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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율평론 19호 / 후기 알뛰세 사상의 진화에 관한 노트


- 안또니오 네그리 -

■ 오래 전에 발췌된 것이긴 하지만 이미숙 님이 요약한 네그리의 글(http://myhome.naver.com/skreds/sourcekor/althusser_hm91_negri.htm)이 있어 참고할 자료로서 여기에 옮겨 놓았다. 아직 요약자의 허락을 구하지 못했다.원문출처가 밝혀져 있지 않지만 아마도 Postmodern Materialism일 것으로 짐작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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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또니오 네그리

"Somthing Has Snapped"

노동운동의 위기는 스탈린주의의 해악으로만 돌릴 수 없다. 노동운동의 위기, 투쟁, 모순을 만드는 것은 운동 그 자체의 성격과 관계가 있다. 문제는 위기가 건설적 영향을 산출하지 못하고 오직 파괴적 영향만을 산출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스탈린주의를 탄핵하는 것 외에, 공산주의적 사고의 형성과정, 그 사고 내에서 위기의 창조적, 건설적 기능에 대해 이론적 분석이 행해져야 한다.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맑스의 담화의 중심점들-특히, ①잉여가치론과 착취론, ②국가론과 경제투쟁과 정치투쟁의 변증법적 관계를 살펴본다. ①의 경우, 알뛰세는 맑스가 "양적quantitative" 잉여가치론을 수립, 착취와 이데올로기의 기능, 사회에 대한 복잡한 자본주의적 포섭을 이해하고 비판하기에 불충분한 정치적 결론을 도출했다고 말한다. ②의 경우, 맑스이론은 심각하게 결핍되어있다.- 물론 유로코뮤니스트들과 보비오자들이 말하듯, 부르조아국가에 대한 비판의 요소들을 사회적 민주주의 국가의 건설로 돌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아니다. 알뛰세의 주장은 국가에 대한 맑스의 비판과 레닌의 가르침이 부르조아 국가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대중의 실천 속에서 권력의 재구성의 관점,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일탈에 대한 방어적 비판, 국가의 파괴와 새로운 사회질서의 건설 사이에 놓여있는 대중적 정체구성에 대한 창조적 전제를 수반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이 외에도 철학적 개념에도 위기가 발생. 철학 외부, 위에서 "무언가 기대하지 않은 것", "우연적인 aleatory" 요소가 대규모로 개입했다. 이 새로운 요소는 우연적이지만 절대적으로 현실적인 것으로 철학적 실천의 연속성을 깨트렸다. 위기의 방향이 변하였다. 우연적 요소가 노동운동의 파괴를 가져왔다. 이것에 대한 알뛰세의 사고는 징후적 사고, 시기상조의 분석, 질적 도약을 통한 발전으로 특징지워진다. 위기가 현실의 발전의 열쇠이듯이, 불연속과 시기상조는 이론적 실천의 영혼이다.

The Solitude of Machiavelli

-마키아벨리에 대한 알뛰세의 사고

처음에는 정치가로 간주했으나, 나중의 분석에서 철학적 측면이 부각(1978,"The Solitude of Machiavelli"). 이런 분석을 뒷받침해주는 원리는 역설의 발견이다: "조건의 완전한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하는 것."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선택은 영역의 선택이다: 지금까지 불가해한 것은, 국가의 정치적 삶에 참여할 때 제기된 문제를 실천 속에서 풀 수 없는 데도 시기상조적 특성인 권력을 사고했다는 것이다. 봉건적 장애를 제거한 새로운 통일된 국가, 오래 지속되고 팽창할 수 있는 국가에 대한 이론가로 간주했다. De Sanctis와 Gramsci에 거슬러 올라가는 이런 전통적 해석을 복구한 후, 알뛰세는 그것을 전도시킨다. 중요한 것은 국가수립계획이 아니라, 마키아벨리의 사고로 표현되는 급진주의이다. 그 사고는 계획실현의 불가능성에 반대한다: 모든 조건, 또는 모든 가능성의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에 대한 사고이다. 통일된 국가와 새로운 군주에 대한 갈망은 존재론적으로 대중 속에서만 존재하지만, 국가구성의 혁명적 과정이 사고 속에서만 일관되게 일어남.

