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http://blog.naver.com/th3030/120003995291

- 역사상 최고소설, <돈키호테> -

중세 말 17세기 기사계급의 몰락을 풍자적으로 그린 <돈키호테>가 역사상 최고의 소설로 뽑혔다고 영국 BBC방송이 2002년 5월 7일 보도했다. 노르웨이의 노벨 연구소와 북 클럽스가 세계 50여개국 출신 100명의 유명작가에게 설문조사를 한 결과 스페인 출신 미겔 데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50%가 넘는 득표율로 이 같은 영예를 안았다고 방송은 전했다. 세르반테스는 문학에 맞는 문체를 완성했으며 돈키호테는 세계문학의 첫번째 위대한 소설이라는 평을 받아왔다.

이번 설문에 참가한 작가는 살만 루슈디(인도)와 노먼 메일러(미국), 밀란 쿤데라(체코),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등 거장들이다. 노벨 연구소 등은 이들 작가에게 세계문학에서 가장 중요하고 중심적인 소설 10편씩을 꼽아달라고 부탁했으며 이를 토대로 최고작품 및 100대 작품을 선정했다.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이 가운데 가장 많은 4편의 작품이 올랐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영국)와 프란츠 카프카(체코), 톨스토이(러시아)가 3편으로 뒤를 이었다. 이밖에 구스타브 플로베르(프랑스)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 호머(고대 그리스), 토마스 만(독일), 버지니아 울프(영국) 등도 2편씩 포함됐다.

아래는 노벨연구소가 세계적인 작가에게 의뢰하여 선정한 100대 작품목록이다.

- 그리스 -

호메로스, <일리아드>, <오디세이>
소포클레스, <오이디푸스 왕>
에우리피데스, <메데아>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 이탈리아 -

오비디우스, <변신 이야기>
베르길리우스, <아에네이드>
단테, <신곡>
보카치오, <데카메론>
지아코모 레오파르디의 '시집'
이탈로 스베보, <제노의 고백>
엘자 모란테, <이야기>


 

 

 

 

- 프랑스 -

프랑수아 라블레, <가르강튀아와 팡타그뤼엘>
몽테뉴, <수상록>
디드로, <운명론자 자크>
스탕달, <적과 흑>
발자크, <고리오 영감>
플로베르, <마담 보바리> <감정교육>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루이-페르디낭 셀린, <밤의 끝으로 여행을>
알베르 카뮈, <이방인>
사무엘 베케트, <삼부작 : ­몰로이 · 말론 죽다 · 이름붙일 수 없는 것>
마르그리트 유르스나르,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 영국 -

초서, <켄터베리 이야기>
조나단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리어왕> <오델로>
로렌스 스턴, <트리스트럼 샌디의 삶과 의견>
에밀리 브론테, <폭풍의 언덕>
조지 엘리어트, <미들마치>
제인 오스틴, <오만과 편견>
찰스 디킨즈, <위대한 유산>
로렌스, <아들과 연인>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버지니아 울프, <델러웨이 부인> <등대로>
조셉 콘라드, <노스트로모>
조지 오웰, <1984>
도리스 레싱, <황금 노트>
살만 루시디, <한밤의 아이들>

 

 

 

 

 

 

 

- 아일랜드 -

<니알의 사가(saga)>
할도어 렉스네스, <해방된 민중>

- 독일 -

괴테, <파우스트>
토마스 만, <붓덴부르크 일가> <마의 산>
카프카, '단편', <심판> <성>
되블린,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로베르트 무질, <특성 없는 남자>
파울 첼란의 '시집'
귄터 그라스, <양철북>



 

 

 

 

- 러시아 -

고골리, <죽은 혼>
레오 톨스토이,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리나> <이반 일리치의 죽음> 외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백치> <악령> <카라마조프가 형제들>
안톤 체호프, <단편선>

 

 

 

 

 

 

 

- 포르투갈 -

페르난도 페소아, <근심의 書>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 스페인 -

로르카, <집시의 노래>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

- 미국 -

허만 멜빌, <모비딕>
마크 트웨인, <허클베리 핀의 모험>
에드가 앨런 포, <단편전집>
월트 휘트먼, <풀잎>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포크너, <압살롬 압살롬> <음향과 분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롤리타>
랄프 엘리슨, <보이지 않는 인간>
토니 모리슨, <당신>

 

 

 

 

 

-북유럽 -

안데르센, <동화집>(덴마크)
입센, <인형의 집>(노르웨이)
크누트 함순, <굶주림>(노르웨이)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말괄량이 피피>(스웨덴)

 

 

 

 

- 아시아 -

루쉰, '소설집'(중국)
<마하브하라타>(인도)
발미키, <라마야나>(인도)
칼리다사, <사쿤탈라>(인도)
시키부 무라사키, <겐지 이야기>(일본)
가와바타 야스나리, <설국>(일본)


 

 

 

 

- 아프리카 -

타예브 살리흐, <북쪽으로 가는 계절>(수단)
치누아 아체베, <모든 것은 무너진다>(나이지리아)

 

 



 

 

 

- 라틴아메리카 -

후안 룰포, <페드로 마라모>(멕시코)
보르헤스, <단편집>(아르헨티나)
마르케스, <백년동안의 고독> <콜레라 시대의 사랑>(콜롬비아)
호아오 귀마레스 로사, <오지에서의 곤경>(브라질)


 

 

 

 

- 아랍권 -

<길가메쉬 서사시>(메소포타미아)
<천야일야>(페르시아)
<욥기>(이스라엘)
자랄 앗-딘 루미, <마트흐나위>(이란)
세이크 무스하리프 웃-딘 사디, <과수원>(이란)
나지브 마흐푸즈, <우리 동네 아이들>(이집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balmas > 9. 24 평화 대행진에 동참을 부탁드립니다

지섭: “방금 무슨 일을 하셨습니까?”
사나이: “삼십 일까지 철거를 하게 돼 있었죠? 시한이 지났어요. 행정대집행법에 따라 철거 작업을 했습니다. 더 이상 할 이야기도 없습니다.”
지섭: “지금 선생이 무슨 일을 지휘했는지 아십니까? 편의상 오백 년이라고 하겠습니다. 천년도 더 될 수 있지만, 방금 선생은 오백 년이 걸려 지은 집을 헐어 버렸습니다. 오 년이 아니라 오백 년입니다.”
사나이: “그 오백 년이란 게 도대체 뭡니까?”
지섭: “모르시겠어요?”
사나이: “그만 비켜요.”
지섭: “당신이 덫을 놓았습니다. 당신이 아니라면 당신 상부에서. 백여 세대 이상이 여기다 생활 터전을 잡는 것을 몰랐어요? 덫을 놓은 게 아닙니까? 가서 말해요, 내가 치더라구.”
- 조세희, '난.쏘.공.'

