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란 작가의 이야기는 심각한데 심각하지 않아 좋다.그리고 조용해서 좋다.어린 시절 엄마에 의해 이모집에 버려진 듯 살아야 했던 ‘수인’은 결혼을 앞두고 3년 전 절연한 엄마를 ‘선용’의 부모님과 만나게 해야하나 고민한다.갑자기 찾아온 ’선용’의 옛 연인은 늙고 아픈 개인 ‘앵두‘를 맡기고 떠나고수인과 선용은 여자가 부탁한데로 개를 돌본다.선용과 함께 살면서도 수인은 “내가 아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고 내가 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것 같은” 마음으로 살아간다.이모에게 사랑 받았고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도 사랑이 뭔지 모르던 수인은 앵두를 돌보며 서서히 마음을 열어간다.나를 힘들게 하는 누군가와 관계를 유지할 필요는 없다.그래서 마지막 수인의 선택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림은 말없는 시이고,시는 말하는 그림이다.‘동주와 빈센트’를 이어 ‘백석과 모네’의 시화집이 출간되었습니다.백석의 시를 처음 읽은 건 <개구리한솥밥> <준치가시> <여우난골족> 같은 그림책을 통해서 입니다.그런 까닭에 얼마동안 동시 작가로 알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중 그의 시 <#나와나타샤와흰당나귀 >를 읽었고 다른 시들도 궁금해졌습니다.도서관에서 빌린 시집은 서둘러 읽었고 시는 예상과 달리 어렵고 별감흥이 없었습니다.그래서 한동안 백석 시는 재미없고 어렵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저에게 시집은 기분에 따라 한두편씩 읽고 마음 내키면 필사해 보는 책인데 거기에 가장 적합한 시집이 바로 이 시화집입니다.아무 페이지나 열어서 보아도 좋은 ‘백석과 모네’는 백석의 시 100편과 모네의 그림 125점이 수록돼 있습니다.인상파를 창시한 모네를 잘 몰라도 상관없고 그의 그림을 사랑한다면 더더욱 좋은 시화집입니다.백석의 시와 어우러진 그림은 시를 더 돋보이게 하고 시는 모네의 그림을 더 아름답게 합니다.한 편씩 읽어도 좋고 가끔씩 필사를 해보는 것도 색다른 경험입니다.현실에서는 만난 적 없는 두 거장이 시화집으로 만나 서로의 작품에 아름다움을 더합니다.<멋진 시화집을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신 저녁달출판사감사합니다.>
가부장적인 남편과 45년 동안 결혼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데루코’는 부엌에 있는 원목 스툴이 동료이자 유일한 내 편이라 생각한다.다른 가족없이 시니어 레지던스에 살고 있는 ‘루이’는 입주민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왕따를 당하며 살고 있다.닮은 것 하나없는 데루코와 루이는 중학교 동창회에서 우연히 만나 사십 년동안 우정을 이어가고 있는 칠십 세의 동갑내기 할머니들이다.어느 날 도와 달라는 루이의 전화를 받고 데루코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남편의 차를 훔쳐 함께 떠나게 된다.특별한 계획도 없고 갖고 있는 돈도 넉넉하지 않았던 둘은 비어있는 별장에 무단 침입해 살게 되지만 함께 한다는 것만으도 모든 것이 즐겁다.<데루코와 루이>라는 제목을 보고 영화 <델마와 루이스>를 떠올렸는데 역시나 옮긴이의 말이 영화를 오마주한 작품이라고 한다.두 여성의 일탈이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영화보다 휠씬 더 경쾌하고 즐거운 소설이다.흔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을 하지만 실제 우리는 나이답게 살라고 강요한다.그러나 두 할머니가 우정을 나누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삶에 즐거움을 찾는 모습을 보면 나이듦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전혀 다른 성격의 두 할머니가 펼치는 모험과 우정이 어떤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않고 집착하지 않는 평온함과 함께라서 좋다.루이의 비밀과 데루코의 과감함이 어우러진 이야기는 <델마와 루이스>와 같은 스팩타클함은 없지만 진짜 나이든 어른의 모습을 충분히 즐길 수 있어 재미있다.<본 도서는 필름출판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프롤로그부터 얼얼하다.눈앞에서 갑가기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의 모든 것이 터져 나오는 것으로 시작한다.