따라서 마키아벨리의 과학적 사고는 분리되고 고립됨. 전적으로 비목적론적 지평위에서 역사성, 우연성에 급진주의의 극대화 부여. 마키아벨리의 사고를 특징짓는 것은, 권력의 현실적 숭배인 "사자"가 아니라 "여우"- 주어진 조건에서 받아들여질 수 없는 혁명적 진실을 언제나 상기시키는 금지되고 제한된 진리이다: 그것은 불가능성에 대한 침해이고 동시에 가능성에 대한 지속적 이론적 정의이다. 알뛰세의 이전의 이론적 분석인 구조적 틀과는 달리 이론은 분열, 역설, 공허(조건의 부재)와 위기이다.

[미래는 오래 지속된다](1992)에서 알뛰세는 마키아벨리에 대한 해석에서 그람시와 단절. "suprise"와 "impossible encounter"를 성취한다. "여우"에 대한 사고는 새로운 일관성 획득. "여우가 된다는 것"-"사자"가 되는 하나의 조건-은 이제 정치적 영역의 권력 보다 신체의 권력, 대중의 권력과 관계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치권력 차원에서는 폭력에 기초하지 않는 모든 결정요소들이 부재한 것처럼 보이지만, 대중들 속, 사회 속에서는 미시적 차원의 대항권력이 존재. 알뛰세는 이런 다양성을 공산주의적 경향의 지속에 근거한 주체의 특징으로 드러내는데 관심을 가짐. 마키아벨리의 시기상조는 어제는 불가피하게 열망을 존재론적으로 정의하는 것이었지만, 오늘은 제압할 수 없는 공산주의에 대한 정의에 기초한다.

Margins, Interstices

조건의 완전 부재 속에서 새로운 것을 사고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첫째, 철학에 대한 전통적 사고의 역전, 즉 현실에 대한 추정적 사고를 의미한다. 인식론과 이상주의, 엄격하게 명목론적 관점을 취하지 않는 모든 유물론에 대한 거부. "이론적 실천"의 기초에 있는 태도의 회복과 재확인. 새롭게 요구되는 것은 "reason with body". 둘째, thinking with the body를 의미. 사색적 실천 거부. 맑스 자신이 취했던 길이다.

어떤 상황의 우연적 사실에 대한 급진적 고려하는 마키아벨리의 정치에 대한 관념에서 더 논의를 진전시키는 것은 스피노자이다. 그것은 신학에 대한 탈신비화, 명목론의 복구와 재확인, 몸과 즉각적 생활세계론에 의해서이다. 알뛰세의 이전 저작에서, 스피노자는 구조적 유물론의 기초자, 주체 없는 과정의 주요한 설명자로 나타났다. 여기에서 스피노자의 몸이론은 몸과 영혼의 통일, 조건 없는 권력, 개인성과 보편성 간의 관계가 이론적 실천 내부에서 주어지는 세계로 우리를 이끄는 긍정적 충동의 예측으로 해석된다.

스피노자에 있어서 "세번째 종류의 지식"에 대해 광범위하게 논의. 알뛰세의 "몸을 통한 사고"라는 개념에 많은 시사를 줌: 현실을 이해할 때, 경향적으로 실제적 보편성이 아닌 명목적 지평 위에서 주체의 권력의 가장 최고도를 전개시키는 사고 방식이다; 언제나 한계를 창조, 실제적 구체적 존재와 추상적 비존재가 서로 부딪치고, 가깝게 그리고 멀게 언제나 새롭게 재구축된다. 알뛰세에게 스피노자의 "사랑"은 실천이 되고, 신에 대한 지성은 유한한 희망, 실천속에서 이해되고 경향적으로 실현되는 보편성이 된다.

