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아 만든 천국
심너울 지음 / 래빗홀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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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대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속 세상은 전 세계 79.85퍼센트의 사람이 크든 작든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고 20.1퍼센트는 마법을 아예 다루지 못하고 0.05퍼센트의 사람들은 반마력으로 마력을 무력화하고 상쇄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창원 외곽의 바닷가에서 회를 팔면서 살아가는 마력을 가지지 않은 부모를 둔 허무한은 A-의 마력을 가지고 태어나 한국의 가장 위대한 도시, 서울에 위치한 S대의 응용마법학과의 전액 장학생으로 합격한다.

큰 세상으로 나간 허무한은 자신은 가질 수 없는 품위를 가진 서지현과 가깝게 지내며 자신은 마력을 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패배감에 빠진다.
그러던 중 같은 과의 이주영의 소개로 주영의 동생인 이준의 마법 과외를 맡게 되지만 이준은 태생적으로 마법을 아예 다루지 못한 부류의 인간으로 도통 마법에는 관심이 없다.
이준의 과외를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허무한은 과외를 그만두겠다고 말하자 이준의 엄마는 허무한의 마력의 근원인 역장을 이준에게 이식해 준다면 그에 합당한 거액을 주겠다는 제안을 한다.

소설은 장편소설로 이름을 달고 나왔지만 연작소설로 읽어도 될 듯하다.
허무한의 몸에서 이준의 몸으로 이식됐던 역장의 이력을 따라가는 소설은 다섯 개의 목차로 나뉘어져 있지만 그 중심엔 허무한의 역장이 자리 잡고 있다.
마력이 존재하는 세상이지만 여전히 빈부격차가 있고 타고 난 재능인 마력을 돈으로 사고 팔기도 하는 사람들은 마력이 존재하지 않는 현실의 사람들과 변반 다르지 않는 모습이다.
마법에는 관심도 재능도 없는 자식을 위해 불법을 저지르고 끝끝내 나락으로 빠뜨리는 부모, 우연히 손에 쥔 마법의 힘으로 승승장구하자 사랑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사람, 자신의 업적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은 안중에도 없는 과학자도 등장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세상은 마법의 존재 유무와는 상관없이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판을 치고 돈이면 어떤 것도 거래될 수 있다는 게 서글퍼진다.
그리고 자신의 신념만이 옳다고 믿는 고위층들의 어리석음이 세상을 얼마나 망가뜨리는 지 서영락 교수를 보며 느끼게 된다.
그래도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은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과 연민, 사랑이라는 생각을 하며 허무한의 미래가 보랏빛으로 찬란히 빛나길 바라게 된다.

심너울 작가의 소설을 꽤 많이 재미있게 읽었다.
그 중 이번 이야기가 가장 참신한 소재인 마법을 A등급의 마법사처럼 잘 다룬다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현실보다 더 리얼한 판타지!
심너울의 21세기 마법 사회 풍속도
내 모든 걸 갈아 넣었지만
나는 초대받지 못한 당신들의 천국”
이라는 출판사 광고 문구가 이 책을 가장 적절하게 알린다는 생각을 하며 젊은 작가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하게 된다.

<도서는 래빗홀 출판사에서 서평도서로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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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다듬기
이상교 지음, 밤코 그림 / 문학동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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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다듬기>는 이상교 작가님의 시에 밤코 작가님이 그림을 그린 그림책입니다.
멸치를 다듬으려면 커다란 신문지와 마지막 한 마리까지 다듬겠다는 끈기와 곧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체력과 엄마의 수고로움을 덜어주겠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반복적인 손놀림이 필요한 단순한 멸치 다듬기가 밤코 작가님을 만나 웅장하고 장엄한 노동의 현장으로 변합니다.
처음 시작은 “대가리 떼고 똥 빼고 대가리 떼고 똥 빼고” 신나게 시작하지만 몸은 근질거리고 자꾸만 대가리와 똥을 담은 그릇에 몸통을 넣기도 합니다.

신문지 위에는 멸치와 함께 바다 속을 헤엄쳤을 작은 꽃게와 어린 꼴뚜기, 작은 새우도 따라왔습니다.
펼쳐 진 신문지 속에는 멸치들의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멸치가 발레를 하고 멸치가 주연인 영화 광고도 보이고 멸치가 그려진 명화 전시회 소식도 신문에 실렸네요.

“단백질 칼슘 무기질이 풍부한 멸치는 남해에서는 멸오치, 제주에서는 멜, 전남에서는 멸, 황해도에서는 멧치, 몽금포에소는 돗자래기로 불려요.
멸치는 크기에 따라 세멸, 자멸, 소멸, 중멸, 대멸로 나누어져요.”

