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원더보이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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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이 지구상에서 인간으로 존재했던시간은 고작 42년.
그나마 나의 아빠로 존재했던 기간은 14년
그건
해도 해도,
너무한 일이에요.

해도 해도.
달도 달도.
별도 별도.
아빠가 살았던 42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별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건 없는 것이나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그 빛들을 나눠서 쪼일 수 있었다면 아빠는 평생 매초당 7조5499억5047만2325개의 별빛을 받으면서 살았던 것이에요. 그렇다면 그건 정말 대단한 1초였을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1초라는걸 알았더라면 아빠는 울지도 않았을 텐데요.
소주를 마시지도 않았을 거고, 약병을 들고죽겠다고 아들에게 소리치지도 않았을 테죠.
아빠 인생의 1초가 그렇게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말이죠.
하지만 우주의 모든 별들이 움직임을 멈추고 우리를 향해 일제히 빛을 내뿜는 순간은단 한 번뿐이에요.
태어나서 단 한 번.
우리가 죽을 때.
그렇게.
우리는 아이로 태어나 빛으로 죽는 것이죠.
영원히 빛으로 죽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일 거예요.

그렇지 않나요,아빠?

"우리는 모두 한 번은 처음 만나고 또 한 번은 영영 헤어지는 것이니까. 네가 자꾸 아빠생각을 하면 아빠는 네 곁을 영영 떠나지 못하실 거야."

그 고통이 절정에 이를 때, 그들은 자신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어떤 고통도 자신을 완전히 죽일수는 없다는 사실을 차례로 발견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저마다 절대로 지울 수 없는삶의 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하게도, 혹은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에 가장 행복했던 기억들을 떠올렸다.

우주가 무한에 가깝다면, 일어날가능성이 있는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이 다른 우주에서는 반드시 일어난다.

"순리대로 사는 게 바로 이 우주의 비밀이지. 잠이 오지 않는다면, 안 자면 되는 거야.
꼭 자야 할 필요는 없어. 죽은 사람이 자꾸 눈에 보인다면, 그냥 눈을 감으면 되고. 보고 싶을 때는 눈만 뜨면 언제든지 볼 수 있으니까좋은 거 아닌가?"
"그게 치료법인가요? 지금 제 불면증도 그렇게 고치신다는 얘기인가요?"
"치료법은 아니야. 병이라고 꼭 치료해야만하는 건 아니야. 병을 달고 산다는 말도 있잖아. 병도 생명의 일부야."
"그래서 강토 형은 아저씨를 만난 뒤로 병을 달고 살게 됐다는 말씀인가요?"
"아니."
무공 아저씨가 말했다.
"강토는 병을 껴안고 살더라."
강토 형과 내가 서로를 끌어당길 정도로 닮았다면, 그렇다면 나도 이제 병을 껴안고 살아야만 한다는 뜻일까?

무공 아저씨의 말처럼산은 더욱 산이 되고자 하고 물은 더욱 물이 되고자 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이 인생에서 내가 할 일은? 그건 더욱 내가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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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지고 싶은 기분 - 요조 산문
요조 (Yozoh) 지음 / 마음산책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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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여름에 바다에 나가는 첫 번째 목적은 사실 바닷물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바다를 배경으로 둔 채 그저 그 곁에서 맨살을 드러내놓고 태양이 내 피부를 찍게 만드는 것이다. 그럼 피부는 점점 뜨겁고 벌게진다. 생각하면 할수록 그게 귀엽게 여겨진다. 인간의 피부가 햇빛에 노출되면 그 부위가 그을린다는 사실 말이다. 대체 왜 조물주는 인간에게 이런 속성을 심어놓은 것일까? 아마도 그것이 귀엽기 때문일 것이다. 조물주는 다양한 귀여움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다. 그래서 고양이를 만들 때는 뱃살을 귀엽게 만들고, 개를 만들 때는 뒤통수를귀엽게 만들고, 돼지를 만들 때는 꼬리를 귀엽게 만들었을것이다.

