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주인 노예 남편 아내 - 2024 한국인 최초 퓰리처상 수상작
우일연 / 드롬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완전히 다른 종류의 주인, 그가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그러나 엘렌은 어머니로부터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노예소유자들이 무엇을 훔쳐 가거나 빼앗든 간에, 그녀가 가져온 사랑은 그녀의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엘렌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 자신의 힘을 발견하고, 필요하다면 스스로 길을 만들어갈 수 있음을 배웠다. 엘렌에게 미래를 스스로 만들어갈 힘을 준 중요한 가르침이었다.

엘렌에게 이 경험은 또 하나의 중요한 승리였다. 그녀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을 영리한 변장이나 행운, 우연만이 아니라 낯선 이와 쌓은 선의로도 이겼다. 그녀는 조금씩 나눈 대화로 젊은 장교를 설득해, 그녀가 그와 같은 계급에 속한 인물이라고 믿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단 한순간에 그녀의 노력이 보람을 거두었다. 엘렌의 성공은 그녀가 속한 세상의 위선과 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가능성, 문명이 스스로 세운 잘못된 구조를 인식조차 못한 채 허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말이다.

그러나 침묵에는 그 나름의 의미가 있을 수 있었다. 엘렌은 그녀만의 것인 고통에 대해 말하지 않기로 선택했다. 낯선 자들이 자제하지 않고 끔찍한 질문을 던지며 그녀의 상처를 더듬지 않도록 말이다. 어쩌면 엘렌은 그냥 신물이 난 걸지도 모른다. 전략적인 선택일 수도 있었다. 엘렌은 삶에서나, 북부로 여행할 때나 반복해서 자신을 드러낸 인물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해방을 설계하고 실행했으며, 그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을 꾀로 이겼다. 그녀의 침묵은 말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거나 말하기를 금지당한 사람의 침묵이 아니라, 같은 주제에 대한 하나의 변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녀의 침묵은 일등석 기차를 탔던 것만큼이나 능동적인 저항 행위였을지 모른다.

마차 안이든, 밖이든, 여자든, 남자든, 승객이든, 운전사든, 백인이든, "유색인"이든, 결국은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가 더러워지고 놀라고 멍들었다. 모두가 갈색으로 변한 바지와 젖은 치마를 입고, 핼리팩스까지 최소 11킬로미터에 걸쳐 흙과 비로 이루어진, 질척거리는 길을 걸어가야 했다.

여기서든, 다른 곳에서든 크래프트 부부가 받은 반응을 보면, 이들이 앞서 한 여행이 성공한 이유는 엘렌이 백인 행세를 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돈이 많고 장애가 있는 백인 남자 행세를 했기 때문임을 잘 알 수 있다. 크래프트 부부가 그렇게 여행할 수 있었던 건 서로 친밀한 관계나 남편과 아내라는 점, 어느 학자의 말을 빌리자면 ‘성적인 친족 관계’라는 점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관계가 드러난 지금, 크래프트 부부는 조지아주를 떠나 이동했을 때보다 훨씬 더 많은 편견에 마주하게 되었다. 남부를 벗어나고 미국을 벗어났는데도 남편과 아내라는 역할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주인과 노예, 그건 아니라도 주인과 하인이라는 역할은 받아들여졌는데도 말이다.

어느 기자는 크래프트 부부가 해외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참석한 만찬에서 엘렌이 "노예들이 해방될 경우, 자신을 보살필 수 있을 만큼 일반적으로 지적이냐"라는 질문을 받았던 때를 떠올렸다.
엘렌의 답은 이랬다. "현재 노예들은 자신을 돌보고 그 주인까지도 돌보고 있습니다. 내 생각에 노예들은 자유로워지면 얼마든지 자신을 돌볼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즉흥적인 재치는 대단히 중요했다.

