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계의 문제적 감독 신재인 스토리 영화

2005/11/1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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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재인의 진실이 전진한다

신재인은 누구인가? 지난해와 지지난해 독립영화를 조금이라도 주목했던 사람이라면 이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라는 단 2편의 단편영화로 독립영화계의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이 문제적 감독에 대한, 조금 늦게 날아온 보고서.

이 사람은 신재인이다. 70년 대전 출생,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으며, 한국영화아카데미 17기다. 혹자는 그를 “영화천재”라고 부르기도 하고 혹자는 “약간 사이코라며?” 되묻기도 한다. 본명은 신미경. 재인(才人)이란 이름은 지난해 투병하다 돌아가신 어머니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다. ‘재능있는 인간’이기도 하고 ‘영화 만드는 광대’이기도 하다. 바쁜 와중에도 사진기자에게 “왼쪽 얼굴이 잘 나오니까 사진은 왼쪽으로 찍어달라”는 주문을 잊지 않는 걸 보니 꽤나 까다로운 성격임에 분명하다. 하나 이런 사실이나 추측들은 그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는 유독 상 복, 상금 복 많은 감독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이런 번쩍이는 트로피 역시 신재인을 설명할 수 없다.

… 이 기괴한 순환. 또는 술래를 알 수 없는 숨바꼭질. 그래서 번번이 불려가야 하는 지옥의 영겁회귀. 여기에 이 도착증에 빠진 채 물구나무를 선 신재인의 종잡을 수 없는 묘기가 있다. 제임스 카메론의 <타이타닉>과 루이스 브뉘엘이, 혹은 스즈키 세이준과 마리오 바바가 뒤죽박죽으로 앞서거나 뒤서면서 등을 떠밀거나 발을 걸어 시종일관 휘청거리면서 우리가 잘 알고 있던 상징적 법의 인과성을 교란시킨다. 말 그대로 그것이 담론의 목에 꽂혀서 삼켜질 수 없는 형상-원인이 되어 결국 토해내게 만든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환원되지 않는다. 익사할 만큼 넘쳐나는 담론의 토사물. 이 영화 안에 들어서는 것은 말 그대로 신재인 월드에로 다이빙하는 것이다….” - 영화평론가 정성일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은 기발한 이야기 소재에 엉뚱하고 성숙한 유머를 천연덕스럽고 솜씨있게 비벼놓아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모든 감독들을 한방에 보내버렸다. 뒤에 알았지만 그에게 매료당한 영화인들이 꽤 있었던 걸로 안다.” - 영화감독 김지운

이미 눈치챘겠지만, 이 글은 순전히 신재인이란 감독에 대한 소개글이다. 그러니 잠시, 콸콸 쏟아져 흘러내리는 극찬들과 단명한 진실을 거두고 다음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 물론 이 흥미로운 ‘중독의 역사’ 역시 신재인이라는 인간을 아는 데는 작은 단서밖에 안 되겠지만.

신재인이 대학에 입학한 해는 1988년이었다. 자고 일어나면 누군가 분신을 했고, 거리는 화염병과 피로 뒤덮였다. 매일 매일이 전쟁 같은 시기였다. 그는 혼란에 빠졌다. 대의명분을 강요하는 사회에도 신물이 났고, 대의명분에 따라 살지 못하는 스스로에게도 자괴감이 밀려왔다. 결국 그는 정반대로 사랑에 탐닉했다. 중독에 가까운 연애였다. 1학년 때 만난 남자친구(지금의 남편)와, 당시만 해도 너무 파격적으로, 애정행각을 벌였고, 그를 “똘아이로 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하루는 기숙사에 남자친구를 불러들였다가 들켜서 전 기숙사 생도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한 여성지에서는 ‘요즘 대학생들의 문란한 성생활’이라는 기사로 그를 다루기도 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인터뷰가 실렸고, 기사는 마치 그를 ‘새시대의 자유부인’이라도 되는 양 보도하고 있었다. 캠퍼스를 걷다보면 학생들이 “이런 시국에 사사로운 연애질이 웬말이냐!”는 증오 담긴 쪽지를 돌에 묶어서 던지고 가곤 했다. 결국 기숙사에서 쫓겨났고 2학년 때부터 학교 코앞에서 본격적으로 동거를 시작했다.

화학과를 다니다 “너 같은 아이는 철학을 해야 해”라는 말에 다시 시험을 쳐서 철학과에 입학했지만 동·서양철학은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이었다. 대신 수학처럼 명료했던 논리학에만 빠져들었다. 결국 하루라도 빨리 이 혼란에서 빠져나오고 싶다는 생각에, 아무런 계획도 없이 4학년1학기 만에 조기졸업했다. 그러나 연애와 논리학으로만 버틸 수 있었던 대학 4년이 준 정신적인 외상은 꽤나 컸다. 졸업은 했지만 목표없이 헤매기는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자괴감에 허우적대며 심한 데카당이 되었다. 돈을 벌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렇게 인생을 “낭비하면서” 살던 중 별 생각없이 고시준비를 시작했다. 원래 “안 자고, 안 씻는 걸 잘하고, 시험운도 좋은 편이라” 사시, 행시 1차는 몇달 만에 붙어버렸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금세 2차도 붙겠거니 기대했다. 그런데 문제는 비디오방이었다. 그 당시 신림동 고시촌 주변에 비디오방이 우후죽순 불어나면서 가게 사이 경쟁이 붙어 한편에 500원까지 가격이 떨어졌다. 어느 날부터 그는 비디오에 중독되었다. 닥치는 대로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시네마테크에 빠져든 영화광처럼 하루에 5편은 기본이었다. 공포영화, 액션영화, 멜로영화 등 가리지 않고 보았다. 결국 2차 시험일, 그는 비디오방에서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어쌔신>을 보고 있었다. 그냥 그 영화가 좋아서라기보다 중독이란 다 그렇듯, 이유없이 그 영화를 오늘 안 보면 못견딜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는 화가 나서 장롱을 부수셨고, 거의 죽이기 일보직전으로 노여워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그 길로 고시공부를 때려치웠다. 대학원도 가고, 이런저런 직장도 다녔다. 1년 동안은 모 대학 법대교수 비서로 들어갔는데, 이 생활은 정말 가관이었다. 강남의 으리으리한 멤버스술집 문 앞에서 양복 들고 기다리는 일은 양반이었다. 썩어문드러진 인간의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적나라하게 보는 기회였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미쳐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98년 여름이었다.

 

“… 세상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어 그들의 몸속을 돌아다니는 피는 다음과 같이 속삭이곤 한다고 합니다. ‘너의 이야기가 진실이어도 거짓이어도 상관이 없다. 다만 모순이 없도록만 하여라. 그럼 내 네게 영생(永生)을 약속하마.’ 한때 그의 몸속을 돌아다니기도 했던 이 피의 속삭임을 믿는다면 그가 영생을 누리지 못한 까닭은 단지 그가 모순없는 이야기를 지어내지 못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 소설집 <포도주> 프롤로그 중

짧은 단편들로 이어진 소설집 <포도주>는 한 문화재단 공모에서 당선되었다. 그러나 결국 여덟 군데 출판사에서 “책으로 만들긴 좀 대중적이지 못하다”는 거절의 말을 들어야 했다. 99년 여름 1년간 처박아 두었던 소설을 다시 읽어보았다. 다시 출판사에 들고 가보았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그럼 이걸로 영화를 만들어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렇게 99년 한겨레문화센터에 들어갔고, 영화아카데미가 나이제한이 없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급조해서 만든 단편 <소세지>를 들이밀었다. 합격했다는 전화를 받았다. 입학생의 절반 이상이 연극영화과 출신이라 비디오방에서 1년을 죽친 자신과는 지식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났지만, 별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학교는 가르쳐주는 게 없었지만 동기들이 영화 찍는 걸 옆에서 보면서 진짜 영화란 것이 무엇인가를 배우기 시작했다.

“… 그렇다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해. 우리 인간들은 소중한 양분이 될 많은 자원들을 방치해두고 있는 것은 아닐까. 천지에 먹을 것을 널어두고도 배를 곯고. 단지 무지, 비위 혹은 그놈의 테이스트 때문에 말야….” 소설집 <포도주> 중 <남이 먹을 때1>

아카데미 1학년 작품이었던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은 뭐든 먹어치우는 놀라운 비위를 가진, 그것만이 유일한 재능인 소년의 이야기다. 영화 제목인 ‘이준섭’은 그 아이의 본명이다. 촬영헌팅을 갔던 학교에서 “PC방 가려는 데 돈이 없다, 천원만 주라”며 뻔뻔하게 묻던 아이였다. 그외 아역배우들 역시 섭외한 학교 운동장에서 무작위로 불러모은 100% 아마추어였다. 하루 나왔던 아이들이 그 다음날은 안 나오는 통에 연결이 튀는 경우도 많았다. 여자주인공을 비롯한 소녀들은 자칭 ‘칠공주파’라고 부르던 그 학교에서 좀 ‘나가는’ 아이들이었다. 머리염색해야 한다고 돈 달라는 건 예사고, 돌아서면 “아줌마, 대사가 이게 뭐야!”라는 솔직한 소리도 서슴없이 내뱉았다. “나는 아이들이 싫다. 내 영화에 아이들이 곧잘 등장하곤 하지만 결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다. 내가 인간에게서 가장 마음에 드는 요소가 바로 위선적이라는 것과 코미디를 할 수 있다는 거다. 아이들은 코미디를 할 수는 있지만 너무 솔직해서 위선을 못 떤다. 그게 마음에 안 든다.” 이렇듯 아이들을 싫어하는 감독이 만드는, 아이들만 등장하는 이상한 영화의 촬영장엔 감독도 아마추어, 배우도 아마추어였다. 날은 영하 20도, 학교협조도 잘 안 되었고, 프로듀서는 쉼없이 내리는 눈을 치우다가 결국 삽을 던지고 도망갔다. 고생 그 자체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신재인은 너무 오랜만에 행복하다고 느꼈다. 너무 기뻐서 잠을 못 이룰 정도였다. 연애할 때의 희열, 쾌락과 정확히 일치했다. 전기가 몸에 찌릿찌릿 오는 것 같은, 깊은 고통과 엄청난 희열이 시소를 타는. 그렇게 그는 이제 ‘영화촬영’에 중독되었다. 결국 첫경험을 치르고 졸업영화를 찍기까지 1년 동안은 엄청난 금단현상에 시달려야 했다. 하루라도 빨리 촬영장에 나가서 카메라를 잡고 싶었다.

