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삶의 발명 - 당신은 어떤 이야기의 일부가 되겠습니까
정혜윤 지음 / 위고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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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상은 자신의 ‘앎‘이 틀린 것이었음을 아는 데 너무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이 짧은 일생 동안 무엇을했는가. 완전히 나를 잊고 있었다. 모든 것이 흉내와 허망. 왜 좀 더 잘 살지 않았던가? 자신의것이라고 할 만한 삶을 살았다면 좋았을 것을. 친구야! 아우야! 자신의 지혜와 사상을 가져라. 나는 지금 죽음을 앞에 두고 나의 것이 거의 없다는 것에 소스라치게 놀란다.

유족들은 한결같이 "내가 이렇게 슬프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게 너무 많아요"라고 말한다.

나는 그들은 사랑하는 가족은 구하지 못했지만그 사랑하는 가족이 살았을수도 있는 세상의 많은생명을 이미 구했고 또 구하려고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우리는 자신이 누구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 전혀 모른다. 누가우리를 더 살아 있게 하려고 하는지 모른다. 충분히존중받지도, 충분히 위로받지도 못한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모른다.

작가들은 나에게 새‘눈’과 새 ‘목소리’를 준다.

부자들은 일찌감치 배를 구해 임박한 파국을 피했을 것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그냥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려고 했을 것이고 사랑과 품위가 뭔지 아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서로를 돌보려고 했을것이다.

다정함도 온기도 사랑도 책임감도 없이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각자의 어두운 기억이 두텁게 쌓여가는 이 세상에서, 결국은 자신도 해치고 남도 해치는 에너지가 발산되는 이세상에서, 누군가 ‘우리모두의 것인 삶‘에 대해 뭐라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감동적이다. 그래서 다른 생명에 대한 관심 때문에 그 전에 하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게 되는 포기와 자제와 하지않음 쪽으로의 변화를 살아내는, 그렇게 미래 세계의 일부가 되려는 사람들이 내 눈에는 경이로워 보인다. 지구의 여러 문제에 우선 자신의 삶으로 대답하려고 하기 때문에, 스스로 자제하고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는 삶을 자유롭게 선택할 줄 알기 때문에. 꼭그래야 할 이유가 없는데도.

자이로의 삶은 거북이의 삶 속에, 친구들의 삶 속에녹아들었다. 혹시, 어쩌면 나의 삶에도? 그렇다. 나는 이 이야기 전에는 거북이 알과 아무런 상관이 없이 살았지만 거북이 알 이야기가 삶에 들어오면서세계가 또 달라 보였고 거북이 알을 걱정하는 사람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게 되었다. 전에 없던새로운 정체성을 주는 것이야말로 이야기가 주는가장 큰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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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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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실로 가는 거야." 아다가 설명해준다. "루벤스 전시실의 초인종이 붙어 있는 문 뒤에있어." 우리 둘 다 그 아이러니를놓치지않는다. 탁트인 이쪽 바깥에서 걸작들과 온종일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은 오히려 우리 같은 싸구려 근무복을 입은 사람들이었다.

아버지는 언제나 자신의 재능은 재능 자체가 아니라 즐거움에서 비롯한 부지런함이라고 말했다.

시각 예술은그 획들을 화면에 잡아두며 끝나지 않는 공연을 펼친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너그럽게 느껴진다.

오랫동안 보고 있어도 그림은 점차 풍성해질뿐 결코 끝나지않는다.

때때로 우리에게는 멈춰 서서 무언가를 흠모할 명분이 필요하다. 예술작품은 바로 그것을 허락한다.

우리는 소유, 이를테면 주머니 에 넣어갈 수 있는 무언가를 원한다. 하지만 아름다 운 것은 주머니에 들어가지 않고,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것 중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소유할 수 있다 면?
이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전시실 안의 낯선 사람들이 엄청나게 아름다워 보인다. 선한 얼굴, 매끄러운 걸음걸이, 감정의 높낮이, 생생한 표정들. 그들은 어머니의 과거를 닮은 딸이고, 아들의 미래를 닮은 아버지다. 그들은 어리고, 늙고, 청춘이고, 시들어가고, 모든 면에서 실존한다. 나는 눈을 관찰 도구로 삼기 위해 부릅뜬다. 눈이 연필이고 마음은 공책이다. 이런 일에 그다지 능숙하지 않다는 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사람들이 입고 돌아다니는 옷과,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손을 잡거나 혹은 잡지 않는 몸짓에서, 머리를 다듬고, 면도를 하고, 내 눈을 마주하거나 피하고, 얼굴과 자세에서 기쁨이나 조급함, 지루함이나 산만함을 보이는 방식들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내가 보는 대부분의 것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확실한 의미를 찾 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그저 이 장면에 깃 든 눈부심과 반짝임을 바라보며 기쁨을 만끽한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 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 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이유를 덧 붙인다.
사실 내 직업을 좋아할 뿐 아니라 내가 그 일을 좋아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에 화가 난다. 이렇게 평화적이고 정직한 일에서 흠을 찾아내는 것자체가 무례하고 바보 같으며, 심지어 배신 행위라는 생각까지 든다.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쪽을 택할 것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나무 바닥과 천 년 묵은 예술품에 감사하는 마음, 뭔가를 팔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구덩이를 파거나, 포스기를 두드리는 등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는 쪽을 택할 것이다.

"있잖아, 정말 나쁘지않은 직업이야. 발은 좀아프지만 그것 말고는 아무 데도 아프지 않잖아.‘

그렇다면 나는 왜 내게 영혼을 준 것에 대해 하늘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는가? 바로 그 영혼을고통스럽게 하는 슬픔의 원천을 하늘이 내 안에만들었는데도.

