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 호모심비우스
최재천.팀최마존 지음 / 더클래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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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내 안의 깨끗한 무엇, 바로 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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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정약용 지음, 박석무 편역 / 창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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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누가 내 운명을 미리 알고 와서 어떻게 해야 한다는 지침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건 어려우니 어떻게 살아야 제대로 살 수 있다고 가르쳐 준다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도 하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멀지 않은 곳에 그런 사람을 두고 살고 있습니다. 바로 ‘어른’들 이지요. 그들은 우리보다 먼저 살아서 어떻게 살고 무엇을 해야하는 지를 알고 있습니다. (모두 정답일 수는 없지만 대부분이 틀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어른들을 ‘꼰대’라고 부르고 그들이 하는 말을 ‘잔소리’라고 딱 잘라버리곤 합니다.
죄인이 되어 유배를 가 있는 동안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식들이 망한 집안이라고 좌절하지는 않을 지, 그로 인해 학문을 져버리지는 않을 지, 그런 와중에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을 지 정약용은 전전긍긍하며 아들을 달래기도 하고 다그치기도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 편지 역시 그 아들들에게도 아버지의 잔소리로 들렸겠지요? 이미 꼰대에 접어든 저에게는 모두 주옥같은 잔소리들입니다. (물론 21세기의 꼰대에게도 먹히지 않는 말이 있기는 하지요). 이시대의 MZ와 꼰대, 그리고 정치인들이 읽어보길 바랍니다.

귀양을 보내도 아버님 묘소가 있는 곳을 지나게 해주시니 어딘들 임금의 은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있겠느냐? 감사하고 감사할 뿐이다.

근본을 두텁게 배양하고 얄팍한 지식은 마음속 깊이 감추어두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것은 시가 아니고, 시대를 아파하고 세속에 분개하는 내용이 아니면 그것은 시가 아니며, 아름다운 것을 아름답다 하고 미운 것을 밉다 하며 착함을 권장하고 악함을 징계하는 뜻이 담기지 않으면 그것은 시가 아니다

비스듬히 드러눕고 옆으로 삐딱하게 서서 아무렇게나 지껄이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면서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다.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動容貌〕, 말을 하는 것〔出辭氣〕, 얼굴빛을 바르게 하는 것〔正顔色〕, 이 세 가지〔三斯〕가 학문하는 데 있어 가장 우선적으로 마음을 기울여야 할 일이다. 진실로 이 세 가지에 힘을 쏟지 않는다면, 비록 하늘의 이치에 통달하고 재주가 있으며 다른 사람보다 뛰어난 식견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결국은 발꿈치를 땅에 붙이고 바로 설 수 없어 어긋난 말씨, 잘못된 행동, 도적질, 대악(大惡), 이단(異端)이나 잡술(雜術) 등으로 흘러 걷잡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주자(朱子)가 말하길 "화합하여 잘 지내는 것〔和順〕은 집안을 질서 있게 하는〔齊家〕 근본이요, 부지런하고 검소한 것은 집안을 다스리는〔治家〕 근본이요, 독서는 집안을 일으키는〔起家〕 근본이요, 천리에 따르는 것은 집안을 지켜나가는〔保家〕 근본이다" 했으니, 이것은 이른바 가정생활〔居家〕의 네 가지 근본이다.

옛말에 음식이 흘러넘치고 주색잡기에 계속 빠져 있으면 불행이 가까워온다고 했으니, 요즘 벼슬아치들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다. 소 물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에는 적시지도 않고 곧장 목구멍에다 탁 털어넣는데 그들이 무슨 맛을 알겠느냐? 술을 마시는 정취는 살짝 취하는 데 있는 것이지, 얼굴빛이 홍당무처럼 붉어지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져버린다면 무슨 술 마시는 정취가 있겠느냐