“… 들어라, 여기 유일한 것이 있다. 이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어떤 것도 진실이 아닌 것이 여기 있다. 그래도 그들이 듣지 않는다면 너는 그들의 뺨을 함몰시키고 그들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꺾어버리고자 했을 것이다. 그들의 두개골을 열고 진실을 슬쩍 집어넣은 뒤 봉합하고도 싶었겠지. 그리고 그들이 그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면 너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하느니 그 편이 차라리 낫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소설집 <포도주> 중 <너의 진실1>

1년 뒤 들어간 졸업영화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와 달리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시나리오를 보고 교회가 어떻게 물에 잠기냐고 걱정을 했지만 스스로에겐 전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인터넷 공모로 스탭들이 모였고, 의외로 교회섭외도 쉽게 이루어졌으며 특수효과 하나 쓰지 않고도 시나리오를 영상화하는 데 무리가 없었다. 그냥 너무 행복했다. 촬영이 끝나면 밤새 술을 마시고 (그들은 별로 탐탁지 않았겠지만) 스탭들에게 헤어지기 싫다고 집에까지 쫓아가기도 했다. 고단한 줄도 힘들지도 않았다. 찍고 나니 아카데미에서 준 제작비 중 50만원이 남았다. 질펀하게 술판을 벌이고 촬영이 끝나는 날 펑펑 울었다. 또 찍고 싶다, 어떻게 여기서 끝내냐, 그러다가 촬영에 대한 집착이 중독을 넘어가는 순간이 왔다. 촬영이 없는 일상생활이 너무 지루하게 느껴졌다. 밥먹고, 차마시고, 자는 시간들이 단조로워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준비 중이던 에로영화 프로젝트가 엎어지자 금단증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미쟝센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번 본 적 있는 봉준호, 허진호 감독을 무턱대고 찾아가서 “스탭으로라도 써달라”고 애걸했다. “<친구>의 마약 먹은 준석이처럼 눈이 퀭해져서”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감독들은 “영화에 대한 열망이 너무 큰 사람 같으니, 바로 당신 영화를 찍어라”며 그를 스탭으로 두는 것을 유보했다. 이런 그를 두고 충무로에서는 “신재인이란 여자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사이코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아이디어는 콸콸 쏟아지는 물처럼 흘러넘쳤다. 그러나 하나를 붙잡고 진득하게 시나리오를 발전시키고, 영화사를 찾아가고 하는 과정을 진행해야 하는데 마음이 너무 급한 나머지 계속 트리트먼트 수준의 글들만 쉼없이 쏟아냈다. 그때 쓴 트리트먼트가 대략 30여편이 되었다. 꿈에서도 카메라가 돌아가고, 빨리 찍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그렇게 불행한 시기 중간중간에 영화제에서는 상을 주었다. 그러나 상금이 들어오면 어떻게 하면 조잡한 영화라도 빨리 찍을까 하는 마음뿐이었다. 남편도 “너 좀 이상한 것 같으니까 정신병원에 가봐라”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두문불출하고 무지막지하게 시나리오를 써내려가던 중 한 제작사 대표에게 <천사를 본 소년>과 <재수없는 소녀>의 두개의 중편을 묶은 장편 프로젝트 <남이 먹을 때>를 들고 갔고 소액이지만 투자하겠다는 뜻을 들었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 공모에 당선되어 3천만원의 지원금도 받았다. 2003년 10월이었다. 드디어 그렇게 기다리던 영화찍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인간들은 너무 말을 잘한다. 그래서 지겹다. 그중 누구도 내 친구가 될 수는 없다. 내 친구는 돼지다. 나는 소를 사랑한다.” - 소설집 <포도주> 중 <공포영화>

“11월이면 촬영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요.” 장담했지만 이건 아카데미 단편이 아니었다. 15일 빡빡하게 준비하면 가능했던 단편과 달리 독립장편의 길은 멀고도 험했다. 처음에 투자를 약속했던 제작사는 지나친 서류작업을 요구했고 이런 소모적인 과정 속에서 PD들이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나가떨어졌다. 그렇게 두달간의 작업은 “유황불에 몸을 달구는 것” 같았다. 캐릭터 있는 아이들만 15명, 전체 25명의 아이들이 등장하는 아역배우 캐스팅부터 고아원 헌팅까지 시작부터 만만치 않았다. 10월 초부터 조감독과 둘이 앉아 한달을 꼬박 준비했는데 준비된 건 없었고, 몸은 축이 날 때로 나 있었다. 조강지처 같았던 조감독은 어느 날 “나는 감독님이 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라는 말 한마디를 남기고 떠났다. 스탭들은 “수능 두번

본 기분”이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고 병원을 들락날락했다. “선상반란이 가장 잔인하고 끔찍하다고 하지 않나. 스탭들의 분위기가 거의 선상반란 수준이었다.” 감독은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다. 누군가가 자신의 손등을 지지는 꿈도 꿨다. 이렇게 할 가치가 있는 영화인지, 자신의 영화가 너무 싫었다. 영화를 엎고 싶었지만 그런 말은 차마 못하겠고 “누가 뒤통수를 부수고 갔으면 했다. 영안실에 누워 있다면 영화를 안 찍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상하게 자신만은 쓰러지지 않았고, 아프지도 않았다. 그냥 유체이탈 같은 상태로 며칠 밤을 멍하니 새기도 했고 누군가는 “영화 한편 찍고 죽을 겁니까?” 하고 답답한 듯이 묻기도 했다. 결국 12월 초에 조연출과 연출부들을 새로 구성해야 했다. 제작사와는 사무실을 빌려쓰는 정도로 정리했다. 그렇게 12월22일 우여곡절 끝에 독립장편영화 <천사를 본 소년>의 첫 촬영에 들어갔다.

“옛날에 어떤 여자애가 있었어. 그애의 모친은 사려 깊게 그녀를 교육시켰지. 그녀를 소설 나부랭이로부터 격리시키고. 대신 어머니는 그녀에게 과학의 세계를 보여준다. 그녀는 아름답고 단순한, 행복한 여인으로 성장했어. 그런데 어느 날 그만 소설 <파우스트>를 읽고 말지. 그녀는 머리가 복잡해지고. 결국 그녀는 쓰러진다. 연애 감정, 죄의식, 부적절한 비유, 답이 없어도 되는 의문들, 모든 것을 아는 체하며 또한 모든 것을 알고자 하는 양….” - 소설집 <포도주> 중 <탕아, 돌아오다>

경기도 파주 교하읍, 허름한 건물에 만들어진 고아원 세트에서는 추운 날씨 속에도 촬영이 한창이다. 하지만 신재인 감독의 얼굴엔 지난 2달의 고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막상 촬영에 들어가니 모든 고민들과 고통들이 눈녹듯이 녹았다. 그는 “가장 고통스러운 시간은 촬영하지 않을 때이고, 다음은 프리프로덕션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할 때는 촬영하고 있을 때”라고 말한다. 게다가 이번엔 “매일매일 장편의 리듬을 깨우쳐가고 있는 중”이라며 꽤나 신이 난 표정이다.

“원래 집 밖에서 자는 걸 좋아한다”는 그가 촬영 시작 뒤 거의 열흘 만에 집을 찾는다. 꼬불꼬불한 상도동 골목을 따라 들어간 그의 집 문을 열자 영화준비하는 두달 동안 신경을 못 써줘서 “정신병에 걸린 것 같다”는 푸들잡종 두 마리가 유난히도 부산스럽게 주인의 사랑을 갈구한다. 머리의 무게를 가누지 못해 자꾸 고꾸라지는 중국산 스탠드가 어두운 집안을 밝히는 가운데,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얼굴이 담긴 액자와 <피아니스트>의 포스터가 부조화스럽게 붙어 있다. “스필버그는 극장에서 돈내고 보는 영화를 만드는 감독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네케 사진은 지갑에 넣어서 다닐 정도고, 아! 김기영 감독의 영화도 너무 좋다.” 이 널뛰는 ‘테이스트’의 주인공은, 13년째 은단중독이라는 이 여자는, 한번 피우기 시작하면 하루 4갑이라는 이 골초감독은 “상업성이 본질적인 것을 침해하지 않는 한 언제라도 상업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다”며 “그러나 이 지독한 중독이 다른 데 꽂혀버리면 그땐 영화를 아예 그만둘지도 모른다”고 덤덤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의 앞엔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노인을 이용해 엽기적인 성행위를 벌이는 심각하게 야한 시나리오”를 비롯, 에로영화 트리트먼트도 수북이 쌓여 있고, 당장 <남이 먹을 때>의 2편인 <재수 없는 소녀>를 찍고 싶은 조바심도 목 끝까지 차 있다. 서늘한 시선, 기괴한 감성, 진실된 유머, 의외의 상업성으로 무장한 괴물 같은 감독 신재인. 이 재능있는 인간의 진실이, 그의 중독이 전진하는 발걸음을 따라 한국영화의 지형도에서 한번도 탐험되지 않은 처녀지는 지금 막 그 입구를 열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화들, 보셨나요?

▶ <재능있는 소년 이준섭>

소년 이준섭은 못생기고, 뚱뚱하고, 인기도 없는 외톨이다. 그러나 그가 어느 날부터 샤프심, 지우개, 가래침으로 비빈 도시락, 분필, 노트 등 세상의 모든 사물들을 먹어치우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의 관심을 사기 시작한다. “야, 니네 반에도 이런 애 있냐?” “없어, 이런 애가 어딨어.” 그는 전교에서 유일한, 독창적이고, 신기한, 그리고 비위가 좋은 소년이다. 그런 이준섭이 한 소녀를 좋아한다. 소녀는 그에게 “너 나 좋아하지? 얼마나 좋아해? 많이 좋아해? 그럼 너 내 똥도 먹을 수 있어?”라고 묻는다. 운동장 한가운데서 소녀와 소녀의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는 똥이 담긴 도시락을 앞에 두고 꿈을 꾼다. 소년은 똥을 먹음으로써 사랑을 확인시키고 전교생의 축복 속에 결혼식을 연다. 해피엔드. 그러나 더욱 행복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다. 100년 만에 찾아온 가뭄으로 전 인류가 굶주려 있을 때 소년은 기차역 앞 노숙자들을 향해 “여러분 주위를 둘러보세요, 눈을 뜨세요. 모든 게 여러분의 밥입니다!”라고 외친다. 구황(救荒)소년은 그렇게 지구를 구한다. 판타지가 깨지면 소년은 여전히 도시락 앞,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다. “그래도 나는 재능있는 소년. 소녀는 나를 사랑할 거야. 그래도 우린 행복할 거야….”

▶ <그의 진실이 전진한다>

한 의사가 수술실에서 나오며 보호자에게 말한다. “수술 잘되었구요… 환자의 머릿속에는 제 진실을 넣었습니다.” 다급히 의사를 부르는 간호사의 외침을 뒤로 하고 남자가 들어선 곳은 법정이다. 남자는 법정에서도 다음 장소인 교회에서도 “내 입에선 오로지 진실만이 콸콸 쏟아져나올 것이다. 그리하여 결국 모두가 내 진실에 빠져 죽으리라”고 말하며 판사와 목사에게 대항한다. 그를 바라보는 정체불명의 푸른 모니터와 천장에서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은 이 이상한 이야기에 의문을 더할 뿐이다. 그러나 “내 입을 크게 열라”는 잠언의 말씀에 따라 남자가 입을 열자 그의 입에서 물이 콸콸 쏟아지고 결국 교회는 물속에 잠긴다. 목사는 물에 잠긴 채 말한다. “그동안 네 이야기 재미있었다. 나는 그러면 된 거라고 생각한다.” 장면이 전환되면 이곳은 경찰서 고문실이다. 남자는 “네 입을 크게 열라”는 성경구절이 써 있는 깨진 거울 아래 수조에서 물고문을 당하고 있고, 목사와 판사로 등장했던 이들은 그에게 “물 좀 고만 먹고 이제 진실을 불라”고 강요하는 형사들이다.

