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란 놈은 평화로울 때는 자신이 악마라는 것도 몰라. 하지만 무슨 일만 생기면 바로 눈을 뜨지. 아아, 지금까지는 내가 거짓으로 살았구나, 이게 진짜 나다. 이렇게 말이야. 나는 아니란 소리가 아니야. 살아 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한탄하며, 사람에게 상처를 줬을 때, 비로소 우리는 모두 악마에게 마음을 건넨 거야.
그리고 몰랐다. 소중한 사람과 오래 연결되려면 나도 같이 애써야 한다는 걸. 누군가를 향한 이유 없는 걸음과 무리 없는 만남이 절대 흔치 않음을 이젠 안다.
네, 우리 부모님도 나를 안쓰러워할 때가 있습니다.부모님의 그 마음은 사랑입니다.하지만 당신의 그 마음이 사랑인지는 잘 모르겠어요.모르는 사람을 안쓰러워하지 마세요. 실례입니다.
영원을 맹세하는 어리석음. 나는 당신이 어리석은 말을 할때 사랑을 느끼지. 추우면서 안 춥다고 더우면서 괜찮다고 배고프면서 배부르다고 내게 당신 몫을 내밀 때, 그늘을 양보할때, 목도리를 건넬 때, 나는 수집한다. 당신의 다정함을. 당신이 터무니없는 일로 화를 내거나 나를 비난할 때, 의심하고 탓할 때 나는 등을 돌리고 앉아 벽의 모서리 어두운 곳에 그동안모아둔 다정함을 몰래 꺼내놓고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런데 이야 기의 공식 판본이 널리 알려지자 결국 내 꼴이 뭐가 되었나? 교훈적 전설. 여자들을 매질할 때 써 먹는 회초리. 어째서 너희는 페넬로페처럼 사려 깊고 믿음직스럽고 참을성 많은 여자가 못 되느냐? 그게 정해진 대사였다. 가객도 그랬고 이야기꾼도 그랬다. 제발 나처럼 살지 마요! 나는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렇게 외치고 싶다.-그래, 바로 당신에게!
물은 저항하지 않아. 물은 그냥 흐르지. 물속에 손 을 담가도 그저 그 손을 쓰다듬으며 지나갈 뿐이야.물은 딱딱한 벽이 아니라서 아무도 가로막지 못해.그렇지만 물은 언제나 제가 가고 싶은 곳으로 가고 야 말지. 물을 끝까지 가로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 도 없단다. 그리고 물은 참을성이 많아.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닳아 없어지게 하지. 그걸 잊 지 마라, 내 딸아. 너도 절반은 물이라는 사실을 기억해. 장애물을 뚫고 갈 수 없다면 에둘러 가는 거야. 물이 그리 하듯이.
신들이 맛보고 싶어하는 것은 짐승의 기름이나 뼈가 아니라 우리의 고통이다.
"네 인생 뭐냐는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인생?""아니 그러니까, 틀린 건 아닌지 몰라도 네 인생 어떠냐 하는.""그건." 기미코 씨가 내 얼굴을 보고 말했다. "누가 물어보는 데?""네?""누가 그런 걸 물어?""누구라니."나는 기미코 씨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았다."아무도 그런 거, 안 물어보지 않나?""안 물어볼지도 모르지만.""그럼, 됐잖아.""어, 된 거예요?""그러게 그런 거, 아무도 안 물어봐.""••내가 나에게, 물어보는지도 모르는데.""그럼, 내가 나에게 물어보는 거, 그만두면 되잖아."
"그런데 말이야, 돈의 총량은 정해져 있거든? 부자한테 돈이 있으니까 너한테는 돈이 안 와. 절대 안 와. 아주 심플한 얘기야. 부자가 죽어서도 부자고 가난뱅이가 죽어서도 가난뱅이인 건, 부자가 그걸 원해서야. 돈 가진 놈이, 돈 가진 놈을 위한 규칙을 만들어서, 그 속에서 가난뱅이를 기름 짜듯 짜낸다고. 그리고 찌꺼기가 된 인간에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세뇌시켜. 마치 찌꺼기에도 찌꺼기가 되지 않을 기회가 있었던 양 태연하게. 까불지 말라 그래, 니들이 다 짜내니까 찌꺼기 됐고, 평생 찌꺼기로 사는 거 아니냐고."
모두,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길에서 스쳐 지나는 사람, 찻집 에서 신문을 읽는 사람, 선술집에서 술 마시거나, 라면을 먹거 나, 친구들과 놀러가서 추억을 만들거나, 어디선가 와서 어디론 가 가는 사람들, 평범하게 웃거나 화내거나 울거나 하는, 요컨 대 오늘을 살고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생활하는 걸까. 그들이 건실하게 일해 건실하게 돈을 번 다는 것은 나도 안다. 그러나 내가 알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대 체 어떻게 해서 그 건실한 세계에서 건실하게 살아갈 자격 같은 것을 손에 넣었냐다. 어떻게 그쪽 세계의 인간이 되었냐다. 나 는 누군가 알려주기를 바랐다. 불안과 압박감과 흥분으로 잠들 지 못하는 밤이 이어져서, 사고 회로가 이상해져서 엄마에게 전 화를 걸 뻔한 적도 있었다. 여보세요, 엄마? 엄마, 나 큰일 났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미취학 아동의 시절에는 동네친구들만 만나고, 초중고등학교에 다니면서는 옆동네 친구들까지도 만나다가 대학에 들어가니 전국구의 친구들을 만나며 언어의 세계가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에 들어오니 지역뿐 아니라 세대까지 아우르며 성인이 되어서도 배우게 되는 새로운 단어들이 재미있었지요. 작가님께서도 비슷한 경험을 살려 무척이나 재미있는 글을 써주셨네요 (오디오북 도입이 시급합니다 ^^)어느 모임에서 ˝OO씨는 고향이 어디에요? 말투가 특이하네 ˝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저는 수도권에서 평생을 살았으나 부모님의 고향은 충남 서산과 경남 하동이었으니 각 지역의 톤이 적절하게(?) 섞여 요상한 말투가 되어버린 거지요. 이런 집안에 들어온 전라도 사위는 어느날 장모님께 이르듯이 ˝어머님! OO이는 발가락을 발꼬락이라고 말해요˝라고 하였으나 장모님의 대답은 ˝아니 발꼬락을 발꼬락이라고 하지 뭐라고 해?˝라는 대답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습니다. (그 사위는 30여년 전 어린이 해태야구단으로 그 야구복을 입고 포항에 놀러가 화를 면한 적이 있다는 경험이 있다는 썰을 풀었습니다. ㅎㅎ)최근에는 사투리사용을 오히려 더 친근하다 생각하고 방송에서도 각 지역을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가 많아지며 사투리에 노출되는 경험도 잦아지고 있어 반갑습니다. 어디서든 느닷없이 들리는 사투리가 위화감이 아닌 개성으로 표현되고 인정받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