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된 고통 - 현대 의학의 그릇에 담기지 않는 고유하고 다양한 아픈 몸들의 인류학
이기병 지음 / 아몬드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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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가 단지 질병으로 코드화된개체로만 의사 앞에 서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지고 자기 결정권을 지닌 자유로운 존재로 의료진과 마주하는 것이라고 대학에서 이미 배우지 않았던가. 나는 아마도 그때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를 몸소 경험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미리 지도를 보고길을 익혀둔다고 해도, 결국 그 길을 걸어야만 보이는 풍광이 있는 것처럼.

그렇다면<외국인노동자‘인 그에게 주어진 진단명인 ‘알코올중독‘은 어떠한가. 이 말을 듣는 순간, 당신은 그에 게서 ‘술을 아주 많이 마시는 사람‘이라는 일상적 언어만 을 발견하거나 ‘치료를 요하는 질병이구나‘ 하는 질병의 명칭만을 읽어내는가. 아니면 모종의 경계와 위협, 나태한 일상, 사회적 비용이나 잠재적 폭력 등을 상상하는가.
나와 당신이 후자라면 그것이 의료화된 질병에 붙여 진 은유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집단 치료인 알코올 자조 모임에 들어갈 엄두도 내지 못하게 만든 보이지 않는 배제의 힘이고, 동시에 그를 해고한 고용주가 느꼈을 불안의 명확치 않은 근 원이다. 또한 그것은 그가 의학적 위기의 순간에도 입원 치료를 선택하지 못하게 만드는 고용 불안의 동력이자 이모든 과정을 통해 더더욱 그가 금단 증상과 불안, 고통 속에서 음주의 유혹에 다시 굴복하게 만드는 최후의 타격이다.
누군가는 질문할 수도 있겠다. 이 무슨 궤변이냐고. 어쨌든 결국 그의 책임이 아니냐고, 그의 선택의 결과가 아니냐고 말이다.
나로서는 다른 답을 제안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이 장 의 부제처럼, 돌아올 수 없는 강은 한 번에 건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강의 과정 중 여러 번에 걸쳐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들고 결국 결과를 바꿔놓을 수 있는 저력은 오롯이 환자 자신에게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 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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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물을 위험으로 몰고 가지않는 적절한 양의 화학물질만이살포된다고 믿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화학물질은 ‘살충제‘가 아닌 ‘살생제‘라고 해야 할 것이다."

20세기에 들어서 오직 하나의 생물종, 즉 인간만이 자신이 속한 세계의 본성을 변화시킬 수 있는 놀라운 위력을 획득했다.

장 로스탕(Jean Rostand)은 이렇게말했다.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살아있는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묵인하는우리가 과연 인간으로서 권위를 주장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싹이 안 나는 감자나 모기가 없는 안뜰을 위해 너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는것은 아닐까?

인간은 생물체 중에서 유독 혼자만 암유발물질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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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1968 밤섬 수비대 힘찬문고 66
방민경 지음, 윤문영 그림 / 우리교육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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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수달………. 여기 놓고 가면 어떻게 될까?"
영호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저렇게 놓고 가면 같이 폭파될 수도 있을 텐데……….
나무 위 저 참새도, 모래밭 속 두더지도………."
영호는 수달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수달도 까만눈동자로 아이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창재는 한숨을후 쉬었다. 노아의 방주라면 모를까 작은 나룻배에 모든 동물을 싣고 갈 수는 없다. 창재는 수달에게도, 참새에게도, 두더쥐에게도 심지어 신발 위를 오르내리는 개미에도 깊은 죄책감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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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몸들을 위한 디자인 - 장애, 세상을 재설계하다
사라 헨드렌 지음, 조은영 옮김 / 김영사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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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나는 ‘장애인 disabled‘이라는 말과 ‘장애가 있는 사람 people with disabilities‘이라는 말을 혼용할 것이다. 또한 ‘정상인 normal‘이라는 말 대신 ‘비장애인non disabled‘이라고 쓸 것이다. 많은 이들이 어맨다와 같은 이유로 ‘장애인‘이라는 말을 쓰고, 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어맨다의 몸 상태를 기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문화가 "장애를 가하는 것은 세상이다"라는 현실을 인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어떤 이들은 진단된 상태보다 사람을 강조하기 위해 ‘인간 본위‘의 언어를 선호한다. 그러나 나는 ‘불구의 handicapped‘, 또는 ‘특수한 요구special needs‘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한다. 이런 말들은 장애라는 ‘문제‘의 중심을 개인에게 두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표현을 사용하는 사람도 많다. 나는 장애인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내 장애인 친구와 멘토들로부터 배웠지만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다! 언어는 까다롭고 또 진화한다. 언어는 문화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서로에게 전달하는 방식의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이 책에서 시간을 많이 들여 다룰 주제는 아니지만, 언어에서는 정치적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올바른 용어를 사용하고 싶은 비장애인 독자에게조언하자면, 가장 좋은 방법은 장애가 있는 사람에게 직접 자신을 어떤 말로설명하면 좋을지 겸손하고 정중하게 묻는 것이다. 그리고 그릇된 용어를 바로잡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의 여부와 상관없이 자신의 삶을 장애인 권익 옹호 활동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으로 보는 데 에너지와 시간을 써보기 바란다. 장애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이 당신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어맨다는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고 disabled 말한다. 다른 능력을 갖췄다거나 differently abled, 특수한 어려움을 겪는다는 speciallychallenged 식으로 돌려 표현하지 않는다." 다른 장애인처럼 어맨다도 장애라는 말을 스스로 선택해서 사용하고, ‘왜소증dwarfism이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보다 선호한다. 장애가 있다는 말은어맨다에게 자신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 전혀 아니다. 어맨다는 자신을 장애인으로 만드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거침없이말할 것이다. 그는 매일 수십 가지 방법을 동원해 기존의 건설환경에 맞춰서 살아야 한다. 그의 몸이 이 세상을 만나는 방식이 바로 어맨다를 장애인으로 만들고 있다.