▶ <천사를 본 소년>

외딴 고아원 ‘천사의 집’의 원장은 식비를 줄이기 위해 원생들에게 먹는 것은 치욕스러운 일이라고 가르친다. 그는 성경의 구절을 들먹이며 아이들의 식욕을 유린하고 결국 고아원의 아이들은 배가 고픈 것을 도저히 못 참을 지경이 돼서야 식당에 가서 초코파이를 타서 침대 밑이나 화장실에서 회개하며 먹는다. 이들에게 가장 큰 벌은 남이 보는 데서 식사하는 일이다. 뚱뚱한 소년 성일은 원장의 교리를 가장 잘 따르는 아이지만 말라가는 친구들과 달리 풍만한 자신의 몸 때문에 아이들로부터 식탐하는 돼지라는 오해를 산다. 결국 성일은 금식선언을 하는 등 자신의 무죄를 증명하려 하지만 아이들은 믿지 않는다. 금식에 실패한 어느 날, 성일은 밥을 먹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날개로 가려주는 따뜻한 천사를 본다. 한편 아이들은 우연히 원장과 수위가 함께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을 목격한다. 아이들에게 원장과 수위의 식사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그들이 섹스를 나눈 것 같은 환상과 겹쳐지면서 끔찍한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성일의 유일한 친구이자 원장을 의심하던 갑수는 원장을 살해하고 시내로 탈출하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갑수가 원장에게 반발하는 사이 오히려 성일이 고아원을 탈출하게 된다. 다음날 시내에서 눈을 뜬 성일, 그는 사람들이 공공장소에서 수치심도 모른 채 밥을 먹는 놀랍고 역겨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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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가난한 뉴욕 예술가들의 초상

     
뮤지컬 영화 <렌트>

노조수연 기자
2007-01-29 20:50:50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것이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듯, 장르간 이동 역시 새로운 소재 발굴과 비슷한 우려먹기에 지친 우리에게 흥미롭고도 익숙한 풍경이다. ‘원작’의 아우라가 새로운 장르로 이식되어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재미와 감동, 교훈 그리고 문화적 소비자를 불러낼 때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재창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러나 각색-번역의 작업은 갈채 받는 원작에 손대야 할 때 큰 부담을 지고 시작할 수밖에 없다. 뮤지컬 <렌트>의 열혈 팬이었던 감독 크리스 콜럼버스가 이 인기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영화화하기로 결정했을 때에도 그러했으리라.

렌트 헤드(rent head)라 불리는 광적인 팬덤 중 한 사람이었던 크리스 콜럼버스는 일찍이 <나홀로 집에>,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등 주로 ‘아동 취향’ 영화를 연출한 바 있다. 감독이 누구든지, 뮤지컬 팬들은 그들이 숭배하는 작품이 영화로 옮겨질 때 종종 다른 각색에서 벌어지는 재앙처럼 원작의 깊이가 훼손될까 우려했을 것이다.

그러나 콜럼버스 감독은 그의 신상(神像)에 크게 망치질을 하지 않은 채, 뼈대와 재질을 거의 그대로 살려놓았다. 심지어 출연한 주요 등장인물 8명 중 조앤과 미미 역을 제외한 6명은 오리지널 브로드웨이 캐스팅 출신이다. 거기에 더하여 영화 <렌트>는 제한적인 무대에서 표현할 수 없는 뉴욕이라는 공간을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으로 한껏 확장하여 스크린에 화려하게 펼쳐보였다.

비록 ‘원작 뮤지컬을 단지 스크린에 옮긴 것에 지나지 않다’는 비판이 뒤따르기도 했지만 연출자로서는 그 역시 존경하는 원작자에 대한 경의였을 것이며, 실제로 브로드웨이에서 오리지널 캐스팅 공연을 보지 못한 전세계 <렌트> 팬의 갈증을 달래주는 최고의 선물이기도 한 것이다.

“Season's of love”라는 노래의 무대 위 합창으로 영화는 시작된다. 영화의 배경 1989년 12월 24일. 다큐멘터리 독립영화감독 마크(앤서니 랩)와 록 가수이자 송라이터인 로저(아담 파스칼)는 뉴욕 이스트 빌리지의 한 다락방을 같이 쓰는 가난한 예술가다. 먹을 것도, 불을 지필 것도 없이 상당히 비참한 크리스마스 이브를 보내게 된 이들은 청천벽력으로 밀린 집세(rent)를 내라는 독촉을 받게 된다.

‘애비뉴 A의 공공의 적’이 된 옛 친구 베니(타이 디그스)는 집세를 영구 면제해주겠다는 약속을 철회했지만, 만일 로저와 마크가 건물철거에 반대하는 공연을 개최하는 모린(이디나 멘젤)을 저지한다면 갚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물론, 이들은 거절한다.

로저와 마크의 친구이자 MIT에서 철학을 강의하는 콜린스(제스 마틴)는 한밤중 뉴욕의 골목에서 강도들에게 얻어맞고 길거리에 쓰러져 신음하다 ‘북치는 소년’ 엔젤(윌슨 저메인 헤르디아)을 만나 구조된다. 한편 아래층에 사는 댄서 미미(로자리오 도슨)는 로저와 가까워지려 노력하지만, 여자친구의 자살과 에이즈로 인한 절망, 그리고 죽기 전 완성해야 할 하나의 노래를 찾지 못한 조바심으로 가득한 로저의 굳게 닫힌 마음을 여는데 힘겨움을 느낀다.

마크는 자신을 차버리고 변호사 조앤(트레이시 토마스)을 새로운 연인으로 택한 매력적인 공연예술가 모린의 부탁으로 그녀의 공연장 세팅을 돕기 위해 찾아간다. 그곳에서 마주친 건 모린이 아닌 그녀의 연인 조앤. 마크와 조앤은 서로 불쾌감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모린이라는 공통분모에 대해 이야기하며 함께 ‘탱고 모린’을 춤춘다. 이 장면은 영화 <렌트>에 있어서 가장 영화적이면서도 스펙터클이 살아난 장면이며, 질투심과 의구심에 괴로워하면서도 끌릴 수밖에 없는 매혹적인 존재에 대한 심적 갈등을 잘 나타내고 있다.

건물주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훌륭하게 이끌어 사람들의 호응을 얻은 모린을 축하하기 위해 친구들은 다같이 레스토랑에 모인다. 이들에게 “보헤미안은 죽었어!”라고 선언하는 베니를 향해 일갈하는 예술가들, 보헤미안들의 합창인 “La Vie Boheme”은 뮤지컬과 영화의 백미라 할 수 있겠다. 다만 가사의 묘미를 살릴 수 없는 자막번역이나 단어의 문화적 내연에 대한 무지는 이 작품의 이해와 재미에 현저히 걸림돌이 될 것이다.

예컨대 “La Vie Boheme”에 나오는 일련의 명사들, ‘손하임, 손탁, 케이지, 커닝햄, 파블로 네루다, 구로사와, 8BC’등의 단어는 보헤미안의 자유로움이나 예술성을 보여줄 뿐 아니라 그 자체로 운율-라임을 맞추는 일종의 장치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서지만 ‘소설가, 무용가, 민중시인, 영화거장, 록그룹…’ 식으로 자막이 제시되면 노래의 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하게 되므로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렌트>를 더욱 재미있게 보기 위해서는 약간의 학습도 필요한 것이다.

베니와의 관계를 의심한 로저는 미미와 헤어지고 뉴욕을 떠나 산타페로 간다. 이미 에이즈로 친한 친구인 엔젤을 떠나보낸 후였다. 생계를 위해 추구하던 작품세계를 버리고 방송국에 취직한 마크 역시 방황한다. “La vie Boheme”으로 맺는 1막이 등장 인물들 간의 만남과 사랑, 추구하는 길에 대한 신념, 구체제에의 저항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2막은 이별과 인물간의 갈등과 화해로 이루어져 있다. 각자 방황하던 이들은 다시 돌아오고 그러기까지 1년의 세월이 흐른다. 1년이 걸려 이들이 깨달은 사실은,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며 지금 이 순간뿐 다른 날은 없다는(no day but today) 것이다.

<렌트>는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을 원작으로 하긴 했지만 많은 부분이 비교된다. 19세기 파리의 가난한 예술가들은 20세기 뉴욕의 역시 가난한 예술가들로, <라 보엠>에서 주인공이 앓던 결핵은 <렌트>에 와서 에이즈와 약물중독으로 치환됐다.

물론 가장 큰 차이점은 눈에 보이는 결말부일 것이다. 그러나 <렌트>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군(레즈비언, 게이, 크로스드레서, 흑인, 백인, HIV보균자, 약물중독자 등)에 대한 묘사가, 더욱 이 시대의 보엠을 잘 묘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마크가 전쟁의 반대말은 평화가 아니라 창조라 주장하는 부분에서, 이 사회의 전형적 질서와 권태 역시 그들의 적일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만들어진다.

여러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느낄 수 있는 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존재하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치열한 삶이다. 그들은 배고픔과 추위에 떨고 질병에 신음하지만, 추구하는 예술세계에 대한 애정과 갈망을 숨기지 않으며 기존 체제의 모순과 관습에 타협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의 현실은 비루하지만 정신은 그러하지 않다.

그것이 보헤미안의 삶이라는 건가?
Viva, La vie Bohe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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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Ritournelle > * 후기 알뛰세 사상의 진화에 관한 노트

* 자율평론 19호 / 후기 알뛰세 사상의 진화에 관한 노트


- 안또니오 네그리 -

■ 오래 전에 발췌된 것이긴 하지만 이미숙 님이 요약한 네그리의 글(http://myhome.naver.com/skreds/sourcekor/althusser_hm91_negri.htm)이 있어 참고할 자료로서 여기에 옮겨 놓았다. 아직 요약자의 허락을 구하지 못했다.원문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Postmodern Materialism일 것으로 짐작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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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또니오 네그리

"Somthing Has Snapped"

노동운동의 위기는 스탈린주의의 해악으로만 돌릴 수 없다. 노동운동의 위기, 투쟁, 모순을 만드는 것은 운동 그 자체의 성격과 관계가 있다. 문제는 위기가 건설적 영향을 산출하지 못하고 오직 파괴적 영향만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주의를 탄핵하는 것 외에, 공산주의적 사고의 형성과정, 그 사고 내에서 위기의 창조적, 건설적 기능에 대해 이론적 분석이 행해져야 한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맑스의 담화의 중심점들-특히, ①잉여가치론과 착취론, ②국가론과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변증법적 관계를 살펴본다. ①의 경우, 알뛰세는 맑스가 "양적quantitative" 잉여가치론을 수립, 착취와 이데올로기의 기능, 사회에 대한 복잡한 자본주의적 포섭을 이해하고 비판하기에 불충분한 정치적 결론을 도출했다고 말한다. ②의 경우, 맑스이론은 심각하게 결핍되어있다.- 물론 유로코뮤니스트들과 보비오자들이 말하듯, 부르조아국가에 대한 비판의 요소들을 사회적 민주주의 국가의 건설로 돌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알뛰세의 주장은 국가에 대한 맑스의 비판과 레닌의 가르침이 부르조아 국가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대중의 실천 속에서 권력의 재구성의 관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일탈에 대한 방어적 비판, 국가의 파괴와 새로운 사회질서의 건설 사이에 놓여있는 대중적 정체구성에 대한 창조적 전제를 수반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외에도 철학적 개념에도 위기가 발생. 철학 외부, 위에서 "무언가 기대하지 않은 것", "우연적인 aleatory" 요소가 대규모로 개입했다. 이 새로운 요소는 우연적이지만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것으로 철학적 실천의 연속성을 깨트렸다. 위기의 방향이 변하였다. 우연적 요소가 노동운동의 파괴를 가져왔다. 이것에 대한 알뛰세의 사고는 징후적 사고, 시기상조의 분석, 질적 도약을 통한 발전으로 특징지워진다. 위기가 현실의 발전의 열쇠이듯이, 불연속과 시기상조는 이론적 실천의 영혼이다.