 

안녕하세요. 사회진보연대입니다.

 

이런저런 기회를 통해서 평택미군기지확장에 관한 얘기는 다들 들으셨을 줄로 믿습니다.

아시다시피 엊그제 평택 대추리, 도두리에서는 또 한 번의 강제철거가 벌어졌습니다.

지난 5월 4일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에게 '충격과 공포'를 안겨 주어

마을을 떠나지 않을 수 없게 만들려는 정부의 시도는

아래 <들소리> 동영상에서 보듯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4년 여의 싸움을 해 오면서, 그리고 올해의 끔찍한 경험 때문에

주민들께서 많이 지치신 것은 사실입니다.

반전의 계기를 만들지 못한다면... 아마 이 싸움은 아주 어려워질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9월 24일, 수도 서울에서

강제철거강행 노무현 규탄, 전쟁기지 한미FTA 강요 미국 규탄,

평택미군기지확장 전면재협상 촉구

를 위한 제 4차 평화대행진이 개최됩니다.

평화대행진을 서울에서 개최하는 이유는 평택미군기지 확장 이전이

단순히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생존권’ 문제만이 아니라

이른바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주한미군의 성격 변화로 인한 안보 환경의 근본적 변화의 문제

임을 알리기 위해서입니다. 저 거대한 제국과 국가에 맞서

7~80세 노인들 수백이 4년여 동안 고단하고 외롭게 짊어졌던 평화와 민주주의를

이제 모든 시민들이 나눠 갖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그/녀들의 목소리에 응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황새울의 저 넓은 들판뿐만 아니라 평화와 민주주의, 그리고 주권자로서의 존엄

을 모두 잃게 될 것입니다.


9. 24 평화대행진을 위해 10만 준비위원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또 14일부터 21일까지(일요일 제외) 저녁 7시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에서

강제철거 강행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가 열립니다.

22일에는 평택미군기지확장 반대와 한미FTA 협상 저지를 위한 전국행진단이

부천에 도착해 그곳에서 함께 촛불문화제를 갖고

23일에는 부천에서부터 서울까지 9. 24를 향한 서울수도권 시민 대행진이 열립니다.

그리고 9월 24일, 4차 평화대행진이 열립니다.

이 날들 동안 거리에서 함께 하자는 말씀을 드리려고 이렇게 편지를 띄웠습니다.

 

아래 평택 관련한 여러 주소들을 링크해 두었습니다.

그리고 내일이나 모레 중 9. 24 평화대행진에 동참을 호소하는 전화를 드리려고 합니다.

바쁘시더라도 잠시 시간을 내셔서 평택 문제에 관심을 가져 주시고

9. 24 평화대행진에 동참해 주시길 다시 한 번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럼 전화로 또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9월 13일, 마을에서 벌어진 일에 관한 <들소리> 방송

 

http://www.vop.co.kr/new/news_view.html?serial=50843 ('민중의 소리' 철거 취재 동영상)

 

 

  http://antigizi.or.kr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주소)

 

   (카페 '올해에도 농사짓자'입니다.)
(미디어 활동가들과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독립방송입니다. 완전 강추!)
(웹진 '참세상' 평택 특별 페이지입니다.)

  (웹진 '민중의 소리' 평택 특별 페이지입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바라 2006-09-18 2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귀 전 마지막이 될 듯...
근데 서울 어디인지 나오질 않았다.
기왕이면 광화문 쪽에서 하면 조금 나을 듯 한데...
 
 전출처 : waits > [민중의소리] 평택 마을 파괴..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평택 마을 파괴..그러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기지이전재협상 촉구하는 9.24 평화대행진으로 힘 모아야
배혜정 기자    메일보내기  

  결국 대추리, 도두리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초토화'됐다.
  
  13일 국방부는 철거 계획 대상지 중 약 2/3이상의 가옥을 무너뜨렸다. 한 집을 부수는데 걸린 시간은 10분도 안됐다. 수십 년 동안 대추리, 도두리 주민들의 삶터이자 고향이었던 가옥이 야만적인 폭력 앞에 힘없이 무너져 버린 것이다.
  
  국방부의 '마을파괴'는 여느 작전때와 다름없이 야음을 틈타 기습적으로 이뤄졌다. 경찰들의 비호아래 용역들은 아무 거리낌없이 살림살이들을 집어내고 가구들을 던져냈으며 포크레인이 그 뒤를 이었다.
  
  주먹구구식 철거는 역시나 우려했던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가옥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무리하게 포크레인으로 부수는 과정에서 옆집의 농작물이 훼손되는 일 등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 정확한 확인 없이 생가를 철거하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생겼을 뿐더러 살림살이를 뺐다 다시 집어넣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주민들의 소중한 주거환경권이 주먹구구식 행정에 의해 돌이킬 수 없이 침해당한 것이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국방부는 또 지킴이들이 살고 있는 집은 철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뒤엎고 한 채의 지킴이 집을 부수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날 하루 주민들은 그동안 오며가며 차 한 잔 나눴던 이웃주민의 집들이 무너져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마냥 '당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2시간에 이르는 평택지킴이들의 고공농성 등 철저하게 평화적이고 완강한 저항으로 국방부가 철거 계산에 넣었던 수십채의 가옥을 맨몸으로 지켜낼 수 있었다.
  
  고공농성에 참여했던 한 지킴이는 "눈 앞에서 다른 집들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괴로웠지만 내가 올라간 집만은 지켰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평가하기도.
  
  2만여명 대 1백여명이라는 철저하게 불공평한 게임이었지만 주민들과 평택범대위, 지킴이들은 애초 '게임환경'에 비해 얻은게 많다는 평가다.
  
  평택범대위 언론담당 박래군씨는 "국방부는 이번 철거를 통해 주민들을 심리적으로 압박하겠다는 계산이었지만 되려 주민들은 끝까지 '갈 길은 간다'는 마음을 더욱 굳게 먹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과연 이날 주민들은 국방부의 마을파괴 작전이 정리되자 마을 어귀에 모여 풍물을 치며 이날의 작은 승리를 자축하는 모습이었다.
  