맑스가 기술한 생활노동의 단순성과 추상적 자본과 국가의 지배 간의 관계는 이전처럼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이데올로기가 현실 전체에 대한 지배권을 광범위하게 확대했다. 세계는 자본에 포섭되었다. ISAs는 다양한 기구를 통해 기계적으로 단일하게 지배를 산출. 포콜트의 경우처럼 알뛰세도 ISAs 권력의 포스트모던적 팽창은 저항(몸의 저항) 없이는 진행될 수 없다. 자본에 의한 전사회의 포섭 하에서 어디에서 어떻게 실천이 가능한가? 자본주의 지배의 틈새에서 대중이 스스로를 조직하는 곳, 공동체적 관계가 살아있고 저항이 "시장관계가 지배하지 못하는" 곳, 즉각적 생활세계에서이다. 이곳에 공산주의가 존재론적으로 존재.

오늘날 공산주의는 거대한 계획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저항, 대항권력, 특이성으로 드러난다. 국가, 자본, 정당에 대항해서 대중운동, 대중운동 자체가 제시하는 창조적 방법에 의존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중운동만이 자유를 산출할 수 있고 지배의 논리에 대항한 고립된 저항과 권력적 한계성을 통합할 수 있다.

Althusser's Kehre

후기 알뛰세에 있어서 사고의 전환점 발생. 계속적 요소와 혁신적 요소가 서로 얽힘, 그러나 혁신적 요소가 헤게모니 획득. 알뛰세의 사고의 계속성은 특히 그의 방법론에서 드러나는데, 실제(텍스트와 사건들)에 대한 징후적 독해, 즉 개념과 논리를 논리적으로 구성하는 요소뿐만 아니라 그것의 질서를 해체하고 약화시키는 요소도 중요시하는 독해가 그것이다. 혁신은 매우 강력하다. 여기에서 유물론의 정의 자체가 수정된다. "생산관계"에 대한 비판에서 새로운 "생산력"의 구성적 과정으로 관심이 이동한다-몇 가지 중요한 결정적 결과를 수반: ①"생산력"과 "생산관계" 사이에 놓여있는 관계에 대한 열린, 더 이상 구조적이지 않고 더 이상 현상학적이지 않는 고찰; ②역사발전의 주체적 요소에 대한 강조; ③사건의 "우연성aleatory"을 주체의 구성적 개입에 대한 열린 가능성으로 고찰할 것을 강조.

방법론적 해석학적 관념인 징후적 독해에서 역사적 과정을 이해하는 열쇠로서 '위기'와 현실 변형의 동력으로서 '힘'이라는 존재론적 관념으로 관점 변화. 힘이라는 개념에 이론상 계급투쟁도 이데올로기상 이론적 실천도 더 이상 없다. 오히려 이 모든 것이 존재하는데, 함께 이론을 구축하고 투쟁을 할 수 있는 열린 주체성에 대한 탐색, 즉 실천 속의 철학이라는 개념이 있다.

알뛰세는 ISAs의 개념을 변형시킨 것을 맑스주의 이론에 대한 그의 근본적 공헌이라고 생각. ISAs개념에서 "하부구조-상부구조"관계는 결정적으로 전도된다. 알뛰세는 "포스트모던"개념을 ISAs의 전체주의적 기능totalitarian functioning의 지속적 팽창과 확대라고 정의한다. 확대에 확대를 거듭한 끝에 질적 도약이 일어난다. 현재 ISAs라는 새로운 적을 맡은 계급투쟁은 이데올로기적 힘을 강화해야 한다. 따라서 주체성에 대한 호소는 자본주의의 재구조화에 대한 필수적 투쟁영역을 규정하는 것이다. 새로운 주체성을 정의하는 것과 더불어, 생산력의 새로운 속성, 사회적 노동의 비물질적, 추상적, 협동적 특성에 담화가 덧붙여져야 한다. 여기에서 주체성이 다시 형성되고 혁명에 대한 열망이 되살아난다.