The Solitude of Machiavelli

-마키아벨리에 대한 알뛰세의 사고

처음에는 정치가로 간주했으나, 나중의 분석에서 철학적 측면이 부각(1978,"The Solitude of Machiavelli").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주는 원리는 역설의 발견이다: "조건의 완전한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하는 것."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선택은 영역의 선택이다: 지금까지 불가해한 것은, 국가의 정치적 삶에 참여할 때 제기된 문제를 실천 속에서 풀 수 없는 데도 시기상조적 특성인 권력을 사고했다는 것이다. 봉건적 장애를 제거한 새로운 통일된 국가, 오래 지속되고 팽창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이론가로 간주했다. De Sanctis와 Gramsci에 거슬러 올라가는 이런 전통적 해석을 복구한 후, 알뛰세는 그것을 전도시킨다. 중요한 것은 국가수립계획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사고로 표현되는 급진주의이다. 그 사고는 계획실현의 불가능성에 반대한다: 모든 조건, 또는 모든 가능성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사고이다. 통일된 국가와 새로운 군주에 대한 갈망은 존재론적으로 대중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국가구성의 혁명적 과정이 사고 속에서만 일관되게 일어남.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과학적 사고는 분리되고 고립됨. 전적으로 비목적론적 지평위에서 역사성, 우연성에 급진주의의 극대화 부여. 마키아벨리의 사고를 특징짓는 것은, 권력의 현실적 숭배인 "사자"가 아니라 "여우"- 주어진 조건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혁명적 진실을 언제나 상기시키는 금지되고 제한된 진리이다: 그것은 불가능성에 대한 침해이고 동시에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 이론적 정의이다. 알뛰세의 이전의 이론적 분석인 구조적 틀과는 달리 이론은 분열, 역설, 공허(조건의 부재)와 위기이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1992)에서 알뛰세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해석에서 그람시와 단절. "suprise"와 "impossible encounter"를 성취한다. "여우"에 대한 사고는 새로운 일관성 획득. "여우가 된다는 것"-"사자"가 되는 하나의 조건-은 이제 정치적 영역의 권력 보다 신체의 권력, 대중의 권력과 관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권력 차원에서는 폭력에 기초하지 않는 모든 결정요소들이 부재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중들 속, 사회 속에서는 미시적 차원의 대항권력이 존재. 알뛰세는 이런 다양성을 공산주의적 경향의 지속에 근거한 주체의 특징으로 드러내는데 관심을 가짐. 마키아벨리의 시기상조는 어제는 불가피하게 열망을 존재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었지만, 오늘은 제압할 수 없는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에 기초한다.

Margins, Interstices

조건의 완전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철학에 대한 전통적 사고의 역전, 즉 현실에 대한 추정적 사고를 의미한다. 인식론과 이상주의, 엄격하게 명목론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 모든 유물론에 대한 거부. "이론적 실천"의 기초에 있는 태도의 회복과 재확인. 새롭게 요구되는 것은 "reason with body". 둘째, thinking with the body를 의미. 사색적 실천 거부. 맑스 자신이 취했던 길이다.

어떤 상황의 우연적 사실에 대한 급진적 고려하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에 대한 관념에서 더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은 스피노자이다. 그것은 신학에 대한 탈신비화, 명목론의 복구와 재확인, 몸과 즉각적 생활세계론에 의해서이다. 알뛰세의 이전 저작에서, 스피노자는 구조적 유물론의 기초자, 주체 없는 과정의 주요한 설명자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스피노자의 몸이론은 몸과 영혼의 통일, 조건 없는 권력, 개인성과 보편성 간의 관계가 이론적 실천 내부에서 주어지는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긍정적 충동의 예측으로 해석된다.

스피노자에 있어서 "세번째 종류의 지식"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의. 알뛰세의 "몸을 통한 사고"라는 개념에 많은 시사를 줌: 현실을 이해할 때, 경향적으로 실제적 보편성이 아닌 명목적 지평 위에서 주체의 권력의 가장 최고도를 전개시키는 사고 방식이다; 언제나 한계를 창조, 실제적 구체적 존재와 추상적 비존재가 서로 부딪치고, 가깝게 그리고 멀게 언제나 새롭게 재구축된다. 알뛰세에게 스피노자의 "사랑"은 실천이 되고, 신에 대한 지성은 유한한 희망, 실천속에서 이해되고 경향적으로 실현되는 보편성이 된다.

맑스가 기술한 생활노동의 단순성과 추상적 자본과 국가의 지배 간의 관계는 이전처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이데올로기가 현실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광범위하게 확대했다. 세계는 자본에 포섭되었다. ISAs는 다양한 기구를 통해 기계적으로 단일하게 지배를 산출. 포콜트의 경우처럼 알뛰세도 ISAs 권력의 포스트모던적 팽창은 저항(몸의 저항) 없이는 진행될 수 없다. 자본에 의한 전사회의 포섭 하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실천이 가능한가? 자본주의 지배의 틈새에서 대중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곳, 공동체적 관계가 살아있고 저항이 "시장관계가 지배하지 못하는" 곳, 즉각적 생활세계에서이다. 이곳에 공산주의가 존재론적으로 존재.

오늘날 공산주의는 거대한 계획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 대항권력, 특이성으로 드러난다. 국가, 자본, 정당에 대항해서 대중운동, 대중운동 자체가 제시하는 창조적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중운동만이 자유를 산출할 수 있고 지배의 논리에 대항한 고립된 저항과 권력적 한계성을 통합할 수 있다.

Althusser's Kehre

후기 알뛰세에 있어서 사고의 전환점 발생. 계속적 요소와 혁신적 요소가 서로 얽힘, 그러나 혁신적 요소가 헤게모니 획득. 알뛰세의 사고의 계속성은 특히 그의 방법론에서 드러나는데, 실제(텍스트와 사건들)에 대한 징후적 독해, 즉 개념과 논리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요소뿐만 아니라 그것의 질서를 해체하고 약화시키는 요소도 중요시하는 독해가 그것이다. 혁신은 매우 강력하다. 여기에서 유물론의 정의 자체가 수정된다. "생산관계"에 대한 비판에서 새로운 "생산력"의 구성적 과정으로 관심이 이동한다-몇 가지 중요한 결정적 결과를 수반: ①"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 놓여있는 관계에 대한 열린, 더 이상 구조적이지 않고 더 이상 현상학적이지 않는 고찰; ②역사발전의 주체적 요소에 대한 강조; ③사건의 "우연성aleatory"을 주체의 구성적 개입에 대한 열린 가능성으로 고찰할 것을 강조.

방법론적 해석학적 관념인 징후적 독해에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위기'와 현실 변형의 동력으로서 '힘'이라는 존재론적 관념으로 관점 변화. 힘이라는 개념에 이론상 계급투쟁도 이데올로기상 이론적 실천도 더 이상 없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데, 함께 이론을 구축하고 투쟁을 할 수 있는 열린 주체성에 대한 탐색, 즉 실천 속의 철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알뛰세는 ISAs의 개념을 변형시킨 것을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근본적 공헌이라고 생각. ISAs개념에서 "하부구조-상부구조"관계는 결정적으로 전도된다. 알뛰세는 "포스트모던"개념을 ISAs의 전체주의적 기능totalitarian functioning의 지속적 팽창과 확대라고 정의한다. 확대에 확대를 거듭한 끝에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현재 ISAs라는 새로운 적을 맡은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적 힘을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주체성에 대한 호소는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에 대한 필수적 투쟁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주체성을 정의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력의 새로운 속성, 사회적 노동의 비물질적, 추상적, 협동적 특성에 담화가 덧붙여져야 한다. 여기에서 주체성이 다시 형성되고 혁명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난다.

"단절된 것"은 직접적 투쟁의 가능성.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사회가 동일시되어 국가는 빈 지점이 되고, 오직 사회만이 권력에 완전히 재흡수된 영역과 동시에 우연성aleatory의 폭발이 가능한 영역으로 남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폭발은 계급노선을 넘어서 모든 사회적 행위자들의 의식적이고 주체적 차원으로 진행된다. 사회주의적 "이행"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은 알뛰세의 사고에서 전형적인 목적론적 관점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알뛰세의 사고에서 새로 나타난 것은 혁명과정의 "다른 것으로의 이행passage to something else", 즉 공산주의로의 우연적 이행이다. 사회주의의 마지막 가능성 상실: 오직 공산주의만이 실제이다.

Aleatory Materialism

대립하는 두 가지 철학적 전통은 "aleatory materialism"과 그 나머지 것들이다. 하나는스탈린주의가 승인한, Power를 정당화하고 State를 숭상하는 전통(권력에 대한 이상주의적 정당화)이고, 다른 하나는 power에 기초하고 power와 이데올로기를 실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이상주의적idealistic or spiritualistic 철학사고(aleatory materialism)이다.

마키아벨리는 근대성을 위해 aleatory materialism을 기초. 스피노자에게 aleatory materialism은 자연, 즉 "인간"과 역사에 대한 전반적 관점. aleatory materialism의 근본적 특징은 모든 목적론의 파괴- 그래서 사건의 논리를 실증적으로 주장하는 것. 마키아벨리는 "if...., then..."의 구조로 사건과 역사성의 개념을 제시. 인과성은 표면의 우연적 속성에 따른다;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오직 영향effect만이 원인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과성은 전적으로 표면에서 실현된다.-인과성의 모든 내적 필연성은 제거되고, 모든 목적은 무시된다. 알뛰세는 보다 급진적으로 변증법과 휴머니즘과 역사주의를 비판한다. 변증법은 이상주의의 표상 이상이 아니며, 역사주의는 상대주의가 가장한 것에 불과하다; 휴머니즘은 부르조아 문화의 산물이므로 파괴되어야 한다.

aleatory materialism은 역사를 구체적 역사로서 제공하고, "인간"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의 주체로서 제시한다. aleatory materialism은 ①"completely naked" materialism으로, 현재의 지평으로 생각할 수 있다. ②역사성에 대한 주장 ③그 틀은 전적으로 개방적, 목적이나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우연적 사건에 이용가능하며 이것에 기초해서 적절한 실천을 수립한다.

