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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소리 - 옛 글 속에 떠오르는 옛 사람의 내면 풍경
정민 지음 / 마음산책 / 2002년 4월
평점 :
독서, 또 다른 세계에 접속하는 일
『사생활의 역사』(새물결)에서 프랑스의 역사학자 로제 샤르티에는 묵독을 인쇄술과는 다른 차원의 혁명이라고 정의했다. 알베르토 망구엘의 『독서의 역사』에서도, 서구의 경우 적어도 10세기 이전까지는 묵독이 일반화되지 않았다고 한다. 로제 샤르티에는 낭독에서 묵독으로, 그리고 경전에 대한 집중적인 독서에서 일반서적에 대한 광범위한 독서로의 점진적인 이행을 독서혁명이라고 부른다. 묵독의 가장 큰 특징은 독서의 형태가 개인화되었다는 점, 집단에서 벗어나 자아로의 침잠이 묵독을 통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결국 근대적 이성은 인쇄술의 혁명과 이에 따른 독서형태의 변화에 힘입은 결과라는 것이다.
나는 여름방학 내내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가져다 준 복을 누렸다. 파스칼 키냐르와 폴 오스터의 소설들은 ‘나 자신으로 가라앉는 데’ 알맞춤한 책들이었다. 그것들은 읽는 시간은 아주 지극히 사적인 내밀함을 요구했다. 아주 자폐적인 공간과 시간을 요구했다. 텍스트들은 쉽게 비밀을 드러내지 않았다. 텍스트는 뿌옇고 몽롱했다. 나는 자꾸 어떤 심연 속으로 걷잡을 수 없이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더위가 좀 가셨을 때, 국내에 번역된 키냐르의 소설, 『은밀한 생』,『떠도는 그림자』,『로마의 테라스』와 오스터의 소설 『뉴욕 삼부작』,『우연의 음악』, 『리바이어던』,『환상의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욕심 같아서는 ‘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거기서 그만 둘 것을 명령했다.
파스칼 키냐르는 『은밀한 생』(문학과 지성사)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독서는 자신에 대한 망각이다. 피를 흘리면서 책을 읽기란 불편하지만 죽어가면서도 책을 읽는 것은 가능하다....책읽기는 이 세상과 어긋나고 알 수 없으며 그 자체로 좋은 다른 세계에 두뇌를 집중함으로써 또 하나의 세계에 접속되는 일이다. 그 세계가 나의 구석진 장소였다.” 독서는 이 세계를 떠나 또 다른 세계와 부단히 만나는 일이라는 키냐르의 말에 나는 동의했다. 그의 말대로 독서는 ‘출애급’이었다. 지금 이 땅에 만족한다면 책읽기는 없다. 어떤 식으로든 해방과 탈주를 꿈꿀 수밖에 없다.
반드시 독서는 어떤 결핍의 인식과 함께 한다. 텍스트를 통해 끝없이 자신의 공허를 채우는 일은 사랑을 갈구하는 자의 욕망과 다르지 않다. 파스칼 키냐르는 ‘사랑하다’와 ‘독서하다’, 그리고 ‘음악하다’를 동일어로 본다고 했다. 그것들은 끊임없이 대상과 일체가 되고자 하는 행위다. 나의 공허를 채우고 싶다는 아주 내밀한 욕망이 우리를 끊임없이 텍스트로 향하게 한다. 그러나 텍스트와 텍스트 사이를 누비고 다녀도 공허는 채워지지 않는다. 탐서가들은 채울 수 없는 허기를 가진 자들이다.
방학이 끝나면 다시 일상의 반복이다. 일상으로부터의 탈주는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러나 끊임없이 책을 통해 또 다른 세계와 접속할 수는 있다. 업무 때문에 한 번에 네 다섯 시간 길이의 ‘통시간’이 남지 않고 고작해야 한 두 시간 길이의 ‘자투리’ 시간이 남을 때는 ‘서사’보다는 차라리 논리적인 글을 택했던 것이 내 독서의 습관이었다. 논리적 텍스트들은 휴지(休止)가 잦아도 무방했지만 소설과 같은 서사적인 미학은 고도의 집중을 요구했다. 5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제레미 리프킨의 『육식의 종말』(시공사)을 읽었던 것도 학기 중이었고, 두껍기로 하면 리프킨의 저서에 두 배 분량에 달하는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코리브르)를 읽은 것도 학기 중이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들 하는데, 청명하고 삽상한 날씨에 독서는 좀 억울하다. 하늘을 보고, 바람을 맞고, 가을꽃들의 개화를 지켜보고, 열매의 탐스러움에 눈을 여는 일이 가을에 할 일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가을에도 어떤 결핍은 있기 마련이다. 생명 있는 것들이 탐스러워질수록 내면은 더 휑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발언들이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는 등식을 낳지는 못한다. 따지고 보면 어느 계절하나 독서의 계절 아닌 것이 없다. 존재를 갱신하는 일, 존재를 새로운 가능성의 영역에 편입시키는 일을 계절을 가려서 한다는 일이 어찌 보면 우습다.