  대추리 정태화 노인회장은 "그놈들이 심리적으로 영향을 주려고 저 짓을 하지만 우리는 전혀 거리낌이 없다"며 "우리는 우리 길을 끝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문정현 신부도 "집을 부술 순 있어도 이 땅을 지키겠다는 우리의 마음을 부술순 없다"며 "우리가 정당성을 가지고 있으나 이 싸움은 이길 수 밖에 없다"고 확신했다.
  
  그러나 이날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완강항 저항을 한 것에 비해 저조한 시민사회단체들의 참여는 실망스럽다. 물론 경찰들의 불법적 검문검색이 강화돼 마을 집입이 불가능 한 이유가 있었지만 원정 삼거리나 평택 일대 등 외부에서도 강제철거를 규탄하는 활동이 꾸준하게 진행된 점을 감안해 본다면 이 활동에까지 참여가 저조했던 이유는 선뜻 이해되기 어렵다.
  
  일단 국방부가 조만간 나머지 가옥을 철거키 위해 마을에 재진입을 할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사회적 비난을 무릅쓰고 감행한 작전을 또 다시 실행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있을 뿐더러 국방부는 나름 이번 철거작전을 성공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평택 범대위는 국방부가 자화자찬에 빠져있는 동안 오는 24일로 예정된 4차 평택 평화대행진에 '올인'하겠다는 계획이다.
  
  박래군씨는 "국방부의 불법적인 철거행위를 전 국민들에게 폭로하고 전 사회적인 공감을 얻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번 9.24 평화대행진 준비과정과 당일 행사를 통해 그러한 목표를 달성하는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팽성대책위 신종원 조직국장과 김택균 사무국장도 9.24 평화대행진 준비에 매진해야 한다는데 입을 모았다.
  
  9.24 평화대행진은 지난 8월 초부터 준비가 시작된 행사일뿐더러 국방부의 야만적인 마을 파괴 행위를 본 국민들의 공분이 모아지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승산이 크다. 더군다나 미군감축 문제가 끊임없이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9.24 평화대행진의 성공여부는 평택 미군기지 재협상의 여지를 만들 수 있다.
  
  평택 범대위 관계자는 "주민들의 상처입은 마음을 위로해 줄 뿐만 아니라 정부가 기지 재협상을 국민적 요구로 받아들일 수 있을 수 있도록 범국민적 촛불행사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민중의소리 맹철영 기자

  
  
[관련기사]
마을 파괴 저지후 열린 촛불집회, '맑음' ㅣ 서정환 기자
"9월 24일 대규모 상경할 것" ㅣ 김보성 기자
"노무현씨, 당신 거기 왜 있소!" ㅣ 서정환 기자
국방부.경찰.철거용역, 결국 마을을 파괴했다 ㅣ 배혜정 조태근 기자


2006년09월14일 ⓒ민중의소리


 

마을 파괴 저지후 열린 촛불집회, '맑음'

743일째 촛불집회 주민들, '다라이 비빔밥' 만들기도
서정환 기자    메일보내기

  13일 저녁 7시 30분경 대추리 평화공원.
  공권력이 동반되어 강행된 마을 파괴에 맞서 사실상 최후의 승리를 거둔 200여 주민들과 지킴이들의 표정은 초저녁 별이 빛나는 하늘 처럼 맑았다.
  
  743차 촛불집회가 벌어지기 전 주민들과 지킴이들은 긴긴 하루의 모든 일을 담아 버무린 '다라이 비빔밥'을 만들어 모두가 나누어 먹기도 했다.
  
  

△대추리 평화동산의 조형물과 주민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이날 촛불집회의 꽃은 철거대상이된 빈집의 옥상에 올라서 마을 파괴를 막아 나선 지킴이들의 몫이었다.
  
  청년단체 회원들과 아예 마을에 상주하는 젊은이들로 이루어진 이들 지킴이들은 무려 12채의 집을 강제철거로부터 지켜내어 마을이 제 모양을 잃지 않게 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태어나서 이처럼 긴 하루를 보낸적이 없었다", "지고도 이기는 싸움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하는 지킴이들은 끝내 눈물을 터뜨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모처럼 밝은 환성과 박수로 이들에게 감사와 격려를 보냈고, 지킴이들은 춤과 노래로 화답했다.
  
  주민들은 안쪽의 급박했던 상황 때문에 모르고 지냈던 바깥쪽 사태를 전해 듣고 안타까움을 참지 못했다.
  
  김성기 평택대책위 공동집행위원장은 "안에서도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원정리 쪽에서도 우리가 '2박3일의 대전'이라고 부르는 투쟁을 그야말로 잠 잘 새도 없이 펼쳤다"며 "그 과정에서 마을 침탈 소식에 화를 참지 못한 시위대 약 20여명이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다 연행되었고 이들 중 한 노동자는 무지막지한 방패공격에 실명 직전까지 갔다"고 밝혔다
  
  
△대추리 평화동산에서 열린 743일째 촛불집회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김 위원장은 "아직도 많은 청년들이 평택미군기지확장 저지와 대추리, 도두리의 평화를 위해 몸 던질 각오가 되어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역시 이날의 주인공인 이전의 어떤 투쟁에서 보다 가장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준 마을 주민들, 주민들은 '들소리 방송국'에서 그날 하루 동안 벌어진 일들을 영상으로 편집한 것을 돌아보며 스스로 뿌듯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장면들 중, 2명의 인권활동가가 대추리 입구에 위치한 집을 지키기 위해 지붕에 올라선 아래에서 주민들이 올린 미사는 상당수의 빈집이 철거된 상황을 보여주던 전반부에 대한 반전이 되기에 충분했다.
  
  평소 보다 더욱 크게 울리는 함성 소리로 정리된 주민들의 촛불집회 후, 깊은 근심으로 잠 못 이루던 몇 일 사이의 그것과는 달리 주민들은 가벼운 발걸음과 흡족한 표정으로 집으로 향했다.
  
  만약 국방부가 이번 강제철거로 주민들의 기세를 꺾기로 의도했다면 그것은 철저히 실패, 혹은 역효과를 낳았다.