많은 경우 예술은 우리가 세상이 그대로 멈춰 섰으면 하는 순간에서 비롯한다. 너무도 아름답거나, 진실되거나, 장엄하거나, 슬픈 나머지 삶을 계속하면서는 그냥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순간 말이다.
예술가들은 그 덧없는 순간들을 기록해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보이도록 한다. 그들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것들은 덧없이 흘러가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듭하도록 계속 아름답고, 진실되고, 장엄하고, 슬프고, 기쁜 것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고 믿게 해준다.
그리고 이곳 메트에 유화물감으로 그려지고, 대리석에 새겨지고, 퀼트로 바느질된 그 증거물들이 있 다.
세상이 이토록 형형색색으로 화려하고 충만하며, 그런 세상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며, 사람들이 아름다운 것들을 정성을 다해 만들려는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예술은 평범한 것과 신비로움 양쪽 모두에 관한 것이 어서 우리에게 뻔한 것들, 간과하고 지나간 것들을 돌아보도록 일깨워준다. 예술이 있는 곳에서 보낼 수 있었던 모든 시간에 고마운 마음이다. 나는 다시 이곳에 돌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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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정체성도 결국에는 그런 것이 아닐까. 하나의 확 고한 상을 만들어 거기에 스스로를 결박하는 순간 ‘나‘라는 존재의 색채는 퇴색해 버린다. 변화와 진보의 가능성은 줄어들고, 나와 나를 둘러싼 세계 사이의 불필요한 충돌만 늘어난다.
얇고 정체되어 있으며 쉽게 상처받는 인간이 되고 만다. 연극 속 배우가 다양한 역할을 기꺼이 받아들이듯, 삶이라는 연극에 출연하는 개인 또한 자신을 나타내는 다양한 모습들을 긍정할 수 있다면 어떨까. 지적이고, 멍청하고, 아름답고, 추하고, 강하고, 유약하고, 성급하고, 여유롭고, 대담하고, 소심한 수없이 다양한 ‘초상‘들. 이 모든 모습들이 그냥 ‘나‘라는 개념 으로 덤덤히 수렴할 때, 개인의 존재는 훨씬 더 두텁고 풍성하며 성숙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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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현이 도움을 요청하는 전략은 놀라웠다. 단순히 필수적인 생존 자원을 끌어오는 수준에 머물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 확하게 파악하려 했고 자신의 사회적 욕망을 긍정할 줄 알았다.‘생 존하는 나‘를 넘어서 ‘살아서 욕망하는 나, ‘사회적 존재로서 의미 있 게 살아가는 나‘를 추구할 줄 알았고 이를 실현시키고자 하는 열망과 에너지가 풍부했다. ‘빈곤‘은 그저 나를 둘러싼 여러 장애물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개인의 부족함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인식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나는 이 지점이 지현의 가장 강인한 면이라고 생각했다. 풍족한 환경 속에서도 사람들은 사회적 압력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파악하기 어려운데, 지현은 성장기에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꿋꿋하고 성숙하게 ‘살아서 욕망하는 나(자아) 발견하기‘를 잘 해내고 있었다.

아이들이 학원에, 게임에, 스마트폰에 들이는 시간도 있어야겠지만, 목적 없이 허송세월을 할 필요가 있다. 당장은 쓸모없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이러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과 세상과 미래에 대해 고민해보는 기회를 갖기 때문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더라도 자기 머리로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충분히 갖지 않으면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 자신의 본모습을 찾기 어려워진다.
그런 점에서 보면 연우가 다른 청소년들과 달랐던 점은 누구보다도 사색하는 시간을 잘 영위했다는 것이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가족과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에 대해 조용히 생각했고,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떤 부분이 인생에서 후회되나,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를 깊이 고민했다. 연우가 디자인 평면도를 그리는 일을 해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라는 것을 알아낸 것도 이런 시간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하는 일을 발견하자 주도적이고 계획적으로 자기 구상을 실행으로 옮겼는데, 나는 연우가 보여준 이 러한 주도성과 자율성이 사색하는 시간을 통해 형성된 자아정체감 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청소년들에게는 홀로 충분한 시 간을 갖고 생각해보고 선택하고 결정하고,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 서는 경험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하다.

나는 지현과 연우, 우빈을 만나고 그 외에도 수많은 청소년을 만나면서 자아정체감을 안정적으로 형성하고 있는 친구들이 진로 탐색에도 유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진로 선택의 고민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바, 살고 싶은 삶,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를 정확하게 알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 활동은 뚜렷한 진로 전망이 생기면 훨씬 긍정적인 패턴을 보였다. 즉, 자신이 원하는 진로를 향해 관심이 집중되면 이전의 부정적인 생각이나 관계는 자연스럽게 단절이 되었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노력이 쏟아졌다.
자신의 불우한 환경과 조건에 대해 외부로 그 탓을 돌리거나 세상의 평가에 쉽사리 휘둘리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전에는 발견하지 못했던 적극성을 가지고 현실에 대한 객관적 평가, 진로를 위한 정보 탐색, 도움이 될 만한 사회적 관계 만들기 등을 행동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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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독서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있어야 한다‘라는 다섯 가지의 건강성을 요구하는 독서 문화의 마치스모‘를 증오한다.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종이 냄새가‘,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왼손에서 점점 줄어드는 남은 페이지의 긴장감이‘라고 문화적 향기 넘치는 표현을 줄줄 내비치기만 하면 되는 비장애인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 ‘출판계는 비장애인 우월주의 (마치스모)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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