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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평점 :
1904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미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려워진 가정형편때문에 이탈리아의 피에틀라 달바로 보내져 석공견습생으로서의 삶을 살게 됩니다. 그 곳에서 우연히 ‘우주적 쌍둥이’인 비올라 오르시니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접하게 되지만 그들의 세계에는 운명의 바람이 불어-마치 트라몬타나, 시로코, 리베치오, 포닌테, 미스트랄처럼 다양한- 많은 사건을 겪게 되고 이리저리 휩쓸리게 됩니다.
이야기 자체로도 무척이나 웅장하고 아름다운데다가 위트있는 표현들이 벽톨책을 쉽게 읽혀지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모든 인물들이 개성있고 살아 있는 듯하여 몰입감이 대단했습니다. 오랜만에 책을 읽고 싶어 일찍 일어나고 싶어질 지경이었네요.
읽는 내내 피에트라 달바의 전경과 미모와 비올라의 우정에 빠졌고 한동안은 헤어나오지 못할 듯 합니다.
일 프란체제. 사람들은 내게 그보다 더 고약한 별명도 붙여줬지만, 난 그 별명이 늘 증오스러웠다. 나의 모든 기쁨, 나의 모든 비극은 이탈리아에서부터 온다. 아름다움이 늘 궁지에 몰리는 땅에서 내가 왔다. 아름다움이 잠깐만이라도 눈을붙여 봐라. 추함이 가차 없이 그 목을 따리라. 여기에서는 천재들이 잡초처럼 돋아난다. 한쪽에서 살인을 저지르듯 다른쪽에서는 노래하고, 한쪽에서 사기를 치듯 다른 쪽에서는 그림을 그리고, 지나가던 개는 성당 담벼락에 오줌을 갈긴다.
우리는 이탈리아어로 말하고 이탈리아 음식을 먹었다. 우리는 이탈리아인으로서 사고했는데, 그러니까 툭하면 죽음을 들먹이는 과장된 언사를 사용하고, 걸핏하면 눈물을 펑펑 쏟고, 말을 하면서 두 손을 가만히 놔두는 법이 거의 없었다. 우리는 소금을 건네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저주를 뱉었다. 우리가족은 법석을 떠는 서커스단 같았고, 우리는 그걸 자랑스러워했다.
이 세계는 이미 죽었다. 나의 복수는 20세기의 것, 나의 복수는 현대적이리라. 나는 나를 내몰았던 사람들의 식탁에 함께 앉으리라. 나는 그들과 동등한자가 되리라. 가능하다면, 그들을 넘어서리라. 나의 복수는그들을 살해하는 데 있지 않으리라. 그것은 그들에게 미소를짓는 데, 오늘 그들이 내게 보여 줬던 내려다보는 듯한 너그러운 미소를 짓는 데 있으리라.
‘저 애는 너무 작고 저토록 연약한데, 어떻게 곰을 품고 있을 수 있겠어? ’나는 비올라를 잘 알았고, 나는 그 애가 곰 여러 마리, 동물원 전체, 서커스단과 그 천막까지, 그리고화약고도, 여러 대의 비행기도, 넓은 바다와 산도 전부 다 품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비올라는 우리의 삶을 만드는 조물주였고, 손가락 한 번 튕기거나 미소 한 번 짓는 것으로우리의 삶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였다.
「아니야, 미모, 나는 네게 한계가 없다는 걸 보여 주고 싶었어. 위로도 아래로도, 큰 걸로도 작은 걸로도 모든 경계는 만들어 낸 거야. 그 점을 이해한 사람들은 그걸, 그런 경계를 만들어 낸 사람들을 몹시 불편하게 하고, 나아가 그걸 믿는 사람들은 더욱더 불편하게 만들기 마련이야. 그러니까 거의 모두가 불편해진다고 할 수 있어. 마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하는지 알아. 내 가족조차 나를 이상하게 여기는 것도알고 난 상관 안 해. 모두가 네게 반대하면 네가 올바른 길에들어선 것임을 알게 될 거야.」
나는 우뚝 선 여자다, 당신들이 일으킨 화염 한가운데에 나는우뚝 선 여자다, 내가 보이는가, 당신들의 화형대, 처형대에 올라간 내가 당신들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내가 나는 우뚝 선 여자다. 당신들의 야유가 쏟아질 때 울리라고 생각했는가, 연기처럼 자욱하게 피어나는/ 당신들의 비겁함, 당신들의 화형대, 처형대, 당신들의 지목하는 손가락./놀랍지 않은가 /춤추고 로켓을 발명하고 당신들을 돌보고 싶은욕구가 / 그런데도 나를 불태우려나, 나를 십자가에 못 박으려나 /검은 고양이와 구속복, 찢긴 나, 당신들은 내가 미쳤다고, 조금은 마녀 같다고, 혹은 그 둘 다라고 말하리라 / 나는 사과를 깨물었다,나는 계속 그걸 깨물 테다 각오하라 / 나는 우뚝 선 여자다, 나는무릎 꿇지 않는다./나는 당신들이 일으킨 전쟁 한복판에 우뚝 선 여자다 / 나는 당신들 주위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릴 때 당신들이 부르는 여자다/하지만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자마자 당신들이 불태울 여자이며 혹시라도 모든 것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을 내가 보게 될까봐 / 당신들은 나를 재로 만들어 사방에 뿌려 버리리라, 아니, 당신들의 불은 뜨겁지 않고 아무것도 태우지 못하니 당신들은 그저 그런다고 생각할 뿐 / 나는 우뚝 선 여자다, 나는 당신들만큼이나 귀하다./아직 태어나지 않은 네게, 상처를 받는 것이 / 예기치 못한 일이 닥쳐 무너졌다 다시 일어서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르는 네게/그들은 포기하라고, 잠자라고, 누우라고 요구할 텐데 / 네 입을다물게 하고 널 구슬리고 네 무장을 해제하려고 들 텐데 / 나는 우리보다 앞섰던 다른 많은 여자들처럼 우뚝 선 여자다/나는 우뚝선 여자다, 그리고 너 역시 그러리라.
악이 지나가도 모른 척 눈감았다. 나중에 가서야 징징거리며 자신들은 아무 짓도 저지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그 모든 사람들보다 내가 더 낫다면, 그건 바로내가 징징거리지 않았다는 것, 그 어떤 변명도 내세우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엠마누엘레는 그저 엠마누엘레가 아니었다. 엠마누엘레는 하나의 관념이었다. 조금은 나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어긋남, 비정상이랄까. 혹은 아직 도래한 적 없는 정상성의 표현, 다른 세상을 알리는 선구자로서, 그 세상에서는 엠마누엘레와 같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내고 그들이 저지르는나쁜 짓이라고는 지나치게 열렬하게 상대방을 끌어안는 것뿐이다. 그리고 하나의 관념을 죽이지 못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따라서 그들은 엠마누엘레를 죽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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