정신과 의사로 승승장구하고 있는 기사야마는 “배우로서 확고한 지위를 구축한 아내, 부단한 노력으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큰딸, 그리고 지병에도 아랑곳없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작은딸” 까지 무엇하나 빠질 것 없는 삶을 살고 있다.어린 시절 마술사였던 아버지의 죽음과 뒤따른 어머니의 죽음으로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누구나 존경하는 의사가 됐고 환자가 상담 중 무심코 뱉은 말 한마디를 놓치지 않은 덕에 범죄자를 잡는 공을 세우기도 한다.그런 기사야마의 삶에 작은 균열이 생기고 완벽한 가정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떤 일이든 해야만 한다.특수 설정의 소설인 줄 알고 읽어도 읽는내내 머리가 어질어질하다.피가 낭자하고 속 불편한 설정이 연속되고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의 심성을 갖지 못한 인물들이 등장한다.그리고 이유없이 사람들이 죽어나간다.작가의 특수 설정 미스터리는 #명탐정의창자 로 이미 한번 만났지만 그보다 몇 십배는 더 매운 듯하다.잔인한 고어 영화를 화면이 아닌 활자로 보는 기분을 느끼게 하는 이야기는 비위가 상하고 읽는 내내 불쾌하기까지한 설정의 연속이지만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이야기가 계속될 수록 악의 무한 증식을 보여주지만 중간에 책을 덮을 수가 없다.어쩜 나의 내면에도 등장인물들과 닮은 잔인함이 똬리를 틀고 있는지 모르겠다.혀가 얼얼해지도록 매운 음식을 먹고 난 후 느끼는 통각에서 오는 비슷한 짜릿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다.<본 도서는 내친구의서재 출판사 서평단 이벤트에 당첨돼 제공받았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이야기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암살테러를 저지르는 테러조직 울라그를 상대하는 경찰의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고 복지국가로 알려진 스웨덴 국민이 겪는 개인적인 사건들을 다루고 있다.물론 전편들과 같이 개인의 사건 역시 사회문제에서 기인한 것들이다. 미혼모인 레베카는 은행 강도 혐의로 현장에서 체포돼 재판을 받게 되지만 자신의 잘못을 인지하지 못한다.단지 은행에 찾아가 돈을 빌리려 했고 그녀가 항시 소지하고 있던 정원용 칼이 문제가 돼 은행 강도로 몰린 것이다. 한편 영화감독으로 알려진 남자가 내연녀의 집에서 살해되는 사건이 발생하자 마르틴 베크가 투입된다.조사 결과 그 남자는 영화 제작을 미끼로 미성년자들을 꾀어 마약을 공급해 중독자로 만든 후 포르노를 제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그리고 미국 상원의원이 스웨덴을 방문하는 계획이 발표되면서 마르틴 베크와 동료들은 국제적인 암살테러 조직 소탕 작전에 투입된다.경찰을 피해 일찌감치 스웨덴에 잠입한 테러리스트들은 차근차근 암살 계획을 세우고 경찰은 그들의 뒤를 쫓는다. 미국인 여행객이 살해당하는 ’로재나‘로 시작해 테러조직을 상대하는 ’테러리스트‘를 끝으로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복지국가로 불리는 스웨덴의 60~70년대 민낯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건 속에서 전지적인 경찰도 등장하지 않고 작위적인 교훈을 주지도 않는다. 수사에 열심인 만큼 가정에 충실하지 못했던 마르틴 베크는 이혼을 하게 되고 범인의 총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하고 범인을 잘못 특정하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무능한 상사를 욕하고 다른 동료들과 힘을 모아 범인을 찾는다.마지막 이야기는 스웨덴만의 문제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테러와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 그 의미가 크다. 마이 셰발과 페르 발뢰는 10년에 걸쳐 10편의 마르틴 베크 시리즈를 썼고 우리나라에는 7년에 걸쳐 번역되었다.나는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진행한 “마르틴베크정주행‘이벤트에 당첨되어 9개월에 걸쳐 시리즈를 완독했다.심혈을 기울려 쓰고 번역한 이야기를 너무 쉽고 편하게 읽은 것 같아 미안한 마음도 든다.엘릭시르 출판사 덕분에 대작을 완독할 수 있어 감사하다.<본 도서는 엘릭시르 출판사에서 제공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