2006년09월14일 ⓒ민중의소리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9-18 0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포스트-오이디푸스사회의 군중

“월드컵문화” 담론의 자유주의와 그 한계

월드컵 문화와 군중

월드컵이 끝났다. 한국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좌절된 후에 사실 한국 사회에서 월드컵은 끝난 것이었다. 최종 승자를 찾기 위한 주요 경기가 남았음에도 금새 월드컵 열기는 썰렁해졌고 모두들 월드컵은 끝난 것처럼 데면데면한 낯으로 티비를 쳐다볼 뿐이었다. 진짜 축구팬임을 자처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월드컵은 이미 종료된 셈이었다. 그리고 4년 뒤에 열릴 남아공 월드컵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따위의 이야기가 무심하게 세상을 떠돌아 다녔다. 지난 4년 전의 불가사의하기까지 했던 신화를 다시 재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무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2002년 월드컵을 둘러싼 향수까지 잊지는 않았고, 우리는 다시 서로의 눈치를 살피며 “붉은악마”와 거리응원전에 눈길을 돌렸다. 그리고 월드컵 응원에 대한 이야기도 시들해졌다.
less.. 월드컵 문화라고 불리는 글로벌 스포츠 게임을 둘러싼 문화현상은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남아있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만치 많은 이들이 분석하고 논쟁했던 이야깃거리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토론과 대화가 언제나 무력하고 싱거운 것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모든 것을 망라하는 듯한 이야기가 사실은 무언가 결정적인 것을 회피하기 위한 어떤 겉꾸밈이 아닐까 하는 의구 역시 떨치기 쉽지 않았다. 이런 미심쩍은 나의 눈길에 가장 흥미롭게 다가선 대상은 월드컵 응원에 참여했던 냉소적인 관중들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월드컵 거리응원에서 우리가 놀랐던 이유는 엄청난 규모의 군중이 운집했다는 것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소요와 혼란이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알다시피 근대 사회에서 군중의 존재는 언제나 반란, 폭동, 분규 등과 연결되기 마련이었다. 그리고 그런 군중은 언제나 보이지 않는 사회적 구조가 객관화되는 증거로서 즉 고요하고 평범한 일상적 삶의 세계가 감추고 있던 사회적 적대를 표출하는 것처럼 여겨지기 마련이었다. 물론 반대의 경우로 해석하는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그 때의 군중이란 사회적 적대가 초래하는 불안과 공포를 제거하며 완전히 통합된 공동체라는 환상 속에 모두를 끌어들이는 전체주의적 동원과 그것이 만들어내는 군중이다. 어쨌든 어떤 형태의 군중이든 그것은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근본적인 적대 혹은 데리다 식의 표현을 빌자면 “구성적인 적대”와 불가분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표시한다. 다시 말해 완벽히 통합된 공동체를 상연하는 것이든 아니면 환상을 통해 지탱되는 사회가 더 이상 불가능해지는 순간 그것을 분열된 사회적 집단의 대결로 표출하는 것이든 군중은 언제나 주어진 사회의 적대를 참조하지 않으면 설명할 수 없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적어도 1987년의 6월 항쟁이후 거의 처음으로 적어도 규모의 면에서 그에 육박하리만치 대단한 기세로 등장한 이 새로운 군중은 무엇인가. 그 사이에 탄핵반대집회니 하는 도심의 “촛불 집회”같은 형태로 간헐적으로 출현했던 군중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이는 2002년 월드컵 거리 응원전에 운집했던 군중을 선구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그것을 예상케 하는 전조로서 볼 수 있는 것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역시 우리를 놀라게 했던 것은 거의 백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 운집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놀랍게도 사회적 적대와의 참조 관계를 상실한 것처럼 보였다는 놀라운 사실에 있었다. 따라서 “월드컵 문화”를 둘러싼 흥분되고 격정적인 반응의 이면에는 새로운 군중에 대한 놀라움과 충격이 배어있다고 볼 수 있다. “사회의 불가능성”을 통지하는 균열의 표현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사회의 이상이 위기에 몰렸을 때 공포와 불안에 휩싸인 성원들을 상상의 공동체로 묶어주는 열광적인 동원도 아닌 군중이란 과연 무엇인가. 이 수수께끼에 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가능한 모든 주장들을 내놓았고(혹은 그것과 상대하기를 회피하였고), 그것은 이른바 “월드컵 문화”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주된 담론적 공간이 만들어졌을지 모른다고 가정할 수 있을지 모른다.

... [중략] ...