무릇 시의 근본은 부자·군신·부부 사이의 떳떳한 도리를 밝히는 데 있으니, 더러는 그 즐거운 뜻을 펴기도 하고, 더러는 그 원망하고 사모하는 마음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다음으로는 세상을 걱정하고 백성들을 긍휼히 여겨 항상 힘없는 사람을 구원해주고 재산 없는 사람을 구제해주고 싶어 마음이 흔들리고 가슴이 아파서 차마 그냥 두지 못하는 그런 간절한 뜻을 가져야 바야흐로 시가 되는 것이다. 만약 자기 자신의 이해에만 연연한다면 그 시는 시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임금을 섬기는 데 있어서 임금의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의 총애를 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또 임금의 신뢰를 받는 사람이 되어야지 임금을 기쁘게 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미관말직에 있을 때도 신중하고 부지런하게 온 정성을 들여 맡은 일을 다해야 한다. 언관(言官)4의 지위에 있을 때는 아무쪼록 날마다 적절하고 바른 의론(議論)을 올려서 위로는 임금의 잘못을 공격하고 아래로는 백성들의 숨겨진 고통을 알리도록 해야 한다. 혹 사악한 관리를 공격하여 제거해야 하는 경우에는 반드시 지극히 공정한 마음으로 해야 한다. 남의 잘못을 지적할 경우에는 탐욕스럽고 비루하고 음탕하고 사치스러운 점만 지적해야지 편파적으로 의리(義理)에만 의거하여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이면 편들고 뜻이 다른 사람이면 공격해서 함정에 몰아넣는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벼슬에서 해직되면 그날로 고향으로 돌아가야 하며, 아무리 절친한 벗이나 동지가 머물러 있으라고 간청을 해도 절대로 들어서는 안 된다. 집에 있을 때는 오로지 독서하고 예(禮)를 익히며 꽃을 심고 채소를 가꾸고 냇물을 끌어다 연못을 만들고 돌을 모아 동산을 쌓으며 지내면 된다. 그러다가 가끔 군(郡)이나 현(縣)을 맡아 수령으로 나가게 되면 자애롭고 어질고 청렴결백하게 다스려 아전이나 백성 모두가 편안하도록 해야 한다. 혹 나라가 큰 난리를 당했을 때는 쉽거나 어렵거나 꺼려 말고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켜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임금이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이미 존경한다면 어찌 신뢰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형태가 있는 것은 없어지기 쉽지만 형태가 없는 것은 없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스스로 자기 재물을 쓰는 것은 형태로 사용하는 것이고, 자기 재물을 남에게 베푸는 것은 정신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물질로써 물질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닳아 없어질 수밖에 없지만, 형태 없는 것으로 정신적인 향락을 누린다면 변하거나 없어질 이유가 없다.

오직 한 가지 속여도 되는 일이 있다면 그건 자기의 입과 입술을 속이는 것이다. 아무리 맛없는 음식도 목구멍으로 넘기기 전까지만 맛있는 것처럼 잠시 속이고 있으면 되니 이는 괜찮은 방법이다.

금년 여름에 내가 다산에서 지내며 상추로 쌈을 싸서 먹고 있을 때 구경하던 옆사람이 "쌈을 싸먹는 것과 절여 먹는 것은 차이가 있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이건 내가 입을 속여 먹는 방법이라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남이 알지 못하도록 하려면 그 일을 하지 않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고, 남이 듣지 못하도록 하려면 그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다. 이 두 마디 말을 평생 동안 외우고 실천한다면 크게는 하늘을 섬길 수 있고 작게는 한 가정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밤의 종자는 밤나무가 되고 벼의 종자는 벼가 되지만 그 온몸이 온전히 이루어지는 것은 모두가 땅기운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국 나무나 풀의 종류가 나누어지는 것은 모두 종자에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옛날 성인들이 교훈을 세우고 예(禮)를 제정한 것은 여기에서 비롯된 것으로 생각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노파의 말을 듣고 흠칫 크게 깨달아 공경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천지간에 지극히 정밀하고 오묘한 진리가 이렇게 밥 파는 노파에게서 나올 줄이야 누가 알았겠습니까? 기특하고 기특한 일입니다.

만약 따뜻이 입고 배불리 먹는 데에만 뜻을 두고서 편안히 즐기다가 세상을 마치려 한다면 죽어서 시체가 식기도 전에 벌써 그 이름은 사라질 것이니, 이는 짐승일 뿐이다. 그런데도 이같이 살기를 원할 텐가?

아내의 게으름은 가산을 탕진시킬 근본이다. 사경(四更, 새벽 1~3시)도 못 되어 촛불을 끄고 아침 해가 창에 비치도록 이불을 개지 않는 것은 모두 게으른 사람이니, 주의를 주어도 잘못을 뉘우치고 고치지 않는다면 버려도 괜찮다

집안을 다스리는 요령으로 마음에 새겨둘 두 글자가 있다. 첫째는 근(勤)자요, 둘째는 검(儉)자다. 하늘은 게으른 것을 싫어하니 반드시 복을 주지 않으며, 하늘은 사치스러운 것을 싫어하니 반드시 도움을 내리지 않는 것이다. 유익한 일은 잠시도 멈추지 말고 무익한 일은 털끝만큼도 도모하지 마라.

