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빵충 사육 준수 사항 ㅣ 안전가옥 오리지널 48
김혜영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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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박정민 배우님의 어록을 따라하자면 “넷플릭스 왜 보나? ‘빵충 사육 준수 사항‘읽으면 되지”라는 말로 설명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상하게도 인간은 그런 짐승들조차 결국 통제 가능한 존재로 여긴다. 철창 너머에 있다는 이유로, 혹은 오랫동안 그래왔다는 이유로. 사람을 찢어발기는 곰도 귀엽게 포장된 인형이 되곤 하니까. 위험은 언제나 매뉴얼로 만들어 관리할 수 있는 것이라고, 안전한 범주에 모든 것을 가두고는 스스로 안도한다. 우리가 길들이지 못할 것은 없다는 환상, 우리가 만든 것은 반드시 우리 편일 것이라는 기만, 그리고 그 모든 착각이 아무런 경고도 없이 무너지는 순간을 나는 보고 말았다.

"피해자인 척, 불쌍한 척, 억울한 척하면 니가 한 좆같은 선택들은 뭐, 갑자기 박수 받을 일이 되는 거냐고. 이 비겁한 새끼야."

빵충은 시스템이 허락한 형태로만 존재를 허용받은 사육종이다. 시스템의 실패작들이 돌아갈 야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폐기되는 미래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입맛대로 사는 것을 거부하는 순간, 비로소 야생이 만들어지는 것 아닐까. 나는 비위를 맞춰야지만 사랑받는 삶이 싫었다. 그 견딜 수 없는 마음을 붙잡으며 이 책을 썼다. 사육종으로 스스로를 명명했던 존재가 야생종으로 탈피하는 순간을 목격할 수 있길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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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들판 - 침묵은 어떻게 역사를 드러내는가
마거릿 주혜 리 지음, 장상미 옮김 / 한겨레출판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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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탄 항공편은 급유를 위해 도쿄 하네다 공항을경유했다. 그런데 다른 탑승객이 모두 내리는데도 할머니는 좌석을 떠나지 않으려 했다. 청소하는 직원들은 빳빳한 한복을입은 채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여성 주변을 둘러가며 일해야했다.
나중에 할머니는 아들 부부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찌 일본 땅에 발을 딛겠니."

"서울에서 살면서 재봉 가게를 여는 것은 그만두기로 했다. 네가 아파서 일을 못 하니 가게를 열 형편이 안 되는구나.
네 이모나 나나 둘 다 남편이 없으니 그 일을 꼭 같이하고 싶었•는데, 그럴 운명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내가 저주받은 게지. 네아비였던 그 남자에게 말이야. 내 인생을 망쳐놨어. 너도 알다시피, 집안을 건사하는 일도 나한테 떠맡기고 너희도 나 혼자키우게 했잖니."
할머니는 아들의 눈을 피하며 계속 말을 잇는다.
"왜 하필 지금 병이 났다니. 네가 새 재봉틀을 사줬고 가게자리도 계약하려던 참인데. 네 아버지가 감옥에 들어가고 서울에 처음 가본 뒤로 서울 사는 게 내 꿈이었다. 너와 네 동생 모두 서울에서 학교 다닐 수 있도록 전쟁 터지기 직전에 돌아가려고 했어. 네 아버지가 내 인생을 망치더니 이제는 네가 망치는구나. 너도 결핵을 못 이기고 날 떠날 테지."
은설이 답하기 전에 저녁 식사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린다.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 없다. 어머니가 이렇게까지 괴로워하며 무너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자신에게, 또 한 번도 본적 없는 아버지에게 이토록 분노하는 모습을.
할머니가 아들에게 말한다. "가야 할 시간이구나."

아직 공주에 있을 적에 내가 네 할아버지 더러 왜 감옥에있을 때에 관해서는 이야기를 안 하냐고 물었어. 그랬더니이러더구나. "그 괴로운 일을 내가 왜 이야기하고 싶겠소?"

나는 너희가 알았으면 해. 너희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 될지는과거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그 연결고리는 너희 증조할아버지의 이상주의와 증조할머니의 투지와 생존 의지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과 애정에서, 어머니의 탐구와 아버지의 헌신에서 비롯했다는 것을.
너희에게 우리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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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은 흐른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500
이미륵 지음, 안삼환 옮김 / 민음사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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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어머니는 장차 자신이 아들을 낳지 못한 채 늙어 가야 할지도 모른다는 큰 걱정 속에서 살고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소원을 대신 빌어 주는 그 여인이우리 집에 와서 부처님의 한 제자인 미륵불께 49일간의 큰 불공을 드렸다. 나중에 나는 미륵불의 이름을 따서 미륵으로 불리게 되었다.

