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내보내지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날아라, 오딘),약자에 대한 배려를 호의라고 착각하는 오만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누더기 얼굴), 고정관념과 편견에 한방 먹이는 이야기(지당하고도 그럴듯 한) 들이 무척 좋았다.

이 책을 읽고 소감을 쓰고 있는 이곳은 동네의 작은 도서관인데 지금 내 옆에는 백발의 여성이 독서대에 오래된 책을 두고 읽으며 옆에 있는 노트북에 수시로 무언가를 써내려 가고 있다. 그녀의 가방틈으로 보이는 책은 오규원 작가의 ‘이 땅위에 쓰어지는 서정시‘(서정시는 한문으로 표기된 초판본-1981년-이다) 그녀는 동네 노년의 여성들이 즐겨 입는 보라색 누빔점퍼에 일바지를 입고 있으며 2시간동안 자리를 뜨지않고 열심히 하던 일을 계속 하고 있다. 도서관에 들어와 자리를 잡으며 그녀를 흘낏 보고는 나는 무슨 생각을 했던가? ‘지당하고도 그럴듯 한’을 읽고 난 지금 나의 편협함에 얼마나 부끄러운가? 동시에 나도 그녀처럼 나이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랑하는 딸, 네가 앞으로 어 떤 세상에서 누구와 싸우더라도, 아빠의 마음이 항상 너와 함께 한다는 걸 잊지 말아주렴. 죽음을 자초 하지 말고, 자신이 지나치게 비겁해지지 않는 선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렴.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게 모욕을 주는 자들을 섣불리 용서 지 않기를, 괴로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만으로 진심 없는 화해에 서둘러 응하지도 않기를 빈다.그 모든 과정에서 세상은 너를 무너뜨리거나 해코지하기에 여념이 없을 테지만, 무엇보다 용기를 잃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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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이야기든 가난한 여자아이가 부자에게 도움을 받는다.
예외 없이 다 그랬다.
예를 들어, 앤은 그리 부유하다는 느낌은 아닐지언정 매슈와마릴라라는 농장주 남매를 만나 학교에 다니고 친구 다이애나의부유한 조세핀 할머니의 눈에 든다. 《키다리 아저씨>의 주디는글자 그대로 대부호인 후원자를 만나 고아원에서 픽업, 대학에진학할 뿐만 아니라 비싸고 고급스러운 물건을 잔뜩 선물 받는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폴리애나는 소원하게 지냈던 부자 이모의 저택에 살게 되고 결국에는 가족으로 받아들여진다. 세라는 옆집의 특이한 부자 덕분에 밑바닥에서 구원받아 다시 원래의 삶을 되찾고, 《작은 아씨들>의 조는 부잣집 도련님 로리와 친하게 지내면서 일상의 이런저런 도움을 받는다. 그뿐만 아니라로리의 도움으로 가족의 목숨을 살리고 여동생은 그 집에서 피아노까지 선물 받는다. 《집 없는 소녀》의 페린은 대공장주인 할아버지와 재회하자마자 광차 밀기에서 비서로 승격하고, 친손녀로 판명되자 갑자기 후계자로 발탁되었다.
주인공들은 사랑이나 용기가 아니라 부자의 조력으로 길을 열었다. 부자가 직접적으로 자금을 마련해 주는 경우와 형태가 없는 가치관 같은 것을 나눠 주는 경우의 두 가지 패턴이 있지만,
그것을 계기로 주인공의 인생이 좋게 풀리는 것은 모두 똑같다.
인터넷 리뷰를 찾아보니 그렇게 느낀 것은 아코 정도밖에 없는듯했다. 주요 독자층인 아이들은 앤의 상상력이나 세라의 강인함에 순수하게 감동하고 있었다.

예를 들어 빨간 머리 앤은 자기 머리를 가지고 놀린 남자아이를 석판으로 후려갈겼다. 그 일을 계기로 그는 앤을 열렬히 사랑하게 된다. 무시당하면 배로 갚는 것. 그것이 오히려 상대에게서 경의나 호의를 이끌어 내는 묘사는 명작 소녀소설뿐만 아니라 순정 만화에도 유달리 많다. 자신을 물어뜯으려 하는 여자아이에게 ‘날 이렇게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하고 어째서인지첫눈에 반해 버리는 완벽남들, 누구나 허구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이야기지만, 진실을 내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어떤 인간이든, 모욕을 당했는데도 웃어넘기는 여자 따위 얕보고 덤비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아코는 마음을 정했다. 어차피 이 아르바이트는 오늘 한 번뿐이야, 하는 과감한 마음도 있었다.

"저는 《키다리 아저씨>의 어떤 점이 싫으냐면요, 저비스랑 주디가 결혼하는 것보다, 바로 그 점이에요."
"네?"
노조에는 무심코 되물으면서 덩달아 낡은 재킷에 팔을 꿰었다.
"정체를 밝히지 않고 소녀를 돕는 행위는 언뜻 겸손해 보이지만, 인간 대 인간으로 제대로 마주하지 않는 거라고요. 소녀를이용해 단순히 아저씨의 자기만족을 채우는 일이에요. 주디를불안하게 하고 이것저것 신경을 쓰게 해서 그녀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았다고요. 교수님은 지금 당장 아코 씨를 만나 이름을 밝히시고, 기숙사를 양도한다는 것과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눈을 보고 제대로 설명하셔야 해요."