그림책은 읽는 책이 아니라 읽어주는 것이 먼저인 책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단연코 함께 보는 책입니다.
아이와 함께 글은 물론 무수히 숨어 있는 글과 그림을 함께 찾고 즐기는 ‘함께 보는 책’입니다.
그림은 좋은 동시를 만나 빛이 나고 짧은 동시 역시 그림을 만나 더 사랑스러워졌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멸치 요리는 대가리 떼고 똥 뺀 멸치를 기름 두르지 않고 후라이팬에 살살 볶다 참기름, 깨소금, 간장 조금, 고춧가루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친 멸치 무침입니다.
그런데 제가 아무리 엄마 요리법을 그대로 따라해도 옛날 그 맛을 따라갈 수 없어 속상합니다.

집에서도 다시팩이나 코인 육수를 사용하다보니 멸치를 다듬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않습니다.
웃으면서 넘기던 책장을 어느새 그리움으로 가득 채우며 덮게 됩니다.
모두 함께 멸치를 다듬고 양파를 탁!탁!탁! 당근을 척! 척! 척! 애호박을 채! 채! 채! 썰어넣고 맛있는 국수를 만들어 먹던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문학동네그림책 뭉끄2기 활동 중 제공된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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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1역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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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렌조 미키히코”의 소설은 재미있다.
지금은 절판된 #회귀천정사 와 #저녁싸리정사 는 물론 #백광 이나 #열린어둠 등 읽은 소설 모두 재미있었지만 낯설고 충격적인 결말이라 읽고 나면 그 뒷맛이 개운치가 않다.

<그렇다, 나는 오늘 밤 살해되기 위해 누군가를 내 집에 초대했다.>p8

살해되기 위해 “누군가”를 초대한 여자의 이야기로 시작된 소설은 빼어난 미모로 세계적인 톱 모델에 오른 미오리 레이코가 청산가리에 의해 살해되고 모든 증거는 전 약혼자인 의사에게로 향하고 그는 경찰에 체포된다.

범인이 체포되고도 레이코를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했던 일곱 명의 남녀는 자신이 레이코를 죽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던 중 자신이 레이코를 살해했다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 남자가 나오자 남은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죄에 무뎌가기 시작한다.

소설은 같은 장소에서 한 사람에게 행해지는 일곱 번의 살인의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이야기다.
‘누군가’로 칭해지는 일곱 명의 악행과 일곱 번의 살인이 반복되게 이어지는 이야기는 똑같이 벌어진 살인의 진실 앞에 경악하게 된다.

레이코의 계획에 모두 동조할 수 없지만 어린 소녀를 자신들의 도구로 사용한 이들에게 내린 단죄가 한편으론 시원하기도 하다.
#7인1역 역시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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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 블랙 쇼맨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최고은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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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간판도 없이 외진 골목에 위치한 바 트랩 핸드엔 과거 마술사라는 특이한 이력의 가미오 다케시가 마스터로 있다.
특별할 것 없는 바에게는 건축 사무소에 근무하는 조카 마요가 손님들을 편안하게 만나는 장소가 되기도 하면서 공사를 수주했던 고객의 비밀스러운 사건의
진실을 파헤쳐 가게 된다.

모두 3편의 단편이 실린 소설집은 블랙쇼맨 시리즈의 세 번째 이야기다.
<천사의 선물>은 마요의 사무실에 의뢰해 아들이 살던 아파트의 리모델링을 계획했던 노부부에게 사정이 생겨 공사가 보류된다.
얼마 전 죽은 아들의 이혼한 전처가 아들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하지만 노부부는 뱃속의 아이가 아들의 친자가 아님을 확신한다.
까딱했다가는 죽은 아들의 유산이 누구의 아인지도 모른 태아에게 상속될 것 같은 불안에 노부인은 가미오에게 의논하게 되고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진실이 밝혀지고 모두 경악하게 된다.

두 번째 <피지 않는 나팔꽃>에서는 어머니의 지독한 간섭과 강요를 견디지 못해 자신을 자살로 죽었다고 꾸미고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딸의 이야기다.
실버타운에서 지내는 엄마는 경황이 없어 딸에 집에서 자살한 여자를 자신의 딸이라고 증언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딸이 아니었음을 확신한다.
경도 치매로 정신이 깜빡깜빡하는 엄마는 실버타운 직원에게 딸의 행방을 조사할 것을 부탁하고 그 직원은 트랩핸드까지 찾아오게 된다.

