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이중 작가 초롱
이미상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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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쪽지를 뒤에 감춘 단정한 손.
사실 책의 내용도, 작가의 이력도 전혀 모르고 표지에 반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 내용은 역시 몰래 받은 쪽지처럼 깜짝 놀라 주위를 두리번 거리게 되는 내용이었지요. 이야기 자체로도 무척이나 흥미롭고 그것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문체는 서늘하고 뜨겁고 날카롭다못해 츄츄로(책을 읽으시면 알게 되는 이름입니다)한방 맞을 듯한 충격이 있습니다.
앞으로 이미상작가님의 다른 책도 기다리겠습니다.

규가 보기에 반말은 관계를 무리하게 좁혔다. 사람들은 예의가 없어서반말하는 게 아니라 반말을 하고부터 예의를 잊었다.
멀리서 정중히 목인사를 하던 사람도 남의 콧구멍에손가락을 넣게 되는 것이다. 묻지 말아야 할 것을 묻고바라면 안 될 것을 바랐다. 그러니까 말을 놓지 않았다

예전부터 초롱은 궁금했다. 삶에 어떤 위기가 닥쳐야 소극성에서 벗어날수 있을까? 과연 나라는 사람이 설사가 나온다고 화장실에서 앞사람을 밀칠 수 있을까? 배우자의 불륜 상대에게 물을 끼얹거나, 의료 사고로 가족을 죽게 한 병원앞에서 일인 시위를 할 수 있을까? 자의식을 이기는 시련이란 무엇일까?

"작년에 자기랑 나랑 인도 다녀왔잖아. 그게 얼마나큰 특권인지 몰라? 안전 이슈에서 남자는 무조건 입을닫아야 해. 그럼 너는 이렇게 말하겠지. 우리 다 그 자리에 있지 않았냐고. 우리 다 평대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겁에 질리지않느냐고. 맞아, 무서워. 너희가 문을 못 닫게 해서 더 무섭고 더 미치겠어. 하지만 여자들의 두려움은 우리의 것과 질적으로 달라." 안파 쪽 남자가 잠시 멈춰, 여성동지들의 얼굴을 벅찬 마음으로둘러봤다.
"우리의 공포는 여기, 이 사무실에 국한돼. 우리는사무실을 떠나며 공포도 두고 가. 하지만 여자들은 공포를 간이나 췌장처럼 몸에 지니고 다녀. 떨구고 갈 수없어. 어디로 갈 수 있겠어? 우린 사무실을 떠나면 그만이지만 여자들에게 사무실 밖은 사무실 밖 나름의수천 가지 평대가 피어나는 또다른 사무실인걸. 여자들의 두려움에는 역사가 있어. 켜켜이 쌓인, 뭐랄까, 지층적 두려움이라고나 할까? 우리의 얇고 호들갑스러운 두려움과는 완전히 다르다고."

나도일하고 있으니까. 처지 노동중이니까. 존재 노동중이니까. 저 사람들, 내 덕에 달콤한 단차를 느낄 수 있어.
베풀 수 있어. 언제나 베푸는 쪽이 베풀어짐을 당하는쪽보다 나은 법이지. 누군가 또 한 병의 - 수진이 사지않은 와인을 땄다. 나는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누구에게도 아무것에도 고마워하지 않을 거야…………

돈빵을 못 하면 몸빵을 하세요,아, 미운 사람, 잽!
잽! 몸빵을 못 하면 맘빵을 하세요, 아, 미운 사람,원!
투! 미운 사람, 아, 미운 사람. 얄미운 사람들.
수진은 안평대전을 뒤집어놓을 수도 있었다. 안전과평등을 걸고 싸우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럴 수 있었다.
당신들, 근데 왜 나 설거지 못 하게 해? 설거지 당번은정하면서 왜 어미새 당번은 안 정해? 돈빵이 몸빵보다, 몸빵이 마음빵보다 쉽다는 걸 왜 몰라? 감정 노동이, 마음으로 때우는 것이 제일 어렵다는 거, 몰라? 아님 모르고 싶어? 왜 옆에 안 앉았었어? 웃지 마. 그치?맞지? 너도 사실 무서웠지? 안쓰러워하지 마.신나지 마……

수진과 얼굴들이 육교에서 뛰어내려와 사무실을 향해 달린다. 걷는다. 점점 느려진다. 셋 다 죽도록 피곤하다. 얼굴들이 포대 자루처럼 질질 끌려온다. 길바닥에 물똥이 길게 이어진다. 사무실은 언제나 아득히 멀다. 수진은 믿을 수 없다. 오늘 집을 나와 한 일이 이십분 동안 지하철을 탄 게 다라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수 없다.

그러나 나는 의구심이 든다. MSG는 처음부터 남자를 죽일 생각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나, 남자 죽일 거요, 말만 해놓고 자신도 자신의 맹세를 믿지 못한 것이아닐까? 봤죠? 나, 하긴 했어요, 결과야 어찌되었든 간에…… 식의 소시민적 예의바름! 당신은 그런 부류가되고 싶은가? 남자를 죽이기로 해놓고 여자를 죽이는,
아버지를 때리고 싶지만 어머니를 패는, 영원히 하향지원하는, 제발,
쥐겹다!
쥐꼬리만한 야심들!