오쓰카 여자아파트에 오기 전에 나는 줄곧 이런 식으로 긴장하며 살았다. 오랫동안 내게 있어 혼자 생활한다는 것은 내 영역과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온 사방에 신경을 둘러치고 사는 것이었다. 책잡히지 않도록, 빈틈을 만들지 않도록, 어떤 상황에서도누군가의 시선을 느끼며 전후좌우에 신경을 쓰느라 정작 나 자신은 작고 또 작아졌다.

"당신들, 죄다 처녀라던데 진짜입니까? 평생 여자들끼리 살작정이에요?"
"내가 왜 그런 걸 당신한테 말해야 하는데요?"
나는 몸을 비틀어 가까스로 그의 손을 뿌리치고 용기를 쥐어짜서 소리쳤다.
"혼자 살자유도, 혼자 커피를 마실 자유도, 우리한테는 없는건가요?"

"아니, 내가 가면, 자네들이 애써 만든 분위기가 망가지는 거아닌가 싶어서 말이야."
나는 그만 소리 높여 웃고 말았다. 기쿠치 선생님은 주저하는표정을 띠고 말없이 나를 바라봤다.
그의 이 거리감이, 지금의 내게는 위로가 되었다. 기쿠치 선생님의 어떤 점이 좋으냐면 내버려 두는 점이다. 요즘에는 방해를하지 않는 남성이 제법 드물다. 남자들은 자신이야말로 새로운생각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싶어서 안달이다. 그래서 다들 우리를 도와주려 한다. 걱정한다. 앞질러서 일을 빼앗으려 한다.그리고 우리와 단둘이 있고 싶어 한다. 정작 우리가 뭘느끼고 뭘 하고 싶어 하는지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듯하다.
오늘 하루만 돌아봐도 남자가 하는 일마다 우리의 방해만 될뿐이었다. 그와 반대로 기쿠치 선생님은 우리에게 필요 이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금을 대주고 기회도 부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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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결된 고통 -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이기병 지음 / 아몬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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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단지 질병으로 코드화된개체로만 의사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자기 결정권을 지닌 자유로운 존재로 의료진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대학에서 이미 배우지 않았던가. 나는 아마도 그때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를 몸소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리 지도를 보고길을 익혀둔다고 해도, 결국 그 길을 걸어야만 보이는 풍광이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외국인노동자‘인 그에게 주어진 진단명인 ‘알코올중독‘은 어떠한가. 이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그에 게서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는 일상적 언어만 을 발견하거나 ‘치료를 요하는 질병이구나‘ 하는 질병의 명칭만을 읽어내는가. 아니면 모종의 경계와 위협, 나태한 일상, 사회적 비용이나 잠재적 폭력 등을 상상하는가.
나와 당신이 후자라면 그것이 의료화된 질병에 붙여 진 은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집단 치료인 알코올 자조 모임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배제의 힘이고, 동시에 그를 해고한 고용주가 느꼈을 불안의 명확치 않은 근 원이다. 또한 그것은 그가 의학적 위기의 순간에도 입원 치료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고용 불안의 동력이자 이모든 과정을 통해 더더욱 그가 금단 증상과 불안, 고통 속에서 음주의 유혹에 다시 굴복하게 만드는 최후의 타격이다.
누군가는 질문할 수도 있겠다. 이 무슨 궤변이냐고. 어쨌든 결국 그의 책임이 아니냐고, 그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냐고 말이다.
나로서는 다른 답을 제안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장 의 부제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강의 과정 중 여러 번에 걸쳐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고 결국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는 저력은 오롯이 환자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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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을 위험으로 몰고 가지않는 적절한 양의 화학물질만이살포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화학물질은 ‘살충제‘가 아닌 ‘살생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오직 하나의 생물종, 즉 인간만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위력을 획득했다.

장 로스탕(Jean Rostand)은 이렇게말했다.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살아있는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묵인하는우리가 과연 인간으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싹이 안 나는 감자나 모기가 없는 안뜰을 위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것은 아닐까?

인간은 생물체 중에서 유독 혼자만 암유발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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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968 밤섬 수비대 힘찬문고 66
방민경 지음, 윤문영 그림 / 우리교육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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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수달………. 여기 놓고 가면 어떻게 될까?"
영호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저렇게 놓고 가면 같이 폭파될 수도 있을 텐데……….
나무 위 저 참새도, 모래밭 속 두더지도………."
영호는 수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달도 까만눈동자로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창재는 한숨을후 쉬었다. 노아의 방주라면 모를까 작은 나룻배에 모든 동물을 싣고 갈 수는 없다. 창재는 수달에게도, 참새에게도, 두더쥐에게도 심지어 신발 위를 오르내리는 개미에도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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