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드 러시
유미리 지음, 김난주 옮김 / 솔출판사 / 1999년 5월
평점 :
절판


 불안과 폭력에 대한 미학적 보고서
 
  유미리의 신작,『골드러시』는 패륜에 관해 말한다. 한 소년이 그의 아버지를 죽인 것이다. <카즈키>라는 이름을 가진 소년의 나이는 열네 살. 소년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경계에 소년은 놓여 있다. 확실한 소속감을 가질 수 없으므로 경계에 서 있는 자는 불안하다. <불안>은 소년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키워드.
  <가족>은 소년에게 또 다른 불안의 근원. 파칭코 가게를 경영하면서 탈세를 통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아버지. 엄마는 그녀의 첫아들 히데끼가 ‘윌리엄스병’이라는 불치의 병에 걸리자 가정과 자식을 버리고 종교에 빠져든다. 그녀는 철저하게 물질을 배격하는 정신의 삶을 선택한다. 법적으로는 어른이지만 육체적■정신적으로는 소년에 불과한 형, 원조교제에 빠져 있는 누나인 미호, 그녀는 내가 이러고 다닌다고 해서 <누구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아니잖아요!>라고 당당하게 소리친다.
  소년 카즈키의 불행은 성장의 모델을 가질 수 없었다는 데에 있다. 아버지 히데모토는 떳떳하게 말한다. <경찰 신세만 지지 않으면 무슨 짓을 해도 좋다. 네가 필요하다면 아빠는 패션 모델 뺨치는 미인도 언제든 붙여줄 수 있다.>라고. 소년은 그런 아버지를 찌른다. 아버지는 어른이 아니다. 더러운 돈과 욕망의 어린아이.
  작가 유미리는 소년의 어머니 미키를 통해서 이렇게 폭력적인 세상에서 종교는 대체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왜 자식들을 버리고 자기만 도망치냐는 소년의 항변에 미키는 차갑게 대꾸한다. <자기 힘으로 빠져 나오거라. 그렇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어.>  소년이 미키에게 돈을 주자 그녀는 돈을 불태운다. 그것이 애정표현의 옳은 방식이든 아니든, 자신이 건네준 돈이 불태워지자, 소년은 격노한다.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엄마의 뺨을 후려친다. 미키, 그녀는 어른이 아니다. 모든 정상적인 관계와 물질을 거부하는 비이성적 광신에 붙들려 있는 어린아이.
 소년에게 어른은 없다. 아버지와 엄마는 어른으로서의 권위를 가질 수 없다. <이 나이가 돼서 뭣 때문에 사는지 알 수 없어지다니>라고 말하는 <카나모토>라는 사나이. 적어도 소년의 눈에 카나모토는 어른으로 비친다. 그는 적어도 삶을 반성한다. 반성하고 있다. 반성도 모르는 어른이라는 어린아이들이라니!
 아버지는 소년을 자신의 후계자라고 생각하고 끊임없이 소년에게 어른을 강요했다.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파칭코 직원들은 소년에게 모두 존대말을 했다. 그렇다고 소년이 어른이 된 것은 아니다. 소년은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그래, 아버지를 죽이자. 아버지를 죽임으로써 나도 한번 어른이 되어 보는 거다.
  소년이 아버지를 죽였다. 소년은 불안하다. 자신은 어른이 되지 못했고 자신을 돌보아줄 어른을 잃었기 때문이다.소년은 어른 같이 말해본다. 남들의 코웃음을 살 뿐이다. 소년은 아버지의 정부와 또 그녀의 여자 친구와 섹스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불안으로부터의 도피일 뿐, 그런 행위가 소년을 어른으로 만들어주지 못한다. 소년은 카나모토에게 복종하려 하지만 그는 소년에게 죄를 묻는다. 진퇴양난.
  소년은 주머니 안에서 사진 한 장을 꺼낸다. 동물원에서 찍은 가족 사진. 그것은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의 기호이다.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상실된 낙원의 기호. 소년의 가족은 오직 변색된 사진 속에서만 있다. 사진은 현실의 이미지요, 행복의 기호일 뿐이다. 소년의 가족은 현실 속에는 없고, 소년의 행복은 이미지와 기호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유미리의 <골드러시>는 이렇게 가족의 해체를 말한다. 해체된 가족이 어떻게 폭력을 낳는지를 말한다. 『골드러시』에서 희미하게나마 가족 안에 도사리고 있는 파괴의 힘이 어디에서 배태되었는가를 짐작하게 해주는 대목이 있다. 엄마인 미키가 첫아들이 병자가 아니라 천재라고 믿기 시작했을 때, 자신의 첫아들에게 보여준 애정과 관심. 그 덕분에 누나인 미호와 소년은 철저하게 엄마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욕망은 결핍된 것을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상받으려고 한다. 소년은 자신의 형에게 화상을 입히고 꿈 속에서 사람을 죽이기도 한다. 폭력을 통해 결핍된 애정을 보상받으려고 한다.
  소년의 아버지가 <장영창>이라는 한국인임을 짧게 말해주는 대목도 의미심장하다. 소년의 아버지 또한 일본 사회에서 <이지메>의 희생자는 아니었을까. 이 소설에서 폭력은 전염된다. 일본 사회의 이지메의 폭력이 아버지를 폭력적으로 만들고, 아버지의 폭력이 또 다시 자식을 폭력적으로 만든다. 폭력은 이렇게 확대 재생산된다.  
  유미리의 『골드러시』는 불안과 폭력에 대한 미학적 보고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