"과정에서 모든 결정은 현존하는 경향적 불변성 중에서 우연적 변수들로서 나타난다." 발생한 모든 결정이 이론적 실천으로 간주된다면 알뛰세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만약 우연적 변수가, 표면의 열린 자유 속에서, 확신에 찬 역사적 행위로 간주되고, 경향적 불변성이 역사 속에서 주체의 자유를 풍부하게 해주는 공산주의적 존재론적 내용으로 간된다면. 이런 이론의 뒤틀림 속에서 우리는 철학과 정치의 우선성을 재확인. 전적으로 비목적론적, 우연성 안에서, 틈새 또는 가장자리에 위치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행에 대한 신화를 제거하면, 존재의 우선성, 즉 실천으로 존재하는 공산주의의 우선성을 도출할 수 있다. 근본적 사실(경제와 정치로부터 이데올로기로 계급투쟁의 이동)이 발생했으므로 이런 이론적 실천은 가능하다.

The Power of the Negative

실제 존재의 조직에서 "가장자리margins"와 "틈새interstices"의 기능 고찰. 부정의 힘-포스트모던 전체주의적 권력은 모든 변증법의 가능성을 제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합리성의 유일한 근거로서 이데올로기의 실현은 완전한 무의미에 집중, 어떤 저항도 비합리성으로 밀어버린다. 이것은 이론적 실천, 저항, 힘power이 존재의 경계, 공허의 경계에서 자신을 드러낼수 있는 상황이다.

부정성에서 어떻게 저항이 가능한가? 알뛰세가 철학을 하던 상황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이론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알뛰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실천적 해답 또한 제싱하려고 노력. 이를 위해 그는 남미의 해방신학을 연구. 해방신학에서 그는 부정의 힘에 들어맞는 많은 이론적 전제들을 발견.

해방신학에서 그는 ①직접적 유물론, "completely naked materialism" 발견. ②실천적 전제는 행동의 긴급성을 드러내는 주체로서 빈곤에 대한 정의 주위에서 규정된다. 알뛰세의 관점에서, 주체가 관여되는 한, 이것은 비형이상학적 입장. 새로운 주체는 부르조아적 합리성 바깥에서, 주체의 필요와 실천에 의해 정의된다.postmetaphysical. ③방법에 관계되는 한, 가난한 대중의 실천은 더 이상 구원의 신학 내에서 정의될 수 없고, 해방에 대한 실천적 관점-비판적, 구체적, 혁명적 실천에 의해 정의된다. 이론적 실천이, 새로운 가능성의 조건 안에서, "void of a detachment"의 위치와 발전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고 알뛰세는 강조한다.

여기에서 aleatory materialism은 이론적 대안이 아니라, 전복된 전체성의 실천적 위치로서, 강력한 행동의 유일한 원천인 거리distance와 가난의 극단적 긴장으로서 설명된다.

Machiavelli the Philosopher, or le Jet de I'Etre

알뛰세에게 새로운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단어는 alea. 결정은 우연적이고 변증법적이 아니다. 먼저 결정된 것도, 목적도 없다. 공허 속에 무한한, 현실 파괴와 지배이데올로기의 파괴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무한한 혁명적 실천의 가능성이 있다. 철학은 언제나 순수하고 단순하게 정치였다. 철학을 Kampfplatz로서, 즉 다양한 우연적 속성들이 전개되는 기초로서 정의함으로써만, 변증법적 유물론은 극복될 수 있다. 국가, 정당 등은 이데올로기가 만드는 빈 공간으로 투쟁이 발생할 수 없다. 중심을 둘러싼 주변, 가장자리에서 ISAs의 부단한 통일이 산출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존재를 기록할 수 있다. 가장자리(사회, 재생산 영역)는 throws of Being으로 구성되었으므로 필수적 공간이다. 가장자리는 저항의 틈새와 고립된 공산주의를 통해 중심에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자리의 문화 재구축의 자유로운 운동은, 착취와 정치적 압력을 넘어서, 공산주주의의 계기를 연다. 철학은 사람들에게 되돌려지고 새로운 주체를 형성한다.

여기에 철학자로서의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 존재한다. 알뛰세는 마키아벨리의 철학에서 정의된대로 정치를 재구축한다. ISAs의 기능으로 빽빽한 이데올로기 사회가 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변증법이라는 허구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이 사회, 역사의 종말의 사회는 공허하고 무의미하고 전적으로 부정적이다. 이런 사회구조의 존재론적 특징은 우연적이다. 그 경계 넘어에서 새로운 저항과 힘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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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상처받은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

우연히 눈에 띈 기사 하나를 옮겨둔다. 매일신문에서 새롭게 연재하는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의 첫 꼭지 시인 이성복 편이다. 기자가 적은 연재의 취지는 이렇다: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용의 피를 뒤집어쓰고 철갑영웅이 된 지그프리드나 어떤 칼도 뚫을 수 없던 헤라클레스도 마음의 상처를 이길 수는 없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입는다. 독일 여성 신학자 도로테 죌레는 “살아 있다는 것은 상처를 입을 수 있다는 말이다”라고 했다.  상처는 인생의 보물이면서, 또 극약이다. 상처에 굴복하느냐, 상처를 딛고 이겨내느냐가 문제다. 특히 예술가들은 상처 입은 영혼들이다. 상처를 문학과 예술로 승화한 이들이다. 상처를 인생의 전기로, 또 삶의 또 다른 목적으로 이룬 문학·예술인들. 그들의 삶과 예술 속의 상처이야기를 격주로 소개한다."  

매일신문(07. 01. 19) [상처가 예술을 낳는다] ① 시인 이성복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다’(시 ‘그날’ 중에서).

시인 이성복은 ‘우리 몸 어딘가가 썩어 들어가는데도 아프지 않다면, 이보다 더 난처한 일이 있을까?’라고 했다. 상처를 얘기하면서 시인 이성복(56)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대에 쓴 절절한 시편의 성찬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이하 ‘뒹구는 돌’)는 벌겋게 곪아 벌어진 상처를 손톱으로 후벼 파는 듯한 시어로 가득 차 있다. ‘내 구두발에 짓이겨',‘엄마, 내 가려운 몸을 구워 줘, 두려워',‘소리 질렀다. 죽여 버릴테야',‘아버지, 아버지! 내가 네 아버지냐’... .

사회가 만들어낼 수 있는 상처 생산력의 극점을 달리던 1980년. 그의 시집은 현실의 폭력성과 일그러진 가족사를 칼 끝 같은 분노로 헤집으며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그의 이 지독한 아픔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한 평 반 남짓한 작업실에서 만난 시인은 무척 고단해 보였다. 침대 하나, 책상 하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책이 머리맡에 놓여 있고, 작은 전기히터만 힘겹게 찬 공기를 데워주고 있었다. 그는 “시는 상처받은 것들에게 올리는 제사”라고 했다. 그렇게 보면 첫 시집 ‘뒹구는 돌’과 두 번째 ‘남해 금산’은 그 제사상의 헌주고 헌사이다. 그는 초기 시집의 상처 이미지는 “집단적 상처가 내면화된 것”일뿐, 나의 개인적 상처는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면 아버지에게 쏟아내는 독설과 어머니에 대한 연민, 누이와 형에 대한 훼손된 감정은 뭐란 말인가.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영민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떼를 써 서울로 유학을 갔다. 가난해도 궁핍할 정도는 아니었고, 부모님도 사려 깊고 온화했다. 시 속에 보이는 폭력 이미지와는 판이했다. 실제 아버지는 시 속의 인물처럼 증오의 대상이거나, 상처를 준 장본인이 아니었다. 그는 “사회적 폭력이 가족사로 구조화된 것”이라며 자신은 “사회를 투영하는 하나의 공명통일 뿐”이었다고 했다. 가족사로 사회의 폭력성을 은유했던 카프카적인 해석인 셈이다.

그의 시 때문에 아버지가 고통을 많이 받았다. ‘그해 가을’에는 ‘아버지, 아버지···X새끼, 너는 입이 열이라도 말 못해’라는 극단적 표현이 있다.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에게 뱉는 욕설로 들리지만, 사실은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는 말이라고 풀이했다. “중간에 끊어 줘야 되는데... 아버지한테 굉장히 미안하지만,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러면 그의 상처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상처야 많지. 겨울날 살얼음 낀 웅덩이의 물도, 추운 날 수족관 속 도다리도 상처라면 상처지”라고 입을 뗐다. 그는 “세상에 발 딛고 살아가는 것이 상처”라고 했다. 내가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는 운명의 불가피성, 원죄에 대한 상처이다.

세상의 모든 고통을 잉크 삼아 시 한 줄 쓰는 시인의 결벽증이 엿보이는 해석이다. 우리가 갓 핀 미나리를 보면 저걸 솎아 먹으면 얼마나 맛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마저 상처, “결국 생명을 해치며 살아가는 우리는 상처의 집합체”라는 것이다. 그는 “육식과 초식은 오십보백보”라며 “나는 광합성이 제일 좋아”라며 웃었다. 그가 본 상처의 근원은 보들레르가 말하듯 인간이 근본적으로 어리석고 무감각하기 때문에 오는 것이다. “불가항력적인 상처도 있지만, 스스로 미성숙해 일어나는 상처, 자기 상처보다 남에게 저지른 상처를 기억하는 자기정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상처투성이로 보이는 그의 시 세계는 원죄를 안고 사는 인간의 생명 사이클을 보여주는 듯하다. 아버지(‘뒹구는 돌’)->어머니(‘남해 금산’)->당신(‘그 여름의 끝’)->가족(‘호랑가시나무의 기억’)->사물(‘아, 입이 없는 것들’)로 이어지는 성장기는 심리학자 프로이트와 라캉이 분석한 인간 성장과정과도 닮았다. 초기의 격동은 가라앉고, 성찰적 그리고 영성적 태도로 사물을 쓰다듬는다. 구조적 폭력에 대한 격한 반응도 ‘아, 입이 없는 것들’에선 아버지의 얼굴에 앉은 파리마저 연민의 대상이 된다.(‘파리도 꽤 이쁜 곤충이다’)

그럼에도 근원적 고통은 여전히 그를 옥죄고 있다. 문학적 창작의 고통이다. 문학은 시체공시실의 시체를 덮은 시트를 벗겨 보는 것이다. “누가 보고 싶겠어. 그러나 벗겨 볼 수밖에 없어. 내 눈알이 휙 돌아가더라도...”라고 했다. 상처는 감각의 깊이지, 상처의 중량 때문만은 아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 섰기 때문에 누구도 탐낼 수 없던 예수의 상처처럼, 그 상처를 기억하고, 껴안고, 곱씹는 것이 오히려 상처 치유의 지름길일 수 있다.”고 했다. 살아 있기에 상처를 받는다. ‘뒹구는 돌’에서 그는 “상처는 ‘살아 있음’의 동의어이며 ‘살아야겠음’의 경보”라고 후기를 적었다.

