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에 울다
마루야마 겐지 지음, 한성례 옮김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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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텔레비전 따위는 보지 않고도, 사과와 더불어 20년을 살아온 것만으로 인간이란 무엇인지를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아버지 같은 남자들이 대륙에서 무슨 짓을저질렀는지 짐작이 간다.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변명은 거짓말이다. 사람들은 온갖 짓을 다 저지르고도 나중에 입을 싹 닦고 잘 살아간다. 인간이란 그런 동물이다.
이를테면 야에코 아버지 일로 괴로워하는 마을 사람은 한명도 없다. 그런 것이다.

사람들은 잘 때마다 쇠약해진다.
그들은 매일 실컷 먹고 마시는데도 오히려 살아갈 힘을잃어간다. 이제 그들에게는 누군가를 몰아붙여 숨통을 끊어놓을 터무니없는 힘조차 없다. 사람들은 죽지 않기 위해살지도 않고, 살기 위해 살지도 않는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야에코가 아버지를 잃은 그날에 일어난 그 사건이 가슴속에서 아직도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하지만 30년에 이르는 그 긴 꼬리도 이제 곧 끊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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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강물처럼 말해요 작은 곰자리 49
조던 스콧 지음, 시드니 스미스 그림, 김지은 옮김 / 책읽는곰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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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더듬어 움추러드는 아이에게 아빠는 ‘너는 강물처럼 말한단다’라고 이야기해줍니다. 자신도 강물처럼 굽이치고 바위에 부딪히지만 계속 흐르고 있는 강물처럼 이야기할 수 있음을 느낀 아이는 자신을 긍정하고 편안한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어떤 면에서 우리는 모두 강물같지 않을까요? 저는 어제 요가를 하면서 생각했습니다. ‘나도 강물처럼 요가를 하는구나’ 어떤 자세에서 막히고 이루어지지 않는 동작때문에 속상하고 포기할 때도 있지만 강물처럼 흘러흘러 바위에 부딪히는 날을 지나고 나면 언젠가 넓은 바다에 이르는 날이 온다는 걸 알았습니다.
각자의 강물에서 헤엄치고 있을 많은 아이들과 어른들을 응원하는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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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단어를 찾습니다 - 4천만 부가 팔린 사전을 만든 사람들
사사키 겐이치 지음, 송태욱 옮김 / 뮤진트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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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이라는 것은 단어의 뜻을 적어 모아 둔 것이고 그 뜻이라는 것은 절대적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단어란 탄생과 소멸이 있으며 그 사이에는 성장과 퇴화도 있고 그런 시기에 따라서,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서 의미가 바뀌는 것이었습니다. 평소에도 누군가와 대화를 할때 ‘너는 내가 하는 말을 못알아 듣는구나’ 또는 ‘넌 왜 내말을 그렇게 받아들이니? 하고 다투기도 하면서 왜 그동안 단어의 뜻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았던 걸까요?
이 책에서 거론된 ‘배를 엮다’라는 책도 읽었고 우리나라 영화인 ‘말모이’도 보았지만 허구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임을 전제로 보다 보니 사전을 만드는 일을 재미로만 또는 애국으로만 생각해왔습니다. 하지만 여기 사전에 인생을 바친 두사람을 알게 되니 정말 놀랍습니다. 누군가에게 올바른 의미를 전달해야 겠다는 생각보다는 현재 쓰고 있는 단어들을 알리고 싶다는 마음이 더 크게 느껴졌습니다. 또한 사전이 저자의 생각을 담을 수 있고 서로에게 편지쓰듯 감정을 전달할 수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부드럽지만 고집스럽고 엉뚱하기도한 야마다 선생님의 사전이 더 관심있지만 고지식하고 대쪽같은 겐보선생이 아니었다면 두 사전 모두 만들어지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국어사전도 한번 찾아보고 싶어집니다.

연애(愛)
특정한 이성에게 특별한 애정을 품고 둘만이 함께 있고싶으며 가능하다면 합체하고 싶은 생각을 갖지만 평소에는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무척 마음이 괴로운 (또는 가끔 이루어져 환희하는) 상태.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3판

동물원(動物園)
생태를 대중에서 보여주는 한편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잡아온 많은 조수(鳥獸)·어충(魚) 등에게 좁은 공간에서 생활할 것을 강요하며 죽을 때까지 기르는 인간 중심의 시설.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4판

공약(公約)
정부·정당 등 공적인 위치에 있는 자가 세상 사람들에게약속하는 일. 또한 그 약속. [금방 깨지는 것에 비유된다]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초판

외우(畏友)
존경하는 벗.
- 『산세이도 국어사전』 제3판

은인(恩人)
재난에서 구해주거나 물심양면에 걸쳐 지원의 손길을 뻗어주거나 분발할 기회를 주는 등, 그 사람이 그 후 무사하고 안온하게 살아가는 데 크게 이바지한 사람.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제5판