다시 맨 처음 조승연 씨의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quelque chose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냐는 그의 질문에 카를라브루니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오, 제가 정확히 설명해드릴 수 있어요. 그건 바로, ‘말로는 절대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예요. 그래서 우리가 그 단어를 그렇게 쓰는 거예요. 그냥 그 주위를 뱅뱅 도는 거죠. 내가 좋아하는 게 뭐냐 하면요, 어떤 상황 또는 감정을묘사하기 힘들 때예요. 왜냐하면 그것들이 가장 중요한 감정들이거든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설명할 수 없어요. 우리는 기쁨도, 사랑도, 욕망도 묘사할 수 없죠. 물론 느끼지만! 설명할 수 없다는 거죠. 진정으로 느끼지만너무 강하게 느껴서 적절한 단어가 없을 때, 그리고 단어를 찾아봐도 나타나지 않을 때, 거기선 그냥 어떤 ‘감촉‘ 같은 것만 느껴져요. 그런 면에서 quelque chose는 우리의욕망이에요. 사랑하는 어떤 사람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고요. 평온함, 탐험, 소통 등에 대한 욕구일 수도 있지요.
욕구 없이는 삶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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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그곳에 : 세상 끝에 다녀오다
지미 친 지음, 권루시안 옮김, 이용대 감수 / 진선북스(진선출판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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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TV에서 우연히 방송된 ‘프리솔로‘를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당시 남편과 다투고 살짝 냉전시기였는데 둘이 넋이 나간 채로 보고나서 알렉스 호놀드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둘이 냉냉한 사이였던 것도 잊고 말았다. 다시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는지도, 그것도 그렇게 힘들고 위험하게 올라야 하는지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그들의 도전을 보고 나면 ‘아! 인간은 할 수 있었구나.‘라는 경외심이 생긴다. 또한 그들이 자연은 극복해야 할 대상이며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우리는 에베레스트를 포기하고 집으로 향했다. 2달 동안의 기대가 실패로 돌아갔지만, 우리의 원정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달음을 남겼다. 이번에 에베레스트의 정북벽을 시도한 덕분에 그 뒤로 내가 찾아간 다른 모든 산이 조금은 덜 어려워 보였다. 그 경험 덕분에 나는 또 한 가지 중요한 교훈을 배웠다. ‘뒤돌아 집까지 살아서 간다면 올바른 결정을 내린 것이다. 목표는 거기 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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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멀리 서서 자신을 바라볼 때부터 그는나를 알아봤다고 했다. 레드우드 앞에서 처음만난 뒤, 많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우린 어제 본 사람들처럼 안개를 먹고 자란다는 그나무 얘기를 나눴다. 레드우드에 대해서 말하고 난 뒤에도 우리는 뭔가 계속 말하고 싶었다. 이런 기분이 사랑의 시작이라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지극히 단순한 그 과정이 지난 이십일 년 동안 나를 괴롭혔던 고통과 고독과 절망과 분노를 말끔히 치유했다. 넌 대단해. 넌 멋져. 넌아름다워. 넌 소중해. 난 네가 너무나 좋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 세상 전부와도 바꿀 수없어. 평생 너만을 사랑할 거야. 난 너의 모든걸 다 가지고 싶어. 말들이 그렇게 달콤할 수가 있을 줄이야. 그 달콤함 때문에 내 몸이 촛농처럼 완전히 녹아버릴줄이야. 나란 존재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마치 죽음처럼.

정상적인 사람들에게는 과거가 단일한 게아니라 여러 개다. 가족이 기억하는 유년과 친구가 기억하는 유년과 자신이 기억하는 유년이 모두 다르리라. 그러므로 그들은 그중에서 가장 합당한 과거를 선택하면서 지금의 자신에 이르렀으리라. 이치에 맞느냐, 맞지 않느냐를 따지는 건 그렇게 선택할 수 있는 과거가여러 개인 사람에게나 가능하지 않을까?

"돈을 빌려주겠다는 사채업자나 좋은 땅을소개하겠다는 부동산업자처럼 친모를 찾는입양아라는 건 진부하기 그지없네. 사채업자라면 누구나 이자를 꼬박꼬박 챙기겠지? 마찬가지로 입양아들은 친모를 만나는 자리에서눈물을 쏟을 테고. 역시 진부해. 나는 다른 식으로 행동하고 싶어."
신문을 내려놓으며 내가 말했다.
"다른 식으로? 어떤 식으로?"
유이치가 물었다.
"유능한 사채업자처럼 굴겠어. 그동안 밀린이자를 다 받아내야지."
"밀린 이자라는 게 뭐야?"
"사랑이 마땅히 받아야만 할 원금이라면,
이자는 사랑을 둘러싼 것들이겠지. 웃음소리,
자장가, 몸냄새, 쓰다듬기, 입맞춤 같은 것들. 아니면 부동산업자처럼 잘 찾아왔다며 내가얼마나 괜찮은 딸인지 소개할 수도 있겠지.
암울한 과거의 기억이 아직 남아 있지만, 그건 여름날의 지나가는 먹구름 같은 것에 불과했고, 지금은 꽤 평판이 좋은 사람이니 놓치면 후회할 것이라고 충고하는 거지."