논어 등 동양철학에 심취했던 시인이 최근 종교적인 성찰에 기대는 것도 상처를 껴안고, 그래서 ‘살아있음’을 확인하려는 과정은 아닐까. 아직 미발표된 시를 기자에게 음송하는 시인의 목소리가 퍽 편안해 보였다. 손바닥만 하던 히터의 열기가 그제야 온 방을 가득 채웠다.(김중기 기자)        

07. 01. 22.

P.S. 이성복 시인에 대해서는 자주 언급했던 듯하다. 한 독서대학에서 강의도 한 적이 있다(한데, 강의자료를 읽을 만한 글로 만든다는 계획은 몇 년째 창고에서 자고 있다). 개인적인 안면은 없지만, 언젠가 문학강연을 들은 적은 있다. 이런저런 자료들을 많이 읽어둔 탓에 기사의 내용은 새로울 게 없지만, '시체공시실'에 대한 비유는 다행히 처음 본다. 시가 씌어지지 않는다고 고통을 토로하던 시인에겐 '잔혹한' 주문이 되겠지만, 그의 새 시집이 나올 때도 되지 않았을까. 상처와 물집 이후의 '시적 존재론'은 어디까지 이르게 되는지 시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 참고로 시인의 '어머니론'을 덧붙여둔다. '어머니'는 이성복 시의 비밀 중 하나이다.  

주간동아(05. 02. 08) "한평생 자기희생의 삶 나에겐 언제나 완벽한 분”

시인 이성복 교수(계명대 문예창작과)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현은 “시집 전체가 하나의 통일적인 유기체를 이루고 있으며, 치밀한 계획 하에 잘 계산되고 제어된 풍경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해 여름의 끝’ 등 지금도 꾸준하게 읽히는 그의 시집들은 장인이 빚은 작품처럼 완결성을 갖췄다. 이성복은 스스로를 ‘1등을 하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 ‘완벽한 글이 아니라면 내 이름표를 달아놓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주변에 그런 사람 있잖아요. 선두에 서지 않으면 불편해하는 사람. 제가 그래요. 근데 다행인 건 밖으로 드러내며 딴사람들을 괴롭히는 게 아니라 음성치질처럼 안으로 끙끙대는 편이란 거죠.(웃음) 이건 제게 성장의 원동력이었지만 동시에 나를 가로막는 벽이기도 했어요. 이런 성격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거예요.”

이 교수에게 어머니는 언제나 완벽한 사람이었다. 학교는 문턱조차 넘어본 적 없는 어머니는 열여덟 살 나이에 땅 한 평 없는 가난한 월급쟁이에게 시집왔다. 그러나 2남3녀를 낳아 기르면서 단 한 번도 남에게 아쉬운 소리를 한 적이 없었다. 자존심 세고 지기 싫어하며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 이 교수가 대여섯 살 무렵, 아버지가 병을 앓아 집안이 흔들릴 정도였으나 어머니는 꿋꿋하게 외풍을 막아내며 자식들을 챙겼다. 가난한 살림을 꾸리면서도 다섯 남매를 모두 대학 공부까지 시켰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성공해야겠다’는 욕심에 서울 유학을 가겠다며 울며 보채는 이 교수를 말없이 지원해준 이도 어머니였다.

“5학년 때 서울 성신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백일장에 참가했어요. 서울 아이들의 새하얀 교복 칼라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어요. 어떻게든 1등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고향에서 삯바느질하며 고생하는 어머니 생각해서라도 장원 못 하면 고향에 못 내려간다’는 ‘앵벌이’식 산문을 써서 억지로 장원했어요. 그래도 어머니는 표정 변화 없이 ‘잘했다’ 한마디만 하시더군요.”

올해 여든아홉이 된 그의 어머니는 거동은 불편해도 기억력은 이 교수보다 정확할 정도로 정신력이 대단하다. 어머니는 대학에 간 손녀딸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소문(?)을 전해 듣고는 “연애 안 해보면 시집도 못 간다”는 말로 손녀딸을 꾹꾹 찔러 결국 ‘자백’을 받아내기도 했다. 기억력이 가물가물한 여든일곱의 아버지를 홀로 수발하는 어머니 소원은 남편보다 먼저 세상 떠나지 않는 것. 이 교수는 “아버지는 어머니 기억 위에 사시는 분”이라 말한다.

이 교수의 작품에는 어머니가 자주 등장한다. 30대의 젊은 아들에게 어머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언젠가 닥칠 어머니와의 이별은 상상만으로도 고통스런 일이었다. 그 고통을 어떻게 감내할 수 있을까, 젊은 아들은 그런 고민을 했다. 그러나 이제 쉰을 넘긴 아들은 어머니를 생로병사의 인생 과정에 선 하나의 생명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이루고 머물다 파괴되고 텅 비는 것이 인생의 과정. 그 앞에 어머니가 있고 그 뒤를 아들이 걷는다. 그래서 더는 어머니와의 이별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아니다.

“지금도 제사 때마다 조상에게 ‘우리 아들 글 잘 쓰게 해달라’고 비는 어머니에게 깊은 사랑을 느낍니다. 젊은 시절 어머니는 제게 성모 마리아처럼 자기희생으로 아들을 위하는 분이셨어요. 지금은 원경에서 어머니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세월과 함께 어머니도 풍화해가고 있음을 사진 찍듯 시를 통해 이해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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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07-04-23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우리 건물에 문인들을 닮은 사람들이 아침이면 자주 드나든다. 이성복 닮은 사람도 있고, 고종석하고 이문열도 있다. 매일 아침마다 입초 근무를 설 때면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디스크자키 전영혁은 늘 음악을 수집한다. 그리고 수집한 음악을 매일 밤 풀어놓는다. 음악은 전파를 타고 흘러가 고픈 이들의 마음에 양식으로 쌓인다. 알고 보니 그가 모으는 것은 음악만이 아니었다. 그는 학교가 일찍 파하는 시험기간을 기다려 하루에 3편씩 영화를 보던 학생이었고, 영화를 실컷 볼 심산으로 대학 졸업 뒤 태창영화사 수입부에 들어간 사람이었다. 창간 11주년을 맞은 <씨네21>은 그가 꼽는 영화음악에 대해 들을 수 있겠냐고 청했다. 얼마 전 <전영혁의 음악세계> 방송 20주년을 맞은 그는, 기념행사며 인터뷰며 여러 가지로 분주함에도 흔쾌히 응해주었다.

“요즘 영화는 <룩 앳 미>와 <코러스> 정도뿐이네요.” “요즘 것은 다른 사람들도 많이 하니까 의미가 없을 것 같았어요. 옛날영화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좋은 정보가 될 수 있을 것도 같고요. 이렇게 좋은 영화들을 못 보고 죽으면 얼마나 억울해요.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앙겔로풀로스 영화들, <흑인 오르페> 이런 건 꼭 봐야 해요. 너무 슬프고 감동적인 영화예요.” 조용히 얘기를 시작한 그는 영화음악보다 외려 영화 얘기를 더 많이 하는 듯도 싶었다. “그래야 책 보는 사람이 판도 사고 영화도 볼 거잖아요. 궁극적으로 영화를 봐야 해요. 판만 들으면 안 돼. 그래서 영화도 좋고 음악도 좋은 영화를 골랐어요.” 그렇게 그는 자신이 수집한 ‘음악이 좋은 영화’ 20편을 풀어놓았다.

 

 

우아하고 감상적인 프랑스영화의 O.S.T

삶을 풍요롭게 하는 선율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La Double Vie De Veronique
1991년/ 감독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음악 즈비그뉴 프라이즈너

아카데미 작품, 음악, 여우주연, 촬영, 각본 이렇게 5개 부문은 수상했어야 마땅한 영화다. 폴란드 감독이 만든 프랑스영화라고 상을 안 준 거다, 미국 사람들이. 우선 음악이 너무 좋고, 내가 개인적으로 세상에서 가장 예쁜 여자라고 생각하는 이렌느 야곱이 나왔다. 영상도 아름다웠다. 크지슈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영화다. 요즘에는 이상한 영화를 다 컬트라고 하는데, 이런 영화가 진짜 컬트라고 생각한다. 비현실적인 주제로 철학을 담은 영화가 진짜 컬트다.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세상에는 나하고 똑같은 이름에 똑같은 외모에 성격이 똑같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 영화의 압권은 폴란드의 베로니카가 노래하다가 탁 쓰러져서 죽는 장면인데, 그때 프랑스의 베로니크는 이를 닦고 있다. 근데 갑자기 막 아파오는 거다. 아무 이유도 없이 너무 슬픈 거다. 자기의 분신이 죽었으니까. 그런 착상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게 너무 좋았다.

음악 역시 너무 좋다. 슬프고 아름답고. 키에슬로프스키 영화의 음악은 항상 즈비그뉴 프라이즈너가 만들었다. 그런 훌륭한 영화음악가가 있었기 때문에 영상과 음악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 재미난 것은 반 부덴 메이어라는 네덜란드 작곡가의 존재인데, 영화 속에 그의 음악이라며 너무 좋은 곡이 나온다. 내가 음악은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듣는 사람이었다. 이 사람이 누군지 어서 알아내서 음반을 모조리 수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다 하는 음대 교수들에게 물어봤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더라. 클래식 백과사전에서 찾았는데 거기에도 없었다. 거기는 한곡만 남기고 죽은 사람들도 다 나오는데. 이 천재들이 만들어낸 가공의 인물이다. 반 부덴 메이어는 결국 프라이즈너 자신인 거다. 이 사람 <레드>에도 나온다. 잠깐 등장한 이렌느 야곱이 레코드 가게에 들어가서 반 부덴 메이어 음반을 찾다가 나가는 장면이다. 아무튼 굉장히 고생했다. 이 사람이 천재 콤비가 지어낸 가상의 존재라는 걸 알기까지.

 

<세상의 모든 아침> Tous les matins du monde
1991년/ 감독 알랭 코르노/ 음악 조르디 사발

알랭 코르노 연출, 제라르 드 파르디외의 호연, 조르디 사발의 음악이 삼위일체를 이룬 고전음악영화의 걸작이다. 비올라 다 감바는 첼로의 모태인 악기인데, 그 연주가의 얘기다. 재밌다. 제라르 드 파르디외는 후진 영화에도 많이 출연했지만 이 영화에서는 연기도 잘하고, 영화 못지않게 음악도 좋다. 조르디 사발은 고음악의 일인자다. 이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음악을 너무 아름답게 만들었다. 몽세라 피구에라스가 노래도 했는데, 조르디 사발의 아내다. 우리는 흔히 조르디 사발 사단이라 그런다. 아들, 딸, 뭐 다 같이 하거든. 전에 LG아트센터에서 공연했다(조르디 사발의 아내, 아들, 딸이 멤버를 이룬 고음악 전문 실내악 앙상블 ‘에스페리옹21’은 지난해 3월 내한했었다).