~려 하다
"우리 일동은 현대어 사전의 규범이 되려는 포부를 갖고 이 책을 엮었다. 바라건대 독자여, 진심을 헤아려주기를.
- 『신메이카이 국어사전』 초판

좋지 못한 사정. 사고의 또 한 가지 의미로서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시바타 다케시 선생은 야마다에게 직접 "겐보에게 사고가 있어" 란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사고가 교통사고나 병 같은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건 거짓말이고 과장이라며 깜짝 놀랐지만, 야마다 선생은 사고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다른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확실히 메이지 시대의 용법에 있기는 합니다. 할 수없다‘, ‘지장이 있으니까‘라는 의미로 넣었다고 했습니다."
원래 현대어가 아니라 고전 전문가인 야마다에게 사고에는 오래된 용법으로 좋지 못한 사정‘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가 존재하는 것은 당연했다. 바로 그랬기 때문에 『신메이카이 국어사전』을 편찬할 때까지의 복잡한 ‘사정‘을 사고라는 말로 치환했다.

같은 ‘말‘이어도 문맥이나 상황에 따라 ‘의미‘는 간단히변해버린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부자유스러운 전달 수단인 ‘말‘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임을아는 야마다 선생이 실었던 용례인 것이다.

약 20만 년 전에 말을 획득한 인류는 전 세계로 흩어져 7천 개에서 8천 개나 되는 언어를 발전시켰는데, 여기에 말을 둘러싼 수수께끼와 아이러니가 존재한다고 마크 파겔은 말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언어를 갖고 있는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입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같은 하나의 말로 이야기하는 것이 편리하다. 그러나 실제로는 사람이 모이면 모일수록 말은 다양화하고 의사소통이 곤란해진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말은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이면서, 집단의 정보나 기술의 유출을 막기 위해 커뮤니케이션을 방해하는 것으로도 진화한 듯하다.
다시 말해 ‘말‘에는 원래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 ‘전한다‘
는 요소뿐만 아니라 일부러 ‘전해지지 않도록 하는’ 요소도포함되어 있으며 다양하게 변화해간다는 이율배반의 요소도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겐보 선생은 "말은 소리도 없이 변한다"고 말했다. 야마다 선생은 "말은 부자유스러운 전달 수단"이라고 말했다.
사전에 인생을 바친 두 편찬자는 ‘말‘의 본질을 훌륭하게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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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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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Marclellino사장님께