"여왕과 노동자가, 왕자와 상인이, 귀족과 거지가", 온갖 피부색의 사람들과 다양한 삶의 경로를 걸어온 인물이 서로 부딪히고 동등한 지평에서 만난 이 특별한 공간에는 엄청나게 큰 자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이곳에서는 계급의 융합이 이루어졌고, 이해관계가 친절하게 뒤섞였으며, 지위와 등급에 관한 냉정한 격식은 잊혔다. 이 점이 브라운에게는 박람회 자체만큼 아찔하게 느껴졌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뜻밖의 우정 -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김달님 지음 / 수오서재 / 202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왜 부서지는 것 같았을까요?"
"내가 몰랐던 세상이 여기에 있었구나, 그런 깨달음 아니었을까요. 부서져서 흩어지는 게 아니라, 깨지면서 열리는 느낌.
그 틈 사이로 무언가가 스며들기 시작한 거죠."

선생님은 덧붙여 말했다. 요즘엔 부쩍 눈을 감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사실이 두렵게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더강렬하게 사로잡는 것은 언제나 죽음이 아니라 삶이라고. 눈을뜨면 시작되는 하루에 마음 다해 감사하며 사는 일이 자신이하고 싶은 유일한 일이라고. 어떻게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느냐는 말에 선생님은 농담과 기도를 함께 알려주었다. 진실처럼들리던 농담은 이것.
"늙으면 돼. 늙으면 삶이 아까워지거든."

매일 나에겐해야 할 일이 있어요. 전보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이제는 하지못하는 일들도 생겼지만, 대신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은 애써서라도 해요. 그게 살아가는 힘이 되니까요."

"제가 선생님께 물은 적이 있어요. 어떻게 하면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느냐고요. 그때 저에게 그러셨어요.
‘작은 것은 더 작은 것의 큰 것이다.‘ 이 마음을 잊지 않으면 내가 가진 작은 것에도 초라해지지 않을 수 있다고요."

"야, 하늘 봐. 별이 진짜 많아."
그러면 거기 있는 사람들도 일제히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필연적으로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러게. 몰랐는데 이렇게나 많은 별이 있었네."
그러니까 내가 노년의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마음에는, 분명이러한 이유도 있던 것이다. 막연히 노년의 시간을 두려워하거나, 그 시간에 깃들어 있는 여전한 별빛을 상상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 그리고 나와 함께 나이 들어갈 소중한 친구들에게, 노년의 시간으로 씩씩하게 같이 가보자고 말하고 싶은 마음.
아마 그 마음이, 내가 이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힘이었을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비예찬 - 문구인 김규림이 선택한 궁극의 물건들
김규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에게 소비의 범위는 단순한 ‘소유‘ 너머로 이어지는
‘사유‘까지 포함합니다. 내가 가진 물건을 얼마나 이해하고있는지, 그 물건이 내가 살고 싶은 삶과 어떻게 이어져있는지를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내 생각과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혹은그저 좋아 보인다는 이유로 들였다가 결국 손이 가지 않아떠나보낸 물건들도 많았지만, 그런 시행착오를 거치며 해를거듭할수록 ‘나다운 기준‘으로 고른 물건들 위에 나만의이야기가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습니다.

‘아무거나‘의 영역이 조금 줄고, ‘반드시‘의 영역을조금씩 늘려가는 것. 유연한 삶을 선호하는 나지만 일부영역에서는 약간의 단호함이 있는 것도 나쁘지만은 않다고본다. 좋아하는 냄비받침이 있고, 매일 아침에 쓰는 물컵이 있는 삶.
좀 멋진 것 같기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폴 오스터는 가지 않은 혹은 가지 못한 운명의 길에 대한 마지막 책을 남겼습니다. 줄리언 반스는 마지막이라고 선언한 책에서 (어쩌면 또 나올수도 있다는 기대는 하고 있겠습니다마는) 기억을 잃어가고 병에 걸리며 늙어가는 인생에 대해 글을 썼습니다.
최근 부모님은 확실한 노년에, 저는 분명한 중년에 들어가며 노화와 죽음에 대해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럴 때 노년의 자애와 환상 없이 작가가 들려주는 냉철한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새겨집니다.
존재가 아니라 살아간다는 것, 그동안에 벌어지는 사고와 질병이 나의 잘못이 아니라 우주의 일일 뿐이라는 것, 따라서 싸우거나 노여워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위로가 됩니다.
앞서 쓰여진 모든 이야기가 동시대에 함께 살고 있는 그의 독자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다니 정말로 그가 나의 팔에 슬며시 손을 올려준 기분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얼마전에 짧지 않은 입원을 했다하고, 이언 매큐언과 스티븐 킹도 비슷한 나이이니 그들의 마지막 이야기는 무엇이 될까요?