군중의 욕망, 자유의 욕망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오이디푸스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할 때, 상징적 권위가 무너지고 모두가 자유로운 의사결정의 주체가 되어 적극적으로 자유롭게 선택하는 개인이 되었다고 주장할 때의 문제 역시 새롭게 조명할 필요를 느끼게 된다. “포스트-오이디푸스” 사회의 군중이 더 이상 상징적 권위의 금지에 시달리지 않는다고 할 때, 아버지-신-국가-남성 등의 어떤 초월적이고 보편적인 권위를 자유롭게 협상하고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다문화주의적 사회가 되었다고 할 때, 우리가 직면하는 것은 놀랍게도 자유가 놀라울 정도로 위축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그 금지가 부과하는 자신의 상징적 정체성과 거리를 유지하며 행사할 수 있었던 자유를 대신하여 자신이 모든 것을 떠맡고 결정하여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우리를 내모는 불안이 들어선다는 것이다. 이는 근면, 성실하여야하는 노동자 대신에 자기경영을 수행하는 인적 자본, 평생직장 대신에 평생직업을 택한 직장인, 모범학생 대신에 자기주도적 학습자, 질서와 전통을 지키는 시민 대신에 라이프스타일의 개척자가 공식적인 정책과 제도, 경영의 담론이 제시하는 주체의 모습이 된 현실로 다시 복제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이 더할 나위 없는 불안 속에 허덕인다는 것 역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와 포스트-오이디푸스 사회의 군중과의 관계는 무엇인가. 사회적 적대 혹은 다른 말로 사회의 불가능성을 중단시키고 사회라는 환상을 수립하여왔던 상징적 권위가 위기에 빠졌다면 그것과 상관적이며 또한 필연적인 부산물이라고 할 군중 역시 위기에 빠져든 것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는 더 이상 군중을 통해 보편적 권위에 도전하는 인민이나 대중의 형상으로 자신을 제시할 이유를 잃게 된 것 아닐까. 차라리 “자기성찰적 주체”가 되어 자신의 삶을 둘러싼 다양한 문제들과 관련한 쟁점들을 다루는 전문적 지식의 소비자가 되어버리는 것이 맞는 것 아닐까. 물론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포스트-오디디푸스 사회의 군중에 대하여 서둘러 결론을 내리기를 피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붉은악마는 스타일의 정체성을 실현하는 나르시시즘적인 개인들의 군집도 아니고 또한 자유롭게 자신의 선택과 의지를 표현하며 새로운 시민성이나 공적인 덕을 조직하는 집합적인 행위자도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주장해야 하는 것은 그 군중이 상징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지만 바로 그 상징적 권위를 유효한 것으로 만들어주던 힘, 즉 어떤 상징적 허구의 문자적 메시지를 초과하는 힘으로서의 말의 물질성(이를테면 그냥 평범한 말과 “말씀”의 차이), 어떤 상징적 언표를 단순히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복종해야 하는 명령으로 만들어주는 차원에 여전히 이끌려 다닌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징적 권위의 호출에 응답하기 위하여 고개를 돌릴 때 내가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은 나를 부르는 그 목소리 때문만은 아니라 내가 선험적으로 유죄이기 때문이라는 정신분석학의 주장과 다르지 않다. 결국 우리는 상징적 권위를 손쉽게 부정하고 그것을 조롱하며 자유로운 협상을 통해 우리가 따라야 할 행위의 규칙을 작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권위로부터의 해방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것 역시 분명하다. 그것은 상징적 권위가 소멸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지탱하고 있던 힘은 전연 손대지 않은 채 남아있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상징적 권위가 실추되었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 상징적 권위의 기저에 존재하는 맹목적인 힘에 더욱 견인당하고 조정될 수 있다.
끊임없이 새로운 상징적 질서가 만들어지고 수정되며 그것이 숱한 협상과 토론을 통해 변경될 수 있다. 우리는 그런 점에서 거대 서사의 위기, 보편적인 준거가 될 지식의 몰락, 상징적 권위의 침몰 등을 겪고 있음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적대와 지배의 소멸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에 분명하다. 근대의 계몽적 지식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지만 우리가 동시에 지배로부터 혹은 적대로부터 해방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포스트-오이디푸스사회의 군중에 대하여 우리가 물어보아야 할 것은 바로 상징적 권위에 의존하지 않는 군중을 이끄는 그 힘에 대하여 물어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분명 “붉은악마”는 보수적 자유주의자들이 상상하는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국가주의를 통해 동원된 군중이 아닐 것이다. 그들은 이미 자신을 계몽한 냉소적인 대중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새로운 군중을 불러 모으는 것은 무엇인가. 상징적 권위가 존재하고 그것의 목소리를 통해 사회라는 환상 속에 대중을 묶어내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들리지 않는 소리가 있어 군중이 등장하게 되는 것일까.
이에 대하여 우리가 내릴 수 있는 답변은 바로 그 전상징적 명령의 차원과 상징적 권위의 차원 사이의 거리를 의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상징적 권위의 붕괴에도 불구하고 전상징적인 명령의 차원이 작동한다는 것은 곧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비판의 실패를 가리키는 결정적 증거이다. 조직인간을 넘어 자기실현의 노동주체로, 획일적인 보상을 넘어 능력과 자질에 대한 평가로, 평생직장이 아닌 직업의 유목민으로 되기를 원한다며 “포드주의적 자본주의” 혹은 “개발독재”를 공격하였던 수많은 시도들을 상상해보자. 물론 그들의 이상은 완벽하게 실현되었으며, 유연화, 자기실현, 자기주도성, 평생직업, 고용가능성(employablitiy)같은 용어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새로운 자본주의의 이상이 되었다. 그리고 강요된 자유 자체가 자본주의를 작동시키는 유력한 윤리적 이상이 되어있음을 확인하고 있다.
결국 자유주의적 비판이 결정적으로 간과하고 있는 것은 가족-국가-법으로 상징되는 상징적 권위를 비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이 자본의 한계는 자본 그 자체이며, 자신을 끊임없이 파괴함으로써만 자신을 재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의 역사적 조건을 구성하는 어떤 형태의 상징적 권위를 변경하는 것만으로도 자본주의는 극복될 수 없다. 이는 상징적 권위의 비판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상징적 권위에 대한 비판 이후에 우리는 여전히 얼굴 없는 명령에 시달리고 이는 전보다 더 심각하게 자유를 위축시킨다. 바로 그러한 명령은 더 이상 초월적 권위를 갖지 않은 다양한 전문적 지식들의 세계가 들어선다 해도 사라지지 않는 구성적 배제에서 비롯된다. 그렇다면 질서정연하게 자신의 주어진 상징적 위치를 담지하고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회적 위치를 수행하는 주민과 그러한 구성적 배제를 표출하는 무질서한 군중 사이의 거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초월적 보편적 권위를 가진 지식의 세계에서 수많은 작은 상대적 지식의 세계로 전환하였지만 모두를 규제하는 보편적 명령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아마 그것을 역설적으로 웅변하는 것이 바로 불가사의하기까지 한 “붉은악마”의 등장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주의적 이데올로기의 해법을 통해 포스트-오이디푸스사회의 군중을 해석하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해석은 그 군중을 이끌어냈던 보이지 않는 명령을 반성적 주체가 되어버린 개인의 선택의 결과일 뿐이라는 해석에 머무른 채, 그 명령을 부인하거나 무시했을 뿐이다. 결국 바로 그 보편적 명령이 무엇인지 분석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아갈 세계는 훨씬 위험하고 섬뜩한 세계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붉은악마” 이후의 군중은 무엇인가. 우리는 그에 대하여 물어야 하고 또한 답해야 한다. ■

- <문학과사회> 2006년 가을호에 기고한 글

[고백컨대, 몇년전부터 군중에 관한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카네티나 르봉, 리즈먼같은 이들이 써놓은 군중에 관한 글도 있고, 또한 다중이나 대중이란 이름으로 계급을 초과하는 군중의 현실적 존재를 탐구한 이들도 있다. 나는 그것을 함께 묶어 생각해보고 싶었다. 제법 많은 글을 읽고 생각을 다듬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런데 쉽게 덤벼들지 못했다. 군중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주체화에 관한 많은 이야기들이 반사회적 주장을 한다는데 대한 나의 반동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청탁을 받고 그런 생각의 한꼭지를 정리해보렸는데 아주 멍청하고 싱거운 글이 되어버렸다. 그간 무조건 책을 멀리하고 글을 읽지 않으려는 습성 때문인지 생각을 머리 속에 모으기가 쉽지 않다. 왜 이토록 무력하고 짜증스러울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waits 2006-09-15 0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인사 남겨주신 후에 가끔 구경 오는데 카테고리 이름들이 인상적이예요.
중략은 아쉽지만 서동진 선생님 글이 반가와서 댓글 남깁니다. ^^

바라 2006-09-15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반갑습니다 나어릴때님, 서동진님 블로그에서 퍼왔는데 중략은 저도 뭔지 잘 모르겠네요; 카테고리 이름들은.... 지난달 처음 서재 만들 때 그냥 생각나는대로
쓴 건데, 지금 보니 우습기도 하네요.
 
