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회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1
아베 코보 지음, 송태욱 옮김 / 민음사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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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됐고. 자네는 SOS를 남기고 소식이 끊긴 배에구조선을 보내는 것밖에 생각하지 못하나? 등대에 불을 켜는 방법도 있지 않겠나. 행동도 중요하지만, 개처럼 냄새를 쫓아다니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걸세. 없어진 사람을 위해 돌아올 길을 밝혀 주는 것도 꽤 근사하고 현실적인 대책이라고 나는 생각하네. 내 속셈을 말하자면, 이 노트는 자네 부인이 돌아올 때를 위한 지도 같은 거야. 알겠나? 헛수고인지 아닌지는결과를 보고 나서 판단해도 늦지 않을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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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나의 엄마는 도시의 청소부입니다 - 도시의 가장 낮고 뜨거운 일터에서 발견한 인생의 존엄
장샤오만 지음, 허유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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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자매들이 간섭하지 못하게 하고 늘 혼자서 모든 일을 주도했다.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사실 다른 사람들이 지저분하고 고된일을 일찌감치 미뤄놓았기 때문에 엄마가 어쩔 수 없이 그 일들을 고스란히 떠안았다는 사실을.

선전은 ‘효율이 높고‘, ‘돈이 많기로 유명한 도시다. 내가 스물네 살에 처음 이 땅을 밟았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원의 공중화장실이 아주 깨끗하고 세련되게 꾸며져 있으며, 단 한 번도 휴지가 떨어진 것을 본 적이 없다는 점이었다. 박물관과 도서관은 언제나 번쩍번쩍 광나도록 닦여 있었고, 오피스 빌딩에도 먼지 한 톨 찾아볼 수없었다.
엄마가 미화원이 되기 전까지, 나는 공공장소의 말끔함과 근무 공간의 질서 정연함을 그저 당연하게 누렸다. 내가 시시각각 누리는 이‘청결함‘과 ‘편리함‘이 어떻게 유지되는지는 생각해보지 않은 채 말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다른 미화원들이 겪은 일도 우리 엄마가겪은 일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쉰몇 살이 된 자신이 꼭 젊은 시절 농촌에 있던 고물 디젤 엔진 같다고. 그 엔진은 꼭 방앗간에서 곡식을 빻을 때만 되면 시동이 잘 걸리지 않아 푸드덕푸드덕 검은 연기를 내뿜곤 했다. 그러면 라이터로 옥수수 속대에 불을 붙인 다음 그것으로 디젤 엔진에 불을 붙였다. 그러면 푸드덕푸드덕 소리를 내며 마침내 돌아가기 시작했다. 엄마가한숨 섞인 말투로 말했다. 이제 자기도 그런 불씨가 필요한 때가 된것 같다고. 한번 또 한번, 자꾸 불을 붙여줘야만 겨우 굴러갈 수 있게되었다고 말이다.

도시화가 고도로 진행되고 업무가 세분화된 오늘날, 우리는 완벽하게 정돈된 공간 뒤에 숨겨진, 평범한 청소 노동자들의 작업 현장을실제로 보기 어렵다. 그저 마흔아홉 살의 한 아주머니가 이틀 동안수만 개의 크리스털 구슬을 닦는 장면을 상상할 수 있을 뿐이다. 세세한 부분까지 완벽해야 한다는 요구는 결국 가장 밑바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다른 여러 직종에서도 비슷한현상을 볼 수 있다.

지금의 나는 엄마의 청소 일을 외면하지 않고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미화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에도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 그럴 수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회생활을 하고 세상 물정을 알아가는 동안그들과 내가 결국 같은 곳에서 왔다는 사실을 점차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사무직 노동자지만,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계층에 속해 있다.

엄마의 두려움은 독일의 사회학자 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가 『소외와 가속』에서 말한 ‘미끄러운 비탈‘ 위의 감각을 현실로보여주는 것 같았다.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는 마치 미끄러운 비탈위에 서 있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낀다. 사람은 끊임없이 그리고 여러 방향으로 변해가는 조건 속에서 살아가며,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나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결코 제자리에 머물 수 없다. 변화하는 조건에 적응하지 못하면 미래로 건너갈 발판과 선택지를 잃게 된다.

내가 노력이라고 믿어온 많은 일, 가까스로 닿았다고 여겨온 세계가너무나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나와 미화원들은 같은 곳에서왔다. 우리는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밑천이 없어 쉽게 자신을 내던질수 없는 사람들이다. 자기 출신을 정직하게 마주해야만 내 삶의 기반도 비로소 단단해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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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나무
윤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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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는 ‘윤고은 작가님의 당도초과 로맨스라니!!!‘라며 감탄하며 읽기 시작했지만 사건이 시작되고 두 연인이 휩쓸리면서 정신없이 읽게 되었습니다.