"나는 인생의 불행이 외로움을 타는 걸 본적이 없어요. 불행은 불량한 십대들처럼 언제나 여럿이 몰려다니죠.

"저는 소문 같은건 하나도안 무서워요.
사람들은 자기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다 들여다본다고 생각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자기 마음 하나 제대로 모르는 바보들이니까요. 저는 자기 마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들은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그 무지한 마음이 무서울 뿐이죠."

그런데 왜 인생은 이다지도 짧게 느껴지는 것일까? 그건 모두에게 인생은 한 번뿐이기 때문이겠지. 처음부터 제대로 산다면 인생은 한 번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단번에 제대로 된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단 한번뿐인 인생에서 우리가 저지르는 실수는, 그게 제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모두 결정적이다. 한 번뿐인 인생에서 우리는 그런 결정적인 실수를 수없이 저지른다는 걸 이제는 잘 알겠다. 그러니 한 번의 삶은너무나 부족하다. 세 번쯤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번의 삶은 살아보지 않은 삶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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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현수동 - 내가 살고 싶은 동네를 상상하고, 빠져들고, 마침내 사랑한다 아무튼 시리즈 55
장강명 지음 / 위고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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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읽어 온 아무튼 시리즈는 좋아했던 것을 더욱 좋아하게 만들고 몰랐던 것에 대해 호기심을 일으키는 이야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제목은 현실에 없는 (앞으로도 없을 것 같은)이야기로군요. 작가의 아쉬움과 바람을 잔뜩 써두었지만 읽는 새 어찌어찌 공감하게 되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가 지금 함부로 대하지 않는 대상, 중 심에 둔 가치는 아마 인권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더 없이 소중하고 고귀한 가치다. 하지만 인간의 권리 외에도 우리가 공경하고 두려워해야 할 것들이 많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너무 많이 잃어버렸다.
그게 뭘까. 밤섬은 무엇을 상징할까. 자연의 놀 라운 복원력? 억눌러야 할 인간의 파괴력? 기술문명 과 환경이 유지해야 할 적당한 거리? 20세기 한국에 살았던 약자들의 아픔? 우리가 저지르는 잘못을 후손 들은 바로잡아줄지도 모른다는 희망? 우리 역시 아버지들이 저지른 죄의 대가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것 을 바로잡으려 노력해야 한다는 책임감? 인간의 이해 를 훌쩍 초월한 섭리와 예상치 않은 구원?
밤섬은 그 모든 것의 상징이고, 우리는 자연의 힘을, 우리 안에 있는 파괴적인 욕망과 우리가 소유 하게 된 기술을, 인간의 강함을, 인간의 약함을, 사람 들의 고통을, 과거를, 현재를, 미래를, 시간이 해내는 일들을, 아이러니와 불가사의를, 복잡하고 연약하고 중요한 연결들을, 세계의 질서와 그에 대한 우리의 무지를 무섭게 여겨야 한다는 게 내 대답이다.
그런 경외감을 불러일으키고 우리를 엄숙하고
경건하게 만드는 공간이 모든 동네에 한 곳씩 있기 바 란다. 우리는 그런 마을에서 그 공간을 의식하며 살 면서도 동시에 유쾌함을 잃지 않고, 농담을 즐기고, 미신과 유사과학을 배격하고, 체계적인 회의주의와 지적인 도전정신을 추구하는 태도를 배워야 한다. 쉽 지 않은 일이리라.

그래, 나 또 거창해졌다. 아직 방법도 모른다.
하지만 사막 한가운데 높이 5백 미터, 길이 170킬로 미터인 직선 도시를 세우겠다는 빈 살만이나 화성에 백만 명이 거주하는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일론 머 스크보다 내가 더 황당한 소리를 하는 걸까.
내 생각에는 내 소망이 네옵시티나 화성 이주 계획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바람직하다. 아무도 살아 본 적이 없는 땅에 환경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며 거대 한 인공 도시를 지어야 하는 이유가 뭘까? 그 도시들 이 지속 가능할까?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을더 살기 좋게 만드는 게 훨씬 낫지 않은가? 그게 옳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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