 전출처 : 로쟈 > 지젝과 고진의 가상대담

동국대 대학원신문에서 흥미로운 글 하나를 옮겨놓는다(교수신문에 링크돼 있다). '슬라보예 지젝과 가라타니 고진의 가상대담: 문제는 정치경제학이다!'란 제목이며 필자는 문학평론가 복도훈씨이다.

코기토(Cogito)……: 정신분석과 맑스주의

슬라보예 지젝: 안녕하십니까. 93년이었던가요, 제가 가라타니 고진 씨가 관여하던 ‘비평공간’에 초대되어 선생의 후배인 아사다 아키라 씨와 대담을 나눈 지가. 그 잡지에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1989)을 연재번역한 때로부터 참으로 많은 시간이 지났군요. 상이한 조건 속에서도 비슷한 작업을 하는 지식인들을 만나는 일은 제겐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특히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비판에 대한 선생의 끈질긴 열정은 감동적입니다.

가라타니 고진: 벌써 그렇게 됐나요. 최근에 선생께서 제 책인 <트랜스크리틱: 칸트와 맑스>(2003; 영문판)에 대해 쓰신 서평 ‘시차視差적 관점The Parallax View’(2004)은 잘 읽어보았습니다. 저 역시 선생님의 역작인 <까다로운 주체>(2005; 일역판)에 대해 짧게나마 서평을 썼습니다. 거기서 해체론을 포함하는 탈근대주의 이론에 맞서 데카르트의 코기토를 옹호하는 선생의 제스처는 제게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일찍이 저도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하던 일본에서 <탐구>1·2(1986; 89)와 같은 이론적 저작을 통해 데카르트적 코기토를 옹호한 바 있지요. 그래서 선생의 책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 말마따나 상이한 공간에서 작업을 하는 데도 ‘섬뜩하게’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 말입니다. 말 그대로 시차(時差, 視差)죠(웃음). 그 전에 독자들을 위해 간단히 자기 경력을 이야기하면 어떨까요?

지젝: 좋습니다. 저는 49년에 지금은 해체된 유고슬라비아의 연방 국가였던 슬로베니아에서 태어났습니다. 공산국가였기 때문에 저는 맑스주의와 친숙한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맑스주의, 특히 프랑크푸르트학파가 당과 체제의 공식이론이었고 저는 거기에 반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별도로 프랑스의 (탈)구조주의에 적극 관심을 가졌습니다. 제가 친구들과 함께 데리다의 <그라마톨로지>(1967)를 대학 1학년 때 번역했는데, 68년의 일이었으니 아마 세계 최초의 번역이 될 겁니다(웃음). 이후에 저는 라캉정신분석에 지속적인 관심을 가졌습니다. 80년대 초반, 저와 친구인 믈라덴 돌라르와 함께 이론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하고 라캉의 사위이자 수제자인 자크-알랭 밀레를 초청했습니다. 그때 밀레가 저와 돌라르에게 유학을 권해서 함께 파리 8대학에 갔습니다. 저는 88년에 <가장 숭고한 히스테리증자: 헤겔이 지나간다>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이듬해 영어로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을 펴냈습니다. 동구사회주의가 무너질 즈음이고 자유주의 만세의 합창이 울려 퍼지던 분위기였죠. 그 무렵 유고슬라비아도 해체되었고 저는 슬로베니아 대통령후보로 출마했다가 다행히 떨어졌지요(웃음).

그로부터 약 20여 년 동안 저는 주로 영어권에서 활동하여 30권 가량의 책을 펴냈는데, 최근에 당신 책에 대한 서평을 토대로 <시차적 관점>을 냈죠. 저는 슬로베니아 라캉학파의 좌장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그런 학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웃음). 그냥 저와 돌라르가 이론정신분석학회를 창립해 각각 회장, 부회장을 맡은 격이지요. 그렇지만 돌라르를 비롯한 제 동료들인 알렌카 주판치치, 레나타 살레츨, 미란 보조비치 등은 매우 독창적인 저작을 펴내고 있지요. 저는 현재 라캉정신분석과 헤겔철학, 맑스주의적 정치경제학비판을 결합하여 전지구적 자본주의에 맞설 보편성이라는 문제에 대해 고심하고 있습니다.

고진: 저는 41년생입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공부하는 한편 당시의 좌익운동이었던 전공투에 몸담았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좌익운동이 테러리즘으로 귀결되고 난 후 저는 문학비평을 하는 동시에 <맑스, 그 가능성의 중심>(1974)과 같은 저작을 썼습니다. 맑스주의를 죽은 개 취급할 그 당시에 맑스에 관한 책을 써서 욕 좀 먹었지요(웃음). 한편으로 저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1980)과 같은 문학비평적 저작을 통해 근대문학이 제국주의적 국민국가의 이데올로기와 공모하고 그것을 은폐한 흔적을 쫓으면서 일종의 해체론적 비평을 감행했습니다. 물론 그것은 푸코의 구성주의나 데리다의 해체주의와 연관성이 있지만, 이른바 그것들의 속류판인 포스트모더니즘과는 다릅니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일본근대 초창기의 대작가에서 저는 문학의 다른 가능성을 엿보았지요.

<트랜스크리틱>을 쓴 최근까지 제 관심사는 자본=국민=국가라는 보로메오 매듭을 해체하는 신연합운동(New Association Movement)의 구체적인 형태를 구성하는 데에 있습니다. 실패로 끝났지만 지역통화(LETS)에 기반을 둔 NAM운동을 했던 것도 그런 연유였지요. 돌이켜보면, ‘맑스, 그 가능성의 중심’의 자본주의 비판,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의 국민국가비판이 <트랜스크리틱>에서 종합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트랜스크리틱>까지 저는 맑스주의 정치경제학비판과 문학비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느라 부심했지요. 최근에 <근대문학의 종언>(2005)을 통해 저는 문학을 떠난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문학의 사회적 역할이 그 소임을 다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무튼 저는 혼자서 1인 2역을 담당하느라고 거의 분열될 지경이었지요. 라캉학파 정신분석가에게 정신분석치료를 받다가 그만두었을 정도니까요(웃음). 아시다시피 일본은 라캉학파 시장(市場)입니다.