"날을 잘못 잡았나 싶네요" 했더니 태오가 "여기 앉으면 에어컨 바람 나와요" 하며 역 앞의 의자를 가리켰다. "이게요?"
워낙 자동화를 내세우는 K선이니 역 주변부도 다 손을 썼나보다 하면서 그 평범해 보이는 의자에 앉았다. "바람이 어디서......" 고개를 들어 머리 위를 살피자 태오가 리플릿을 두손으로 잡고 부채질을 해주는 게 보였다. 그는 "저의 다른 용도!"라면서 씨익 웃었다.

"한 입 베어 물면 여기까지 새콤한 맛이 쫙 뻗칠 것 같지 않아요? 저 열매요."
그러자 태오가 그것이 테니스공인 걸 모르는 사람처럼 "어느 나무에서 떨어진 거죠?" 하고 말했다. 나는 "그야 테니스나무겠죠" 하고 대답했고, 그렇게 우리는 테니스코트 옆 커다란 나무 한 그루를 테니스나무로 지정했다. 공들은 나무줄기에 매달렸던 기억이 없겠지만, 그 밤의 나무는 분명히 테니스공의 출처처럼 보였다. 아침이 되면 공은 다시 코트 안을 오가다가 밤이 오면 가로등 불빛을 받으며 조금 더 라임빛으로 물들테고.

"매일 꾸준히 해요.‘
"아아, 이렇게 지압을 매일?"
그래서 시력이 좋구나, 대꾸하려는데 그가 얼른 말을 이었다.
"사랑이요. 매일 꾸준히."
슬쩍 넘어버린 날짜변경선이었는데 내가 모르는 척하자 그는 다시 말했다.
"임미아를 사랑한다고. 매일매일 꾸준히. 눈에 보이든 안보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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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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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박정민 배우님의 어록을 따라하자면 “넷플릭스 왜 보나?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읽으면 되지”라는 말로 설명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그런 짐승들조차 결국 통제 가능한 존재로 여긴다. 철창 너머에 있다는 이유로, 혹은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이유로. 사람을 찢어발기는 곰도 귀엽게 포장된 인형이 되곤 하니까. 위험은 언제나 매뉴얼로 만들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안전한 범주에 모든 것을 가두고는 스스로 안도한다. 우리가 길들이지 못할 것은 없다는 환상, 우리가 만든 것은 반드시 우리 편일 것이라는 기만, 그리고 그 모든 착각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보고 말았다.

"피해자인 척, 불쌍한 척, 억울한 척하면 니가 한 좆같은 선택들은 뭐, 갑자기 박수 받을 일이 되는 거냐고. 이 비겁한 새끼야."

빵충은 시스템이 허락한 형태로만 존재를 허용받은 사육종이다. 시스템의 실패작들이 돌아갈 야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폐기되는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입맛대로 사는 것을 거부하는 순간, 비로소 야생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나는 비위를 맞춰야지만 사랑받는 삶이 싫었다. 그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붙잡으며 이 책을 썼다. 사육종으로 스스로를 명명했던 존재가 야생종으로 탈피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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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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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탄 항공편은 급유를 위해 도쿄 하네다 공항을경유했다. 그런데 다른 탑승객이 모두 내리는데도 할머니는 좌석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청소하는 직원들은 빳빳한 한복을입은 채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여성 주변을 둘러가며 일해야했다.
나중에 할머니는 아들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찌 일본 땅에 발을 딛겠니."

"서울에서 살면서 재봉 가게를 여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네가 아파서 일을 못 하니 가게를 열 형편이 안 되는구나.
네 이모나 나나 둘 다 남편이 없으니 그 일을 꼭 같이하고 싶었•는데, 그럴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저주받은 게지. 네아비였던 그 남자에게 말이야. 내 인생을 망쳐놨어. 너도 알다시피, 집안을 건사하는 일도 나한테 떠맡기고 너희도 나 혼자키우게 했잖니."
할머니는 아들의 눈을 피하며 계속 말을 잇는다.
"왜 하필 지금 병이 났다니. 네가 새 재봉틀을 사줬고 가게자리도 계약하려던 참인데. 네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고 서울에 처음 가본 뒤로 서울 사는 게 내 꿈이었다. 너와 네 동생 모두 서울에서 학교 다닐 수 있도록 전쟁 터지기 직전에 돌아가려고 했어. 네 아버지가 내 인생을 망치더니 이제는 네가 망치는구나. 너도 결핵을 못 이기고 날 떠날 테지."
은설이 답하기 전에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신에게, 또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버지에게 이토록 분노하는 모습을.
할머니가 아들에게 말한다. "가야 할 시간이구나."

아직 공주에 있을 적에 내가 네 할아버지 더러 왜 감옥에있을 때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냐고 물었어. 그랬더니이러더구나.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소?"

나는 너희가 알았으면 해. 너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는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연결고리는 너희 증조할아버지의 이상주의와 증조할머니의 투지와 생존 의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에서, 어머니의 탐구와 아버지의 헌신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너희에게 우리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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