 

<룩 앳 미> Comme Une Image
2004년/ 감독 아녜스 자우이/ 음악 필립 롱비

프랑스판 ‘삼순이’. 최근 본 영화 중에 너무 좋았던 영화다. 여주인공을 보고 처음엔 ‘너무너무 못생겼다’ 했는데 끝으로 가니 나 역시 그녀가 좋아지더라. 뚱뚱하고 못생겼지만, 섬세하고 순수하고 아주 예민한 성격을 가졌다는, 그런 심리묘사가 잘돼 있다. <타인의 취향>의 명장 아녜스 자우이의 섬세한 심리묘사와 배우들의 연기력이 돋보인다. 백미는 단연 음악이다. 슈베르트의 명곡 <음악에>가 여러 버전으로 담겨 있는데 라스트신의 합창이 가장 감동적이다. 슈베르트가 이미 오래전에 알려준 거다. 음악은 종교 이상의 가치를 가졌고, 사람의 생명도 구할 수 있다고.

 

 

 

<코러스> Les Choristes
2004년/ 감독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음악 브뤼노 클레

크리스토퍼 파라티에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브뤼노 클레가 음악을 맡아 2004년 프랑스 최고 흥행을 기록했다. 휴지처럼 버려진 아이들을 최고의 소년합창단으로 만들어낸 선생님의 이야기가 아름다운 음악과 함께 감동을 안긴다. 그러나 단순한 음악영화로 보면 안 된다. <코러스>는 현재 우리들의 문제- 빈부 격차, 버려지는 아이들, 추락한 교권- 을 어떻게 할 것인가 묻는다. 국회의원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영화고, 촌지받는 선생님들을 다 모아서 보여줘야 하는 영화다. 한국이 경제대국으로 성장했다는데, 고아 수출국 1위다. 아이 버린 사람들에게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학생 입장가! 아이와 어른 모두 볼 수 있는 영화다.

 

 

 

오늘날 월드뮤직의 모태가 된 O.S.T

그리스가 낳은 천재적 음악가들

<Music For Films>
테오 앙겔로풀로스 영화의 영화음악 모음집/ 음악 엘레니 카리인드루

키에슬로프스키와 앙겔로풀로스, 이 두 감독을 제일 좋아한다. 이 사람들 영화는 다 봤다. 지난번 씨네큐브에서 (앙겔로풀로스의) 전작 시리즈를 할 때도 가서 하루에 하나씩, 다 봤다. 상업성이라곤 없이 예술성을 추구하는 위대한 감독들이다. <왕의 남자> 이런 거 보는 사람들은 막 짜증낼 수도 있다. 왜 이런 영화들을 좋다고 그랬는지. 한 3차원쯤에서 영화를 만들고 있는 것 같다. 영화 속에 철학이 담겨 있고, 장면 하나를 딱 떼어내면 훌륭한 그림이 된다. 영상작가인 거다. 대사는 거의 시고. 최근작 <흐느끼는 초원>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서 잃은 미망인의 이야기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배경은 같다. 한국과 그리스는 비슷한 데가 많으니까. 외침도 많이 받았고,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됐고. 마지막 장면에서 여자주인공이 아들과 남편 시신 앞에서 비명을 한마디 콱 지르면서 끝나는데 소름이 막 돋는다. 너무 감동적이고 슬퍼서. 그런 게 영화 만드는 기술인 것 같다. 한국영화 보면 배우들이 미리 다 울어버리지 않나. 그래서야 관객이 울 시간이 없다. 앙겔로풀로스에게는 엘레나 카라인드루가 있다. 그리스의 천재적인 영화음악가다. 여성의 슬프고 섬세한 음악이 영화 속의 슬픔을 극대화한다. 이 여자가 없었으면 앙겔로풀로스가 오늘날의 지위를 차지하지 못했을 거다. 음악이 반은 해준 거다. 이 앨범은 숙명의 짝인 이들 콤비의 영화음악 모음이다. <안개 속의 풍경>의 주제곡 <아다지오>를 비롯해서 <비키퍼> <시테라 섬으로의 여행> 등에서 나온 카라인드루의 곡들이 들어 있다. <엘리제 포 로자>는 그녀가 직접 노래한 유일한 곡이다.

 

<흑인 오르페> Orfeu Do Camaval
1959년/ 감독 마르셀 카뮈/ 음악 루이즈 본파,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와 유리다스 이야기를 모티브로, 프랑스 감독 마르셀 카뮈가 브라질에 가서 만든 영화다. 영화를 못 봤어도, 주제곡 <카니발의 아침>은 들으면 다 안다. 이 영화를 통해 세계적 스탠더드가 된 음악이다. 루이스 본파,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이 함께 음악을 했다. 낙천적이고, 카니발을 하고, 음악이 너무 좋은 나라 브라질을 세계에 알렸다. 보사노바, 삼바, 오늘날 워낙 유명하지 않나. 이 영화를 보고 스탄 게츠 같은 사람들이 브라질 음악을 알게 됐고, 근래 <댄서의 순정>까지 브라질 음악이 나오게 된 셈이다.

 

<희랍인 조르바> Zorba The Greek
1964년/ 감독 마이클 카코야니스/ 음악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음악으로 보자면 <희랍인 조르바>도 굉장히 히트했다. 세계의 유명 밴드들은 한번씩 다 리메이크했던 곡이니까. 명곡이 된 거다. <흑인 오르페>가 브라질 음악을 세계에 알렸다면, <희랍인 조르바>는 그리스 음악을 알렸다. 데오도라키스라는 그리스 국민음악가의 힘과 명배우 앤서니 퀸이 콤비네이션을 이뤄서 오늘날 월드뮤직 부흥의 모태를 이뤘다. 그리스라는 나라가 세계 문명의 발상지이자 철학의 나라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영화다. 데오도라키스의 제자인 코스타스 파파도폴로스가 신들린 듯한 부주키(기타처럼 생긴 그리스 악기) 연주를 들려준다.

 

<페드라> Phaedra
1962년/ 감독 줄스 다신/ 음악 미키스 데오도라키스

<흑인 오르페>와 마찬가지로 그리스 신화를 모티브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렸다. 여주인공 멜리나 메르쿠리는 가수이자 배우로 그리스의 국민스타다. 남자주인공은 <싸이코>의 앤서니 퍼킨스가 맡았다. 연상의 여자와 연하의 남자의 대비, 이루어질 수 없는 슬픈 사랑이 좋았다. 역시 데오도라키스가 음악을 담당했는데 <희랍인 조르바> O.S.T와 함께 그의 양대 역작으로 불린다. <페드라 사랑의 테마>는 멜리나 메르쿠리가 직접 노래했다. 내용은 ‘옛날 그리스 신화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있었는데…’ 이런 것이다. 비극의 끝이 곧 오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라스트신은 앤서니 퍼킨스가 자동차를 타고 자살하는 장면이다. 앤서니 퍼킨스가 카오디오를 맥시멈으로 올려놓고 바흐 음악을 들으면서 ‘굿바이 존 세바스천’ 이렇게 비명을 지른다. 차가 굴러떨어진다. O.S.T에 음악, 목소리, 차 부서지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어 있다. 영화 본 사람은 당시 소름끼쳤던 장면이 생생하게 떠오를 거고 안 본 사람은 영화가 보고 싶어질 거다.

 

 

쓸쓸한 러브스토리로 유명해진 O.S.T

세상 끝의 슬픔 그리고 고독

<부베의 연인> La Ragazza di Bube
1963년/ 감독 루이지 코멘체니 / 음악 카를로 루스티첼리

대학 다닐 때 ‘BB냐 CC냐’ 하는 말이 있었다. 브리지트 바르도와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둘 중 누구를 좋아하느냐는 거다. 그럴 정도로 이 두 여자가 세상 뭇 남자를 사로잡았는데 나는 CC의 팬이었다. CC는 청순가련형이고 BB는 막 벗는 스타일이라 CC의 팬이 7 대 3 정도로 적었다. 나는 BB 좋아하는 애들과는 안 놀았다. 대개 불량학생들이고 공부도 못했거든. 많은 사람들이 예술과 외설의 차이를 얘기하는데, 꼭 필요한 부분에 알몸으로 나오는 건 예술이다. 금방 목욕했는데 5분 뒤에 목욕을 또 하면 그게 외설이다. 브리지트 바르도는 목욕을 자주 했다. 그래서 싫었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는 딱 한번만 한다. 그래서 좋았다. 사춘기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청초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부베의 연인>은 이 청초한 여인의 순애보다. 조지 차키리스라고, 당시 유명했던 배우가 부베 역을 맡았다. 부베는 말하자면 운동권 학생이다. 계속 데모하고 반정부 투쟁하고 피해다니면서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를 항상 외롭게 한다. 그런데 이 여자가 예쁘니까 아까 말한 BB 좋아하는 애들이 들러붙어서 ‘부베는 가망없는 애다. 언젠가는 사형당할 수도 있다’면서 유혹한다. 다른 여자 같았으면 스스로 그 남자를 버렸을 텐데 그녀는 안 넘어간다. 정말 좋은 여자인 거다.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가 매번 감옥으로 면회를 가는데, 기차를 타고 부베를 만나러 갈 때 기뻐하는 그 청순가련한 표정. 그 뒤로 이탈리아 음악가 카를로 루스티첼리의 주제곡이 쫙 깔린다. 이 음악이 청초한 순애보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다.

 

<미드나잇 카우보이> Midnight Cowboy
1969년/ 감독 존 슐레진저/ 음악 존 배리

지금은 죽고 없는, 존 슐레진저 감독의 명작이다. 배우 존 보이트를 세상에 알린 영화기도 하다. 영화의 압권은 더스틴 호프먼이다. 절름발이 노숙자를 연기했는데, 신들린 듯한 최고의 연기를 보여준다. 더스틴 호프먼은 이 영화에서 연기상을 못 받았다. <빠삐용>에서도 상을 못 받았다. 이런 영화에서 상을 안 주고 <투씨> 같은 후진 영화에서 상을 주다니, 아카데미의 권위를 다시 한번 의심할 수밖에 없다. 제목을 두고 ‘카우보이가 밤에 뭐 다닐 일 있냐’ 하는 우스갯소리도 하고 그랬는데, 어떤 소외된 청년, 우리나라로 치자면 어둠의 자식, 그런 뜻이다. 도시의 어둠과 자본주의의 실패를 보여주는 영화. 하모니카의 제왕 투스 틸레망의 연주도 들어 있고 주제곡은 해리 닐슨이 불렀다. 전체 음악 스코어는 007 시리즈의 존 배리가 담당했다. 음악도 좋고, 영화는 더 좋고. 보지 않은 사람에겐 꼭 추천하고 싶다.