이제 나는 아주 자랑스럽게 세 번째 잔을 비웠다. 나는 어른이 된 기분이었다. 나는 아주 현명하시고 그렇게도 이야기를 잘하실 줄 아는 아버지의 친구일 수 있었다. "아, 아빠, 아니, 아버지! 난 아버지라고 불러야 합니다. 시인에게는 술이 없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어머니가 아신다면 얼마나 좋겠어요!"
"정말 그렇단다!"라고 아버지가 말씀하셨는데, 어머니는 두눈을 지긋이 껌뻑이시면서 옆으로 나를 바라보셨다. 나는 어머니가 그때 나를 기특하게 생각하는 것인지, 혹은 나를 비웃고 계시는지 잘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건 내게는 아무래도,정말 아무래도 전혀 상관없었다. 달은 아주 밝게 비치고 있었고, 복숭아들은 향기를 내뿜고 있었으며, 나는 술잔 앞에 앉아 내 아버지의 친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나를 다시 한번 보시지도 않은 채 이미 가 버리고안 계셨다. 교장실에는 더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는나를 내 운명에 맡기신 것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지금은 나쁜 시대가 왔다고 한다. 그럴 때 넌 말해라, 나쁜 시대가 아니라. 그것은 지금 막 시작한 새 시대일 뿐이라고. 눈이 많이 내린 긴 겨울 뒤에 찾아오는 봄과 비슷하다고. 진달래가 피고 빼꾹새가 울지. 그렇게 나는 우리의 시대를 느끼는 거야."

"다른 시대가 도래한 거야."라고 내가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가 어두운 잠을 자고 나니 더 밝은 시대가 온 거지. 새로운바람이 잠자던 우리를 깨웠어. 긴 겨울이 지나고 지금은 봄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말하고 있어."

우리는 만족해서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날 저녁을 아름다웠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작은 민족이고 다만 작은 나라라는 것은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우리가 지혜로운 민족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조상들이 현명했기 때문에, 크고 장대한 중국은 한때 우리나라를 ‘소중화(小中華)‘라고 칭했다. 그리고 우리 말고 누가 일본에게 문자와 철학, 종교와 건축술 등 온갖 것들을 전해 주었던가! 새로운 문화를 수입하는 데에는 우리가 일본보다 약간 늦었다, 그러나그건 우리한테 대수로운 일이 못 된다. 목사 자신이 말했듯이,
우리는 정말 현명한 민족이다. 이런 사실이 내게는 매우 고무적으로 느껴졌다.
그날 저녁은 내게 정말 아름다웠다.

"미륵!" 하고 그가 한번은 말했다. "넌 정말 서울로 가서 대학에 다녀야겠니?"
"응, 입학시험에 합격하면, 난 그렇게 할 거야."
• "네가 여기 살면서 우리 둘이 늘 이렇게 함께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면, 정말 아름답지 않겠어? 너는 공부할 필요도, 걱정할 필요도 없고, 다만 한 행복한 인간이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기만 하면 된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넌 친구들을 오게할 수 있고, 그들과 하늘에 대해, 땅에 대해, 이 세상과 사람들의 마음에 대해 한담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넌 산중에 조그만 오막살이를 짓고 산여울의 조잘거림에 귀를 기울일 수 있고, 흘러가는 구름들을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네 어머니께서 행복해하실 것이고, 너도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며, 난 언제나 네 곁에 머물 수 있을 것이다."
"아니야, 난 대학에 가야 해."
"넌 참 이상하구나." 라고 그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우리는 마지막 저녁을 시내를 거닐며 보내기로 결정했는데,
지금까지 우리는 그런 시도를 거의 해 보지 않았다. 우리는동쪽 궁궐인 창덕궁의 길고 이끼가 낀 긴 담장을 따라 어떤곳은 오르막이고 어떤 곳은 내리막인 조용한 옛길을 걸었다.
이 궁궐 담 뒤에는 시종들과 궁녀들을 합하면 아직 수백 명의인원에 달할 옛 왕가의 후손들이 갇혀 살고 있을 텐데도 항상조용했다. 내가 이 곁을 지나갈 때마다 내 발걸음은 보다 망설이면서 보다 조심스러워지곤 했다. 나는 아마도 그 고귀한 가문의 목소리라도 듣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건 허사였다. 아무런 외침도, 그 어떤 대화나 그 어떤 발자국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자랑스러운 오백 년 왕조의 후손들은 아주 조용해져 있었다.