……에르고(Ergo)……: 이데올로기와 자본주의 비판

지젝: 저 역시 밀레로부터 정신분석임상훈련을 받다가 그만두었지요. 지금 생각하면 둘이서 교활한 분석가 대 음험한 히스테리증자로 지적 곡예를 벌였다는 느낌이지요. 그나저나 그때부터 저는 라캉정신분석의 임상치료에 대해 거리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밀레와도 사이가 소원해 졌죠. 물론 라캉에 대한 그의 정교화작업은 여전히 찬탄을 불러일으키지만요. 저는 정신분석의 사회적·문화적 활용을 더 중요시 합니다. 저는 선생이 문학에 대해 비평작업을 수행한 것에 상응해서 대중문화에 대한 일종의 ‘증상적 독해’를 해왔지요. 그러나 저는 <삐딱하게 보기>(1991)나 <당신의 징후를 즐겨라!>(1992) 등을 통해 할리우드 영화와 고급이론을 접목시키고 거기서 사람들이 대중문화를 ‘즐기는’ 방식을 관찰했습니다. 거기서 저는 온갖 정치적·사회적 이데올로기적 꿈, 말실수, 소망충족, 특히 죽음충동과 향유(jouissance)의 뒤틀린 형태를 발견했죠.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대상>에서 저는 포스트이데올로기 시대의 인간은 이데올로기로부터 거리를 둔 냉소적(풍자적) 형태로 이데올로기에 붙들려있다는 공식을 내놓았습니다. 단순히 이데올로기에 대한 거리를 둔, 맑스로부터 알튀세에 이르는 비판적 독해로는 만족할 수 없었죠. 왜냐하면 사람들은 이데올로기에서 바로 자신들이 ‘즐길만한’ 뭔가를 발견하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그릇된 것인 줄 알면서도 (거리를 두면서도) 그것을 행하는 (그것에 참여하는) 이상한 역설이 생겨납니다. 예컨대 90년대 이후의 인종주의, 특히 제 조국이 속해있던 발칸반도에서 벌어진 인종적 증오와 폭력의 향유는 사실 그에 대해 경악한 서구의 냉소주의와 구조적으로 상동관계입니다. 돌라르는 발칸반도는 서구유럽의 무의식이라고 했죠. 저는 라캉, 특히 후기라캉의 정신분석을 이데올로기비판의 강력한 형태로 재가공했습니다. 실재(The Real)와 향유, 증환(sinthome) 등과 같은 개념이 제게 중요하죠.

고진: 저는 선생과는 조금 다르게 맑스, 특히 <자본론>을 제 비판적 사유의 준거점으로 삼고 출발했습니다. 제가 하부구조만 선생이 상부구조만 문제시했다는 건 오해가 되겠죠. 저와 선생 모두 상품형식에 대한 맑스의 비판에서 출발한다는 점에서 그것은 정치경제라는 매트릭스를 문제 삼고 있죠. 저도 '일본정신분석’이라는 글에서 정신증적 폐제(foreclosure)라는 라캉의 개념을 통해 안으로는 포스트모던적이지만 밖으로는 자폐적인 일본의 담론공간을 분석한 바 있습니다. 뭐, 일본의 어떤 포스트모던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남경대학살(1938)은 구성된 담론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말하니까요(웃음). 지나가면서 언급했지만 <트랜스크리틱>에서 자본=국민(nation)=국가(state)라는 삼항조는 실재=상상계=상징계라는 라캉적 보로메오 매듭과 연결됩니다. 이건 단순한 유비는 아닙니다. 저는 오랫동안 <자본론>을 읽으면서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숨 막힐 듯한 영구적 순환이 자본주의경제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정과 유통과정의 기묘한 틈새, 예컨대 공황(위기)을 통해 자본주의가 더욱 가속화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젝: 상처는 상처를 낸 창만이 치유한다!

고진: 그렇죠. 예컨대 물건은 팔리지 않으면, 다시 말해 유통과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상품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특유의 ‘목숨을 건 비약’이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황 때에 생산된 물건을 바다에 내다 버리는 것이지요. 그건 상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유통과정, 즉 화폐(M)-상품(C)-화폐(M) 사이에 틈새, 생산자인 노동자들이 동시에 소비자가 되는 지점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의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은 생산과정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파업, 스트라이크와 같은 폭력적 형태로 자본주의에 저항해왔지만, 거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오히려 유통과정에 주목하면 문제가 풀리죠. 생산자는 곧 소비자이기도 합니다. 맑스가 2천년 동안 지속해온 수수께끼라고 말했던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물건을 생산해서 상품이 될 때 넘겨지는 차액이지만, 이것은 또한 노동자=소비자가 상품을 구매할 때도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역통화나 NAM을 통해 잉여가치가 0(zero)인 교환형태를 구상했던 것입니다. ‘당신의 노동력 상품을 팔지 마라’는 안토니오 네그리의 이론과 함께 ‘자본가의 상품을 사지 마라’는 간디의 노력은 소중합니다. 지금까지 자본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듯하지만, 그것은 오늘날 비판만으로는 사라지지 않는 국민=국가를 재조명하는 측면도 있습니다. 국민에 대해 소비자연합을, 국가에 대해 소비자 연합단체나 기구를 상상해보면 됩니다. 그것은 국민=국가 ‘사이에 존재하는’(in between) 새로운 코뮌의 기반이 될 것입니다.

……숨(Sum): 레닌주의와 신연합운동

지젝: 칸트 식으로 말하면 국민=국가=자본은 초월적 가상과 같은 것이라서 계몽주의적 비판만으로는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다문화주의적 탈식민주의와 국민국가비판에 대해 제가 마뜩해하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죠. 선생도 이에 대해 언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칸트철학에서 초월적 가상은 보통 신·세계·영혼 같은 것인데, 이것은 이성 자체에서 연유하는 형이상학적 가상이라는 점에서 문제적입니다. 비판의 탄환으로 쏘아 죽였다싶더라도 흡혈귀처럼 살아남죠. 억압된 것의 회귀입니다. 그러고 보면 선생이나 저나 오늘날에 벌어지는 ‘칸트로의 회귀’에 일조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의견차가 있을 듯 합니다. 저는 독일관념론에서 헤겔을 가장 중요한 철학자로 생각하는데, 선생은 좀 다른 듯 합니다. 선생의 헤겔 비판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의 전형적인 헤겔 비판, 즉 절대지에 가보지도 않고 의식과 절대지의 순환을 처음부터 닫힌 체계로 파악하는 듯…

고진: 이제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일만 남은 건가요(웃음). 선생의 책을 읽다보면 참조하는 철학자의 계열이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선생은 데카르트-칸트-셸링-헤겔과 함께 기독교철학자인 말브랑슈-파스칼-키르케고르를 중요시하지요. 현대철학자 중에서는 플라톤주의자인 알랭 바디우가 선생의 이론적 동지이고요. 저는 데카르트-스피노자-칸트-니체와 함께 데리다-푸코-들뢰즈의 사유노선에 아무래도 가까운 듯 합니다. 참, <신체 없는 기관: 들뢰즈와 결과들>(2004)을 읽어보니 선생은 모두가 사랑하는 스피노자를 홀로 싫어하고 계시더군요. 상징계를 고려하지 않은 상상계의 철학자라고(웃음).