사장님은 저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지요. 2년전 초여름 아침 저는 그 카페에 갔었어요. 남편과 함께 한 여행이었지만 그날 아침은 저 혼자였어요. (그 여행 내내 아침마다 저는 혼자 카페에 갔었답니다.)
그 여행은 남편이 1년여를 준비했던 여행이고 둘이 도저히 휴가를 맞출 수 없었기에 남편은 열흘 먼저 출발해서 여행을 하고 있다가 전날 니스의 공항에서 만나 칸으로 왔답니다. 칸국제영화제가 끝난 지 1주일 뒤라 아직 여기저기 영화제의 흔적이 남아 있었고 그 영화제에서 우리나라 영화가 큰 상을 받았기에 저도 약간 기분이 좋았지요.
남편은 원래 외출준비가 길기 때문에 저 먼저 서둘러 밖으로 나와 호텔근처의 카페에 간 것 이었어요. 자리를 안내 받고 메뉴를 고르던 중에 대가족이 들어와 사장님의 혼을 쏙 빼놓더라구요. 그러는 중에 저는 좀 밀려버렸어요. 저는 겨우 커피 한잔을 마시려던 것인데 좀 오래 기다리게 되었지요. 하지만 저는 그마저도 좋았답니다. 곳곳에 이곳은 칸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종려나무 표지판이 있고 저는 아침햇살을 받으며 앉아 있었고 다른 무엇보다 여행 1일차의 기대감이 충만한 시간이었거든요. 마침내 사장님은 저에게 커피한잔을 가져다 주시며 무언가 말하고 어깨를 으쓱하셔서 저는 늦어서 미안하다는 말인줄만 알고 괜찮다는 표정을 지었지요. 커피맛도 좋았어요. 느긋하게 1일차 여행자의 마음을 누리고 계산하려하자 사장님은 “내가 너에게 늦게 서빙했으니 커피는 무료로 주고싶다”고 해주었어요. 저는 정말 놀라기도 했고 기쁘기도 했어요. 사실 커피값은 우리나라 카페보다 훨씬 쌌었거든요. 하지만 여행자에게 베풀어지는 예상치 못한 친절은 정말 큰 선물이잖아요. 사장님의 그 친절 덕분에 저의 여행첫날은 물론이고 모든 날이 즐거웠답니다. 다른 곳에서 만난 친절역시 감사했지만 처음이라는 건 다르잖아요.
오늘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여행자에서 생각난 사람들에게 편지를 쓰듯 써내려간 책을 읽었어요. 그 책에서도 제가 가보았던 몇몇의 여행지가 등장했지만 읽자마자 바로 cafe Marclellino의 사장님이 생각났어요. 그래서 저도 이렇게 부치지 못할, 보여지지 못할 편지를 써보고 싶었고요.
작년부터 해외여행이란 건 적어도 2주이상의 휴가를 받을 여유가 있어야 하거나 돌림병따위는 무서워 하지 않을 깡다구가 있어야만 가능해졌어요. 저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둘다 갖추지 못했기에 비행기타고 가는 여행은 마치 우주선을 타고 가야하는 것 만큼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어요. 이런 세계적인 혼란속에 cafe Marclellino는안녕한가요? 사장님께서도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 언젠가 다시 그곳에 가는 날 다시 만나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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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한테만 하는 이야기인데, 나는 오늘 하루가 앞으로의 우리 결혼 생활 같지 않을까 생각했어. 비가 내리겠지. 억수같이. 햇볕도 내리쬐겠지. 때론 따뜻하게, 때론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오빠가 대학원생이고 내가 회사원이라는 것에 대해서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겠지. 자기들 마음대로, 무지개가 뜰지도 모르지만 그게 언제 뜰지는 몰라. 바람이 많이 불 거고, 제대로 된 식사를 차릴 여유는 잘 없을지도 몰라. 싸우기도하겠지. 서로 미워도 하겠지. 그러다가 또 해가 뜨겠지. 겨울인가 싶었는데 또 갑자기 여름일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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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싫고 좋고 이상하고
백은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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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너무나도 솔직한 나머지 이 산문은 전남편의 카드빚을 갚기 위해 썼다고 시작합니다. 전 벌써 그녀에게 반해버렸어요. 윤여정배우님도 어느 프로에선가 제일 연기가 잘 될때는 돈이 필요할 때라고 했습니다. 솔직한 그녀들의 말들은 얼마나 매력적인지요.
이렇게 매력적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고 많은 생각도 할 수 있어 다행스러웠습니다. 특히 여성의 몸과 여성의 자리에 대한 이야기가 슬프기도 하지만 주먹을 꼭쥐고 힘을 내는 용기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지뢰가 너무 많다. 그것들을 다 피해 갈 수는 없다. 가르침을해 텍스트를 선정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내가 과연 ‘알아야하는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을 선별할 자격이 있는가.

내가 이혼을 했다고 해서 공공재가 된 것은 아니다. 내가 이혼한 것은 내가 되기 위해서이다. 언제나 사랑에 빠질 준비가 된 여성 1로 나를 보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이혼녀의 의미가 니가 나한테 마음을 품어도 된다는, 혹은 니가 마음을 주면 내가 보답할 거라는 뜻은 아니다. 정신 차려라. 너를 안 만난다고 해서 다른 남자가 있다는 뜻도 아니다.

나는 과거를 자주 생각하는 편인데 늘 어른들이 했던 말, 교복입고 다닐 때가 제일 좋을 때다. 나중에 어른 되면 그때가 그리울거다. 그런 말 다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누가 나에게 백억 줄 테니그때부터 다시 살라고 하면 바로 자살할 거다. 진심이다. 나는 늘십대보다 이십대가, 이십대보다 삼십대가 더 좋았다. 친구가 얼마전에 그런 얘기를 했다. 야, 사십대는 더 좋대, 우리 그때까지는 꼭살자.

그때까지는 꼭 살아야지.

섹스를 하면 임신을 할 수 있고 모든 임신이 수월하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커플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서로 성적으로 친밀할 수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자궁외임신은 파트너가 있는 여성이겪을 수도 있는 자연스러운 아픈 결과 중 하나다. 임신을 하면 당연히 그 임신은 유산, 사산, 자궁외임신 등의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근데 왜 여성을 탓하고 여성이 문란하다고 도장을 찍는지 모르겠다. 임신은 혼자 하나?

예전에는 마음은 무한한 거라고 생각했다. 얼마든지 얼마든지누구에게 주어도 다시 생겨나는 거라고. 내가 잘 모르는 사람,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마음을 많이 썼다. 잘 보이고 싶었고 그 마음이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믿었다. 왜 마음을 쓴다고 할까. 그건마음이 쓰면 없어지는 거여서라고, 마음의 양에는 한계가 있어 그런 거라고 나는 이제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는 가깝지 않은 사람에게는 마음을 잘 쓰지 않는다. 내 마음은 귀한 거고 친구들에게 아이에게 그리고 나에게 쓰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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