남쪽에서는, 일본인들이 사는 새 구역에서는 아직도 수많은 빛이 번쩍이고 있었으며, 북쪽에서는 옛 조선이 어두움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삼각산 위에서는 흑단처럼 새까만 밤하늘이 펼쳐져 있었고, 옛 창덕궁은 과거 속으로 침묵해 들어가고 있었다.

는 길까지 나를 배웅해 주셨다. "너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어머니는, 우리 둘이 줄곧 침묵을 지키며 걸어온뒤에, 말씀하셨다. "자주 겁을 먹기도 했지. 하지만, 넌 네 갈길을 한 번도 빗나가지 않았어. 나는 너를 깊이 신뢰한다. 부디 용기를 내렴! 너는 어렵잖게 국경을 넘어갈 게다. 그리고,
마침내 너는 유럽으로도 가게 될 것이다. 이 어미 걱정은 하지말아라! 난 네가 다시 여기 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릴 것이다.
세월은 정말 아주 빨리 지나간단다. 그러나 우리가 다시 보지•못한다 하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라. 넌 내 인생에서 내게 많은, 대단히 많은 기쁨을 선사해 주었다. 자, 내 아들, 이제 혼자 계속 가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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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미안하지만 싫습니다 - 무례한 세상에 보내는 깍듯한 디스
정준화 지음 / 몽스북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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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세상에 싫은 게 한가득인 사람으로서 이 책을 읽다보면 ‘정말 싫은 게 맞아? 이렇게 꼼꼼하게 싫어하니 좋아하는 건 얼마나 많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시나! 에필로그를 읽다보니 좋은 것도 무척이나 많은 작가님이셨군요. 세상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살면 몸과 마음이 편하기는 하겠지만 호오를 가르며 사는 생활은 좀 더 풍성해질 것 같습니다. 물론 싫은 것들 때문에 화나는 일이 생겨도 내가 그걸 왜 싫어 하는지 주절주절 떠들다가 동지라도 만나면 금새 신이날 듯 합니다.
작가님도 싫은 것들 얘기하다 좀 신나신 듯 합니다만… ^^

평균보다 세상을 좀 더 자주 못마땅해하는 사람으로서 수시로 솟구치는 부정적인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가끔 생각해 본다. 하필이면 이 책을 골라든 당신도 나와 비슷한 부류일지 모른다. 우리가 얼마나 온갖 걸 거슬려 하느냐 하면, 싫은 게 지나치게 많은 자신조차 꼴 보기 싫어할 정도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싫음에 열렬하게 공감하는 데서부터 아름답고 유치한 우정이 시작된다.

인간관계를 돈독히 하는 데는 솔직함이 필요하겠지만 그게 온갖 찌꺼기를 바닥까지 긁어 보여 줘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무엇보다, 나의 최악이 과연 나의 진짜인 걸까? 오히려 최악에 그치지 않기 위해 바닥 위에 꾸준히 쌓아 올리는 시도와 노력이 훨씬 흥미로운 누군가의 진짜는 아닐까?

그러니까 뭘 부끄러워해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흔해졌다는 게 가장 문제다.

나는 대체로 내 욕심에 차는 사람이 아니었고, 목표는 지체되거나 어긋날 때가 많았다. 그래도 실망이 길었던 적은 많지 않다. 다행이라면 다행일 텐데 조급한 동시에 타협과 포기도 빨라서 지체되면 지체되는 대로 어긋나면 어긋나는 대로 순순히 적응하고 가능한 다음 경로를 찾았다.

이후를 좌우하는 건 대단한 계획보다 지금 하고 있는 무언가일 때가 많다. 뭐든 하다 보면 거기서부터 예상치 못한 실마리가 잡힌다. 현재가 미래를 귀띔하는 복선이 된다.

톰 크루즈의 액션은 훨씬 쉽고 만만한 대안을 외면하고 굳이 선택한 무모하고 위험하고 미친 도전이기 때문에 특별하다. 보이지는 않더라도 맥락을 알고 볼 때 느껴지는 차이가 있다. 누군가는 모르고 지나칠 미묘한 차이를 위해 흔쾌히 목숨을 거는 비이성적인 고집과 괴팍한 자존심이 설명하기 힘든 감동을 준다.