"단절된 것"은 직접적 투쟁의 가능성. 자본주의에서 국가와 사회가 동일시되어 국가는 빈 지점이 되고, 오직 사회만이 권력에 완전히 재흡수된 영역과 동시에 우연성aleatory의 폭발이 가능한 영역으로 남게 되었다. 이 지점에서 폭발은 계급노선을 넘어서 모든 사회적 행위자들의 의식적이고 주체적 차원으로 진행된다. 사회주의적 "이행"이라는 개념에 대한 비판은 알뛰세의 사고에서 전형적인 목적론적 관점에 대한 거부를 의미한다. 알뛰세의 사고에서 새로 나타난 것은 혁명과정의 "다른 것으로의 이행passage to something else", 즉 공산주의로의 우연적 이행이다. 사회주의의 마지막 가능성 상실: 오직 공산주의만이 실제이다.

Aleatory Materialism

대립하는 두 가지 철학적 전통은 "aleatory materialism"과 그 나머지 것들이다. 하나는스탈린주의가 승인한, Power를 정당화하고 State를 숭상하는 전통(권력에 대한 이상주의적 정당화)이고, 다른 하나는 power에 기초하고 power와 이데올로기를 실천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이상주의적idealistic or spiritualistic 철학사고(aleatory materialism)이다.

마키아벨리는 근대성을 위해 aleatory materialism을 기초. 스피노자에게 aleatory materialism은 자연, 즉 "인간"과 역사에 대한 전반적 관점. aleatory materialism의 근본적 특징은 모든 목적론의 파괴- 그래서 사건의 논리를 실증적으로 주장하는 것. 마키아벨리는 "if...., then..."의 구조로 사건과 역사성의 개념을 제시. 인과성은 표면의 우연적 속성에 따른다;스피노자에게 있어서, 오직 영향effect만이 원인에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단순한 이유로, 인과성은 전적으로 표면에서 실현된다.-인과성의 모든 내적 필연성은 제거되고, 모든 목적은 무시된다. 알뛰세는 보다 급진적으로 변증법과 휴머니즘과 역사주의를 비판한다. 변증법은 이상주의의 표상 이상이 아니며, 역사주의는 상대주의가 가장한 것에 불과하다; 휴머니즘은 부르조아 문화의 산물이므로 파괴되어야 한다.

aleatory materialism은 역사를 구체적 역사로서 제공하고, "인간"을 역사의 주체가 아니라 역사 속의 주체로서 제시한다. aleatory materialism은 ①"completely naked" materialism으로, 현재의 지평으로 생각할 수 있다. ②역사성에 대한 주장 ③그 틀은 전적으로 개방적, 목적이나 필연성이 존재하지 않고 모든 우연적 사건에 이용가능하며 이것에 기초해서 적절한 실천을 수립한다.

"과정에서 모든 결정은 현존하는 경향적 불변성 중에서 우연적 변수들로서 나타난다." 발생한 모든 결정이 이론적 실천으로 간주된다면 알뛰세의 이런 주장은 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만약 우연적 변수가, 표면의 열린 자유 속에서, 확신에 찬 역사적 행위로 간주되고, 경향적 불변성이 역사 속에서 주체의 자유를 풍부하게 해주는 공산주의적 존재론적 내용으로 간된다면. 이런 이론의 뒤틀림 속에서 우리는 철학과 정치의 우선성을 재확인. 전적으로 비목적론적, 우연성 안에서, 틈새 또는 가장자리에 위치한 대중의 이데올로기적·정치적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할 수 있다.

이행에 대한 신화를 제거하면, 존재의 우선성, 즉 실천으로 존재하는 공산주의의 우선성을 도출할 수 있다. 근본적 사실(경제와 정치로부터 이데올로기로 계급투쟁의 이동)이 발생했으므로 이런 이론적 실천은 가능하다.