지젝: 들뢰즈의 표현을 비틀어 저는 그것을 스피노자 뒤에서 하는 헤겔의 비역질이라고 했죠(웃음). 사실 헤겔의 절대지는 의식의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 그것이 끊임없이 실패하는 구조적 불가능성이라고 보고 싶습니다. 저는 그것을 실재라고 부릅니다. 사드 소설에는 자신의 성기를 자신의 항문에 삽입하는 기괴한 장면이 나오는데, 그런 점에서 의식을 절대지 뒤에 삽입시켜 닫힌 원환 고리를 완성하는 도착증적 꿈을 꾸는 자들은 바로 헤겔에 대한 비판자들인 거죠.

고진: 글쎄요. 정신분석적인 사후(事後)의 시점에서 헤겔을 전유한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공평을 기하자면, 헤겔의 ‘법철학’과 같은 저서는 중요합니다. 헤겔은 다양한 욕망의 형태를 긍정하는 시민사회(자유)를 인정하면서 그것이 초래할 수 있는 불평등을 제어할 수 있는 국가(평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 둘의 불일치는 국민(형제애)이라는 상상력으로 보완되지요. 이것은 나중에 맑스가 각각 <루이보나파르트 브뤼메르 18일>(1852)과 <자본론>(1867)에서 행했던 근대국민국가비판과 정치경제학비판으로 이어집니다. 공교롭게도 맑스는 헤겔에 대한 긍정적 언급으로 두 책을 시작하고 있죠. 헤겔에겐 확실히 이러한 잠재력이 있습니다. 그래도 저는 ‘타인을 수단뿐만 아니라 목적으로도 대하라’라고 말하는 칸트에서 코뮤니즘의 시작을 보고 싶습니다. 그는 계몽에 내재하는 ‘적대’(antagonism)에 대해 누구보다도 민감했습니다. 칸트는 계몽이 먼 미래에는 완성될 것이라고 보았지만, 스탈린주의자처럼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았죠. 우리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후손을 상상하고 투쟁해도 좋습니다. 환경문제나 석유전쟁, 기아, 치명적 전염병 등이 일어나는 오늘날의 자본주의체제에서 칸트의 정언명법은 훌륭한 21세기 윤리입니다.

지젝: 그렇군요.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전지구적 자본주의 쪽으로 옮겨가고 있는데요. 오늘날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는 자본에 대한 대항운동에 대해 의견을 나누면서 짧은 대담을 끝낼까 합니다. 네그리·하트의 <다중multitude>(2005)에 대해 말해보죠.

고진: 점점 더 가혹해지고 있는 후기자본주의체제에서 다중은 분명 긍정할 만한 요소가 있는 대항운동의 우세한 작인이지만, 뭐랄까, 지나치게 낭만적(문학적)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체제가 허용하는 한에서의 일시적 축제라고나 할까요. 다중은 맑스·엥겔스의 <공산당 선언>(1848)에서 말한 프롤레타리아트의 21세기 판본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요점은 ‘만국의 노동자여, 일하지 말자’입니다. 하지만 아까 말한 것처럼 이것 역시 생산력의 측면에서 자본에 대한 대항운동을 구상하는 전통적 발상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국가개념에 대한 성찰이 없습니다. 신자유주의적 제국주의에 대항한다면 알 카에다도 다중이 아닙니까. 다중은 애매모호합니다.

지젝: 다중은 이렇게 말하죠. ‘나는 동성애자이고 전업주부이며,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팔레스타인인이다…’ 이것은 은유, 시(詩)라면 문제가 없지만, 분명 정치는 아닙니다. 연대는 필요합니다만, 저는 다른 관점에서 다중이 성, 인종 등의 범주를 들여오면서 계급문제를 흘려버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그들도 계급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성, 인종과 같은 종(鍾)으로 격하됩니다. 계급은 종이되 종이면서 유(類)입니다. 유일무이한 적대죠. 역시 문제는 정치경제학입니다(웃음)! 다중이론가들은 스피노자의 정동(affect)개념을 근간으로 삼지만, 이 정동이야말로 파시즘의 구성요소이기도 하죠. 그들은 ‘권력 없는 권력’을 원한다 말하지만, 이건 손안대고 코풀자는 거 아닙니까. 만일 그들이 권력을 잡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오히려 당파적 레닌주의나 바디우식의 마오이즘이 역으로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진: 다중에 대한 선생의 비판에는 동의합니다만, 레닌주의, 마오이즘의 정치적 폭력과 테러리즘은?

지젝: 저는 세계를 비난하되 자신은 거기에 빠져있는 좌파적 ‘아름다운 영혼’의 자기기만을 선택하느니보다 보수주의자처럼 손에 피를 묻히더라도 단두대를 선택하는 행위(act)가 낫다 생각하는 편입니다.

고진: 쉽지 않은 문제군요. 선생 식대로라면 자코뱅적 테러와 알 카에다의 테러를 어떻게 식별하죠? 저는 오히려 자본의 적대를 인식하는 새로운 소비자운동이야말로 대안이 아닐까 싶은데. 그렇지만 저나 선생이나 자본에 내재한 적대로부터 코뮨적 유토피아를 구상한다는 점에서는 동지입니다.(웃음)

지젝: 네(웃음). 아마도 그러한 노력이야말로 유토피아적인 순간에서 영원을 창출하는 행위일 겁니다. 자, 이것으로 짧은 대담을 아쉽게 정리해야할 것 같군요. 감사합니다.(복도훈 문학평론가)

06. 09. 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