논리적이고 효율적이기 때문에 감탄하게 되는 것도 있고 논리나 효율과는 거리가 멀어서 감동하게 되는 것도 있다. 정답뿐 아니라 오답에도 매료된다는 점이 인간이라는 존재를 곤란하고 까다롭게 만든다.

수개월에 걸쳐 온갖 싫은 것들을 한 권 분량으로 자분자분 씹었다고 생각했는데, 한편으로는 그 와중에도 좋아하거나 그리워하는 것들을 자백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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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더 메가처치 - 2026 일본 서점대상 1위
아사이 료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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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리해지는 것, 쉬워지는 것, 머리를 쓰지 않아도 되는것. 사람은 그것에 저항할 수 없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은 도저히 들지않는다.
정말 그렇다면 왜 이렇게 괴로운지 누가 좀 가르쳐줬으면 좋겠다.
아니?
어떻게 해야 이 모습 그대로 살아갈 수 있는지 알려줬으면 좋겠다.
누구라도 좋으니 이끌어줬으면 좋겠다.

언제나 착취하는 쪽에는 여유가 있다.
내일 당장 지불해야 할 돈 때문에 고민할 일도 없고, 당장 물질적으로 부족한 것 하나 없으니까 정신 건강이니살아낼 힘이니 정체성이니 하는, 그럴싸해 보여도 결국정답을 확인할 수도 없는 애매한 말들을 지금 사회에 꼭필요한 것이라며 떠들어댄다.

뭔가를 배워 시야가 넓어진 뒤에는 언제나 시야가 넓어졌다는 만족감을 맛보면서도, 그렇게 넓어져버린 시야를원래대로 되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시야를 넓혀서 찾아낸 정답은 너무나도 정답이라서 완벽히 실천하기가 어렵기에, 아는 것이 중요해, 우선 아는 것부터 시작하자, 하고주문을 외우며 오답에 익숙해지는 준비운동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이다.

시야를 좁고 작게 해야만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다. 나 는 손안의 가챠 모형을 바라본다.
좋아하는 마음을 출발점 삼아 한 대상을 세밀하게 파고
들어갈 때 비로소 넓어지는 앎이, 분명 존재한다.

서사의 몰입 한다는 건 시야가 좁아 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정체성이니 고립대책이니 그런 단어들을 늘어 놓으면서 ‘덕질은 좋은 것이다’ 라는 서사를 세상에 침투 시키고 싶었던 거 아닌가요?

근데 있잖아.
그렇다 쳐도 나는 나인 채로 괜찮다고 쳐도.
그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거지 ?
나한테 맞는 일은 뭐지 ?
이 성격 그대로 어떻게 해야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지 ?
영화에서도 노래 가사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는라든가 온통 그런 말 뿐이지만 이제 그 ‘나’라는 거의 완전히 실려버렸어 .
지긋지긋해,이따위 나로 살아가는 거.
누가 좀 가르쳐 줘. 적당한 말로 그 순간만 대충 얼버무리는 위로는 필요 없어. 지금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구체적인 해결 방법을 알려 달라고.

이런 나를 벗어던지고 싶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 들이고 싶은 것도, 인정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그저 이 모 습 그대로 살아가는 게 끔찍하게 싫어서, 다른 사람이 되 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세상은 타고난 외모나 이미 성공 한 위치를 가진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다시 태어나도 자 신의 싫은 점까지 포함해서 나로 태어나고 싶다느니 하는 말을 찬양한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일수록 열량 높은 전파가 필요하다.
상대의 시야를 좁혀야 하니까.
상대의 뇌를 녹이고, 판단 능력을 흐려야 하니까.

지금 미디어는 우리의 눈을 세상의 진실로부터 돌려놓 기 위해 쓰이고 있어. 그러니까 ‘덕질‘뿐만 아니라, 애초에 유행하는 것들은 먼저 의심해봐야 돼. 이 타이밍에 그걸 유행시키는 것이 어떤 입장의 사람들에게 유리한지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한다는 거지.

