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더라도 호기심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가 알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 대하여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포기하는 사람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까, 남은 인생을 어떻게 꾸려 가야 할까, 여기서 뭘 더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까? 그 와중에 내가 나이 먹은 만큼 부모도 나이 들어 팔순을 앞둔 노인이 되어 있다. 안쓰러운 마음과 책임감이 이리저리 섞이니 눈만 마주쳐도 가슴이 덜컥할 만치 부담스럽다. 이 모든 게 한 번에 들이닥치니 안팎으로 탈탈 털린다. 그야말로 중년의 대위기다.
유교 국가의 여성답게 조용히 숨어서 끙끙 앓는 건 그만두자.
젊었을 적의 내 몸은 나하고 가장 친하고 만만한 벗이더니 나이 들면서 차차 내 몸은 나에게 삐치기 시작했고, 늘그막의 내 몸은 내가 한평생 모시고 길들여 온, 나의 가장 무서운 상전이 되었다. ●박완서, 『호미』(열림원, 2009)
어느 날의 나는 너무 나이 먹은 것만 같은데, 어느 날의 나는 아직 너무 젊은 것 같다. 모순덩어리다. 무엇도 순순히 포기할 준비가 되지 않아서일 것이다. 아마 죽을 때까지도 그렇겠지. 단 하루를 살아도 잘 살고 싶은 법, 남은 삶이 수십 년이나 된다면 지금 여기서 놓아 버릴 순 없다.
나이가 가늠되지 않을 정도의 동안과 몸매 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니다. 내 소망은 되도록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나이 드는 것이다. 보기에도 청결하고 실제로도 청결한 사람, 자신과 주변을 성실하게 관리할 수 있는 사람, 좋은 낯으로 인사를 건네는 사람, 쓰레기를 아무 데나 버리지 않고 함부로 반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나이 드는 것이다.
바른 자세를 취하는 것도, 밝은 표정을 짓는 것도, 청결을 유지하는 것도 모두 에너지가 충분해야 가능하다. 나는 과연 언제까지 해낼 수 있을까?
갱년기의 갱은 한자로 ‘更’이라고 쓴다. 운전면허를 갱신한다고 할 때의 갱, 새롭게 바뀐다는 의미다. 어차피 통과해야만 하는 길고 어두운 터널 같은 시기라면, 이왕 이렇게 된 거 팔뚝 걷어붙이고 쾌적하게 보수해야지. 전구도 새것으로 갈고, 반짝반짝하게 청소도 할 테다. 나를 돌봐 주고 응원하고, 제대로 갱신해 나갈 테다. 노화의 증거라고만 생각했던 완경과 갱년기는, 나 하기에 따라 오히려 성장기가 될 수도 있다.
예전에 다 해본 거라며 심드렁하게 바라만 보던 것에 다시 도전하기도 하고, 아예 처음인 일에도 과감히 몸을 던져봐야지. 뭐든 좋다. 단 하나의 정답을 찾으려는 게 아니라 시도하는 일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으려 한다. 시크한 고인 물보다 주책맞은 호기심쟁이가 되는 쪽을 선택하겠다. 냉소冷笑는 말 그대로 차가운 웃음일 뿐이다. 차가운 태도로 웃고 말면 편하고 쉬울 수는 있어도 무언가를 바꿀 힘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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