"너희가 그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너희 인생 최고의 몇 년이 될 거라는 걸 잊지 마라." 옥스퍼드에 다니는 동안 이 예언이 이따금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이게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상태라는 건가?" 나는 그런 의문을 품으며 우울로 빠져들곤 했다.

프루스트는 어딘가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해 간직하고 있는 기억은, 설사 연인 사이라도, 똑같지 않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설사 연인 사이라도"를 "특히 연인 사이일 때는"으로 바꾸고 싶다.

하지만 우리가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왜 감정생활이 더 투명해지고 이해하기 쉬워져야 하는가? 더 늘어난 세월은 그저 우리를 더 좆같이 망쳐버릴 새로운 근거와 주제만 제공할 뿐일 수도 있는데. 나는 노년의 고요를 믿은 적이 없다. 그건 늘 노인을 더 우러러보게 하려고, 또 우리가 더 속 편하게 살려고 만든 우화처럼 보였다.

잘 들어, 스티븐은 폭풍이야, 항구가 아니라. 너한테는 놀라운 일일지 몰라도. 허리케인 스티브. 그래, 그게 멍청하게 들린다는 건 알아. 하지만 너하고 늘 사랑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게 얼마나 억압적일 수 있는지 너는 상상도 못 할 거야."

"사랑은, 현실에서는, 소설가 아저씨, 당신이나 당신 족속이 묘사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하지만 세월은 깊은 성숙을 주지 않았다. 더 심각한 것은, 마치 어떤 고대 희곡 속의 불운한 운명의 피조물들처럼, 자신들이 그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거나 이해하지도 못한 채 자기 삶을 반복해야 하는 저주에 걸려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다.

나는 책을 아주 많이 썼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지혜롭다고 생각했다. 무엇이 사람들을 움직이게 하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나 자신이 조언 센터라고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스티븐과 진을 내 소설 속의 인물들처럼 취급하여, 그들을 내가 원하는 목적지로 살살 이끌 수 있다고 믿고 있었다. 삶과 픽션을 혼동하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나쁜 사람이었던 적이 없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낀다. 강력한 반대 증거에도 불구하고 인생이 공정하다고, 또는 공정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런 믿음 뒤에, 어쩌면 우리의 현재 이해를 넘어선 어떤 근본적 수준에서는 공정성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추가의 믿음이 대비책으로 자리 잡기도 한다. 이런 느낌의 출처는 아마도 종교적 믿음의 찌꺼기(또는 심지어 그런 믿음이 충만한 상태)일 것이다. 나는 비르히니아 토레시야의 애처로움과 당혹스러움—세계의 본성과 마주한 그녀의 순수함—에 마음이 크게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는 삶이 공정하거나 정의롭지 않다는 것, 종종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나고, 가끔 나쁜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일어나며, 모든 평온한 표면 밑에는 늘 갑작스러운 혼돈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눈치챌 만큼은 이 행성에서 충분히 긴 세월을 보낸 게 분명하다. 아내는 충만한 삶을 살던 시절에 악성 뇌종양 진단을 받고 37일 뒤에 죽었으며, 나는 그녀의 빛이 죽어가는 것에 맹렬히 분노했지만, 공정함이나 정의가 교활하게 위장하고 이 문제에 끼어든다고 상상하지 않았다. 내가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는 간단한 구절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그 무렵 갑자기 내게 다가왔고 또 지금도 내가 계속 활용하고 있는 이런 말이었다. "우주가 그냥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다." 내가 죽어갈 때도 그럴 것이다. 내가 벗하며 갈 수 있는 암이 변이를 일으켜서건 다른 병으로건, 아니면 어떤 하얀 밴이 내 차를 추돌해서건, 아니면 복수심에 찬 소리 없는 전기 자전거가 보청기를 안 끼고 나갔다는 이유로 나를 벌하건. 그래서 나는 맹렬한 분노가 거의 없기를 바란다.