The Power of the Negative

실제 존재의 조직에서 "가장자리margins"와 "틈새interstices"의 기능 고찰. 부정의 힘-포스트모던 전체주의적 권력은 모든 변증법의 가능성을 제거.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합리성의 유일한 근거로서 이데올로기의 실현은 완전한 무의미에 집중, 어떤 저항도 비합리성으로 밀어버린다. 이것은 이론적 실천, 저항, 힘power이 존재의 경계, 공허의 경계에서 자신을 드러낼수 있는 상황이다.

부정성에서 어떻게 저항이 가능한가? 알뛰세가 철학을 하던 상황에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오직 이론적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알뛰세가 이런 질문들에 대해 실천적 해답 또한 제싱하려고 노력. 이를 위해 그는 남미의 해방신학을 연구. 해방신학에서 그는 부정의 힘에 들어맞는 많은 이론적 전제들을 발견.

해방신학에서 그는 ①직접적 유물론, "completely naked materialism" 발견. ②실천적 전제는 행동의 긴급성을 드러내는 주체로서 빈곤에 대한 정의 주위에서 규정된다. 알뛰세의 관점에서, 주체가 관여되는 한, 이것은 비형이상학적 입장. 새로운 주체는 부르조아적 합리성 바깥에서, 주체의 필요와 실천에 의해 정의된다.postmetaphysical. ③방법에 관계되는 한, 가난한 대중의 실천은 더 이상 구원의 신학 내에서 정의될 수 없고, 해방에 대한 실천적 관점-비판적, 구체적, 혁명적 실천에 의해 정의된다. 이론적 실천이, 새로운 가능성의 조건 안에서, "void of a detachment"의 위치와 발전으로서 자신을 드러낸다고 알뛰세는 강조한다.

여기에서 aleatory materialism은 이론적 대안이 아니라, 전복된 전체성의 실천적 위치로서, 강력한 행동의 유일한 원천인 거리distance와 가난의 극단적 긴장으로서 설명된다.

Machiavelli the Philosopher, or le Jet de I'Etre

알뛰세에게 새로운 철학을 가능하게 하는 새로운 단어는 alea. 결정은 우연적이고 변증법적이 아니다. 먼저 결정된 것도, 목적도 없다. 공허 속에 무한한, 현실 파괴와 지배이데올로기의 파괴 가능성이 있다. 동시에 무한한 혁명적 실천의 가능성이 있다. 철학은 언제나 순수하고 단순하게 정치였다. 철학을 Kampfplatz로서, 즉 다양한 우연적 속성들이 전개되는 기초로서 정의함으로써만, 변증법적 유물론은 극복될 수 있다. 국가, 정당 등은 이데올로기가 만드는 빈 공간으로 투쟁이 발생할 수 없다. 중심을 둘러싼 주변, 가장자리에서 ISAs의 부단한 통일이 산출하는 포스트모던 사회의 존재를 기록할 수 있다. 가장자리(사회, 재생산 영역)는 throws of Being으로 구성되었으므로 필수적 공간이다. 가장자리는 저항의 틈새와 고립된 공산주의를 통해 중심에 압력을 가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자리의 문화 재구축의 자유로운 운동은, 착취와 정치적 압력을 넘어서, 공산주주의의 계기를 연다. 철학은 사람들에게 되돌려지고 새로운 주체를 형성한다.

여기에 철학자로서의 마키아벨리의 가르침이 존재한다. 알뛰세는 마키아벨리의 철학에서 정의된대로 정치를 재구축한다. ISAs의 기능으로 빽빽한 이데올로기 사회가 된 포스트모던 사회에서는 변증법이라는 허구가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이 사회, 역사의 종말의 사회는 공허하고 무의미하고 전적으로 부정적이다. 이런 사회구조의 존재론적 특징은 우연적이다. 그 경계 넘어에서 새로운 저항과 힘이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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