"
‘덕질‘ 덕분에 인생을 열심히 살 수 있다는 얘기도 자주 들리지만, 고통만 주면 국민이 들고일어날 수도 있으니 불만 해소용 배출구를 같이 던져주는 것뿐이야. 심지어 그 배출구는 국민들한테서 돈과 시간, 노동력을 빨아들이는 장치로도 기능하고 있지. 당근과 채찍이 둘 다 흑막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걸 빨리 깨닫지 못하면 정말로모든 게 늦어버릴 거야."
트렌드 진입 같은 것도 결국 누군가 만든 앱 안의 기능에 불과하고, 미리 지정된 해시태그를 넣은 글을 대량으로준비해서 동시에 올리는 등 공략법은 산더미처럼 많다.
시야를 넓혀 생각해보면 이 세계 전체가 그렇다.
누군가가 만든 사후적인 가치관 속에서 우리들은 계속정해진 코스를 돌며 스탬프를 찍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그런 인증 스탬프를 찍어서 주어지는 보상은, 만들어진 가치관을 더욱 깊이 믿게 만드는 약물로 작용 한다

"여러 의미에서, 살아갈 때 저희 남자들과는 다른 차원 에서의 정보 공유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정보 공 유라는 건 결국 서로 돕는 거잖아요. 그런 연대가 예전부 터 일상적이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지금도 친구가 많은 걸 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뭐랄까, 생명체로서 약하다는 것을 전제로 한 커뮤니 케이션 같거든요. 서로 다 힘든 일이 있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다는 게 기본값인 거죠. 매일 바쁘고 정말 많은 사 람이 지켜보는 일이다 보니, 나 자신과 예전보다 훨씬 더 마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어서 그런지 상대방도 힘든 점이 많겠구나, 하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돼요. 그 래서 자연스럽게 서로 도울 수 있고, 눈에 띄는 것부터 정 보를 교환하게 되는 거죠."

"메가처치에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결국 하는 짓은 다 똑같아."
누구를, 무엇을 좋아해도 상관없는 시대에, 같은 형태 의 사랑을 품은 사람들을 만난 기적. 그 동료들과 손을 맞 잡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충만함. 모든 것이 감 사하고 너무나 소중하다.
"결국 어떻게든 신자들한테서 돈을 뜯어낸다는 거지." 다만, 현시점에서 쓸 수 있는 돈은 바닥났다.
"그런 의미에선 일본의 신흥종교랑 다를 게 없어. 이걸 마시면 영혼이 정화됩니다, 하면서 그냥 맹물을 만 엔에 파는 짓을 여기저기서 하고 있는 셈이지. 최근에 읽은 기 사에 정의가 나와 있었는데, ‘본질적으로는 아무 상관도 없고 무의미하며 가치가 낮은 것에, 집단이 만들어낸 스 토리로 권위를 부여하고 신자의 시야를 좁혀 그걸 대단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믿게 만들어 본래 가치 이상의 대가 를 치르게 한다."결국 다 이거야."


"‘여자도 남자만큼 꾸미지 말자‘가 아니라, ‘남자도 여 자만큼 꾸미자‘로 흘러가는 건 시대의 진보가 아니라 인 간의 퇴화야."

모든 것이 불확실하게 흔들리는 지금, 확고한 신앙 대상이 있 고 그것을 위해 나 자신을 남김없이 써버리는 모습 자체 에 희소가치가 생기는 거죠. 설령 그 대상이 사회 통념상 무가치하거나, 심지어 인류 존속에 해가 되는 것이라 할 지라도요. 객관성을 동반하지 않는 저돌적인 직진성, 그 것만이 지금 이 시대에 작동할 수 있는 유일한 잣대입니 다. 이런 일을 열심히 하다니 대단하다‘가 아니라, ‘뭔지 잘은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진심으로 살고 있어서 눈부시 다‘. 그런 세계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겁니다."

"특정 개인에게 애착을 가지면, 마치 신도 기질의 하나 미치들처럼 시야가 좁아져서 서사에 삼켜지기 쉽다고요."

"위험하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저번에도 신도 기질의 하나미치가 부럽다느니 하셨으니까요. 그 사람들은 서사 에 선동되어 돌격하는, 현대판 병사 같은 존재예요. 게다 가 그렇게 되도록 유도하는 건 우리고요."

"시야를 좁히는 건,역시 즐거웠 나요.?"
비밀 이야기를 하는 아이처럼 작은 목소리였다.
"그게 어떤 서사든, 거기에 삼켜져 폭주하는 건 역시 즐 거운 일이던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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