집계화의 오류란 한 집단의 특징은 필연적으로 그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도 적용된다는 잘못된 가정이다. 집단을 나타내는 특성에도 가치는 있지만, 통계는 개인의 삶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 이러한 긴장 속에서 살며 논쟁하고 있다. 자신을 볼 때, 자신만의 특이성이나 유일성을 강조하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자신을 집단의 일부로서 인식하는 게 중요할까? 개별성과 집단성, 하나와 다수, 두 개념 모두 사적인 인간으로, 또 시민으로 살아가는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의존성에서 보조를 분리하면, 또는 보조를 독립성의 개념에 포함하면 모든 것이 달라진다. 그렇게 되면 바람직한 삶을 지원할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립적인 삶을 재정의 하는 문제에서 중요한 목소리를 낸 주디스 휴먼 Judith Heumann은 1978년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 독립은 신체적으로 혼자서 일을 해낸다는 뜻이 아니라 독립적으로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몸의 정상 여부와 상관없는 정신적 과정이다. "

케이퍼는 장애 자체의 보편적인 속성이 시간을 전제로 한다고 지적한다. "질병이나 노화, 사고에 의해 우리 모두는 살면서 언젠가 장애를 갖게 된다는 장애 연구의만트라는 이 개념을 잘 요약하여 장애인이 된다는 것 역시 단지 ‘시간문제‘임을 암시한다."

"내 필요는! 내가 표현한다!" 이 구호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내 필요는 나의 것이다.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다른 이가 알아차릴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 내 필요를 말하는것은 나의 의무이다. 다른 이들이 나를 대신해 말하게 하면 안된다. 그리고 작전회의를 위해 옹기종기 모였다가 공원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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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츠바이크 선집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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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이름을 들어 보기는 했어도 내가 그의 책을 읽을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재미있을 것이라고는 더더욱 예상치 못했지. 특히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고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결말이 좋았다. 이야기 자체도 좋았지만 100여년 전에 살던 남성작가의 시선이 개방적이라 읽는 내내 답답함이 전혀 없었다. 앞으로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될 듯 하다.

다만 돈이라는 것이 항상 있는 게 아니라 무슨일이든 해서 벌어야 하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었다. 에드거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유복한 환경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삶 양옆으로는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아득한낭떠러지가 시커먼 입을 쩍 벌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직업과 타고난 팔자 같은 것이 있음을, 자신의 삶 주변에 수많은 비밀이 손을 뻗치면 잡힐 만큼 가까이 있었지만 이제껏 눈여겨보지 않았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삶이 얼마나풍요로운 것인지를 알게 된 지금, 조바심 내며삶을 궁금해 하던 마음은 사라졌다. 오늘 처음으로 벌거벗은 현실을 본 것 같았다. 어린애에게 하는 수많은 거짓말로 가려진 현실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우면서도위태로운 현실의 자태를 본 것 같았다. 며칠이라는 시간 동안 고통과 즐거움이 온갖 모습으로 뒤바뀌는 일을 겪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에드거는 그런 며칠을, 앞으로도 여러 차례 겪게 될 거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삶에는 깜짝 놀랄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행복했다.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맞닥뜨리고 나니처음으로 사람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상대가 적으로 보일 때도 실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다른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에게 증오심을 품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자신을 유혹한후 가장 끔찍한 적으로 돌변했던 남작에게조차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남작이 새로운 감정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시대에서 평화를 찾아 헤매는 전설 속비둘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비둘기는 불안에 떨며 지친 날개로 우리 머리위를 날아다닌다. 가끔 밤에 악몽에서 깨어나면 허공에서 푸드덕대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어둠 속을 쫓기듯 날며 어딘가로 정신없이도망치는 소리 말이다. 우리의 온갖 암울한상념이 비둘기의 날개를 타고 떠다니며, 우리의 온갖 소망이 비둘기의 불안 속에 일렁이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떨며 나는 길 잃은 비둘기, 일찍이 신뢰를 저버린 전령이었던 이 비둘기는 이제, 인류의 선조 노아에게 우리의 운명을 알리려 한다. 수천 년 전에 그랬듯이, 세상은 누군가 손을 내밀며 이제 시험은 끝났다고 선언해 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불쌍한 앙리에트 부인은 여장부는 분명 아닙니다. 사랑의 불장난을 즐기는 성격도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 사는 여인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그 부인은 내가 알고있는 한 평범하고 연약한 여성에 불과한 듯합니다. 용감하게 자기 의지에 따랐다는 점에서나는 그분을 조금은 존경하지만, 그분이 오늘은 괜찮을지라도 내일쯤은 대단히 불행할 게자명하기에 그분을 딱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더 큽니다. 그분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고 지나치게 조급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만, 결코 저급하고 천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누구든 이 딱하고 불행한 여성을 멸시할 권리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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