상관이 엄한 말로 나를 위협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녹(祿, 봉급)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간사한 관리〔奸吏〕가 조작한 비방으로 나를 겁주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녹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재상이 청탁으로 나를 더럽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내가 이 녹과 지위를 보전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무릇 녹과 지위를 다 떨어진 신발처럼 여기지 않는 자는 하루도 수령의 지위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된다

백성을 다스리는 자는 두려워해야 할 것이 네 가지 있다. 아래로는 백성을 두려워하고 위로는 대간(臺諫, 사헌부와 사간원의 벼슬)을 두려워해야 하며, 더 위로는 조정을 두려워하고 또 더 위로는 하늘을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목민관이 두려워하는 것은 항상 대간과 조정뿐이고, 백성과 하늘은 때때로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음’은 지금의 남양주에 있던 지명, ‘궁촌’은 지금의 서울시 강남구 수서동에 있던 지명, ‘이애’는 지금의 여주에 있던 지명, ‘금탄’은 지금의 충주에 있던 지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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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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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TV를 통해 먼 나라의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나라에 태어 날 수 있었지 않을까?’라던가 자연다큐멘터리를 보며 ‘나도 저런 동물이나 벌레로 살았던 운명이 있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리고 그(또는 그녀)가 바로 나이고 저 동물(또는 벌레)도 나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원래는 나지만 지금은 내가 아닐 수 있는 여러 생명들을 느끼게 되고 존중해 보려 하고 행복을 기원해보기도 합니다.
여기 지금의 나는 어떤 사다리타기게임을 통해 존재한 것이고 그 사다리에서 조금만 비켜가면 다르게 살 수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이 순간도 매번 사다리타기를 통해 선택되는 돌이킬 수도 없는 삶일 뿐입니다. 단 한 번의 삶을 후회없이 거창하게 살고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큰 성과를 내지는 못해도 창밖의 벚꽃을 보며 책을 읽고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음에 만족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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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기출 변형 가족 - 결연 후원으로 만난 두 남자의 대환장 가족 체험기
이회 지음 / 이르비치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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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완벽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을까요? 그래도 부모의 사랑이라는 것이 절대적이라고는 하지만 부모도 자식을 키우며 어느정도의 대가는 기대하게 되지는 않을까요? 내가 배아파 너를 낳았으니 나도 너에게 ‘효도’라는 걸 좀 기대하게 되고, 내가 너를 학교와 학원에 보냈으니 너는 우수한 성적표로 보답해야 한다는 기대정도는 가지고 있을 듯합니다. 그 와중에 자식이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해도 포기하거나 부모-자식간의 관계를 끊어내지는 못하니 그저 서로를 참고 버티는 수밖에 없겠지요.
타인의 경우는 어떤가요? 서로 주고 받는 것이 공평하지 않고 항상 한쪽만 손해를 보는 관계라면 어서 빨리 ‘손절’하는 것이 최선일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 이화작가님은 타인이었던 한 소년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조건없이 베풀며 그 소년이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더라도 독립적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누군가를 돕는 다는 것이 그저 자신의 치장을 위한 공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순수하게 도움을 받는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될 때 더욱 값어치 있게 된다는 것은 몰랐던 것도 아닌데 새삼 깨닫게 됩니다.


PS…저는 이화 작가님을 saint. Lee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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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곡
가와무라 겐키 지음, 이진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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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유일신이라기 보다는 여러 신이 우리의 여러 운명을 둘러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신이 우리의 운명을 주관한다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시련이나 불행을 통해 인간을 시험에 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신의 시험에서 빠져 나오는 인간의 순수한 능력이야말로 행운과 기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그 순수한 능력은 개인의 수련일수도 있지만 서로의 연대가 아닐까요? 그러한 연대에 이름붙이기 위해 종교라는 것을 만들어 모여 서로 다독이고 응원하며 힘든 시기를 이겨낼 수 있을 텐데 예로부터 인간은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약한 자들을 이용하려는 이들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구별하고 휩쓸리지 않기 위해 가장 작은 연대인 가족, 친구가 필요한 듯 합니다.

"네가 엄마를 믿는 마음과 엄마가 믿는 신을 믿을 수 없는 마음은 양립한다고 생각해. 사람은 때로 복잡한 신앙심을 지니는 법 아닐까?"

"그래, 신이 너무 모여들면 전쟁이 일어나."
"어려운 일이네요."
"맞아, 어려워. 사후 세계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야말로 천국과 연옥이 있어. 물론 지옥도."

"그래, 벽이야. 신앙심이 도달한 끝에 있는 것은 높이 세워 진 벽이었어."
….
"어째서 사는 것이 이렇게 괴로운가, 왜 이렇게 힘든 일을 겪는가. 인간은 불합리함을 벽을 향해 한탄하며 거기서 신을 느낄 수밖에 없어."

"신만이 아신다니 뭐야 그게? 좋은 일은 신의 가호, 나쁜 일 은 신의 시련. 무사안일한 태도도 적당히 좀 해. 우리가 얼마 나 괴로워하는지 보고도 못 본 척하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제에."
"하긴 그러네••••·. 신이란 너무 가혹해." 미치오가 조금 자란 스포츠머리를 겸연쩍게 긁으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아크릴판 너머에 있는 미치오의 웃는 얼굴을 불투명 유리창 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후광처럼 비추고 있었다.
"그래도•••· 가끔은.•···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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