 

<파리 텍사스> Paris, Texas
1984년/ 감독 빔 벤더스/ 음악 라이 쿠더

빔 벤더스는 영화감독 중에서 손꼽히는 음악광이다. 그 파트너가 또 라이 쿠더인 거고. 좋은 감독 옆에는 항상 이렇게 훌륭한 음악감독이 있다. 그들의 앙상블이 절묘한 빛을 발한다. 빔 벤더스가 방황하는 여인 나스타샤 킨스키를 아름답게 찍어냈고, 라이 쿠더의 처절한 슬라이드 기타가 채찍처럼 발목에 감긴다. 요부 스타일로 많이 나오는데다 삼류영화에 많이 나와서 나스타샤 킨스키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영화가 생각을 바꿔놓았다. 감독들이 장사하려고 그동안 너무 거지 같은 영화에 출연시켜서 그렇지, 이 여자가 너무 아름다운 여자구나 하고 생각했다. 주제곡과 <Cancion Mixteca>를 추천한다.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Leaving Las Vegas
1995년/ 감독 마이클 피기스/ 음악 마이클 피기스

알코올 중독자와 창녀의 이야기를 너무 아름답게 승화시켰다. 이 영화가 없었으면 니콜라스 케이지도 없다. 엘리자베스 슈도 그 못지않게 잘된 캐스팅이다. 나스타샤 킨스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영화 때문에 엘리자베스 슈를 좋아하게 됐다. 나는 나만 좋아해주는 여자가 좋지 창녀는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창녀가 있을 수 있나 싶더라. 재즈 뮤지션이기도 한 마이클 피기스 감독 자신이 음악까지 담당했다. 주제곡 <My One & Only Love>를 비롯한 <Angel Eyes> <It’s A Lonesome Old Town> 같은 곡들은 스팅이 불렀다.

 

 

 

록 마니아라면 필히 들어야 할 O.S.T

벽을 깨부수는 저항의 외침

<헤어> Hair
1979년/ 감독 밀로스 포먼/ 음악 맥 더모트

밀로스 포먼의 3대 명작 중 하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데우스>를 알고, 마니아들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도 알고 있지만 <헤어>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헤어’는 히피들의 긴 머리를 지칭한다. 베트남전의 희생양이 된 미국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반전영화인데, 군사정권 때 수입돼 국내개봉이 금지됐다. 체코 출신 밀로스 포먼은 내가 보기에 영화감독 중에서 음악을 제일 많이 아는 사람이다. <아마데우스>에서는 모차르트를 완벽하게 묘사했고 <헤어>는 사이키델릭 록 음악으로 채워져 있다. 클래식부터 록을 다 꿰뚫고 있는 거다.

존 새비지가 주인공인데, 오클라호마 농부의 아들, 그러니까 촌놈이다. 별달리 할 일도 없고 취직도 안 돼서 베트남전에 지원한다. 군대 가기 전, 그가 한 무리의 히피를 만나서 놀러다니고 대마초도 피우고 하는 장면이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다. 존 새비지가 입대한 뒤 여자친구가 그를 만나러 온다. 공식적인 면회는 안 되는 상황이다. 그들이 만날 수 있게 히피 친구가 존 새비지 대신 훈련소에서 잠깐 자리를 채워준다. 그런데 갑자기 베트남으로 가는 수송 비행기가 오는 거다. 조마조마한 마음에 보는 이는 손에 땀을 쥐고, 결국 친구가 어이없이 전쟁터에 끌려간다. 라스트신이 압권이다. 다른 감독 같았으면 장황하게 전쟁장면을 보여줬을 텐데, 밀로스 포먼은 한마디 설명없이 바로 무덤을 비춘다. 벌써 죽어서 묻힌 거다. 사람들이 <Let the Sunshine In>을 합창한다. 아무도 울지 않지만 보는 사람은 눈물이 난다. 왜 죄없는 젊은이들을 데려다 죽였냐고.

 

<토미> Tommy
1975년/ 감독 켄 러셀/ 음악 더 후

더 후는 비틀스에 버금가는 영국 록 그룹이다. <토미>는 더 후가 만든 록오페라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소년 토미의 시점에서 인간 군상의 추악함을 고발한다. 순수한 마음을 가진 토미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아도 그런 추악함을 더 잘 볼 수 있다. 토미가 성장하여 산 정상에 올라 만세를 부르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더 후의 리드 보컬 로저 달트리가 토미로 분했다. 감독 켄 러셀은 원래 촬영감독 출신이라 영상이 너무 멋지다. 화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연결되는데 신기해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록 그룹이 직접 만든 음악이니 음악 자체는 말할 것 없이 좋다. 숨은 스타 찾는 재미도 있다. 엘튼 존, 에릭 클랩턴, 키스문 같은 유명한 카메오들이 등장한다. 에릭 클랩턴은 사이비 교주로, 엘튼 존은 핀볼 위저드로 나온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 Pink Floyd: The Wall
1982년/ 감독 앨런 파커/ 음악 핑크 플로이드

박찬욱이 타란티노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데 앨런 파커에게 더 영향을 받은 것 같다. 타란티노도 앨런 파커에게 영향을 받은 거고. 엽기적인 영화는 이 사람이 최고다. <핑크 플로이드의 벽>은 프로그레시브 록 그룹 핑크 플로이드의 컨셉 앨범 <The Wall>을 통째로 영화화한 것이다. <토미>와 마찬가지로 썩어가는 인간 군상을 그렸고 그것을 하나의 벽으로 생각했다. 가장 쇼킹한 장면은 학교를 소시지 공장으로 표현한 부분.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기계 위에서 뚝 떨어지면 소시지가 되어 나온다. 음악이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한다. 너무 슬펐다가 너무 격정적이었다가. 록 뮤지션인 주인공 핑크를 연기한 밥 겔도프는 실제로도 가수다. <Dark Side of the Moon>과 <The Wall>로 많은 이들을 그들의 음악에 빠지게 만든 핑크 플로이드의 이름을 더 널리 알린 영화이기도 하다.

 

<올모스트 훼이모스> Almost Famous
2000년/ 감독 카메론 크로/ 음악 Various Artists

카메론 크로 역시 음악을 좋아하는 감독이다. 음악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영화지만, 국내 개봉이 안 돼서 못 본 사람들이 많다. 비디오나 DVD로 볼 수 밖에 없는데, 대여점에서도 구하기가 어려워 마니아들끼리 서로 돌려보고 그랬다. 밴드 따라다니는 그루피들과 어린 록 칼럼니스트의 이야기니까 음악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재밌을 수밖에 없는 영화다. 하루종일 음악 얘기하고 공연하고. 영화에서 그루피들이 LP판을 죽 넘기면 유명한 레코드들이 많이 지나가는데, 그런 거 보는 재미도 컸다. ‘저 판은 나도 있는 건데’ 하면서.

 

 

 

 

 

불안과 긴장을 배가시키는 O.S.T

신경쇠약 직전의 음악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Frantic, Ascenseur Pour L’echafaud
1958년/ 감독 루이 말/ 음악 마일스 데이비스

좀 잘난 척하는 사람들은 ‘루이 말’ 하면 다 안다. 프랑스영화의 교과서 격으로 생각되는 감독이니까. 이 사람 역시 음악을 굉장히 많이 알았다. <사형대의 엘리베이터>는 그의 대표작인데 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프랑스의 훌륭한 재즈 뮤지션을 다 놔두고 파격적으로 마일스 데이비스에게 음악을 맡겼다. 지금이야 마일스 데이비스를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1958년이니 마일스 데이비스가 청년이었던 시절이고 아직 세계적으로 유명해지기 전이다. 그의 재능을 알아볼 만큼 루이 말은 음악에 조예가 깊었다.

젊은 남자와 사랑에 빠진 여주인공은 남편을 살해하고 그 죽음을 자살로 가장하려 한다. 연인은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만 의도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나 상황을 긴박하게 몰아간다. 남자는 애인의 남편을 살해하고 도망치다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여주인공은 그를 찾아 밤거리를 헤맨다. 그들의 차를 훔쳐탄 또 다른 커플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잔 모로가 여주인공 역을 맡아 긴박감 넘치는 연기를 펼쳤다. 지금은 할머니가 됐지만 좋은 영화에 많이 출연한 프랑스 배우다.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의 음악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인다. 오싹오싹하게 느껴지는 그의 트럼펫 소리가 들려오면 보는 이는 더 으스스하고 공포스러운 기분을 맛본다. 루이 말이 노린 것이 바로 그 점이다. 마일스 데이비스의 연주는 그 자체로도 훌륭해서 영화 마니아들뿐 아니라 음악 마니아들도 영화를 보게 만들었으니,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다.

 

<웨스턴> C’Era Una Volta Il West
1968년/ 감독 세르지오 레오네/ 음악 엔니오 모리코네

세르지오 레오네는 마카로니 웨스턴의 창시자다. 이 이탈리아 감독은 존 웨인만 알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런 스타일의 서부영화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줬다. 예를 들면 결투장면을 클로즈업해 보여주는 것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미국 서부영화들은 롱숏으로 누가 먼저 쏘나 하고 한 화면에 다 담아버리는데, 레오네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풀숏으로 탁 잡아, 보는 이에게 더 큰 긴장을 안긴다. <웨스턴>은 그의 황금기 작품. 헨리 폰다, 찰스 브론슨이 냉정한 총잡이로 출연했다. CC,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도 나온다. 무관의 제왕 엔니오 모리코네의 음악이 영화의 백미다. 그는 레오네가 <황야의 무법자>를 만들 때부터 함께해왔지만 그중에서도 <웨스턴>의 음악이 가장 아름답다. 특히 에다라는 여성 보컬이 노래하는 <Finale>는 몹시 슬프고 처절하다.

 

<트윈픽스> Twin Peaks: Fire Walk with Me
1992년/ 감독 데이비드 린치/ 음악 안젤로 바달라멘티

컬트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데이비드 린치는 두말 필요없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는 데이비드 린치 영화 중에서 <엘리펀트 맨>을 가장 좋아한다. 이 감독은 최근 이상한 영화만 만들고 있지만, 이미 그렇게 좋은 영화를 옛날에 만들었으니 용서할 수 있다. <블루 벨벳> <광란의 사랑> <로스트 하이웨이> <멀홀랜드 드라이브> 등의 영화에서 린치와 줄곧 함께해온 안젤로 바달라멘티의 음악이 공포감을 배가시킨다. 줄리 크루즈라는 여가수가 부른 <Nightingale> <Into the Night> <Falling>, 이 세곡은 영화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잘 맞는다. 노래도 아름답고, 창법이 독특해 사람을 빨아들이는 듯하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Midnight Express
1978년/ 감독 앨런 파커/ 음악 조르지오 모르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앨런 파커의 대표작. 그가 아니고서는 만들 수 없는 영화다. 터키 여행 끝에 얼마 안 되는 마약을 반출하려다 종신형을 받고 터키 감옥에 갇힌 윌리엄 헤이즈의 이야기로, 지옥 같은 감옥에서의 사건과 그의 극적인 탈출이 긴장을 놓지 못하게 한다. 조르지오 모르더의 신시사이저 음악이 불안을 더한다. 그의 음악은 영화 이상으로 히트해서 O.S.T도 많이 팔렸다. 판에 주제곡의 보컬 버전도 실려 있고. 지어낸 이야기라면 별거 아닐지 몰라도, 실제 일어난 일이라 생각하고 보면 너무 충격적이다. 더 재밌고. 당시 아직 감독 데뷔 전이던 올리버 스톤이 이 영화의 각본을 써서 아카데미 각색상을 받았다.

 

 

<출처 :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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