신실한 벗으로서당신께 요청하나니, 이 말을 기억할 것.

적의 수준이 곧 나의 수준이다.

"너희는 클 거야. 자랄 거야. 그럼 너희도 다른 사람의 가슴을 찢어놓을 수 있어. When I was a child, I used to talk as a child, think as a child, reason as achild; when I became a man, I put aside childish things. 어릴 적의 일은 뒤로하고. 우리는 죽는 날까지죄의 항상성을 향해 나아간단다."

당신도 말의 시간차공격을 당하는가? 나는 요새 자주 말의 시간차공격을 당한다. 오래전에 들은 별것 아닌 말이 멀쩡히 몸을 돌아다니다 갑자기 내장을 찢는다. 그러면 나는 시간차공격을 당한 배구 선수처럼 속수무책이다. 상대편 공격수가 뛰어서 나도 뛰었는데,
어느새 공격수는 사라지고 발이 땅에 닿는 순간, 다음공격수가 스파이크를 때려넣는 것 같다. 말의 강타. 나는 그저 당할 뿐이다. 도끼날 아래 장작처럼. 게다가배구와 달리 말의 이차 공격은 수년, 심지어 수십 년후에 비로소 시작되기도 한다.
처음에는 남이 나에게 했던 말 때문에 잠을 이루지못했다. 무색무취였던 말이 뒤늦게 악취를 풍겨 때늦은 앙심을 품게 했다. 그러다 다행히 계속됐다가는유치원 시절 문방구 아주머니를 수소문해 칼을 들고찾아가게 된다-점차 내가 남에게 했던 말 때문에 괴롭게 되었다.
그러나 시간은 오묘하다. 오묘하게 치사한 것이다.
분명 내가 남에게 한 악담인데 마치 내가 들은 악담처럼 느껴진다. 과거로 돌아가 이번에는 내가 상대가 되어, 어린 내가 하는 나쁜 말을 꼼짝 못하고 듣는 것이다. 내가 한 말에 나 자신이 상처받는 격으로-오, 몹쓸중년이여, 거지같은 회상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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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비상문 테이크아웃 10
최진영 지음, 변영근 그림 / 미메시스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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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잘한다는 건, 이를테면 지도를 볼 줄 알고 지름길을 안다는 말이다. 그건타고나는 재능이다. 나는 내비게이션이 가르쳐 주는 대로만움직이는 사람이고, 길을 가르쳐 줘도 알아듣지 못하고 이상한 곳에서 헤매는 사람이다. 동생은 공부를 잘했다. 지도를 볼줄 알았고 지름길을……… 그래서였나? 지름길이었던가?

어차피 다 비슷하게 살잖아. 의사든 검사든 교수든 회사원이든 부당하게 쪼이고 눈치 보고 라인 타고 재수 없으면 뒤집어쓰고 그런 거잖아. 제일 윗대가리가 아니면 소용없는데 윗대가리는 애초에 윗대가리로 태어나는 거잖아. 거기까지 가려면 온갖 더럽고 추악한 짓을 다 해야 하잖아. 형은 성공이 좋은말 같아?

최진영에게 <소설>은 무엇인가?
잘하고 싶은 것. 나는 욕망이 별로 없는 사람인데 소설은 잘 쓰고 싶다. 소설을 생물이라고 가정한다면, 소설에게 잘 보이고싶다. 소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 하지만 꽤 실망시켰다. 그런데도 아직 곁에 있다니 고마울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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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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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내가 아는 한 단 한순간도 유물론자가 아닌 적이 없었다. 먼지에서 시작된 생명은 땅을 살찌우는 한줌의 거름으로 돌아가는 법, 이것이 유물론자아버지의 올곧은 철학이었다. 쓸쓸한 철학이었다. 그 쓸쓸함을 견디기 어려워 사람들은 영혼의 존재를, 사후의세계를 창조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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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파친코 2 - 개정판 파친코 2
이민진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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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 시큰둥하기 읽은 책이 유명배급사를 통해 드라마화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드라마도 챙겨 보았으나 역시 별 감동없이 지나가버렸습니다. 하지만 그 인기의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아 다시 한 번 읽어 보고 싶은 마음을 만들었지요.
아! 이제 알았습니다. 이 이야기가 왜 대단한 이야기인지, 어떻게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는지 말입니다.
한국의 일제식민지-6.2전쟁-민주화의 격동기를 살아내는 한 가족의 이야기에는 그저 그들의 삶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가도 이념에 사로잡힌 정치인도 민주화투쟁열사도 등장하지 않은 채 그 시대의 무게를 견디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가족들이야말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닐까요? 이 사회를 구성하고 이 나라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위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라도 이 이야기의 가치를 알게 되어 다행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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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가재가 노래하는 곳
델리아 오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살림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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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는 자기 발치를 내려다보았다. 왜 상처받은 사람들이, 아직도 피 흘리고 있는 사람들이, 용서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는 걸까? 카야는 대답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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