<마지막 행운> 에서는 좋은 남자를 만나 완벽한 결혼을 꿈꾸는 미나는 남자를 만날 때마다 가미오를 찾아와 감정해 줄것을 부탁한다.
그러던 중 우연한 계기로 마요에게 공사를 맡긴 남성 고객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일생일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본래 일본에서는 전작인 <블랙 쇼맨과 환상의 여자>와 <블랙 쇼맨과 운명의 바퀴>가 <블랙 쇼맨과 각성하는 여자들>이라는 한 권의 책으로 발표됐다고 한다.
제목 그대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여성들로 환상의 여자와 운명의 바퀴에 함께 등장하는 주인공들도 있다.
‘피지 않는 나팔꽃’에 등장하는 딸이 어떤 이유로 자신을 죽은 사람으로 꾸몄는지와 어떤 방법으로 일을 진행했는 지는 환상의 여자의 첫 번째 이야기인 ‘맨션의 여자’에서 자세히 밝히고 있다.
그리고 미나가 만나는 남자들을 매번 트랩 핸드에 데려가는 이유도 환상에 여자에 실린 ‘위기의 여자’를 읽으면 알 수 있다.

소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추리.미스터리 소설들과 다르게 살인이 일어나거나 큰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렇다보니 불꽃 튀는 두뇌 싸움이나 목숨을 건 추적씬도 없다.
그저 다른 사람에게는 큰일이 아니지만 개인에게는 중대한 문제라는 생각으로 가미오는 사건에 접근하고 진실을 파헤쳐간다.
그래서 등장하는 인물들이 더 인간적이고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진다.
잔혹한 살인이나 살벌한 사건이 없이도 충분히 재미있는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역량에 박수를 보내게 된다.
추리.미스터리 소설의 결말도 따듯할 수 있다는 사실을 느끼며 블랙 쇼맨의 다음 시리즈도 기대하게 된다.

<본 도서는 RHK(알에이치코리아)에서 진행한 서평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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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 픽처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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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인테넷 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고 도서관 대출 리스트에도 올렸던 책인데 기회가 닿지않아 읽지 못했는데 이번에 드디어 산뜻한 새표지를 입고 나온 소설을 읽게 됐다.

월가 유명 로펌의 고액 연봉 변호사로 일하고 있는 벤은 아름다운 베스와 결혼 후 두 아들을 낳고 누구나 부러워하는 교외의 고급 주택가에 살고 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내의 불만은 커져가고 부부 사이는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오던 사진 작가의 꿈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던 벤은 점점 현재의 삶이 답답하고 그리 행복하지 않다.

작가를 꿈꾸던 베스는 쓰는 소설마다 인정받지 못해 출판 기회를 잡지 못하고 지내다 계획에 없던 임신으로 결혼을 하게 되고 현재는 남편의 수입으로 고가구를 수집하며 공허한 마음을 달래고 있다.
거기다 엄청난 육아스트레스로 점점 부부 사이는 벌어지고 사소하게 시작한 부부 싸움 뒤 베스는 아이들과 처형 집으로 떠난 버린다.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베스의 부정은 벤을 큰 충격에 빠뜨린다.
베스가 이웃의 허풍이 심한 무명 사진가인 게리와 불륜을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무작정 게리의 집을 찾아간 벤은 게리의 저열한 도발에 우발적으로 게리를 살해하게 된다.
다른 가족이 없는 게리와 가족이 모두 처형 집으로 떠나 자신만 있는 벤의 집에서 무시무시한 일이 계획되고 실행된다.

믿고 있던 아내의 부정과 우발적 살인 후 벤은 지금까지의 나를 버리고 내가 가장 증오하고 혐오하는 아내의 애인이 되는 길을 택한다.
그리고 뜻하지 않은 장소에서 자신이 그토록 원하던 꿈을 이루게 되지만 누구 앞에도 떳떳하게 나서지 못한다.
소설을 읽는 내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리 선하지 않는 남자를 응원하게 된다.

소설은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일상의 행복을 잃었지만 오랫동안 꿈꾸던 성공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얻게 된 남자의 불안을 중심에 두고 있다.
만약 벤이 일생을 살며 다른 선택을 했다면 그는 과연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며 행복해졌을까?
로스쿨이 아닌 사진가의 삶을 선택했다면 게리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갔을 것이고 괴롭더라도 아내의 부정을 알았을때 진지한 대화를 했다면 전혀 다른 결과를 만났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여름 밤에 꿈 같았던 남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수많은 선택지를 앞에 두고 매일매일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 지 작은 힌트를 얻은 것 같다.
가장 좋은 최선을 선택할 수 없을 때는 최악을 피하는 선택만이 살길이라는 교훈을 얻으며 부디 어떤 이름으로 살아가던 한 때는 벤이었고 게리였던 남자가 더 이상 불행해지지 않기 바라게 된다.

<도서는 밝은세상 출판사에서 받아 읽고 느낌을 자유롭게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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