꽤 읽었다 하는 사람들도 좌충우돌하는 면이 없지는 않지만, 독서의 내공이 조금 쌓인 사람들이라면 제 나름대로의 독서의 길이 있기 마련이다. 독서의 길은 부단한 시행착오의 결과다. 이 책이다 싶었는데 아니다 싶으면 저 책으로, 그것도 아니면 또 다시 다른 책으로, 이런 식으로 책과 책의 고랑을 건너 뛰다보면 책을 보는 눈이 좀 길러질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도 고역이다 싶을 때는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책은 나름의 운명을 지닌다』(궁리)의 저자인 출판칼럼니스트 표정훈은 책을 고르고 읽는 기본적 방법부터 책을 쓰거나 번역하려는 사람들에 대한 충고, 성공적인 교양도서와 전통적인 출판사, 주요 유형별 책의 특성, 정보화 시대와 지식 고속도로에서의 책읽기 등 책과 관련된 그의 생각을 말한다. 이권우의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도 이와 비슷한 책이다. 이권우는 ‘책으로 따뜻한 세상 만드는 교사들’의 독서연수에서 김진경의 발언을 빌려 이런 강연을 한다. 대충 요약하면 이렇다. ‘정보화 사회는 지식의 카스트 제도를 출현시킬 위험이 있다. 이런 시대에 독서운동을 하는 자세에 일대 변화가 있어야 한다. 낭만적이고 일시적이고 국어교사이기 때문에 관례적으로 독서운동을 한다는 자세에서 벗어나 청소년들이 새로운 사회에서 계급적으로 소외세력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미리 막기 위해 독서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청할 만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최성일의 책, 『테마가 있는 책 읽기』(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는 이권우나 표정훈의 책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 ‘의료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을 돕는 책들, 팔레스타인에 관한 책들, 녹색정치를 다룬 책들, 아나키즘 관련서...’등의 부제만 봐도 알 수 있듯이 현실에 대한 문제 의식에서 출발한다는 것이 최성일의 텍스트들이 가지는 독특한 성격이다. 출판관계 저널에 연재한 글을 묶은 것으로 유명 학자, 예술가, 작가 등의 생애와 사상을 간략히 소개한 책, 『책으로 만나는 사상가들』(책동무논장) 도 같은 맥락에서 씌어진 책이다. 『길을 찾는 책 읽기 』(김학민 저, 아침이슬)는 청소년에게 권하는 100권의 책 이야기를 담고 있다. 고전의 쉬운 해설서와 축약본을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누구나 쉽게 읽힌다는 것이 특색.
『강철로 된 책들』(장석주 저, 바움), 『장정일의 독서일기 1-5』(장정일 저, 범우사), 『 내가 읽은 책과 세상』(김훈 저, 푸른숲)은 문인들의 독서체험, 『이병주의 동서양 고전탐사 1-2』(이병주 저, 생각의나무) 등은 문인들의 독서체험을 기록한 책들이다. 장석주의 책은 미래 생태 환경 식물들, 철학 지식 비평, 대중문화 현대예술 등 11개 분야로 나눠 77권을 소개하고 있다. 소설가이자 시인인 장정일이 자신의 독서 경험을 일기 형식으로 쓴 책.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자신의 상상력으로 텍스트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을 가하고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김훈의 책에서는 독특한 사유를 바탕으로 한 특유의 미문이 빛난다. 이병주의 책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살아남은 고전에서 인간 존재에 대한 근원적 사유를 전개하는 묵직한 문체가 빛을 발한다.
『책 읽는 소리』(정민 저, 마음산책)에서 저자는 '빌려 드린 지가 10년이 다 되어 갑니다. 저 또한 벼슬길에 뜻을 끊고 강릉으로 돌아가, 이것을 읽으며 무료함을 달래려 합니다'고 했다는 허균이 정구에게 보내는 편지의 흥미로운 대목 하나를 소개한다. 책 귀한 줄 모르는 요즘의 세태를 꼬집는 일화다. 이 책에 소개된 책과 관련한 선인들의 풍부한 일화들은 새삼스럽게 책의 고마움과 독서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다. 『책에 미친 바보』(이덕무 저, 권정원 편역, 미다스북스)에서는 겨울밤이면 군불도 때지 못한 냉골 바닥에서 대쪽처럼 정좌한 채 책을 읽는 이덕무의 모습을 만날 수 있다. ‘한서'로 이불을 삼고 '논어'로 병풍을 쳤던, 스스로를 '책에 미친 바보(간서치看書痴)'라 칭했던 조선 후기 실학자 이덕무의 모습은 독서에 게으른 우리를 매섭게 질타한다.
이런 책이 좋다, 저런 책이 좋다, 하는 식으로 책이 책을 말하는 시대는 불행하다. 음악은 듣기 위해 존재하고 책은 읽히기 위해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말하는 책들이 존재하는 것은 ‘내 느낌’을 공유하자는 하나의 제안이리라. 나의 기쁨과 감동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는 하나의 초청이리라. 키냐르는 『은밀한 생』에서 이런 사정을 간단히 요약한다. “책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특이한 결사를 구성한다. 모든 것에 대한 호기심과 연령의 구분 없이 섞이지 않음이, 결코 서로 만나는 일 없이도 그들을 한데 모아 놓는다.” 당신과 하나가 되고 싶다는 그 은밀한 제의에 동참해보는 일도 나쁘지는 않을 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