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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보이지 않는 소장품 - 슈테판 츠바이크의 대표 소설집 ㅣ 츠바이크 선집 2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정상원 옮김 / 이화북스 / 2022년 5월
평점 :
‘슈테판 츠바이크’라는 이름을 들어 보기는 했어도 내가 그의 책을 읽을 리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재미있을 것이라고는 더더욱 예상치 못했지. 특히 ‘보이지 않는 소장품’은 무척이나 감동적이었고 ‘어느 여인의 24시간’은 결말이 좋았다. 이야기 자체도 좋았지만 100여년 전에 살던 남성작가의 시선이 개방적이라 읽는 내내 답답함이 전혀 없었다. 앞으로 그의 책을 찾아 읽게 될 듯 하다.
다만 돈이라는 것이 항상 있는 게 아니라 무슨일이든 해서 벌어야 하는 것임을 새삼 깨달았을 뿐이었다. 에드거는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유복한 환경이 당연한 것이 아니며, 자신의삶 양옆으로는 한번도 경험한 적 없는 아득한낭떠러지가 시커먼 입을 쩍 벌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직업과 타고난 팔자 같은 것이 있음을, 자신의 삶 주변에 수많은 비밀이 손을 뻗치면 잡힐 만큼 가까이 있었지만 이제껏 눈여겨보지 않았음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삶이 얼마나풍요로운 것인지를 알게 된 지금, 조바심 내며삶을 궁금해 하던 마음은 사라졌다. 오늘 처음으로 벌거벗은 현실을 본 것 같았다. 어린애에게 하는 수많은 거짓말로 가려진 현실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우면서도위태로운 현실의 자태를 본 것 같았다. 며칠이라는 시간 동안 고통과 즐거움이 온갖 모습으로 뒤바뀌는 일을 겪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었다. 에드거는 그런 며칠을, 앞으로도 여러 차례 겪게 될 거라는 생각에 행복했다. 아직 펼쳐지지 않은 삶에는 깜짝 놀랄일들이 기다리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니 행복했다. 삶의 다채로운 모습을 맞닥뜨리고 나니처음으로 사람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상대가 적으로 보일 때도 실은 서로를 필요로 하며, 다른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건 멋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 혹은 어떤 사람에게 증오심을 품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후회하는 마음도 들지 않았다. 자신을 유혹한후 가장 끔찍한 적으로 돌변했던 남작에게조차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남작이 새로운 감정의 세계로 가는 문을 열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시대에서 평화를 찾아 헤매는 전설 속비둘기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이비둘기는 불안에 떨며 지친 날개로 우리 머리위를 날아다닌다. 가끔 밤에 악몽에서 깨어나면 허공에서 푸드덕대는 소리를 들을 때가 있다. 어둠 속을 쫓기듯 날며 어딘가로 정신없이도망치는 소리 말이다. 우리의 온갖 암울한상념이 비둘기의 날개를 타고 떠다니며, 우리의 온갖 소망이 비둘기의 불안 속에 일렁이고 있다. 하늘과 땅 사이를 떨며 나는 길 잃은 비둘기, 일찍이 신뢰를 저버린 전령이었던 이 비둘기는 이제, 인류의 선조 노아에게 우리의 운명을 알리려 한다. 수천 년 전에 그랬듯이, 세상은 누군가 손을 내밀며 이제 시험은 끝났다고 선언해 주기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다.
불쌍한 앙리에트 부인은 여장부는 분명 아닙니다. 사랑의 불장난을 즐기는 성격도 아닙니다. 사랑을 위해 사는 여인은 더군다나 아닙니다. 그 부인은 내가 알고있는 한 평범하고 연약한 여성에 불과한 듯합니다. 용감하게 자기 의지에 따랐다는 점에서나는 그분을 조금은 존경하지만, 그분이 오늘은 괜찮을지라도 내일쯤은 대단히 불행할 게자명하기에 그분을 딱하게 생각하는 마음이더 큽니다. 그분이 어리석은 행동을 했고 지나치게 조급했다는 사실은 명확하지만, 결코 저급하고 천한 짓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여전히 누구든 이 딱하고 불행한 여성을 멸시할 권리는 없다는 의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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