노화에 관한 두 가지 노련한 발언.



1) 나보다 여섯 살 연상인 아내 팻이 했던 말. "나이가 들수록 당신에게서 가장 용납하기 힘든 특질들이 견고해진다."

2) 나보다 열여덟 살 연하인 파트너 레이철이 하는 말. "늙는 건 용납되지만 늙은 사람처럼 행동하는 건 용납되지 않는다."



몸이 쇠퇴해도 머리와 심장은 여전히 작동한다.

"나는 사는 데 관심 있을 뿐, 그냥 존재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나는 병과 노쇠를 생각할 때 가끔 이 사건을 떠올린다. 그냥 우주가 자기 일을 하고 있을 뿐이야, 당신하고는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그러니까 씨발 어서 안으로 꺼져, 알았어?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나?

지금만큼 나이를 먹지 않았을 때 내 규칙 가운데 하나는 "모든 책을 마지막 책인 것처럼 쓰자"였다. 이런 식으로 자기를 다그친 것은 죽음을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작업을 해내도록 조용히 압력을 가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필요한 허세였다. 내 가족이 죽지 않았지만 죽었다 생각하고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그렇다고 죽기를 바랐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두 규칙 때문에 내 책 가운데 어느 한 권이라도 그런 규칙이 없었을 경우보다 나아지거나 나빠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모든 책을 마지막 책인 것처럼 쓰는 것이 더 가혹하고, 동시에 더 현실적인 면을 드러내게 되었다. 이따금 이런 생각도 딸려 나온다. "이것으로 끝내도 나쁘지 않을 듯해."

그때 내가 둘러본 세상에서 "무르익음"은 있을 법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부모와 조부모와 그들의 친구들은 어떤 면으로도 "무르익어" 보이지 않았고 그저 늙어 보일 뿐이었다. 일부는 중년으로 늙었고, 일부는 노년으로 늙었고. 그들 가운데 누구도 무르익지 않았고, 기껏해야 시들었을 뿐이었다

나를 철학적으로 만드는 게 나에게 무르익음이 도래해서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쇠퇴를 인정하는 것이다. 내 몸의 일부는 수십 년 동안 천천히 기능이 약해져 왔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당신이 우리의 관계를 기쁘게 여겼기를 바란다. 나는 분명히 그랬다. 당신이 있어서 나는 즐거웠다. 사실 당신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당신 팔에 잠깐 손을 얹었다가 —아니, 당신은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나는 슬쩍 사라지겠다. 아니, 계속 구경하고 있어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자책] 남극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포기해 놓고 그것을 행복이라 부르는

일이 벌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준비되었느냐고 묻지도 않고 손이 그냥 밀어버린다.

나는 끼어들어서 넘겨받을 수 있다. 구하고 구원받을 수 있다.

엄마가 산타할아버지 표지판을 지나서, 이제 노래를 멈춘 아빠를 지나서,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우리를 앞으로 데려간다. 엄마가 우리를 데리고눈 덮인 숲으로 향한다. 소나무 향기가 난다.
뒤를 돌아보니 아빠가 후미등을 보며 서 있다. 아빠 위로, 아빠의 대머리 위로, 아빠의손에 들린 모자 위로 눈이 내린다.

이제 그녀는 아버지나루이자의 눈을 통해서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볼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