 걸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다면 뭐 하러 새로사야하지 하고 스스로 말하곤 했다. 이미 있는 걸 다시 이용하는 편이 더 좋지 않나? 그럼, 당연하지. 버리는 것보다는이미 존재하는 것에 새 생명을 주는 편이 언제나 좋지. 하지만 때때로 진짜 가치 있는 건 시간일 때가 있다. 내가 집 안에서 꼭 맞는 한 쌍의 볼트와 너트를 찾아 헤맨 날은 시간을잘못 쓴 경우다. 그날 나는 철물점에 가서 100개들이 나사한 상자를 사 와 내 시간을 다른 더 좋은 일들을 하는 데 써야 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세비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후안루와 벨레냐의 리듬이 나의 리듬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육체가 결정하는 리듬, 육체의 본성과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리듬. 정신이 아니라 육체가 리듬을 결정한다. 누군가의 꿈이나 의도가 아니라 누군가가 가진 근육의 탄성과 힘,칼슘 밀도에 따른 뼈의 강도, 피부의 탄력과 같은 것이 결정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리듬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며, 삶의 매 순간 다른 걸 요구한다. 정신은 제안만 할 뿐 결심하는 건 육체다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점차 쇠퇴하기만하는 육체, 움직이려는 충동을 따라가지 못하는 육체를 가지고 살아가는 건 힘든 일이다. 늙는다는 건 그래서 어렵다.

그는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할 때 ‘작은 미덕‘이 아니라
‘큰 미덕‘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한다. 절약 정신이 아니라 ‘관대함‘과 ‘돈에 관한 무관심‘을, 신중함이 아니라 ‘위험을 두려워하지 않는 태도와 용기‘를 가르쳐야 한다고, 또한 교활함이 아니라 ‘솔직함과 진실에 대한 사랑‘을, 외교술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성공에 대한 욕망이 아니라 ‘존재와 앎에 대한 열망‘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이 스스로필요한 무언가를 짓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은 자율성을획득하게 해 줄 뿐 아니라 세상에 대한 이해를 얻게 해 준다.
그리고 그러한 이해는 계속해서 우리 안에 쌓인다. 엔조마리의 의자의 경우를 봐도 의자 제작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있는 건 다층적이다. 신체적인 능력, 우리를 둘러싼 환경에대한 새로운 지식. 배를 묶어 두었던 밧줄이 풀렸을 때처럼우리는 미지의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미지의 세계였던 곳은 행위가 이루어지는 곳이 된다. 나무판자 한 장을 다루며자르고 사포질하고 거기에 구멍을 뚫는 일을 통해 우리는다른 나무판자들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 항해에 일단 발을 들여놓으면 두려움은 잊게 되고, 그 길에 남는 건 순수한기쁨이다.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것-그것이 의자이든, 미치광이 돈키호테의 혜안이든, 발코니에서 키운 토마토든에대한 의식적인 개입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우리를 하나로만든다. 세상이 우리에게 더해지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물건의 제작자가 되거나 우리가 먹는 모든 먹거리의 생산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렇게 모든 걸 직접 하려고 한다면 기본적인 욕구만을 충족시키는 데 우리 삶이 묶이고 말 것이다. 누군가에겐 그런 삶의 방식도 가능하고 바람직한 삶의 방식이 될 수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내 생각에는 딱 한 가지만 자기 손으로 직접 해 보는 것으로충분하다. 우리가 할 줄 모른다고 생각했던 일 중 딱 한 가지.냅킨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도 그 훌륭한 시작이 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본질로 데려간 것은 내가 잘하는 무언가가 아니라 못하는 무언가였다.

우편배달 일에서 내가 받은 최고 학점은 기껏해야 B-나 C+쯤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내 최고의 성취는 중간에 그만두지 않은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시스템의 온전함에 대해 의구심이 생기면, 그 온전함을 떠받치는 제도 자체에 대한 신뢰도 점점 무너지기 시작한다. 우리가 먹는 음식은 왜 안전한가? 비행기는 왜 안전한가?
공식 주립대학에서 받은 학위는 왜 가치가 있는가?
이 모든 시스템이 제도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거래는 당신을 소비자로만들지만, "고맙습니다" 하고 말하는 건 당신을 인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들은 나서서 나를 구분 짓는 것이, 내가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기에 그들에게 속할 수도 있다고 믿는 것이, 내게 호의적인 태도라고 진심으로 믿었다

차라리 경찰을 정비소로 유인했으면 좋았을걸. 집에 와서 딸에게 체포되는 모습을 보이는 것보단 그게 낫지. 하지만 일터에서 그런 일을 겪었다면 더 수치스러웠으려나. 그런데 앞이 안 보이는 아버지가 나오는 옛날이야기가 있거든. 그 아버지에겐 딸이 필요한데••••••.

정신이 또렷하던 시절의 어머니는, 우리 가문의 여자들은 말로 옛이야기를 되살려 낼 수 있다고, 목소리로 조상을 불러낼 수 있다고 경고한 적이 있었다.

「넌 여자잖아. 실패해서 집에 돌아와도 괜찮아. 돈 많은 한국 남자랑 결혼하기 전에 임신하지만 않으면 되거든. 그렇지만 나는 다르지. 내가 실패하면 엄마 마음이 얼마나 처참하겠어?」

「비극을 기다리며 두려움 속에서 살아갈 수는 없어. 날짜를 기록해 두는 건 나한테 경고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재앙을 막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사실 앞에서, 스스로 위로하기 위해서지.」

「한국사가 이어지는 동안 남자아이와 여자아이 모두가 강력한 외세에 공물로 바쳐졌어요. 중국과 몽골, 최근에는 서양에.」

「그림 형제의 책처럼 글로 적힌 동화들은 교육받은 남자들이 민속 문화를, 국가적 정체성을 만들고 선별하기 위해 쓴 거예요. 하지만 훨씬 더 오래된 자료들에 똑같은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는데, 그중 상당수는 여성이 이야기한 거예요. 여자들은 대부분 문맹이고요. 이런 이야기는 들판에서, 부엌에서, 난롯가에서 탄생했어요.
말하는 사람에 맞게 가공되기는 했지만. 그렇게 마을의 경계를 넘고 세대를 따라 전해졌어요.」

「나요? 스웨덴에서 아시아인 여자로 사는 게 어떤 건지 아냐고요? 남자가 있을 때는 어떻고 없을 때는 어떤지, 그게 백인이면 어떻고 아니면 어떤지 아냐고? 아이고, 난 존나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있잖아요, 나도 알고 있어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우리 오빠라든가 어쩌면 오스카르보다도 편하게 지낸다는 걸. 하지만 여기에 있다 보면 고향의 인종 차별을 그리워하게 된다니까요. 휴가에서 얻은 기념품 애인이라든가 메일로 주문한 신부로 오해받는 것보다는 의사나 회계사로 오해받는 게 낫잖아요.

아시아인 남자와 같이 있으면 쉽게 폭발한다. 서로의 분노를 메아리처럼 반복하게 되니까. 부모의 헛짓거리를 반복하고 그들의 조져 버린 관계를 재현할까 봐, 사랑보다는 승인과 성취를 쫓는 아이들을 키울까 봐 두려움에 떨고 있으니까.

「글쎄요, 고아가 서양에서 자라는 게 행운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서양 사람들뿐인 건 아니라서. 이런 동화는 절망에 빠진 생모를 달래기에 좋을 뿐만 아니라 친척들의 죄책감을 달래는 역할도 해요.

입양이 아기 엄마와 그의 미래, 지금도 아등바등 겨우 먹여 살리고 있는 다른 자식들을 위한 최선이라며 그를 설득한 친척들 말이에요.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 외국 입양 기관과 거래하는 사람들이 휘두르는 설득의 무기랍니다. 입양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이런 환상을 꿈꿔요. 이국적이고 낭만적인 서양에서 자란 한국 고아의 발라드. 아이는 정체성, 언어, 고향에 살 권리를 빼앗겼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니까요. 합당한 아기를 받아 마땅한 백인 부부의 품에 안기는 장면은, 동화의 해피 엔딩치고는 졸렬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그러나 결말을 누리는 건 아이를 잃는 〈그들의〉 이야기일 뿐이에요.

새로운 가족 안에서, 그리고 청년 시절 내내 눈에 띄는 외국인으로 살아야 할 사람에게는 또 다른 이야기의 시작이에요.」

저마다의 디아스포라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 누가 가장 이국적이고, 희귀하고, 외로울까?

2등급으로 강등되었다면, 아래에 꼭 3등급과 4등급을 두어야 하는 것이다. 게다가, 외국인과 새로 온 이민자들을 괴롭히는 일보다 더 미국적인 게 있을까?

「생물학적 전략이야. 아기는 귀여우니까 잡아먹지 않고 돌봐 주잖아. 부모가 늙고 처량해지는 것도 잡아먹히지 않기 위해서지.」

「신라시대 방언에서 〈에미〉는 〈어머니〉, 〈에밀레〉는 〈어머니 때문에〉라는 뜻이에요.」

「그럼 종소리로 고발하는 거군요! 죽은 아이는 엄마가 자신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사람들에게 알리고 있어요!」

왜 몇몇 문화의 신화와 전설만 고전 문학의 기초로 인정하고 떠받들어야 하는 거지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그것을 쟁취하는 여자보다 강한 게 있을까?

「어쨌든, 무엇보다도 스웨덴인은 인종 이야기를 꺼려요. 입양 부모 중에는 이런 식인 사람들도 있어요. 〈내겐 네 인종이 보이지 않아. 넌 그저 내 아이일 뿐이니 내가 너를 위해 조성한 이 환경에서 네가 눈에 띄는지 어떤지 알 필요는 없어. 우리 주변 사람들은 신경 쓰지 말아라.〉 이런 문화에서 소외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불안과 우울감은 더 파괴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것, 심지어 치명적일 수 있다는 걸 엘사도 잘 알겠지요.

우리 모두는 서로서로 달라요. 필요도, 상실과 갈망도 다르다고요. 피난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가족은 쉽게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며, 사랑도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